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50화 (50/227)

#050. 후계자 (1)

출발 당일 오전, 차를 몰고 88번 구역의 외곽으로 나섰다.

전투용으로 개조된 여러 대의 차량과 두꺼운 장갑을 갖춘 밴이 보였다.

그 사이사이, 스무 명가량의 용병들이 차에 몸을 기대어 서 있었다.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피에타는 머리를 뒤로 묶고 커다란 선글라스에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나는 코트 안쪽을 흘긋 보며 말했다.

“방탄조끼라. 크게 도움은 안 될 것 같은데.”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겠죠. 그리고 호신 장비가 이것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그녀가 용병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인사해요. 마지막으로 합류한 에반 님과 에스텔 님이에요. 에반 님은 아주 실력 있는 마법사고, 에스텔 님은 아주 경험이 풍부하신… 뭐라고 해 드릴까요?”

“용병이라고 하세요.”

“네. 용병이라고 하시네요. 다들 들으셨죠?”

그녀의 소개를 들은 용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법사라고?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

“출발이 늦어져 한소리 하려고 했는데, 마법사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눈가에 긴 흉터가 있는 사내가 다가왔고, 모두의 시선이 이쪽에 쏠렸다.

“전문 분야가 뭐지?”

“화염 계열. 보조보다는 공격 쪽.”

“마법을 쓰는 걸 우리가 직접 볼 수 있겠나?”

피에타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에반 님의 실력은 이미 제가 검증했어요. 그런 무례는….”

“고용주님. 저희가 여기저기 목숨을 내걸고 다니지만 그게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함께 할 동료가 어떤 사람인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지 않겠습니까?”

뒤쪽의 용병들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흉터는 시선을 다시 내게로 돌리고 말했다.

“가능하겠나?”

나는 말 없이 손바닥으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마나가 광폭하게 몰아치며 거대한 불덩이가 형성되어 갔다.

고오오-

‘3단계 정도면 충분하겠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내보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얕보일 필요도 없었다.

특히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용병들 사이에서는.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용병들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긴장을 곧추세웠다.

“마, 맙소사.”

점점 커지는 불덩이에 흉터가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사람 몸집만 한 크기의 불덩이는 주변에 있던 거대한 바위로 쏘아져 나가 굉음과 함께 일대를 불태워 버렸다.

“이 정도면 되었나?”

침묵이 감돌았다.

내가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 있던 피에타도 적지 않게 놀란 기색이었다.

짝. 짝짝짝.

검게 생겨난 구덩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흉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훌륭해. 내가 본 화염 마법 중 가장 뛰어난 마법이었네.”

“에스텔의 실력은 내가 보장하지.”

“그러지. 아무도 불만 없을 걸세.”

용병들의 표정이 확연히 밝아진 것이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매일 목숨을 내놓고 살아가는 것이 용병이며 실력 있는 마법사의 존재는 생존확률을 높여주는 보증수표 같은 것이었으니까.

“…놀랍네요. 실력자인 줄은 알았지만 속성을 두 개까지 다룰 줄은. 약속한 보수로 충분한 것, 맞죠?”

“안심해라. 계약 내용을 바꿀 생각은 없으니.”

“감사해라.”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고는 용병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바닥에 지도를 펼쳐 놓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목표는 65번 구역이에요. 이곳 78번 구역에서 직선거리 자체는 얼마 되지 않지만 바로 갈 수는 없어요. 산맥 하나가 가로막고 있거든요.”

지도를 내려다보던 용병 중 하나가 말했다.

“다른 구역을 경유할 수밖에 없겠군요.”

“맞아요. 67번 구역을 경유할 생각이에요. 그곳에 도착하기도 쉽진 않겠지만요. 알다시피 이 부근은 지형이 험하기로 유명해 길을 많이 돌아가야 해요. 가능한 최단 경로를 그려보면.”

피에타가 펜을 꺼내어 지도 위에 선을 그려나갔다.

곧 이리저리 꼬이고 얽힌 이동 경로가 완성되었다.

“사실 이곳에서 60번대 구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루트라고 생각하면 돼요. 밤낮으로 달리고 방해가 없다고 가정하면 3일 정도가 걸리고요.”

“쉽진 않겠군요.”

그녀가 끝없이 펼쳐진 황야로 고개를 돌렸다.

“맞아요.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보수는 확실히 챙겨 드릴 거예요.”

다시 좌중을 돌아보며 그녀가 말했다.

“한동안은 일을 쉬어도 될 정도로요. 그럼 다들 준비되셨나요?”

* * *

부아앙-!

열 대의 차량이 밴을 중심으로 황야를 달렸다.

“다들 실력은 있어 보이던데요. 차도 제대로 된 전투용이고.”

시선은 앞으로 한 채, 에스텔이 운전을 하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용병들은 모두 수준급의 마나유저였으며 여러 방식으로 개조된 험지용 차량을 몰고 있었다.

“이대로 아무 일도 안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무리한 욕심이겠죠?”

“일어난다. 반드시. 내가 상대라면 반드시 황야를 가로지르는 때를 노릴 거다.”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기습하기 좋은 장소이긴 해요. 목격자도 없고 지형 덕에 숨을 곳도 많으니까요.”

60번대 구역과 70번대 구역 사이의 황야는 다른 구역 간의 황야보다 유난히 더 험했다.

산맥과 구릉, 협곡이 나타나는 횟수가 잦았고 평지를 달릴 때도 요철로 차체가 흔들리는 정도가 심했다.

“평지에 바위가 이렇게 많은 곳은 처음 봐요. 저 차들도 다 잠깐 한눈팔았다가 저렇게 된 거겠죠?”

“그랬을 확률이 높겠지.”

곳곳에 솟은 바위 앞엔 망가진 차체의 잔해가 눈에 띄었다.

풍경 멀리 흙먼지 사이론 크고 작은 공장들의 모습이 간간이 보여 왔다.

“이런 곳까지 공장이 있네요. 전부 로우택틱 소유 같아요.”

“기업의 논리지. 도시 근처의 땅을 매입하는 것보단 운송 비용을 치르는 게 이득이라 판단했을 테니.”

오전에 시작된 주행은 오후까지도 계속되었다.

작열하는 태양으로 차들의 엔진은 냉각장치가 무색하도록 쉽게 과열되었고 피에타의 지시로 차들은 절벽 아래의 그늘에서 멈췄다.

“젠장. 죽겠군.”

“황야에 나올 때마다 느끼지만 방열 장비 따위 하나도 쓸모가 없다니까.”

“그 조끼? 이왕 살 거면 마법이 걸린 물건으로 사지 그랬나.”

“나도 알지. 그런 데 그게 한두 푼이냐고. 그 돈으로 차라리 차를 더 개조하고 말지. 아니면 비싼 술을 먹거나.”

차량 밖으로 나온 용병들의 몸은 땀으로 죽죽 젖어 있었다.

특히 지붕 위 총포를 조작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은 그 정도가 더 했다.

“다들 힘내요. 계약 보수금 받으시면 사고 싶은 물건들 마음껏 사시라고요.”

피에타는 차량 사이를 돌아다니며 용병들을 독려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두 분은 멀쩡하시네요. 마법을 쓰신 거겠죠?”

“네. 차 안에 냉기를 둘렀거든요.”

피에타의 이마엔 작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용병들만큼은 아니지만, 더위에 조금 지친 기색이 드러났다.

‘그녀 정도의 재력이라면 방열 장비는 갖출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어쩌면 모두 용병을 고용하는 데 사용했을 수도.’

그녀가 운용 가능한 자금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스무 명의 상급 용병을 고용했다면 적지 않을 금액을 썼을 터였다.

“저 사람들은 그쪽 신분을 정확히는 모르는 거죠?”

“말은 안 했죠. 하지만 눈치 빠른 사람은 어느 정도 추측은 하고 있을걸요?”

그 뒤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가능성은 작지만 언니와 오빠들이 추격을 멈췄는지도 몰라요. 제가 겁을 먹고 오지 않으리라 판단하고.”

꽤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적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어떤 낌새나 기척 같은 것도.

“68번 구역에 도착한 후엔 인원을 쪼개 이동할 생각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는 그녀는 우리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그 내용을 되뇌는 것 같았다.

그녀 얼굴에 감도는 미묘한 불안감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막다른 길에 몰려 있는 상황인지도 몰랐다.

겉으로 여유를 보였던 것과 달리.

심리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그럼 앞으로도 고생해 주세요.”

차로 향하는 그녀에게 마법을 걸었다. 냉기를 느낀 그녀가 움찔하더니 이쪽을 돌아보았다.

용병들 전체는 무리더라도 한 사람에게 몇 시간 간격으로 마법을 걸어주는 정도는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배려 고마워요.”

그녀의 다소 피로했던 얼굴 위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뒤 그녀는 밴으로 사라졌다.

“먼저 말은 안 하네요. 그냥 자신한테도 마법을 써줄 수 있느냐 물어보면 될걸.”

안쓰러움을 느꼈는지 이번에는 에스텔도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겠지.”

“부자들은 이상한 데서 그러더라고요.”

“아니. 그 자존심 덕분에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

차량은 다시 밴을 중심으로 하여 황야를 달렸다.

여전히 적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태양은 내리쬐었으며, 운전은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이대로 65번 구역에 도착하는 건가?”

“돈은 당연히 받을 수 있겠지. 계약 조건에 반드시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체력과 정신력은 지속적으로 닳아져 나갔고, 용병들은 상황에 대한 은근한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그렇게 황야에서의 세 번째 태양이 떠올랐다.

65번까지 남은 거리는 단 하루.

나조차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좌석에 몸을 깊이 묻고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에스텔. 지붕을 열어라.”

“알았어요.”

내 굳은 얼굴을 보고 그녀는 곧장 지시에 따랐다.

위잉-

지붕에 오르자 모래바람이 세차게 얼굴을 때렸다.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북동쪽 협곡 안쪽. 거리는 550미터 정도.’

마나가 이지러지고 있었다.

채 접근해 저지할 수 없는 어마 무시한 속도로.

곧 마법이 완성되고 무언가 이쪽을 향해 쏘아져 오기 시작했다.

‘상황을 설명하면 늦는다.’

“핸들을 틀어라!”

착용하고 있던 통신 장비로 전 차량에 메시지를 전했다.

그와 동시 용병들의 차가 각자의 위치에 따라 좌우로 갈라졌고, 그 자리에 거대한 얼음송곳들이 박혀 들었다.

콰직!

전열 차 한 대의 앞 유리에 송곳이 꽂혔다.

끼이익-!

차는 반원을 그리며 뒤편으로 멀어져갔다. 운전석의 용병은 가슴이 꿰뚫려 즉사해 있었다.

차는 바위에 충돌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쾅!

─적이다! 차 사이 거리를 벌려!

용병 중 리더 역을 맡은 이의 지시와 함께 전 차량의 간격이 벌어졌다.

차들은 핸들을 이리저리 꺾으며 계속해 날아드는 얼음송곳을 피해 냈다.

오래지 않아 송곳의 사격이 멈추고, 협곡에서 스무 대가량의 차가 나와 우리 뒤로 따라붙기 시작했다

─염병. 어쩐지 너무 쉽더라니.

─다들 살아서 보자고.

적과 아군 할 것 없이 차량에 부착된 총포가 불을 뿜었다.

장갑에 탄환이 부딪쳐 금속 울리는 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쾅!

바주카에 직격당한 적의 차 한 대가 전복되었고.

끼익!

바퀴가 터진 아군의 차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미끄러져 왔다.

“운전이 거칠어도 이해해요!”

에스텔이 급히 핸들을 틀었다.

차는 크게 흔들렸고 나는 자세를 낮춰 몸의 중심을 잡았다가 다시 허리를 일으켰다.

“옆이요!”

적의 선두 차량이 좌측 앞 방향에 달라붙어 있었다.

창문을 통해 지붕 위로 기어오르던 도마뱀 외형의 수인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쪽을 향해 뛰었다.

탕!

끼엑!

총알에 미간이 꿰뚫린 녀석이 허공에서 추락해 풍경 뒤로 나뒹굴어 갔다.

주위를 둘러보자 아군의 차량 사이사이에 적의 차량이 끼어들어 있었다.

적들이 아군 차량의 지붕 위로 뛰어들며 난전이 벌어졌다.

‘이만한 숫자의 수인이라면 역시 그린호드인가.’

적의 수는 어림잡아 오십 이상.

운전수까지 고려하면 칠십에 육박했다.

나는 피에타에게 무전을 보냈다.

“미움을 꽤 많이 받는 모양인데.”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밴에서는 절대 나오지 마라. 장갑이 두껍고 달리는 차량 위니 적도 쉽게 뚫지는 못할 거다.”

─그래야죠, 당연히. 반드시 살아서 이 수모를 갚아 줘야 하니까.

탕! 탕!

켕!

침착하게 수인들을 하나씩 쏘아 떨어트리며 주위를 살폈다.

멀지 않은 거리의 녀석들에게선 마나를 흡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분명 적 중에 마법사가 있다.’

전투 중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으니 먼저 녀석을 찾아 제거해야 했다.

“뜯어! 여기 그 년이 타고 있다고!”

밴의 지붕엔 이미 수인들이 득시글거렸다. 개폐 장치를 뜯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이었다.

그때 앞쪽의 차량 지붕에서 아군 용병 하나가 떨어져 이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바람으로 그를 감싸 올려 이쪽 앞 범퍼에 무사히 착지시켰다.

“바, 방금 마법인가? 영락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운전을 잘하나?”

“할 줄은 아네. 여기 운전 못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숙련된 용병답게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당황스러움을 추스르는 것도 빨랐다.

“마법사님이 그러라는데 일단 따라야지 별수 있나.”

그는 내 지시에 따라 에스텔 대신 운전석에 앉았다.

지붕 뒤쪽으로 올라온 그녀에게 나는 밴 쪽을 눈짓하며 말했다.

“할 수 있겠나?”

“많이 달라붙어 있긴 하네요. 문제없어요.”

부아앙-!

스포츠카는 차 사이를 이리저리 비집으며 전장의 최선두로 달려나갔다.

팟!

메이스와 방패를 건네받은 그녀는 지붕과 지붕 사이를 건너뛰며 순식간에 밴 위에 도착했다.

메이스가 크게 휘둘러지자 수인들이 나가떨어졌고 남은 녀석들도 그녀의 공세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차 밖으로 밀려났다.

곧 그녀 손목의 팔찌가 빛을 발하고 주위에 거대한 방호막이 생겨났다.

쿵!

도약 중이던 수인들이 막에 가로막혀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일단 이걸로 한시름 돌릴 수 있겠군.’

나는 다시 전장을 주시했다.

아주 작은 마나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고, 곧 미세한 이지러짐 하나가 걸려들었다.

‘거기였나.’

전장의 가장 후열, 트럭 위에 마나가 뭉쳐 들고 있었다.

곧 얼음송곳들이 형성되어 아군의 차량 쪽으로 쏘아져 왔다.

「간섭」으로 무효화하기엔 거리가 멀었고 시전속도 또한 빨랐다.

송곳의 속도와 날아드는 각도의 계산을 순식간에 마친 뒤, 「화염폭발」이 각인된 탄환을 쏘았다.

쾅! 쾅! 쾅!

탄환에 명중 당한 송곳들은 폭발을 일으키며 허공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에스텔. 가장 뒤쪽의 트럭에 마법사가 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그녀가 팔찌의 기능을 멈추고 뒤쪽으로 도약해 나갔다.

그녀의 발이 닿은 자리마다 지붕은 움푹 패고 수인들이 떨어져 나갔다.

쾅!

나는 날아드는 송곳을 계속 격추해 그녀를 엄호했다.

동시에 나 역시 차 사이를 건너뛰며 비어 있는 밴의 지붕을 향해 거리를 좁혀 나갔다.

─앞쪽은 협곡이다! 길이 좁아지니 조심해!

차들이 한 줄로 늘어섰다.

미처 대응하지 못한 차들은 협곡 입구의 양옆 절벽 하단부에 박혀 터져나갔다.

탕! 탕! 탕!

앞뒤로 뛰어드는 수인들과 공기를 찢으며 날아오는 얼음송곳을 향해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상황은 확연한 열세로, 지붕 위에 멀쩡히 서 있는 아군의 수가 빠른 속도로 줄어가고 있었다.

쿵! 끼기긱!

지프차 한 대가 밴 뒤를 들이받았다.

허공에서 자꾸 격추당하니 접근방법을 바꾼 듯 보였다.

손바닥에 마나를 끌어모았다.

「칼날바람」

거대한 바람의 검을 일으켜 뛰어오르던 수인을 그대로 베어냈다.

그리고 그대로 크게 휘둘러 지프를 절삭해 두 동강 내버렸다.

─에반 님! 앞이요!

피에타의 급박한 무전에 등을 돌리자 앞쪽에 옆면으로 멈춰선 적의 차량이 보였다.

─멈춰요! 부딪히겠어!

“아니. 멈출 필요 없다.”

다시 한번 마나를 끌어 올렸다.

손끝에 거대한 바람의 소용돌이가 일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돌풍」

바람은 사방을 찢어발기며 날아가 그대로 차량을 관통했다.

자잘한 차의 파편이 양옆으로 우수수 흩날렸고 그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내가 지금 뭘 본거지?

피에타의 무전 너머 운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에스텔의 무전이 들어왔다.

─마법사, 잡았어요.

“혼자였나?”

─개 한 마리가 지키고 있었는데 뼈를 으스러트려 놓았죠.

“잘했다.”

얼추 상황은 정리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아군을 도와 수인들을 정리해 나가는 일이었다.

─이제 협곡이 끝나요. 공간이 넓어지면 여유가 조금 생길….

쾅!

협곡을 빠져나가는 순간 무언가 밴의 우측을 강하게 들이받았다.

밴에 뒤지지 않는 크기의 트럭.

좌측은 아래에 강이 흐르는 낭떠러지로 이어져 있었다.

밴의 차체가 들리고 낭떠러지를 향해 기울어졌다. 내 몸의 균형 역시 점점 아래로 쏠려갔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혼자만이라면 지금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안에는 피에타가 탑승해 있다.

마법을 사용하기엔 늦은 타이밍.

순간적인 계산을 마치고 판단을 내렸다.

절벽 아래 강으로, 나는 밴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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