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51화 (51/227)

#051. 후계자 (2)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것은 이걸로 세 번째인가.’

상황에 대한 기시감도 잠시, 나는 몸 주위에 방호를 둘렀다.

텅!

거대한 물소리와 함께 시야가 암청색으로 바뀌었다.

여유를 찾을 틈도 없이 주위를 살펴 밴을 찾았다.

‘저기군.’

멀지 않은 곳에 밴이 가라앉고 있었다. 빠르게 접근해 상태를 파악했다.

앞 유리 너머로는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죽어 있는 운전수가 보였다.

유리에 금이 가 있는 걸로 보아,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머리를 세게 부딪친 모양이었다.

‘공간이 분리되어 뒷자리까진 보이지 않는다.’

밴의 옆으로 이동해 문을 당겼지만 수압 차에 의해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창문엔 검은 필름이 덧씌워져 내부를 확인할 수 없었으며 안쪽에선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죽었거나, 기절했거나.

나는 주위의 물을 응결시켜 얼음으로 된 나이프를 만들었다.

끼긱-!

손잡이 옆 부분에 박아 넣은 뒤 마나를 실어 원 모양으로 절삭해 나갔다.

곧 생겨난 구멍으로 손을 집어넣어 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물속이라… 쉽지 않군.’

마법으로 근력을 강화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허리 높이까지 차올라있던 물은 공간이 연결되자 빠르게 높이를 더해갔다.

피에타.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반대쪽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숨소리에 이상 없는 거로 보아 단순히 의식을 잃은 듯 보였다.

호흡을 크게 해 숨을 보충했다.

그녀를 품 앞쪽에 안아 내 목에 손을 두르게 했다.

차를 빠져나가 수면 위로 향했다.

그리고 물 밖으로 모습을 내밀기 전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죽음을 완전히 확인하려 하는 건가. 치밀한 면이 있군.’

절벽 위쪽에 사람들의 인영이 비추었다.

아군이 아닌 적.

아래를 내려다보며 일정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나는 다시 자세를 취해 앞쪽으로 헤엄쳐 나갔다.

상류로 향할수록 감시의 수가 줄긴 했으나 완전한 틈을 찾기는 힘들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물속에서 버텨야 할지도.’

나는 피에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어 숨을 불어 넣었다.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다만 품에서 전해지는 거센 심장박동이 그녀가 살아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계속해 상류로 향했다.

감시 역시 계속해 이어졌고, 수십 초의 시간이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때 절벽 위에서 에스텔의 기운이 느껴졌다.

‘타이밍 잘 맞춰서 왔군.’

에스텔 역시 내 위치를 감지할 수 있으니, 상황을 정리하고 도움을 주러 온 모양이었다.

감시자들은 당황한 기색을 띠다가 무기를 꺼내들고 에스텔 쪽으로 사라졌다.

“하아-!”

나는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 숨부터 들이쉬었다.

피에타의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기에, 다시 한번 입술을 포개어 숨을 불어 넣었다.

콜록!

순간 그녀가 정신을 차렸다.

곧 내 가슴이 밀쳐져 얼굴 사이의 거리가 벌어졌다.

“지, 지금 뭘 하신 거예요?”

“진정해. 상황을 먼저 파악해라.”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동자에 비쳤던 분노와 당황감이 빠른 속도로 잦아들었다.

“…오해했어요. 엄밀히 말해 오해는 아니지만, 그러실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네요. 제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죠? 다른 사람들은요?”

상황 파악이 빨랐다.

그래도 완전히 정신을 되찾지는 못했는지 조금 횡설수설하는 모습이었다.

“약 5분 정도. 위에서는 아직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일단 여기서 나가지. 수영할 줄 아나?”

“아뇨. 물에 뜨긴 하는데….”

나는 대답 없이 발에 힘을 주어 앞으로 나아갔다.

놀란 그녀가 내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고, 곧 강기슭에 도착했다.

“몸은 움직일 수 있나?”

“네. 괜찮아요. 운이 좋았어요. 밴 안에 쿠션이 많아서.”

강의 상류로 조금 더 이동해 절벽 위에서 보이는 위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새하얀 자갈밭 위에 모닥불을 피워 옷을 말렸다.

“용병을 이렇게까지 많이 고용할 줄을 몰랐어요. 겨우 나 하나 죽이겠다고.”

“두렵나?”

“아뇨. 그럴 리가. 그 사람들이 진심이란 걸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죠.”

‘그 사람’들은 그녀의 오빠와 언니들을 가리킬 터였다.

“우선 위쪽으로 올라갈 길을 찾아야겠죠? 지도는 차와 함께 가라앉아서 주변 탐색부터….”

“북으로 30,9. 북동으로 21,28. 다시 남동으로 15,12만큼 이동하면 협곡으로 올라가는 언덕이 나온다.”

“…그걸 다 외웠다고요?”

그녀가 혀를 내둘렀다.

불길에 장작을 더 던져 넣으며 내가 물었다.

“그쪽을 지지하는 세력은 없나? 혼자 셋을 상대해야 하니 그 수가 적다 해도.”

“…있었는데 모두 죽었죠. 등을 돌리거나. 업무능력은 제가 가장 뛰어나지만, 알잖아요. 회사 내 정치라는 게 그거 하나만으론 안 된다는 거.”

“회장은 너를 후계자로 내정해 놓았다. 중립 세력은 그럼에도 아무 반응이 없었나?”

“주주총회 때 공식적인 발표가 나기 전까진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제가 후계자라 믿는다고 쳐도, 이 정도 난관도 극복하지 못한다면 회장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요.”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하고 싶던 내용이었다.

어느 정도 옷이 마르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피운 흔적을 지웠다.

그리고 강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구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아까 물속에서 있었던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전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이런 상황에 그런 걸 따질 만큼 전 멍청하지 않거든요.”

“신경 쓰고 있지 않다.”

“…….”

바위와 바위를 건넜다.

거리가 멀거나 미끄러운 곳에선 손을 내밀어 그녀가 안전히 건널 수 있도록 도왔다.

“도중에 깨서 제대로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게 아쉽긴 해요. 그래도 이성과 처음 하는 입맞춤이었는데.”

“농담을 하는 걸 보니 몸 상태가 괜찮아졌나 보군.”

“농담 아닌데요.”

“로우택틱의 차기 회장은 농담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기억해 두지.”

“에반 님, 남의 말 잘 안 듣는 성격이죠?”

이동한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자갈밭이 끝나고 황야가 나타났다.

풍경 멀리 점점이 찍힌 공장들이 보였으며 절벽은 우측으로만 이어지고 있었다.

거리가 멀긴 했지만 에스텔은 절벽 위에서 꾸준히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별다른 함성이나 쇳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적을 섬멸했을 확률은 낮다. 개개인의 기량으로 메우기엔 병력 차가 컸으니. 피에타란 목표가 사라지고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는 편이 가장 가능성 큰 추측인가.’

강의 하류를 뒤졌다면 우리의 시체가 떠오르지 않았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 일대의 수색이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

평지를 걷던 중 나는 피에타를 잡아끌며 근처의 바위 뒤에 등을 기댔다.

고개를 슬쩍 빼 앞쪽을 주시했다.

─분명 죽었을 텐데, 뭐 하러 시체까지 확인하겠다는 거야?

─키, 키킥. 그냥 죽여 버리는 건 어때? 고용주고 뭐고.

─안 돼. 켄드릭한테 혼날 거야. 얌전히 강을 따라 내려가 보자고.

─그건 안 되지. 맞으면 아프단 말이야.

─맞아 맞아. 그건 싫어. 그 금발여자도 무시무시했지만 켄드릭이 화났을 때보다는 못했어.

“…수인들이네요.”

도마뱀이나 개, 쥐 따위의 수인들이 킬킬거리며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문제라면 한두 무리가 아니며 그 수가 스물에 육박한다는 점에 있었다.

지금 나서 싸울 수는 없었다.

개개의 전투력이 그리 높진 않다곤 하나, 호위 없이 저만한 수의 수인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지켜야 할 대상도 있으니.’

몸을 숨기고 에스텔이 오기를 기다리는 게 최선의 판단이었다.

우리는 기척을 죽이고 빠른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숨을 곳이 없는 건 오는 길에 봤잖아요. 차라리 신호탄 같은 걸 쏘아 아군에게 위치를 알리는 게….”

“내 위치는 이미 에스텔이 알고 있다. 그리고 숨을 장소는 존재한다.”

길을 되돌아간 지 얼마지 않아 시야 끝에 공장 하나가 나타났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그녀는 다소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곳에도 공장이…. 대체 언제 체크한 거예요? 난 못 보고 지나쳤는데.”

“문을 열 수 있나?”

“가능해요. 저를 포함해 아버지의 직계는 모든 공장에 지문이 등록되어 있어요.”

수색이 좁혀져 오는 걸 느끼며 우리는 걸음을 빨리했다.

입구에 도착해 그녀가 마법 센서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공장 문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양옆으로 열렸다.

“들어가요.”

피스톨 종류의 총기를 생산하는 무인 공장이었다.

내부엔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고 완성된 총기와 탄약들이 상자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완전한 자동화 시설로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이곳이라면 무사히 숨어 있을 수 있겠어요.”

“만약 전투가 벌어져도 개활지보다는 이런 지형지물을 이용할 수 있는 장소가 훨씬 나을 거다.”

“애초에 적들은 들어 오지 못해요.”

일반적으로는 그랬다.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외벽은 두꺼운 강철로 이루어져 있고 허가받은 이 외에는 출입할 수 없으니.

“단 한 가지 가능성만 제외한다면 말이지.”

시선이 마주쳤다.

눈빛을 읽은 그녀가 알아차린 듯 말했다.

“…확실히 그러네요. 하지만 확률은 낮아요.”

“아예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거다.”

그녀는 상자 옆에 앉아 완성된 총알들 위에 손바닥을 얻었다.

“뜨겁네요. 이걸로 사람을 쏘면 죽겠죠?”

나는 픽 웃고 말았다.

“당연한 소리를. 이제껏 많이 보아오지 않았나?”

“그냥 현실감이 잘 들지 않아서요. 주위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기 시작한 게 고작 한 달 사이의 일이라. 내가 손에 넣으려는 회사 물건에 내 사람이 죽으니까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침묵이 흘렀고, 규칙적인 기계 소리가 잠시 그 자리를 메웠다.

“회장이 되려는 이유는 뭐지?”

“글쎄요? 회장 자리가 거기에 있어서?”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분명 피로로 바싹 마른 얼굴임에도 화사함이 묻어났다.

“굳이 꼽자면 복수겠네요. 어머니를 무시했던 인간들에 대한 복수.”

“사생아인가?”

“내가 아는 마법사들은 탑에 박혀 공부만 해서 그런지 눈치라고는 없던데, 에반 님은 다르시네요.”

“통속적이군.”

“통속적이죠.”

“사람을 죽여본 적은 있나?”

“없어요. 아직까지는.”

그녀는 피스톨 하나를 집어 탄창에 총알을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일단 단기적인 목표는 그래요. 회장 자리에 오르는 것. 그다음은 잘 모르겠네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며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래서 그런지 저는 어떤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나는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를 주시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긴 시간을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그녀가 가진 욕망은 진짜라는 것.

화법과 목소리.

표정과 행동 양식.

모든 요소가 그녀라는 인간을 판단하는 지표가 되었다.

‘욕망과 그 동기는 충분하다. 그걸 실현할 실력도 있다고 판단된다.’

말하자면 카인이나 에스텔과 같은 종류의 인간이었다.

단기적 목표밖에 없다고 했으나 회장 취임에 만족해 멈출 리는 없었다.

욕망의 나침반이 계속해 다음 방향을 가리킬 테니까.

‘적어도 몇 달 못 버티고 물러나거나 하지는 않겠군.’

커넥션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로우택틱의 회장을 뒷배로 둘 수 있다면 여러 면에서 행동 가능한 폭이 훨씬 늘어날 테니까.

그때 공장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순간 하던 동작을 멈췄다.

“일단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지.”

그녀는 내 지시에 따라 유리로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관리실의 패널 밑에, 나는 바깥의 설비 뒤쪽에 몸을 숨겼다.

발소리는 쉽게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입구 쪽에 멈춰 서더니, 곧 센서가 작동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우웅-

다수의 발소리가 안으로 진입하고 높은 톤의 목소리가 공장 내부를 울렸다.

“피에타! 내 사랑하는 동생! 혹시 여기 있다면 나와서 얘기를 했으면 좋겠는데!”

하이에나 형태의 수인 다섯.

그 사이 슈트를 입은 이십 대 후반 정도의 남자가 끼어 있었다.

피에타가 인상착의와 성격을 이야기했었기에, 그가 누군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네드비체 가문의 셋째.

주드로 네드비체.

그 또한 직계이니 공장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당연했다.

‘오만하긴 하나 겁이 많은 성격이라고. 작전에 직접 참여했을 가능성은 작게 보았는데.’

녀석은 실실 웃음을 흘리며 공장을 거닐었다.

“강 하류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시체가 떠오르지 않더라고. 혹시 몰라 강바닥을 뒤졌는데 차가 비어있지 뭐야. 운전수만 남겨 두고 말이지. 근처를 싹 다 뒤졌는데 흔적 하나 보이지 않고.”

곳곳을 살피던 녀석이 천천히 관리실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물속에서 갑자기 사라졌을 리는 없거든. 암만 생각해 봐도 강 위쪽으로 올라간 게 맞아서 말이지.”

녀석이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근처에 숨을 만한 데라고는 여기 밖에 없고.”

관리실 안에는 피에타가 있었다.

끼이-

문이 열리는 타이밍, 나는 근처의 피스톨을 밀어 바닥에 떨어트렸다.

텅.

한 차례 금속음이 공장 내부를 스산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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