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56화 (56/227)

#056. 주주 총회 (4)

그녀의 손바닥에 마나가 모여들었다.

화륵-

원소들이 융합을 마친 자리에 선연한 빛깔의 불꽃 하나가 떠올랐다.

그와 동시, 그녀 뒤로 가면을 쓴 정장 차림의 사내 다섯이 칼을 빼 들고 나타났다.

옆에서 피에타가 긴장한 얼굴로 속삭였다.

“조심하세요. 그래도 수재 소리까지 들었던 여자예요. 옆의 가드들도 기사 학교 출신일 확률이 높아요.”

형제자매에 대한 정보는 그녀에게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멜리나.

흥미본위로 입학했던 마탑에서 한 때 신성으로 촉망받았다고 했다.

마법에 대한 관심이 식은 뒤, 원래 계획대로 회사 경영을 배우기 위해 중도에 퇴교하긴 했지만.

‘확실히 유망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군.’

정갈한 인상의 마법이었다.

마법을 완성하는 과정에 원소의 흐트러짐이 없었으며, 융합이 끝나는 데 걸리는 시간 역시 신속했다.

쭉 마법을 배웠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은 차치하고라도, 이미 학부 수준은 훨씬 뛰어넘은 실력이었다.

“신사분. 마법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것 같은데, 상급 기사 수준의 가드 다섯을 동시에 상대하는 게 가능할까요? 그것도 저에게 마법을 방해받으면서요. 마지막으로 기회를 드릴게요. 그 아이를 이쪽으로 보내세요.”

순간 역한 기분이 들었다.

피에타와 달리 그녀의 당당함은 오만함에 가까웠다.

상대를 자신의 밑으로 보고 아량을 베푼다는 듯한 태도가 그녀의 눈빛에 짙게 배어 나왔다.

“거절하지.”

“왜죠? 저 아이가 무얼 약속했나요? 집? 차? 돈? 회사에서의 중역? 뭐가 되었든 제가 그 이상으로 드릴 수 있어요. 머리가 좋으신 분일 거 같은데 잘 생각해 봐요. 어떤 선택이 미래에 더 보탬이 될지.”

“몇 번 물어도 대답은 같다.”

나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송곳 형태의 얼음 결정을 일으켜 그녀를 향해 쏘아 보냈다.

챙!

가드 중 하나가 앞으로 뛰쳐나와 결정이 그녀에게 닿기 전 아슬아슬하게 깨트렸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그녀의 자세는 크게 흔들리고 불꽃은 꺼져 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파악한 그녀가 인상을 구기며 입술을 깨물었다.

“죽여 버려요.”

가드 한 명은 그녀의 곁을 지키고 나머지가 각 방향에서 달려들었다.

“이건 어쩔 수 없이 추가금을 받아야겠군.”

나는 칼을 빼 들고 대응할 자세를 취하고 있는 피에타의 옷 목덜미를 잡아채 내 뒤로 보냈다.

즉시 품에서 마석 하나를 꺼내 삼키고 하급 촉매 하나를 손에 쥐었다.

파직!

촉매가 깨지고 내 앞엔 이제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방호가 펼쳐졌다.

거대하고도 두꺼운 검푸른 막.

그 위로 내리친 가드들의 검이 크게 튕겨 나갔다.

당황한 기색도 없이, 흐트러지려던 자세를 바로잡아 그대로 다시 검을 내리쳤다.

끼기기긱-!

방호에 맞대어진 검에 각기 다른 색의 마나들이 피어올랐다.

방호에 마나로 이루어진 압력이 가해지며 유리 조각을 긁는 것 같은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마법사를 상대해 본 경험이 꽤 있는 녀석들이다.’

단순히 여러 차례 충격을 가하는 것보단 지속적으로 압력을 주는 편이 방호를 깨트리기 쉽다.

기사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한들, 실전 경험이 없다면 이 정도로 자연스러운 대처가 나올 수 없었다.

“과연 큰소리칠 만한 마법이에요. 거기에 촉매까지 사용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그녀의 말대로 방호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나는 손바닥을 앞으로 뻗어 방호의 출력을 더했고 가드들과 아슬아슬한 힘 싸움을 이어나갔다.

“조금만 기다려요. 그 알량한 방호 따위는 내 마법 한 방으로 깨트려줄 테니까.”

다시 그녀의 앞 허공의 한 점으로 마나가 모여들었다.

육안상 보이는 원소의 종류로 보아 화염계열의 공격 마법.

원소가 거세게 요동치고 점차 색이 옅어지는 걸로 보아 원소의 정제를 거치고 있었다.

‘1단계 정제는 넘어섰다. 속도로 보아서는 1분쯤 뒤 2단계가 한계.’

피에타가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지원을 불러올게요.”

“아니. 필요 없다. 오히려 가는 길에 적과 마주쳐 위험할 수 있다.”

가드들의 공격을 버티는 데에 마나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수(水)계 원소를 구심점으로 한 작은 마나 덩어리를 만들어 방호 밖으로 쏘아 보냈다.

쩌적!

가드들의 머리 위에 얼음송곳이 떨어져 낙하했다.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거나 검으로 쳐냈기에 유효타는 나오지 않았다.

완성된 마법을 보고 대응했다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속도.

전투를 다수 겪어 봤을 거라 예상되는 이들답게 원소의 움직임을 사전에 쫓아 대처하고 있었다.

그것이 육안으로 드러난 원소의 색을 보고서든, 원소 자체를 감지해서든.

“마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닌 것 같네요? 이중 영창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고 그렇게 남발하는 걸 보니까요.”

명백히 비웃는 말투였다.

원소에 대한 통제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순간 회로의 흐름이 꼬여 심각한 타격을 입고 만다.

때문에 동시에 여러 마법을 시전하는 건 마법사들 사이에 금기이며 아주 오랜 수련을 쌓은 이들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경지에 이른 마법사라면 원소의 움직임만 보고도 내 실력을 파악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내가 이중 영창을 아주 힘겹게 이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조소를 무시하고 계속해 얼음송곳을 만들어 가드들의 주의를 분산시켰다.

동시에 왼손 부근에 「돌풍」의 시전을 위한 원소들을 끌어모았다.

파직.

원소는 1, 2단계를 넘어 빠르게 정제 3단계에 진입했다.

“다들 비켜서요!”

멜리나의 외침과 함께 가드들이 방호에서 몸을 멀리 떨어트렸다.

이글거리는 불덩이가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들고 있었다.

이미 마법이 완성되어 간섭을 통해 무효화 하기엔 늦었다.

가드들을 막아 내느라 그럴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나는 방호에 쏟았던 정신을 분산시켜, 수(水)계 원소를 위시한 마나를 불덩이를 향해 쏘아 보냈다.

정제는 같은 2단계.

상대가 들인 것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마나를 쏟았으며 상성 우위도 내 쪽에 있다.

쩌적!

불덩이가 우리에게 닿기 직전, 수(水)계 원소는 얼음으로 화해 그대로 불덩이를 덮어 버렸다.

그리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조각나 바닥에 떨어졌다.

“뭐, 뭐야 어떻게 그렇게 급하게 쓴 마법으로….”

내 마법의 시전이 너무도 빨라 같은 2단계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당황했지만, 대처가 느리지는 않았다. 곧바로 내가 시전 중인 「돌풍」에 간섭을 시도해 왔다.

거리를 크게 벌렸던 가드들이 크게 도약해 내게 뛰어들었다.

그 뒤 모든 동작은 초 단위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컥!”

간섭을 시도당하고 있는 「돌풍」 의 원소를 크게 뒤틀자 멜리나가 피를 토하며 바닥에 무릎을 굽혔고.

파직!

원소가 정제 4단계에 진입하자 가드들의 시선이 내 왼손에서 떨어져 정면을 향했다.

4단계만으로도 기감이 뛰어난 자가 아니면 감지할 수 없었다.

왼팔을 휘둘러 융합 직전의 원소들을 그대로 벽 쪽에 흩뿌렸다.

검 끝이 나를 향해 쇄도해 들었지만 더 이상 방호를 펼칠 필요는 없었다.

터엉-!

벽에서 일어난 거대한 돌풍이 창가의 유리 벽을 향해 광범위하게 쏘아져 나갔다.

방심하고 있던 가드들은 급히 마나를 몸 주위에 둘렀으나, 풍압까지 어찌하진 못하고 그대로 유리에 몸이 부딪히며 밖으로 떨어져 내렸다.

비산하는 유리 조각 사이, 나는 떨어지던 멜리나의 몸을 바람으로 감아올렸다.

“이게 무슨….”

허공에 뜬 그녀는 몹시 당황한 얼굴로 아직 상황을 채 인지하지 못한 듯 보였다.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앞에 섰다.

18층.

사라진 유리 벽 아래 지상의 풍경이 아찔하게 펼쳐졌다.

쓰러져 꿈쩍도 하지 못하는 가드들이 작게 보였다.

“이제껏 살아오며 몇 번이나 실패를 겪었나?”

아래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런저런 마법을 시도했지만 내 간섭으로 원소는 통제를 잃고 다시 대기로 돌아갈 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미, 미안해요. 제, 제발 일단 저 좀 안전한 곳에 내려 주고 얘기해요.”

오만하던 말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겁에 질린 연약한 여자 하나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

그녀에겐 내 질문에 대답할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아 보였다.

추측하자면, 아마 살아오며 실패를 겪은 적이 거의 없지 않았을까.

그녀가 가진 신분에 주변인들은 알아서 굽실거리고 가진 재능 또한 나쁘지 않았으니.

아마 자신을 전력으로 꺾으려 드는 강자를 만나본 적이 없을 것이다.

“…….”

풍압을 견디느라 몸을 웅크리고 있던 피에타가 조심스럽게 내 뒤로 다가왔다.

“어떻게 처리하고 싶나?”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 주세요.”

반면 피에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왔다.

처음부터 회장의 신뢰를 얻었던 것은 아니었다.

첩의 자식이란 차별과 무시 속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후에야 비로소 후계자 후보로 오를 수 있었으니까.

“피, 피에타. 나는 오빠가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야. 정말이야.”

피에타의 눈초리는 싸늘했다.

“…상대와 똑같은 사람이 되기 싫어서 목숨을 살리느니 하는 말은 안 할게요. 그것만큼 안일한 말도 없잖아요? 이미 주드로와 비서관의 숨을 직접 끊기도 했고요.”

“이대로 마법을 해제하길 바라나?”

“아뇨. 일단 살리긴 살릴 거예요. 동정이나 아량 따위가 아니라, 나중에 제가 회사를 운영하는 데 분명 이용 가치가 있을 거거든요.”

나름대로 전략적인 판단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에 마법으로 바람을 움직여 멜리나의 몸을 복도로 옮겼다.

그리고 손날로 그녀의 목 뒤를 내리쳐 기절시킨 후에 「수면」 마법을 걸었다.

누군가 와서 세게 흔들어 깨우지 않는 이상은 몇 시간 동안은 의식을 차리지 못할 터였다.

“가지.”

“네.”

다시 복도를 돌아 빠르게 뛰었다.

시간은 이미 정각에서 3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

“저곳이에요. 본사 건물에서 가장 큰 다목적 홀이에요.”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커다란 문이 있었고, 다가가자 가드 둘이 출입을 막았다.

“총회는 이미 시작했습니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가드들의 경계 어린 시선이 매무새가 흐트러지고 작은 핏방울이 곳곳에 튄 우리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었다.

약간의 당황. 우리의 정체와 상황을 가늠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만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대 당장이라도 공격이 가능하단 뜻을 밝히고 있었다.

‘포섭된 인원일 가능성이 크다. 홀 앞이라 바로 공격하지 않는 것이겠지.’

예상대로, 피에타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어도 크게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올 것이 왔다는 곤란한 얼굴에 가까웠다.

“…막내 아가씨, 아니, 전무이사님. 총회 시작 후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부회장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철컥.

나와 피에타는 품에서 피스톨을 꺼내 각자 앞에 선 가드의 이마에 겨누었다.

우리가 이곳까지 도달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배치된 두 가드의 수준은 높지 않았고 우리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했다.

“여세요. 뇌에 바람 쐬기 싫으면.”

가드들은 양손을 위로 든 채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리고 마른 침을 삼키고 문을 양옆으로 열었다.

우리는 거침없이 안으로 향했다.

넓은 홀, 반으로 갈라진 좌석엔 100여 명가량의 주주들이 착석해 있었고 맨 앞의 단상엔 30대 초반 정도의 남자가 마법으로 출력된 화면을 가리키며 서 있었다.

“…하여 전무이사는 현재 수도의 라그랏타 정신전문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받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 언젠가 밝혀질 수밖에 없는 이슈이나 최대한 정보를 느리게 풀어 주가에는 지장이 없도록….”

남자의 눈이 피에타와 마주치고, 그는 발표를 하다말고 입을 벙긋거렸다.

“전무이사 아니야?”

“병원에 입원했다며. 그런데 어떻게 여기 있어?”

“옷에 피가 묻어 있는데.”

장내에 순식간에 웅성거림이 번져나갔다. 배치된 가드들도 당황해 남자의 지시만 기다릴 뿐 어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인이 없다면 앉지.”

나는 가장 앞쪽 빈자리 중 하나에 앉았다. 옆에 있던 주주가 흠칫 놀라며 간격을 벌렸다.

피에타는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단의 중앙으로 향했다.

‘지금부터는 온전히 그녀의 몫.’

모든 주주가 지켜보는 앞에선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녀는 중앙으로 향하며 중간에 흘끗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아직도 당황해하고 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피에타…! 대체 어떻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들고 있던 리모컨을 탁 빼앗아 화면을 넘겼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아실 테니 제 소개는 생략하고, 지금부터 내년도 사업전략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