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41화 (41/227)

#041. 치료 (1)

“다가오지 말아요. 가까이 오면 나 이걸로 찔러버릴 거야.”

갈색 머리의 소녀는 테이블의 통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고 외쳤다.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하려는 듯 주변을 계속 곁눈질했다.

“지부장. 아이를 잘 다루나?”

“젬병입니다. 아이들이 왜인지 저는 잘 따르지 않더군요.”

나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실 걸 하나 더 부탁하지. 따뜻하고 단 음료로.”

“그러지요.”

나는 천천히 소녀에게 다가갔다.

“우리 아빠한테 무슨 짓 하기만 해 봐. 절대 가만 안 둘 거야.”

떨리는 손으로 나이프를 휘적거리는 모습이, 온몸의 털을 곤두세운 작은 고양이를 떠오르게 했다.

“난 너를 납치한 사람이 아니다. 상황은 끝났어. 곧 네 아빠가 도착할 거다.”

나는 양 손바닥을 얼굴 높이로 들어 보인 채 거리를 좁혔다.

“거, 거짓말하지 마! 내가 또 속을 줄 알고!”

소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나이프 끝을 앞으로 향한 채 내게 달려들었다.

피하거나 마법을 쓰지 않았다.

행여 아이가 다칠 수 있는 일이니.

지직-!

나이프는 옷을 찢으며 내 허리의 살갗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굳이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미숙한 몸놀림이었다.

“어, 어?”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소녀의 허리를 잡아 그대로 안아 올렸다.

그리고 아기를 다루듯 등을 토닥여주었다.

“내가 널 구했다. 안심해도 좋다.”

“이, 이거 놔요.”

몸부림칠수록 더 세게 끌어안았다.

달리 달래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나도, 카인도 역시 마찬가지로.

어깨를 마구 때리던 주먹이 멈추어갔다. 소녀가 조금 진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가 정말 나를 구해준 거예요? 그, 늑대랑…. 총 든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래.”

나는 소녀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때마침 지부장이 밀크티를 내 왔고, 소녀는 자리에 앉아 잔을 홀짝거렸다.

“…….”

경계심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는지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빠는 언제 와요?”

“한 시간 내로 도착할 거다. 이름이 뭐지?”

“레니예요, 레니. 일단 구해 주셔서 감사해요.”

레니는 음료가 마음에 들었는지 꾸준히 잔을 홀짝였다.

잔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레니의 분위기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꼬르륵.

“메뉴에 식사도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예. 적당히 준비해 내 오지요.”

레니가 얼굴을 붉혔다.

“잡혀 있는 동안 뭘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 아, 아, 허리가! 죄, 죄송해요!”

“괜찮다.”

뒤늦게 상처를 발견한 레니가 당황해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려 하다, 빛무리와 함께 생채기가 사라지는 걸 보고 멈춰 서 눈을 크게 떴다.

“아저씨도 마법사예요?”

“그래.”

“제가 살던 곳에 있던 마법사 아저씨들은 그런 거 할 줄 몰랐는데. 신기해요.”

나는 빛무리를 몇 개 더 일으켜 레니의 눈앞에서 춤추게 했다.

레니가 거기에 정신이 팔린 사이 식사가 나왔고, 식사가 끝날 때쯤에 프로이드가 도착했다.

“아빠!”

“레니야.”

부녀는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 * *

수술은 이틀 뒤 호텔의 내 방에서 이루어졌다.

수술 도구들을 꺼내며 프로이드가 말했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이렇게 갠 하늘을 보는 건 처음일세. 목격자 말로는 꼭대기 층에서 바람이 쏘아져 나왔더군. 그리고 매연을 반으로 갈랐다고 했지.”

창으로 햇살이 비쳐들었다.

아직 매연이 쌓이지 않아, 내가 돌풍을 일으켰던 일대는 하늘이 맑게 개어 있는 상태였다.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네. 이건 분명 자네가 한 일이라고.”

“…….”

나는 굳이 부정하진 않았다.

“딸 아이와 함께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생각이네. 큰돈을 빠르게 모을 수 있다지만 이곳은 너무 위험해.”

준비를 마친 프로이드가 의자에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왔다.

“손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네. 마취를 해 줄 수는 있네만, 통증이 크게 줄진 않을 걸세. 워낙 근육 깊은 곳을 건드리는 수술이라 말이야.”

“내가 직접 하지.”

주사기를 받아 팔목에 찔러 넣었다.

몇 분이 지나자 주위의 감각이 둔해진 것이 느껴졌고, 그 위에 통증 완화 마법을 덧씌웠다.

“시작하겠네. 마음 단단히 먹게. 도중에 기절하는 이도 있으니까.”

스걱.

피부가 절개되고 힘줄이 헤집어 졌다.

그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들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줄어든 통증이 이 정도인가.’

마법이 아니었다면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술은 정적 속에 진행되었다.

옅은 숨소리와 작은 도구들이 잘그락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제 다 끝나가니 조금만 참게.”

아주 작은 금속 부품들이 끊어진 힘줄 자리에 들어가고, 작은 핀셋이 주위의 힘줄을 부품에 연결했다.

우웅-

미세한 진동과 함께 부품에 불이 들어왔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게.”

지시대로 손끝에 힘을 주었다.

마법을 쓰지 않으면 꿈쩍도 하지 않던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조금만 더.’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 주었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수십 초간의 싸움 끝에, 나는 손가락 하나를 완전히 일으킬 수 있었다.

“…후, 훌륭하네. 재활에도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겠어.”

“보통 재활엔 얼마나 걸리지?”

“빠른 이들은 손가락을 처음 움직이는데 일주일, 느린 이들은 한 달 정도 걸리기도 하네.”

수술은 역순으로 진행되었다.

고정했던 힘줄을 원위치로 돌리고, 절개되었던 피부를 다시 덮었다.

“다음 부위도 바로 시작하지.”

“괜찮겠나? 조금 쉬었다 해도….”

“시간은 아낄수록 좋다.”

나는 손목을 까딱여 본 뒤, 발을 테이블 위의 고정대로 올렸다.

다시 수술이 시작되었다.

먼지는 느릿하게 떠돌고 테이블 위에 벗어둔 손목시계의 초침은 째깍거렸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절단부가 인위적이어서 말이야. 단순한 사고를 당한 것 같진 않아.”

“…….”

“대답이 힘들면 안 해 주어도 되네. 내가 주제넘게 물은 건 아닌지 모르겠어.”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을 당했다. 그래서 이 꼴이 되었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자네가 느꼈을 심정을 나도 알 것 같네. 이만한 나이가 되니 사람에게 데인  경험이 적진 않아서 말일세.”

끼릭. 끼릭.

그가 핀셋으로 부품의 작은 톱니를 회전시켰다.

이격 정도를 확인한 뒤, 발목의 끊긴 힘줄 부에 부착해 넣었다.

“사람을 믿는 일이 점점 힘들어져. 가족을 제외하곤 말이야. 뭐 그래 봤자 나에겐 딸아이 한 명뿐이지만.”

양 발목의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몇 차례 시도 끝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간단한 걸음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구적이진 않네. 3년에 한 번씩은 부품을 갈아 줘야 해. 점검도 분기별로 한 번씩은 받아야 하네만, 그 정도는 어느 의사를 찾아가도 할 수 있을 걸세.”

“알겠다.”

“자네가 이 구역에 머무를 때까진 나도 함께 있겠네. 이상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말이야.”

그가 모자를 쓰고 수술 도구를 챙기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고맙네. 내 딸을 구해 주어서. 수술비는 받지 않겠네.”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 끝에 나직이 입술을 떼었다.

“그쪽은 돈을 모으는 이유가 뭐지?”

“돈 말인가?”

“바깥에 나와 위험을 감수하며 큰돈을 모으려 했던 이유.”

그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딸아이가 희귀병에 걸렸네. 수도에서 치료 약을 구할 수 있는데 굉장히 비싸네. 일반인은 평생 벌어도 만져 보지도 못할 정도로.”

수도. 희귀병. 약.

짐작 가는 병은 있었다.

“뭐 어쨌든 몸에 이상이 생기면 연락 주게. 근처 호텔에 머무르고 있을 테니까.”

문이 닫히고 나는 방 안에 홀로 남았다.

소파에 몸을 뉘고, 그가 했던 가족이란 말을 곱씹었다.

* * *

“구체적인 수술 내용은 모릅니다만. 결과가 마음에 드시나 보군요.”

계속해 손목을 움직이는 나를 보고 지부장이 말했다.

“나쁘진 않군.”

마법으로 근력을 강화하고 점차 출력을 낮추는 방식으로 기계 부품에 빠르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거기에 며칠간 치유 마법을 쏟아부어, 이젠 격한 움직임을 취해도 무리가 없었다.

“참 스카페이스가 무너지자 하위 조직들이 북부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더군요.”

라운지에는 손님이 늘어 있었다.

간만에 갠 하늘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보기 위해서였다.

“어제 자 신문입니다. 기사가 조금 늦은 감은 있지요.”

난 지부장이 내민 신문의 앞면을 확인했다.

─92번 구역에 나타난 이상 기후. 환경학자들은 대륙의 황폐화, 마탑은 마법과 연관 지어 해석. 의견 대립 첨예.

“귀빈이신 줄은 알았지만, 훨씬 더 대단하신 분이었군요.”

지부장에게 그날 있던 전투에 관해 이야기한 적은 없다.

하지만 곳곳에 자리한 정보원들 덕에, 정황을 파악하기란 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언제 떠나실 생각입니까?”

“내일 점심.”

탄약 보충과 바이크의 수리.

스포츠카의 수리 대금 역시 치렀다.

몸의 적응도 어느 정도 마쳤다.

지금 당장 떠나도 무리가 없었지만, 내가 하루의 시간을 더 둔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때 그 아가씨는 보이지 않는군요. 서로 볼 일이 다 끝나셨나 봅니다.”

“…….”

에스텔.

그녀는 요 며칠 주위를 맴돌기만 할 뿐 단 한 번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직 갈등 중이겠지. 아무리 그녀라 해도 흑마법사와 동행은 무리일 테니.’

수인과의 전투 이후, 나는 그녀를 동행으로 삼는 선택지를 진지하게 고려해 보았다.

애초의 내 계획은 반년 내에 홀로 복수를 마치는 것.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잘 해 왔다.

하지만 이번 수인과의 전투에선 약간의 버거움을 느꼈다.

‘가진 자원을 모두 털어 넣었다면 홀로 돌파하는 게 불가능하진 않았겠지만.’

자원의 보충에 걸리는 시간이 문제다. 몸에 누적되는 충격 역시도.

일정은 지연되고 안쪽 구역에 가까워질수록 수동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그녀를 동행으로 삼는다면.

혼자 다닐 때의 이점은 사라지지만 얻는 것도 확실하다.

그녀의 압도적인 무력.

그리고 사제로서의 신분.

가장 내 마음이 기울게 만든 것은 「진실의 눈」이란 특성이었다.

나는 줄곧 한 가지 가능성을 염두 해오고 있었다.

백진우.

녀석이 나처럼 이 세계에 떨어져 어느 인물에게든 빙의했을 가능성.

그녀의 특성을 이용한다면 적어도 마주치는 인물은 빙의 여부를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동행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이번 전투에서 그녀가 보여준 기량을 보고, 철저한 손익 계산 후에 내린 판단이었다.

물론 선택은 그녀의 몫에 달려 있긴 하지만, 그녀가 동행을 포기한다 해도 상관은 없었다.

어쨌든 홀로 다닐 때 얻는 이점도 만만치는 않았다.

‘선택은 둘 중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를 고수하거나. 동행을 늘려 세력을 키우거나. 후자라면 지금부터 사람을 모으기 시작해야겠지.’

나는 에스텔의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해 점차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여신의 눈물을 추가하지.”

“잔에 보충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새로운 잔으로.”

띵-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그녀가 나타났다.

“이것도 일종의 마법인가요. 오랜만에 보는 군요, 레이디.”

지부장이 그녀에게 칵테일을 건넸다.

그녀는 잔을 받아 테이블에 내려놓고,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자리를 옮겨서 얘기하지.”

라운지의 끝, 기둥에 가려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칵테일을 단숨에 들이켜더니 말했다.

“여기 도수 더 높은 건 없어요?”

“이미 충분히 높은 술이다. 향 때문에 낮게 느껴질 뿐이지.”

“잘 아네요. 생각해 보면 그래요. 교도소 때부터 당신은 모르는 게 없었죠.”

내 병도.

그녀는 마지막 말은 작게 입술을 움직여 소리 내지 않고 말했다.

“결정은 내렸나?”

“어느 정도는요. 답을 말하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그녀가 숨을 골랐다.

“이제까지 무고한 사람들의 마나를 흡수한 적이 있어요?”

“없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시선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내 말이 진위를 간파하는 중이었다.

“알았어요. 아직 거부감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지만, 전 당신을 따라갈 거예요. 미리 말해 두는데 당신 의사는 안 중요해요. 스토커처럼 졸졸 따라갈 거라고요. 좋든 싫든….”

“원한다면 그렇게 해라. 허락하지.”

“에, 네?”

당황했는지 그녀가 잠시 우스운 얼굴을 했다.

“허락한다고요? 갑자기 왜요?”

“네가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녀의 입꼬리가 점차 올라가더니 곧 환한 미소를 그렸다.

“그거 봐요. 내가 필요할 거라 했잖아요. 무르는 거 아니죠?”

“그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에서 칵테일을 한 쟁반 담아 돌아왔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알아요? 겨우 마병을 치료할 단서를 찾았는데, 그 단서를 쥔 사람이 자꾸 위태위태하게 돌아다니니까아.”

나는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그걸 다 마실 생각은 아니겠지.”

“마실 생각이니 가져왔죠. 여기서 파니까 사 온 거고.”

그녀는 본래 술을 즐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최근 마시지 않았을 뿐.

‘주사가 심한 편이었지. 내가 부여한 설정이지만 이럴 때 골치 아프게 만드는군.’

마나로 알코올을 해독하는 게 가능하지만, 그녀는 취한 기분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나유저가 부리는 주사란 꽤 위협적인 것들이 많기 마련이었다.

찰싹!

잔 몇 개를 빼앗으려 손을 뻗자 그녀의 손이 내 손등을 찰싹 때렸다.

“어딜 넘봐요. 마시고 싶으면 직접 가져와요.”

“…….”

기세가 흉흉해 일단은 포기해야 할 듯했다.

그녀가 칵테일 잔을 홀짝이는 걸 보며 물었다.

“끝까지 날 따라오겠다 결심한 이유가 뭐지? 내 마나의 색을 분명 보았을 텐데.”

“고민 많이 했어요. 결국 교리보다는 내 목숨이 더 중요하다고 결론지었고요. 원래는 아니었는데, 당신을 만나고 삶에 대한 희망이 생겼거든요.”

잔은 하나둘 빠른 속도로 비어 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나쁜 사람 같지 않아요. 전에도 말했지만 전 사람에 대한 판단을 잘하거든요. 처음 보는 순간 느낌이 와요. 이 사람이 악인인지 아닌지.”

잔을 빼앗으려는 두 번째 움직임도 그녀의 손에 막혀 수포로 돌아갔다.

어디까지 하나 보자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두 손을 들었다.

“수술은 성공했다니 다행이네요. 정말로요.”

“그래.”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전투 상대였던 수인.

프로이드와 딸의 이야기.

다음 목적지가 될 구역.

이십 여분 시간이 지나자 테이블 위의 모든 잔이 비었다.

“여기 전망을 못 보고 가서 아쉬웠는데 좋네요. 저거, 당신이 한 일이죠?”

그녀는 볼이 붉게 달아오른 채 헤실헤실 웃었다.

그러다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작은 숨소리를 냈다.

‘잠들었나.’

창가를 바라보며 앞으로의 계획 쪽으로 생각을 옮겼다.

무기의 제작과 신분증 제조.

쓸 만한 이들의 포섭.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분명 구역과 구역 사이에도 유적이 있었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돌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리고. 우리 맹약 맺어요.”

또박또박한 목소리.

취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