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후계자 (3)
텅.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나는 한창 작동 중인 기계 장치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거 봐, 내가 뭐랬어. 여기 숨어 있을 거라고 했지?”
“맞네.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말라 있잖아. 물속에 빠졌다던 그놈이야.”
수인들이 먹잇감을 발견한 것 마냥 킬킬거렸다.
내 뒤쪽으로 주드로가 힐끔 시선을 던졌다.
“피에타는 어디 있지? 그 뒤에 숨어 있나?”
“피에타라니, 누굴 말하는지 모르겠군.”
그가 혀를 ‘쯧’차더니 말했다.
“그럼 피에타가 차 안에서 자력으로 빠져나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실력 깨나 있는 용병 같은데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생각해. 계약 지키려다 목숨이 영영 날아가는 수가 있으니까.”
피에타가 이곳에 있다고 이미 확신하는 말투였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공장의 문은 직계나 관리자의 지문 인식으로만 열린다.
공장 안에 있는 외부인 자체가 그녀의 존재를 반증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둘러대는 것은 소용없다.
나는 은밀한 움직임으로 품속에 손을 넣었다.
“지금이라도 협조한다면 목숨은 ….”
“거절하지.”
“…죽고 싶다는데 별수 없지. 처리해. 나머지는 내부를 수색하고.”
신호에 따라 수인 두 녀석이 자리를 박차고 나를 향해 도약했다.
동시라고 해도 좋을 순간, 피스톨을 꺼내 두 차례의 사격을 가했다.
탕!
첫 탄환은 좌측 녀석의 방어막을 짓이긴 뒤 심장을 관통했고.
탕!
두 번째 탄환은 우측 녀석이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어깨를 스치는 데 그쳤다.
첫 탄환은 그대로 나아가 수인들과 함께 등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던 주드로의 귀를 스쳤다.
찌직!
살점이 떨어져 나가며 피가 튀겼다.
손가락이 귓불이 있던 자리를 황망히 더듬었다.
“뭐, 뭐야 이게?”
바닥에 생긴 핏자국을 보며 그가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찰나 정적이 흘렀다.
상황 파악은 고용주보다 고용인들이 더 빨랐다.
수인들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사냥이다! 사냥!”
“총알 따위가 방어막을 뚫었잖아! 어떻게 한 거지?”
나는 계단을 뛰어올라 2층 벽을 따라 길게 이어진 철제 발판을 달렸다.
퉁!
녀석들은 공장설비나 기계 장치를 밟고 그대로 2층으로 뛰어올랐다.
날카로운 손톱들이 그어져 왔다.
앞쪽으로 몸을 구름과 동시에 후방으로 탄환을 쏘았다.
“총알에서 마나가 느껴져! 이런 건 처음 보는데!”
탄환은 명중하지 않았다.
차량 사이를 이동할 때나 조금 전 첫 사격 때와는 달리 녀석들은 확실하게 총을 의식하고 있었다.
“피에타! 어서 나와! 오빠가 왔는데 얼굴을 보여야지!”
주드로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한 손으론 다친 귀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론 피스톨을 든 채 공장 내부를 돌아다녔다.
관리실의 문손잡이를 잡은 순간 나는 총을 쏘았다.
탕!
손잡이가 떨어져 나가고 그가 화들짝 놀라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몇 차례 더 사격을 가했지만, 수인들의 방해로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갔다.
“뭐 하는 거야! 어서 죽이라고! 그렇게 뜸 들이라고 고용한 줄 알아!”
그가 바닥을 기어 설비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걸로 피에타 쪽은 해결되었다.
남은 문제는 수인 네 마리의 처리였다.
‘공격을 피하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
엄밀히 말해 녀석들의 전투력이 그리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동안 내가 강해졌다는 쪽이 옳았다.
사용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은 꾸준히 늘어왔고 손목과 발목의 치료로 움직임 역시 한층 수월해졌으니까.
거기에 이용할 수 있는 지형지물이 많다는 것도 한몫했다.
다만 녀석들이 작정하고 총구의 방향을 읽어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틈을 노려 시전 시간이 짧은 공격마법 몇 개를 던져 보았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비가 터질 위험이 있어 범위가 큰 공격마법과 사격의 각도 역시 제한되었다.
‘대인을 대상으로 한 전격마법이라면 빠르게 끝낼 수 있다. 하지만 마나소모가 크고 외부에 얼마나 많은 적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챙!
총신과 손톱이 부딪혔다.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샷건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녀석이 사라진 반대편 벽에 십 수 개의 탄환이 박혀 들었다.
‘위.’
머리 바로 위로 시선과 총구를 들었다.
탕!
녀석의 반응이 조금 더 빨랐다.
허공에서 벽을 박차 방향을 바꿔 피해냈다.
동시에 그 자리 허공에 다음 녀석의 모습이 나타나 손톱을 내리쳐왔다.
‘피할 수 있는 각도가 아니다.’
짧은 시간 「방호」의 시전을 마치고 손톱의 경로 앞쪽에 왼팔을 내밀었다.
끼긱!
쇠를 긁는 것 같은 소리.
내리쳐지던 손톱이 힘을 다함과 함께 계산에 맞춰 방호는 깨졌다.
순간 녀석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틈을 놓치지 않고 팔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는 동시, 녀석의 입에 총구를 쑤셔 넣었다.
철컥.
“입 속도 그 가죽만큼이나 질긴지 확인해 보자고.”
“……!”
당황한 녀석이 총과 함께 내 손을 씹으려 했지만, 이번엔 내 움직임이 더 빨랐다.
탕!
피와 살이 머리 뒤로 터져 나가고, 시체가 된 녀석은 난간 아래 컨베이어 벨트로 떨어져 멀어져갔다.
“비야스가 죽었어!”
“키킥! 멍청해서 죽은 거지! 나라면 피했을걸!”
녀석들은 동료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 달려들었다.
공격을 피하고 또다시 빈틈을 노리며, 나는 아쉬움을 느꼈다.
‘더 빠르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명중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 녀석들의 방어막은 그리 강력하지 않다.
적은 마나를 소모해, 진즉에 이 상황은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경매장에서 레드스컬을 상대했을 때도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생각에 잠겨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발판의 끝에 도달해 있었다.
부글부글.
아래로는 총신을 주조하기 위한 용광로와 거푸집들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무사히 착지할 만한 곳엔 다른 한 녀석이 이쪽을 올려다보며 대기하고 있었다.
위잉-
「부유」 마법을 준비하고 있을 때 멀리 천장에 연결된 화물이동용 집게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관리실 쪽을 내려다보자 불투명한 유리 너머 패널을 조작하고 있는 피에타가 보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 센스는 있군.’
마나를 아낄 수 있는 선택지를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크게 도약해 집게의 고리 부분을 붙잡았다. 그와 동시 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손톱들이 날아들었다.
“킥! 잔재주 따위를 부려!”
발판에 있던 한 녀석이 뒤따라 크게 도약했다.
인간과는 비교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점프력이었다.
밑에 있던 녀석이 타이밍을 맞춰 뛰어오르고, 위에 녀석은 동료의 등을 발판 삼아 이중으로 도약했다.
「바람덩굴」
“……!”
준비해 놓았던 마법으로 녀석의 몸을 허공에 옭아맸다.
탕!
발버둥 치는 녀석을 향해 탄환을 쏘았고, 그와 함께 마법을 해제했다.
녀석은 컨베이어 벨트 위 탄약 상자 안에 떨어져 파묻혔다.
“발악해 봤자 소용없어! 너나 그 년이나 죽은 목숨이라고!”
그때 외침이 들렸다.
공장 문은 천천히 열리고 있었으며 그 앞에 주드로가 서 있었다.
그가 찬 금시계에서 특수한 파장의 마나가 발산되고 있었다.
‘수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나.’
이그니스의 만년필에 새겨졌던 것과 같은 방식의 마법이었다.
내가 동시에 상대 가능한 수인들의 수를 가늠하고 있을 때 피에타가 나타나 주드로의 몸을 들이받았다.
“이 개자식!”
주드로는 완전한 일반인이었기에 몸싸움은 피에타가 우세했다.
그녀는 상대의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쥐고는 공장 밖으로 빠르게 뛰쳐나갔다.
‘도망친 것은 아니다. 그녀에 대한 내 판단이 맞는다면.’
일단, 지금은 그보다 수인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밖으로 나갈지, 혹은 공장 안에 머무를지 고민하던 중, 탄약 상자에 한가득 담긴 총알이 눈에 들어왔다.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탁.
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아래로 낙하했다.
대기하고 있던 녀석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총알을 한 움큼 손에 쥐어 달리기 시작했다.
“대단해! 그 다리로 어떻게 그리 빨리 뛸 수 있는 거지?”
“아냐, 곧 끝이라고. 장전도 제대로 못 하고 총알을 질질 흘리잖아.”
남은 두 녀석이 킬킬대며 따라붙었다.
나는 마나를 쏟아 발걸음을 강화하는 한편, 화(火)계 원소를 분리해 빠르게 쪼개어 나갔다.
파직.
한 번.
파직.
두 번.
파직.
그리고 다시 세 번.
녀석들은 잔뜩 흥분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주드로는 피에타를 쫓아 밖으로 사라졌나.’
“사냥감이 저기 있다!”
“내거니까 건들지 마! 난 아까 한 놈도 죽이지 못했다고!”
곧 열린 문으로 수인들이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공격이 거세졌지만, 지형을 이용해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달렸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을 끌면 마나가 모두 소진되는 순간이 끝임은 자명했다.
파직!
그리고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네 번째 분열을 마쳤다.
‘어차피 일반적인 방법으론 이 많은 수를 상대할 수 없다. 부상 역시 불가피하다.’
다섯 번째 분열을 이루는 순간 회로엔 손상이 가해진다.
하지만 내 계산상 누적된 손상이 큰 화로 돌아오는 순간은 아직 그때가 멀었다.
그리고 마석이나 촉매를 사용해야 할 상황이라면 차라리 이쪽이 더 낫다는 판단이었다.
회피와 견제 사격.
그리고 원소의 분열 작업.
모든 것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머리는 빳빳해져 갔으나 이미 경험한 적 있어서인지 전보다 후유증은 덜했다.
나는 그런 상황에 웃고 있었다.
그런 마음도 있었다.
단순히 효율적 판단을 내리는 것을 넘어, 내가 가진 힘의 한계를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
이 세계를 빠져나가고자 하는 ‘나’가 아닌 한 명의 ‘마법사’로서.
파직.
일 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다섯 번째 분열이 끝났다.
완성된 마법을 탄환 하나에 각인한 뒤, 탄창에 끼워 피스톨에 장전했다.
그리고 공장의 정중앙에 솟은 기둥을 향해 발사했다.
탕!
“멍청이! 어디를 쏘는 거지!”
탄환은 그대로 기둥에 박혀 들었고, 마법은 아직 발동하지 않았다.
나머지 탄환 하나하나에 「화염폭발」을 각인해 도주 경로 곳곳에 흘려 갔다.
이것들은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충분했기에 최소한의 마나만을 사용했다.
‘피에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면.’
총알을 공장에 뿌리는 작업을 마치고, 마나가 다 떨어져 갈 때쯤, 나는 공장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곧 바깥에서 요란한 차 소리가 들려왔다.
부아앙-!
두꺼운 장갑을 갖춘 검은 세단 한 대가 수인들을 매달고 공장 문으로 진입했다.
텅! 텅! 텅!
가로막는 수인들을 그대로 튕겨 내며 달렸고 정확히 내 앞에 U자를 그리며 멈췄다.
강력한 급제동에 매달려 있던 수인들이 반대편으로 나가떨어졌다.
“타요!”
핸들을 잡은 피에타가 외쳤다.
나는 발판에서 지붕 위로 주저 없이 뛰어내렸다.
탕!
곧바로 등을 돌려 피스톨을 쏘았고 뒤따라 뛰어내리던 녀석이 허공에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끼이익-!
세단이 제대로 방향을 틀며 거칠게 질주를 시작했다.
2층에 있던 수인들이 뛰어내렸으나 차에 튕겨 날아가거나 총에 맞아 그대로 나뒹굴었다.
“타이밍 좋군.”
“늦어서 미안해요. 차 키는 뺏었는데 쓰레기 같은 인간 하나가 좇아와서.”
조작을 미리 해 두었는지 공장 문은 빠른 속도로 닫혀가고 있었다.
켕!
수인 하나가 범퍼에 부딪혀 나가떨어지고 세단의 속도가 순간 주춤했다.
‘이대로라면 통과하지 못할지도.’
순간 피에타가 창문 밖으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금시계였다.
강력한 마나가 발산되었고, 이성을 잃고 달려들던 수인들이 순간 시계가 날아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길이 열린 틈을 놓치지 않고 세단은 액셀을 풀로 밟았다.
아직 숨 돌릴 틈은 없었다.
정신이 팔리지 않고 달려드는 녀석들의 수가 만만치 않았으니까.
탕!
총구의 열기는 식지 않았고.
끼기긱!
세단의 차체는 구겨지고, 긁히고, 부서져 갔다.
“얼마 안 남았어요!”
공장 문이 코앞이었다.
세단이 지나갈 틈이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남은 마나를 모두 끌어모아 전력으로 「방호」를 펼쳤다.
세단 주위에 검푸른 막이 둘러쳐지며 달려들던 수인들이 모두 나가떨어졌다.
텅!
세단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간발의 차로 문은 닫혔다.
곧 문 내부에서 두드리고 긁고 부딪혀대는 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
“…….”
공장 반대편 황야는 대조적으로 적막하기만 했다.
세단 지붕 앞쪽의 개폐구가 열리고, 좌석에 몸을 깊이 파묻고 있는 피에타가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일단은 한숨 돌릴 수 있겠죠?”
“일단은. 고생했다. 머리를 제법 쓸 줄 아는군.”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이었다고 생각해요.”
나는 지붕 위에 앉아 거친 숨을 골랐다.
그때 공장 문 옆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주드로.
피에타에게 얻어맞아 뒹굴었는지 슈트는 흙먼지로 더러워져 있었다.
당황스러움을 감추려는 티가 역력한 모습으로, 그가 말했다.
“도, 돈을 주지! 그 년이 얼마를 제시했던 그 두 배로!”
나는 말 없이 건조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세, 세 배! 그 년을 당장 죽여! 그 총으로 쏴 버리라고!”
그 말을 들은 피에타가 불안감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걱정마라. 약속은 지키니까.”
“고마워요.”
내 대답을 들은 주드로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즉시 도주를 시도했다.
탕!
“내, 내 다리!”
그리고 내가 쏜 총에 맞아 그대로 쓰러져 다리를 부여잡았다.
나는 지붕에서 내려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회장이 될 그릇은 아닌 것 같군. 설사 오른다 해도 내게 도움은 되지 않겠어.”
피에타가 천천히 내 뒤를 따랐다.
“돌려서 칭찬하는 거죠? 난 회장 그릇이 된다고.”
“오, 오지 마! 내가 감히 누군 줄 알고!”
그가 피스톨을 꺼내 발악하듯 쏘아댔다.
피에타가 순간 움찔했지만, 자신 앞에 둘러쳐진 검푸른 막을 보고 자세를 바로 했다.
나는 총을 두 발 더 쏘아 그의 양손을 맞췄다.
“가만두지 않아…. 너희들…반드시….”
입이 거품을 물고, 쉴 새 없이 몸을 떨며 그가 말했다.
나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다 피에타에게 피스톨을 손잡이 쪽으로 돌려 건넸다.
“직접 하지.”
“제가요?”
그녀가 놀란 듯 되물었다.
이내 피스톨을 받아 들고, 자신의 손에 들린 물건과 주드로 사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십여 초의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결심을 굳힌 듯 주드로의 미간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날 음흉하게 쳐다보는 그 시선이 늘 역겨웠어.”
불안과 떨림. 묘한 흥분감.
그녀의 얼굴에 많은 감정이 묻어났다.
탕!
주드로의 몸의 떨림이 멈췄다.
그녀는 피스톨을 쏜 자세 그대로 멈춰있다가 내가 어깨에 손을 얹자 최면에서 풀려난 것처럼 정신을 차렸다.
“잘했다.”
“…별거 없네요. 생각보다는.”
나는 그녀에게 건네받은 피스톨을 시체 옆에 툭 떨어트렸다.
그리고 걸음을 돌려 그녀와 함께 세단에 올라탔다.
“에스텔이 오고 있다. 이대로 직진하지.”
“수인들은요? 저대로 놔둬도 괜찮을까요?”
공장 문에선 여전히 온갖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움푹움푹 패여 나온 곳이 있는 걸로 보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피에타. 누군가 자기 물건에 손대는 걸 싫어하나?”
그녀가 붉은 눈동자로 빤히 나를 쳐다보다 눈치챘다는 듯 입술을 열었다.
“기본적으론 누구나 다 그렇죠. 안에 뭔가를 하신 건가요?”
“그래.”
“제 것이 될 공장이긴 하지만,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니 상관없어요. 에반 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액셀을 밟아 차와 공장의 거리를 벌린 뒤, 한 차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총알에 각인시켰던 마법들을 일제히 발동시켰다.
쾅!
공장 중앙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쳤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올라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쾅! 쾅! 쾅!
공장 벽 높이 달린 창문들이 연이어 깨지며 불길이 터져 나왔다.
폭발은 연쇄적으로 일어나 공장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맙소사.”
넋을 잃은 목소리로 피에타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불꽃이 넘실거리며 명멸했다.
“이런 건 처음 봐요.”
나는 그녀 의견에 동의했다.
이건 나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위력이었으니까.
그녀는 불길을 바라보다 조심스레 다가가 물건이 녹아 버리지는 않을 만한 위치에 머리에 꽂고 있던 장신구를 던졌다.
묶여 있던 그녀의 머리가 풀어지며 아래로 흘렀다.
“혹시 몰라서요. 누군가 흔적을 조사하러 올 수도 있으니까.”
죽음을 위장하겠다는 소리였다.
그 후로도 한참이나 불길은 사그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석양 아래 파편을 흩뿌리며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처럼 타올랐다.
그 광경을 주시하다 문득 나는 읊조렸다.
“운전을 맡겨도 되겠나? 조금 피곤하군.”
정신이 몽롱했다.
졸음이 몰려오고 귀가 먹먹했다.
마법을 무리하게 쓴 후유증이었다.
몸이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강력히 보내오고 있었다.
“알았어요. 자리를 바꿔요. 잠깐 쉬고 계세요.”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머리 뒤로 전해지는 불꽃의 온기가, 의식이 수면 아래 가라앉는 것을 부추겼다.
멀리 에스텔이 이쪽을 향해 가까워져 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