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40화 (40/227)

#040. 스카이 스크래퍼 (5)

밴. 스포츠카. 바이크.

세 대의 차량이 다리 위를 줄지어 질주했다.

밴과의 거리는 점차 좁혀지고 있었다. 개조를 했다 해도 속도의 한계가 있었다.

투두두-!

총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스카페이스의 차량 몇 대가 따라붙어 있었다.

품에서 폭약을 꺼내 뒤쪽으로 흩뿌렸다.

바퀴 쪽에 작은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적들의 차는 긴 호를 그리다 다리 양옆의 가드레일에 처박혔다.

그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에스텔, 내 말이 들리나?”

─네. 잘 들려요.

귀 안쪽에 착용한 통신기기로 목소리를 전했다.

“따라잡는 순간 양옆에서 포위한다.”

─알겠어요.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 밴의 옆문이 열리며 녀석이 몸을 드러냈다. 손에는 개틀링 건이 들려 있었다.

두두두두-!

차체에 몸을 바짝 밀착 시키고, 바이크로 S자를 그렸다.

궤적을 따라 총알은 빗나가고, 일부는 차체에 맞아 튕겨 나갔다.

철컥. 철컥.

사격이 멈춘 틈을 타 속도를 높였다. 바이크와 밴, 스포츠카가 평행선을 그렸다.

에스텔에게 신호를 줌과 동시에, 밴을 향해 핸들을 크게 꺾었다.

쾅!

양 사이에 끼인 밴은 사정없이 좌우로 흔들렸다.

요란한 마찰음과 함께 차체 사이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녀석은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밴 안으로 몸을 숨겼다.

끼기기긱─!

밴 외부에는 두꺼운 장갑이 덧대어져 있었다.

차체에 충격을 주고 있는지는 모르나,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바람 덩굴」

주행과 동시에 마법을 일으켰다.

좌표는 밴의 네 바퀴 모두.

질기고 성긴 바람이 바퀴를 얽어매자 밴의 감속은 더욱 빨라졌다.

‘되었다. 이제 조금만 더.’

그 순간 밴의 하부에서 기이한 기계음이 울렸다.

위험신호를 느낀 나는 즉시 핸들을 반대편으로 꺾었다.

칭!

거대한 금속 송곳들이 밴 하부에서 옆면으로 찔러져 올라왔다.

조금만 늦었다면 그대로 꿰뚫려 큰 부상을 입었을 터였다.

‘사냥개들이 쓰던 차량이었나.’

“에스텔, 괜찮나.”

─ 조금 긁히긴 했는데 멀쩡해요. 피하라고 말해 준 덕분에.

송곳은 밴의 앞과 후면에도 튀어나와 있었다.

밴에 차체를 부딪치는 방법은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바이크의 속도를 늦췄다.

그리고 도로를 바꿔 스포츠카의 비어있는 옆 공간으로 이동했다.

“견인 기능이 탑재된 모델로 알고 있다. 맞나?”

─ 맞아요. 여기 이 버튼을 누르면 ….

작은 기계음과 함께 스포츠카의 옆면에서 막대형의 걸쇠가 튀어 나왔다.

바이크의 연결 고리에 단단히 고정한 뒤, 스포츠카의 지붕 위로 아슬아슬하게 올라탔다.

우웅-

지붕이 열리며 내부 좌석이 드러났다.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흩날렸다.

“운전은 내가 맡겠다. 밴의 지붕을 공략해.”

“마음껏 시켜 먹으라고 하긴 했지만 진짜 막 부려 먹네요.”

그녀가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 자리를 내가 대신했다.

“불가능한가?”

“해 본 적은 없는데 가능할 것 같아요. 이 정도는 해야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겠죠.”

그녀가 입안에 말려든 머리카락을 뱉으며 말했다.

액셀을 밟아 밴의 앞쪽까지 달려나갔다.

그녀가 장비를 챙겨 자세를 취한 뒤, 그대로 밴 지붕 위로 도약했다.

쿵!

마나가 실린 움직임이었기에 밴의 지붕은 움푹 내려앉았다.

그녀는 메이스를 내리찍어 지붕에 구멍을 낸 뒤, 철장갑을 낀 손으로 그 구멍을 벌리기 시작했다.

까드득!

금속이 비명을 지르며 우그러져 가던 때.

“건방진 짓 하지 마라!”

밴의 옆에서 녀석이 튀어 올랐다.

에스텔에게 손톱을 휘두르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공방은 전과 달리 팽팽했다.

최고조에 이른 X9의 효과와 인간보다 우월한 수인의 균형 감각이 녀석에게 이점을 주었다.

더 없이 부풀어 오른 근육.

터져버린 눈동자의 혈관.

녀석의 끝은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전투는 쉬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액셀을 밟아 밴의 대각선 앞쪽에 자리 잡았다.

「바람 덩굴」 마법을 사용해 밴의 속도를 다시 낮추기 시작했다.

그때 앞쪽의 건물 사이에서 차 하나가 튀어나왔다.

정확히 다리가 끝나, 시가지로 이어지는 부분이었다.

범퍼엔 스카페이스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운전석에 비친 조직원도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

마나를 끌어 모아 차체 앞쪽에「충격흡수」마법을 넓게 펼쳤다.

쾅!

스카페이스의 차는 산산조각이 나 멀리 밀려 나갔다.

스포츠카는 앞쪽이 반파된 채 왼쪽으로 호를 그렸다.

밴의 송곳에 옆면이 사정없이 긁히며 뒤편으로 미끄러졌다.

“엇!”

밴에 가해진 충격에 에스텔이 순간 발을 헛디뎠다.

뒤편으로 떨어지는 그녀를 바람으로 감싸 안고, 핸들을 꺾어 차에 받아 냈다.

쿵!

스포츠카는 가드레일에 충돌한 뒤에야 멈춰 섰다.

밴은 차체를 휘청대며 시가지 쪽의 큰길로 사라지고 있었다.

“…당장 쫓아가긴 무리겠는데요.”

빠르게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막 해가 뜨기 시작한 새벽으로, 주위에 탈취할 만한 차는 보이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 정보 길드가 있는 빌딩이 높이 솟아 있었다.

‘밴의 속도는 분명 느려져 있다.’

두뇌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용할 수 없는 것.

지금 당장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나는 바이크의 키를 에스텔에게 던졌다.

“쫓아. 바이크는 멀쩡하다.”

“나 혼자요?”

“일단 출발해라. 놈을 쫓다 보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자연스레 알게 될 거다.”

“알았어요.”

그녀는 견인 장치를 풀고 바이크에 올라탔다. 그리고 밴을 쫓아 사라졌다.

나는 곧바로 빌딩을 향해 달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향했다.

탕!

문의 자물쇠를 부수고 안으로 진입했다.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을 방향을 가늠해 유리벽 앞에 섰다.

“…….”

농도 짙은 매연 때문에 보이는 건 없었다.

탕!

유리벽이 깨지며 파편들이 지상으로 흩뿌려져 내렸다.

품에서 마석을 꺼내 씹어 삼킨 뒤 라이플의 조립을 시작했다.

마석.

제르비아의 아공간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광석이었다.

대기의 마나를 끌어들이는 성질이 있어 주로 마법 공학품의 핵으로 사용되었다.

‘이걸 여기서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체내에 흡수될 경우 마나의 회복 속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미래를 당겨 쓰는 셈이었다.

회로에 인위적인 과부하를 가해, 당장의 이득을 취하는 방법이니까.

바닥이었던 마나가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회로가 요동치며 입에서 한 움큼 피가 토해져 나왔다.

철컥.

조립은 완료되었다.

곧바로 마법을 준비했다.

풍(風)계 원소가 손끝에 모여들며 거대한 돌풍이 일기 시작했다.

찌지직─!

회로 레벨 2.

거기에 전체 마나의 절반 이상을 쏟아부었으니, 이제까지 내가 사용한 것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의 마법이라 볼 수 있었다.

흉포함이 극에 달했을 때 돌풍은 대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갔다.

주위의 매연은 돌풍에 말려들어 소멸하거나 크게 밀려나 거리를 벌렸다.

시야가 개었다.

하늘이 보이고 도시의 전경이 보였다.

적어도 돌풍이 지나간 일대만은 그랬다.

‘저쪽이군.’

호흡을 가다듬고 라이플을 든 채 바닥에 몸을 밀착시켰다.

굽이 진 도로, 밴과 바이크 사이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요인암살에 특화된 저격소총으로 본래의 유효사거리는 1.92km.

하지만 마법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이상의 거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관통력을 높이는 「칼날 바람」 외에, 공기 저항을 덜 받도록 탄환에 추가적인 마법들을 각인해 넣는다.

후우.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고 호흡을 멈춘다.

걱정할 건 없었다.

사격에 대한 모든 지식은 카인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으니까.

그것을 뒷받침할 육체와 마법이 있으니 그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될 뿐 이었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

목표물의 이동속도와 경로.

모든 것의 파악을 마쳤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탕!

탄환이 공기를 가르며 날았다.

목표에 도달하는 시간은 단 2초.

앞쪽 왼 바퀴가 터져 나가자 밴의 차체가 한쪽으로 주저앉았다.

탕!

사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남은 바퀴들을 향해 탄환은 계속해 날았다.

바퀴가 모두 터지고 밴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당황한 녀석이 밴에서 내려 뒤쫓아 온 에스텔에게 달려들었다.

녀석이 허공에 몸을 띄우고, 그녀가 메이스를 크게 휘두르는 타이밍.

탕!

탄환은 정확히 녀석의 미간을 꿰뚫었다.

마지막 사격과 함께 라이플은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 * *

“사제님이셨군요. 아무 일도 없던 걸로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네. 이따 현장 정리만 조금 도와주세요.”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에스텔의 전투사제 신분증을 보고 군말 없이 지시에 따랐다.

아직 새벽임에도, 소란을 듣고 모여 든 주민들이 몇몇 보였다.

“고생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뭐지?”

“아뇨. 그쪽이 그런 말을 하니까 뭔가 굉장히 의외여서. ‘일이 끝났으니 사라져라’라든가 ‘무능력 하군’같은 말을 할 줄 알았거든요.”

“썩 재밌는 농담은 아니군.”

나는 피트에게 다가가 손바닥을 뻗었다.

푸르스름한 마나가 빨려 들어와 내게 흡수되었다.

“…….”

그 모습을 에스텔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회로 레벨: 2]

[마나: 51 / 650]

이번 전투로 인한 상승치는 124.

그중 피트에게서 얻은 수치는 105.

하류 조직에 들어간다면 충분히 우두머리로도 군림할 수 있는 무력이었다.

“일단 아이부터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밴 쪽으로 다가갔다.

운전을 맡았던 조직원은 핸들에 얼굴을 파묻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파직!

전류를 흘려 고통 없이 보내 주었다.

“…….”

그녀는 이번에도 내 모습을 주시했다. 복잡 미묘한 얼굴이었다.

밴의 문을 열고 자루 안을 확인했다. 갈색 머리의 소녀는 의식을 잃었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맥박과 호흡 둘 다 이상이 없었으며 눈에 띄는 외상도 보이지 않았다.

“궁금할 게 많을 텐데, 올라가서 뭐라도 마시며 이야기하지.”

나는 소녀를 몸 앞쪽에 안아 들었다. 그리고 눈짓으로 정보 길드가 있는 건물의 최상층을 가리켰다.

에스텔은 경찰에게 몇 가지 현장지시를 내리고 내 뒤를 따랐다.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이 없다 엘리베이터에 타서야 입을 열었다.

“그 아이는 누구에요? 왜 위험을 무릅 쓰고 구한 거고요?”

나는 상황을 간략히 추려 설명했다.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려고…. 맞아요. 당신 분명 팔다리의 힘줄이 끊겼었죠. 워낙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잊고 있었어요.”

“치료된 게 아니다. 마법을 이용해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지.”

“그런데 단순히 치료가 목적이면 신체 개조 같은 건 필요 없잖아요. 안쪽 구역으로 가 교단에서 축복을 받으면 되잖아요. 내가 다리를 놓아 주면 충분히….”

그녀는 말을 하다 무언가 떠오른 듯 돌연 입을 다물었다.

그녀를 대신해 내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흑마법사인 게 들켜 이단 심문관들에게 쫓기는 처지가 되겠지.”

띵-

그 사이 엘리베이터는 최상층에 도착했다.

자물쇠가 떨어져 있는 입구를 지나, 라운지의 소파에 소녀를 눕혔다.

“…….”

등을 돌리자 에스텔이 약간 거리를 벌린 채 서 있었다.

내가 검은 기운이 섞인 마나를 일으키자, 경계심 어린 얼굴로 주춤 물러섰다.

“그 조직원들 건물에선 내가 잘못 본 거라 생각했어요. 조금 전 도로 위에선 내가 모르는 다른 뭔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설마 아닐 거라고…. 어떻게 된 거예요? 교도소에서는 분명 아니었잖아요.”

나는 대답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가 소리쳤다.

“어서 대답해요! 대답에 따라 당신을 죽여야 할지도 모르니까.”

나는 픽 웃었다.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 것 아니었나? 전투 사제의 사명도 거기서 끝났을 텐데.”

그녀의 눈동자는 극도의 혼란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신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건 분명 사실이지만.’

모든 사제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며 교리를 학습한다.

「대지의 모든 생명을 풍요로이.」

그리고 끊임없이 세뇌에 가까운 주지가 이루어진다.

타인의 생명을 취하는 흑마법사들은 교단의 교리에 명백히 위반되는 존재이며, 대지를 황폐하게 만든 고대의 악마들과 맞닿아 있다고.

그녀라고 다를 순 없다

인생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사제로 살아왔으니까.

나에 대한 적대감과 거부감을 쉽게 떨치지 못할 터였다.

쿨럭!

순간 속에서 욕지기가 올라왔고 나는 피를 한 움큼 다시 토했다. 마석의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

그녀가 다가와 황급히 치유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나는 손으로 그녀를 제지했다.

“됐다. 내가 직접 하지.”

마나를 일으켜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회로를 다스리고, 몸 곳곳에 난 자잘한 상처를 치유해 갔다.

짙어져가는 그녀 얼굴의 혼란스러움을 보며, 나는 나직이 말했다.

“내가 네 마병을 치료해 주겠다는 말은 진심이다.”

“…….”

“하지만 나를 따라서 오겠다고 했지. 감당할 수 있겠나? 나는 네가 그토록 혐오해마지 않는 흑마법사다. 아무렇지 않게 상대를 죽이고 그 생명을 취하지.”

내 말이 이어질수록 그녀의 얼굴에 화가 번져갔다. 쏘아보는 시선이 매서웠다.

“당신은 나를 너무 혼란스럽게 만들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매순간 하나하나. 내가 이제껏 쌓아왔던 상식과 가치관을 무너트린다고요.”

그녀는 다다다 말을 쏘아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당신이 이 구역을 떠나기 전에 찾아와 결정을 내릴게요.”

그녀는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노려보았다.

당장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얼굴로.

십여 분 시간이 지났다.

라운지의 깨진 유리를 정리하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띵-

지부장이었다. 그는 휑하니 뚫려 있는 유리벽을 보고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

“뭔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미안하군. 수리 비용은 부족하지 않게 지불하지.”

그는 옷을 갈아입고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내어 왔다.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고객님이 말씀해 주실 수 있는 범위까지는 말입니다.”

바에 마주 앉아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려던 때, 뒤쪽의 소파에서 뒤척거림과 함께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어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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