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49화 (49/227)

#049. 조직 (2)

스포츠카는 78번 구역 내부에 구획된 차도를 달렸다.

여전히 낙후되었긴 하나, 중심지로 향할수록 건물들의 외형은 나아져 갔다.

나는 정보 길드에서 받은 서류철을 한 장씩 넘기며 말했다.

“피에타 네드비체. 22세. 네드비체 가문의 막내. 업무 능력은 사 남매 중 가장 뛰어나나 정치력은 떨어져 지지기반이 약하다고 하는군. 최근 본사에서 모습을 감췄다고.”

“뭐, 성격이 그 모양이면 실력이라도 있어야겠죠.”

핸들을 잡은 에스텔이 코웃음을 쳤다.

나는 고개를 들어 차가 어디쯤 왔는지를 확인한 뒤 다시 서류를 넘겼다.

피에타에 대한 정보는 대외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유년 시절의 일화나 형제자매 간의 관계와 같은 다소 내밀한 것들도 있었으나 모두 추측이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당신의 복수 대상인 그 사람들의 위치는 파악되었던가요?”

“별 도움이 되는 정보는 없더군.”

나는 십여 분 전 정보 길드의 지부장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백수왕 라이카는 4일 전 33번 구역 외곽의 인공 숲에서 목격되었습니다. 지금은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만, 당시 정보원 말로는 오른팔의 털이 그을려 있었다더군요.」

정보원 몇이 희생된 정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였다.

「파르테르는 40번대 구역 일대의 투기장에 종종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찰과 몇 번 마찰이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이 넘어간 것 같더군요. 밀수꾼 바마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워낙 뒤를 밟기 힘든 인물이라 말입니다.」

산림이라 부르기에도 뭣한 수준의 인공 숲. 라이카는 심신의 안정이 필요할 때면 그곳을 찾고는 한다.

파르테르는 40번대 구역의 지하에서 불법 투기장을 운영한다.

바마는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무기를 유통하기에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모두 알고 있는 정보.

거기에 작품의 주인공인 라크센 역시 이야기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새로운 정보가 없어 아쉬운 한편, 인물들의 주요 설정이 바뀌지 않은 데에 안도감을 느꼈다.

끼익-.

“도착했어요.”

고개를 들자 ‘78번 구역 공공도서관’이란 현판이 붙은 5층 건물이 보였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본 뒤 입구로 들어갔다.

“한산하네요.”

“책이나 읽을 여유가 없다는 거겠지. 이곳 사람들에겐.”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서를 지나쳐 안쪽으로 향했다.

[도서 무단반출 금지. 신분증 제시 후 대여할 것]

“황실은 이곳 주민 대다수가 신분증 없이 살아간다는 걸 모르겠죠?”

“알고도 세웠는지도 모르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방문객은 줄었다. 꼭대기 층에 올랐을 땐 우리 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있을 만한 종류의 서적은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나는 ‘군사’로 분류된 서가로 들어가 총기 제작에 관련된 책들을 찾았다.

“지금 읽고 있는 거 맞아요?”

“그래.”

“그럼 34쪽의 내용을…. 아냐, 안 물어볼래요. 놀라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녀는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휙휙 넘기는 나를 보며 질린 표정을 짓고는 다른 쪽 서가로 사라졌다.

나는 책을 덮고 다음 권을 꺼내 다시 읽어나갔다.

완벽한 총기제작을 위해서는 총기의 구조와 원리 자체를 완벽히 파악하고 내가 원하는 요소들을 기술자에게 정확히 전달할 필요성이 있었다.

전문적인 내용이었으나 카인의 이해력 덕에 지식을 흡수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었다.

턱.

나는 그 자리에서 다섯 권째 책을 덮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가 밖으로 나갔을 때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보았고, 곧 ‘약학’ 서가 안쪽에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 쓰여 있는 방법으로 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나?”

내가 등 뒤로 다가서자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뭐야, 언제 왔어요. 기척도 없이.”

「마병의 발병 사례와 치료법」

내 시선이 제목에 흘끔 닿자 그녀는 못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책을 탁 덮었다.

“…이런 민간신앙 같은 방법들로는 어림도 없다는 거 알아요. 이미 다 써 봤거든요.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그냥 물어보았을 뿐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녀가 든 책을 집어 내용을 훑었다.

나름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으나 실제 치료가 되었다는 사례는 실려 있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에 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니까.

책을 덮고, 그녀에게 다시 건넸다.

“내가 치료법을 먼저 알려 주길 원한 적은 없나? 그럼 혼자서라도 그 방법을 실행시키려 노력해볼 수 있을 텐데.”

그녀가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솔직히 그런 생각은 아예 안한 건 아니에요. 처음엔 그랬죠.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방법을 알아도 나 혼자 해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걱정하지 마요. 당신을 떠날 생각은 없으니까. 이미 맹약을 맺기도 했고.”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안에 불안감이 일렁였다.

걱정하지 마요, 라는 말은 오히려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이 아닐까.

“걱정하지 않는다.”

“…알았어요.”

그녀 머리 위에 손바닥을 얹어 주었다. 그러자 그녀 눈빛의 떨림이 조금씩 멎어 들었다.

그녀가 약간 붉어진 얼굴로 머쓱해 하며 내 손을 치웠다.

“볼 일은 다 본 건가요?”

“아직 확인할 게 더 남았다.”

층을 내려가 ‘마법’ 서가로 향했다.

마법에 관한 일반적 지식을 다룬 책 외에도 전문적 내용의 서적들이 더러 보였다.

종류를 불문하고 잡히는 대로 뽑아 테이블 위에 쌓았다.

“그걸 다 읽을 생각이에요?”

“밖에서 다른 일을 보고 있어도 좋다.”

“…아니에요. 명색이 마법사의 가드인데 옆에 붙어 있어야죠.”

그녀는 책 하나를 들춰 보았다가 안쪽에 쓰인 복잡한 수식을 보고는 ‘어휴’하는 한숨과 함께 물러나 입구 쪽 의자에 앉았다.

나는 한 권씩 빠른 속도로 책을 읽어나갔다.

이 세계의 마법에 관한 설정은 작가인 내가 구현했다.

머릿속에 모든 지식이 저장되어 있으며 지금껏 그걸 사용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지금 하는 것은 일종의 확인 작업이었다. 정말 모든 설정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구현되어 있는가에 대한.

도서관 내엔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마법의 구현 원리.

회로의 구조와 작동 체계.

공인된 원소의 가짓수와 결합 방법.

글자 하나 놓치지 않고 머릿속 지식과 대조해 나갔다. 몇몇 마법은 실제 시연해 보며 발동 여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지었다.

‘내가 구축한 세계가 맞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마법의 발현 원리는 간단하다.

마나에 혼재한 각 속성의 원소를 분리해 필요한 양만큼 비율을 달리해 결합한다.

공식이 적절하다면 원소 간의 융합이 일어나 지정한 좌표에 마법이 구현된다.

이때 마법의 성능은 융합 전 각 원소를 몇 번 ‘정제’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비유하자면 입자를 빻아 곱게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정제 횟수에 따라 원소 간의 결합력이 높아져 「파훼」가 힘들어지며 마법의 위력은 증폭된다.

정제를 거듭할수록 원소의 색이 옅어지기에 학파에 따라 이 과정을 ‘표백’이나 ‘분열,’ ‘불순물의 제거’ 따위로 부르기도 한다.

오른손 위에 마나를 피워 올렸다.

원래의 빛깔은 청색이나 지금은 여러 사람의 고유색이 섞여 흑색에 가까운 색을 띠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 화(火)계 외의 원소들을 솎아 대기 중에 떨쳐 냈다.

우웅-

푸른빛이 옅어지고 마나는 암적색으로 바뀌어 갔다.

‘이것이 기본적인 분리.’

나는 마나를 이루는 원소에 인위적인 압력을 가했다.

파직!

한 차례 스파크가 튀기고, 눈앞에 일렁이는 붉은빛 원소의 색이 한층 옅어졌다.

이대로 다른 속성의 원소를 결합해 마법을 완성해도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위력이 상승한다.

하지만 난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압력을 가했다.

파직!

먼젓번보다 확연히 더 많은 정신력이 소모되었다.

‘아직 이 정도로는 멀었다.’

파직!

이마에 땀이 흘렀다.

원소의 정제는 최대 3번까지.

그것이 마법계의 진리이며 그 설정에선 주인공조차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원소를 정제할 수 있다면.’

최근 떠오른 의문이었다.

완성된 원고분까지는 분명 그런 설정을 지켰다.

하지만 후반부 에피소드를 구상하며, 나는 설정 자료에 문장 하나를 남겼다.

「후에 주인공이 원소를 4번 이상 정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혹은 그에 준하는 능력을 지닌 이가 나타난다면.」

그리고 자료에 남겼던 그 문장이 이 세계에 적용이 되어 있다면.

나는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해 원소에 압력을 가해 넣었다.

성공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시도할 가치는 충분했다.

‘방법은 예상이 간다. 능력도 부족함이 없다. 마나를 다루는 능력만은 주인공과 함께 세계관 내 일인자라 해도 부족함이 없으니.’

우우웅-

원소가 거칠게 이지러지며 강력한 진동음을 내기 시작했다.

눈동자엔 핏발이 섰고 귀 아래 얇은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당신 지금 뭘…!”

에스텔이 눈동자를 크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파직!

이제까지와는 다른 강도 높은 스파크와 함께 원소의 색이 다시 한번 옅어졌다.

반투명에 가까워 아주 근접해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멈춰요! 지금 귀에서 피나잖아요!”

“다가오지 마라!”

그녀가 그 자리에 주춤했다.

눈과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나는 희열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강한 흥분과 고양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여기서 멈출 순 없다.’

명확한 근거는 없으나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머릿속에 울리는 위험 신호를 무시하며, 이를 악물고, 거칠게 요동치는 원소에 압력을 가했다.

파직!

순간 뇌를 불로 지지는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정신을 부여잡고 눈앞을 확인하자, 그곳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상황을 인지하는 데는 잠시 시간이 걸렸다.

마나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분명 그곳에 존재했다.

다만 완전한 무색이기에 육안으로 구별할 수 없으며, 느껴지기조차 아주 희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다음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마나를 끌어 올려 다른 원소 몇 종을 섞여 넣었다.

화륵.

원소가 결합하며 마나가 순간 본연의 색을 되찾았다.

그리고 찰나, 허공에 주먹만 한 크기의 불꽃이 떠올랐다.

나는 직감적으로 몸 주위에 마나를 둘렀으며, 그건 에스텔 역시 마찬가지였다.

“……!”

책상과 책장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끝부분이 흐물흐물해지며 빠른 속도로 본래의 형태를 잃어갔다.

황급히 마법을 해제하려 했지만, 원소 간의 결합이 단단해 쉽게 해제되지 않았다.

노력 끝에, 내가 앉은 자리를 중심으로 반경 3미터 정도 내의 모든 것이 녹아내린 뒤에야 마법을 중단시킬 수 있었다.

상황이 정리되고 그녀가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뭐였어요? 방금 그건…?”

“…마법이다. 일단은.”

“마법이라고요? 마나가 아예 느껴지지 않았어요. 허공에서 그냥 불꽃이 나타났다고요.”

나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역시 그녀에겐 느껴지지 않은 건가.’

원소는 정제를 거칠수록 그 존재가 흐릿해진다.

마지막 정제를 마쳤을 때는 나조차 곧바로 감지하지 못했을 정도니, 다른 이의 눈에는 완전한 무에서 유가 창조된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것보다… 이런 위력이라니. 겨우 그 정도의 마나로.’

어질어질한 시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물이 녹아내리고 남은 새까만 액체가 바닥에 눌어붙어 있었다.

나는 몸을 비틀거렸고 그녀가 급히 다가와 나를 부축했다.

“일단 이곳 정리부터 하고…. 가면서 설명해 줘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본의 아니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충분히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조금 전 내가 이룬 발견에 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기에 때문에.

* * *

「저희가 책임지고 수습하겠습니다. 종이가 많은 곳이니 당연히 불이 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도서관 관장의 입막음을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폐 다발을 내민 순간 그의 입가엔 함박웃음이 지어졌으니.

“뭐였어요? 대체 그건?”

돌아오는 차 안 그녀가 물었다.

두려움이 섞인, 굉장히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마법을 사용했다.”

“아뇨. 그건 마법이라기엔 뭔가…. 뭔가….”

“이질적이었지.”

“맞아요. 이질적이었어요.”

그녀가 적확한 단어를 찾았다는 듯 외쳤다.

“당신이나 마탑의 전문가들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마법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그건 뭔가 이상했다고요.”

가장 큰 이상함은 마법이 완성되기 직전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녀와 같은 마나유저들은 마법사를 상대할 때 마나의 움직임을 보고 마법을 회피하니 조금 전 상황은 충분히 당황스러웠을 터였다.

게다가 마법의 위력 또한 통상의 그것과는 달랐다.

불꽃의 색은 그보다 더 선명할 수 없을 정도로 붉었으며 그 존재만으로 주변 사물을 녹여 버렸다.

‘테이블은 분명 합금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불꽃의 온도가 순간적으로 수천 도까지 치솟았다는 방증이었다.

현존하는 마법으론 불가능한 일.

장로급 마법사가 여럿 모여 마나를 쏟는다고 할지라도 도달할 수 있는 불꽃 온도는 원칙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머리 탄 것 좀 봐. 마나로 몸을 보호했는데 이렇게 됐다고요. 분명 순간 끌어올릴 수 있는 만큼 모두 끌어 올렸는데.”

그녀의 앞머리 끝은 열기에 그려 구불구불해져 있었고 나 역시 아직까지 피부가 따끔거렸다.

조금만 대처가 늦었다면 그녀나 나나 크게 화상을 입었을 게 분명했다.

“실전에서 이런 마법을 상대하면 어떨 것 같나?”

“대처할 순 있을 것 같아요. 마나가 처음부터 없던 게 아니라 점점 옅어지다 사라진 거니까.”

“사라지기까지의 시간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짧아진다면?”

“…그건 상상하기도 싫은데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아무 전조도 없이 마법이 날아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한 거예요?”

“원소를 다섯 번 정제했다.”

“원소를 다섯… 뭐라고요?

차가 멈춰 섰다. 뒤에서 경적이 울렸지만 지금의 그녀에겐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게 가능해요? 원소는 분명 세 번까지 밖에 정제할 수 없잖아요. 그게 분명 상식인데….”

말의 진실과 거짓 여부를 판단하려는 듯 그녀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빵!

수차례 경적이 울리는 동안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

몇 가지 감정이 순차적으로 얼굴을 스친 뒤, 그녀는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그래서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던 거구나….”

혼잣말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을 이해하려는 생각은 진즉에 포기했었죠. 깊이 묻진 않을게요. 대신 수도의 마법사들이 이 사실을 알면 놀라 자빠질 거예요. 어쩌면 당신을 잡아다 머릿속을 해부하려 들지도 몰라요.”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텐가?”

“당연히 막아야죠. 무슨, 농담을 못 하게 하네.”

사실이 알려졌을 때 학계가 크게 뒤흔들릴 것이란 점은 확실했다.

이 세계가 규정한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영역에 도착한 셈이니.

숙소에 도착한 뒤 피에타에게 연락을 취해 출발 일정을 하루 미룰 수 있느냐 물었다.

─ 알았어요. 맞춰 드릴게요. 에반 님이 가장 중요한 전력이니까요.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고 나는 남은 기간 방에 머물며 다시 안정을 취했다.

“몸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 두 번 다시 그런 짓 하지 마요. 자꾸 회복이 더뎌지잖아요.”

에스텔의 으름장이 아니더라도 당분간 몸을 혹사할 생각은 없었다.

몸의 회복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마법을 시험하며 내가 일으킨 ‘이적’에 대한 진단을 내렸다.

우웅.

마나를 일으켜 원소를 정제했다.

파직.

1단계 정제.

무의식 수준으로 빠르게 정제가 가능하며 몸에 하등 지장을 주지 않는다.

보통의 마법사들은 이 단계를 넘지 못한다.

파직.

2단계 정제.

약 3초.

주로 내가 마법을 사용해왔던 단계로 여전히 몸에 지장은 없으나 약간의 시간이 소요된다.

파직.

3단계 정제.

약 10초.

긴 시간이 소요되며 전투 중 사용하기엔 제약이 따른다.

머리에 두통이 일며 누적 시 회로에도 손상이 가기 시작한다.

다만 각 정제를 거칠 때마다 마법의 위력은 두 배 가까이씩 증폭되니, 그만한 값어치는 충분하다.

“…….”

그리고 4단계와 5단계의 정제.

이미 결과물을 본 적이 있기에 굳이 시연하진 않았다.

정제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며 육체와 회로에 적지 않은 손상이 가해진다.

기본적으론 촉매를 사용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단, 촉매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위력이 증폭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리고 원소의 존재가 희미해져 상대에게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 역시.’

나는 한 가지 가정을 세웠다.

만약 극단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5단계 정제에 이르면서 회로에 손상을 주지 않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근접전에서도 무리 없이 적을 상대할 수 있다.’

마법사의 약점은 크게 두 가지다.

일정 수준 이상의 상대는 마나의 흐름을 포착해 마법을 모두 회피해 버린다는 것.

근접상황 시 원소를 충분히 정제 할 시간이 없어 마법의 위력이 떨어지니 명중시켜도 큰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마법사가 반드시 호위, 속칭 가드와 함께 다니는 이유였다.

정제의 속도를 높이려면.

이미 소프트웨어의 성능은 최대치이니 하드웨어의 성능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회로레벨의 상승.

다음 레벨로 넘어갈 때마다 회로에 저장되는 마나의 질이 향상됨은 물론 그를 다루는 신체의 능력 자체가 강화된다.

[회로 레벨: 2]

[마나: 856 / 907]

다음 레벨에 필요한 마나는 2500.

지속해서 다른 방법을 찾을 생각이긴 하지만, 마나를 빠르게 늘려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어난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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