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스카이 스크래퍼 (4)
물을 마시러 복도로 나온 한 녀석을 벽 뒤로 잡아챘다.
“끄윽!”
팔로 목을 조르자 그대로 의식을 잃고 미끄러져 내렸다.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한 차례의 움찔거림과 함께 움직임이 멎었다. 자잘한 마나를 흡수했다.
‘인질이 보이지 않는군. 지하까지 염두에 둬야 할 수도 있겠어.’
시체를 벽 뒤로 밀어 넣고 어두운 복도를 응시했다.
불과 관계없이 모든 방을 훑으며 아래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도중 눈에 띄는 모든 이의 숨을 끊었다. 깨어 있든, 잠들어 있든.
용병이 이 건물에 있다면.
그렇다면 난전은 피할 수 없다.
아주 높은 확률로.
건물에 있는 모두를 깨우게 될 것이고, 적의 수를 미리 줄여 놓아 나쁠 것은 없었다.
자잘한 마나를 흡수하는 건 부수적인 이득이었다.
복도를 지나 5층의 마지막 방 앞에 섰다.
‘안쪽에서 느껴지는 건 한 명.’
침대 위 부동자세 그대로였다.
호흡에 따라 몸이 미세하게 오르내리는 거로 보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 보였다.
철컥.
문고리에 마나를 주입해 열쇠 형태로 굳혔다.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창으로 달빛이 비쳐 방 안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드러나 있었다.
침대 쪽을 바라본 순간, 나는 숨이 멎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노란빛을 뿜어내는 두 개의 찢어진 눈동자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뒤척이는 소리와 함께, 눈동자는 눈높이 위치까지 올라왔다.
“화약 냄새가 난다 싶더니 밤손님이 와 있었군그래.”
나직하고도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바로 피스톨을 겨눠 쏘았다.
눈동자는 침대를 박차고 올라 내게 쇄도해 왔다.
챙!
병장기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허공에서 울렸다.
내 쪽은 마나를 주입한 총신.
상대는 윤곽으로 보아 오 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손톱이었다.
“안 그래도 잠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좋은 선물이야. 피 냄새를 맡은 지가 오래 되었거든. 멍청한 녀석들이 나를 불러 놓고는 기다리라고 하더라고.”
챙! 챙!
쉴 새 없이 공방이 오갔다.
유효타는 입지 않았지만, 밀리는 것은 나였다.
‘…이대로라면 내가 불리하다. 공격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빈틈을 노려 녀석의 얼굴을 향해 총을 쏘았다.
녀석의 얼굴 윤곽은 조준 위치에서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총알이 허공을 날아 뒤편 멀리 전등 스위치를 박살 냈다.
팟!
방 안의 불이 켜졌다.
동시에 녀석이 뒤쪽으로 텀블링해 나와의 거리를 벌렸다.
“애초에 날 맞추려 한 게 아니었나. 제법 쓸 만한 녀석인걸.”
나보다 조금 큰 체격의 늑대 인간.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마약이군.’
뒤편의 테이블에 사용된 주사기가 굴러다녔다.
투명한 약물이 담긴 병에는 X9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뒷골목에 유통되는 싸구려 약물.
쾌락 성분 외에 신체 능력을 순간적으로 증폭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체내 조직을 손상시켜 장기간 투여 시 결국 죽거나 폐인이 된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손끝이 흠칫흠칫 떨리는 걸로 보아 녀석은 이미 중독증에 빠져 있는 걸로 보였다.
긴장해야 했다. 각성제가 주입된 수인만큼 위험한 존재도 없으니까.
녀석이 물었다.
“물건을 찾으러 왔나? 돈을 털러? 아니면 누구를 죽이려고? 아, 알 것 같군. 알 것 같아. 그 의사의 냄새가 나는데.”
녀석이 코를 킁킁거렸고, 나는 대답 대신 시선으로 방안을 훑었다.
“뭐든 상관없어! 날 재밌게만 해 달라고!”
녀석이 달려들며 전투는 재개되었다.
손톱이 길게 내리그어졌다.
순식간에 공방이 오가고, 피스톨이 내구도가 다해 조각나 떨어졌다.
바로 새것을 꺼내 심장을 겨눠 쏘았지만, 녀석의 몸은 기묘한 각도로 꺾여 총알을 피해냈다.
“더 해 봐! 더! 더!”
쐐액-!
곧바로 몸을 굴려 다음 공격을 피해 냈다. 녀석이 틈을 주지 않고 곧장 달라붙었다.
챙!
‘…이제야 정체를 알겠군.’
입술을 질끈 깨물며 응수했다.
목 뒤의 은빛 털로 뒤늦게야 녀석을 알아볼 수 있었다.
광견병 피트.
조직의 특성상 무리 전체를 이끄는 보스 외엔 간부가 없다고 하나 개중에 다른 녀석들보다 강한 개체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피트였다.
약물, 도박, 술, 그리고 살육에 빠져 살아가는 충동과 광기의 아이콘.
다른 조직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작품 중반부 주인공을 고전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광견병 피트. 44번 구역의 투기장에서 마물을 상대로 날뛰다 죽었다고 들었는데, 소문이 잘못되었나 보군. 이런 곳까지 의뢰를 받아 오다니. 돈이나 피가 궁했나?”
“오? 나를 알아? 이쪽에서 좀 굴러먹던 놈인가?”
“모를 수 없지. 모두가 네가 언제 죽을지 내기 돈을 걸고 있으니까 말이야.”
일단 말은 그렇게 뱉었지만 상황이 썩 여유롭진 않았다.
가진 마나를 모두 쏟아붓는다면 제압은 어찌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전투는 이번 한 번으로 끝이 아니니 그 후도 생각해야 했다.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그리 내키는 선택지는 아니지만.’
나는 수세에 몰려 계속해 창가로 밀려갔다.
바닥에는 이미 몇 정의 피스톨이 떨어져 있었고, 더 이상 총을 꺼내지 않는 나를 보며 녀석이 말했다.
“무기가 떨어졌어. 이제 무엇으로 막을 거지? 손? 발? 머리?”
그리고는 재미있다는 듯이 킥킥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마지막이니 목숨을 구걸하고 싶은가 봐. 고통스럽진 않게 죽여줄게. 조금은 재밌었으니까.”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몸이 창에 닿은 순간, 그것이 신호가 된 것처럼 녀석이 포효와 함께 달려들었다.
크어엉-!
날카로운 손톱이 내 몸을 찢어발기려는 찰나.
쨍!
창문을 깨고 한 인영이 쇄도해 내렸다.
금빛 마나에 둘러싸인 메이스가 매섭게 공기를 찢고, 녀석이 황급히 뒤로 몸을 빼냈다.
쿵!
방 안이 크게 울렸다. 진동이 멎은 자리엔 그녀가 메이스와 두꺼운 방패를 든 채 서 있었다.
달빛에 반짝이는 유리 파편.
바람에 일렁이는 커튼.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거봐요. 내가 필요할 거라고 했죠?”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칭찬이라도 해 달라는 듯이.
다만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었는지 조금의 수척함이 엿보였다.
“일단 저 녀석부터 제압하지.”
녀석은 당황한 얼굴로 메이스에 짓이겨진, 자신의 어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 이 무슨!”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그녀는 어린아이 다루듯 녀석을 몰아갔고, 메이스가 쉴 새 없이 몰아치며 방 안엔 가죽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죽여도 돼요?”
“캐낼 정보가 있으니 죽이진 마라.”
“팔다리는 부러트려도 되죠?”
피스톨이 적재적소에 중요한 움직임을 끊으며, 녀석은 점차 뒤로 밀려갔다.
“이 씹어 먹을 것들이!”
아래층에서 발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이런 소란에서도 적들이 잠들어 있길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어.’
“그래 방법이 있지. 그 의사 놈 때문에 온 거라면!”
그 순간이었다. 녀석이 빈틈을 비집고 테이블의 재떨이를 집어 위로 던졌다.
쨍!
전등이 깨지고, 다시 마법으로 불을 켰을 때 녀석은 테이블 위 주사기들과 함께 사라져 있었다.
곧바로 방을 나서자 녀석의 실루엣이 복도 끝의 계단 아래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미안해요. 내가 잠깐 방심해서….”
“괜찮다. 반대쪽 계단으로 내려가. 녀석이 복도를 통해 움직일 수도 있으니. 14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발견하면 최우선으로 보호해라.”
“상황은 대충 이해했어요. 그런데 그보다는 이 방법이 더 빠를 거예요.”
몸을 움직이려는 나를 그녀가 제지했다. 그러더니 메이스를 크게 들어 바닥을 내리찍었다.
쿵!
굉음과 함께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
“가요. 이 정도는 뛰어내릴 수 있죠?”
단순한 파괴력만으론 그녀가 제르비아에 밀리지 않음을, 나는 떠올렸다.
“가지.”
4층으로 뛰어내렸다.
복도를 달리고 있던 녀석이 우리를 보고 몸을 돌려 도주했다.
“여기다! 침입자가 여기 있다!”
건물 전체엔 불이 들어와 있었다.
몸 주위에 방호를 두르고 가속된 발걸음으로 복도를 달렸다.
두두두두-!
방호 위에 총알이 빗발쳤다.
몰려드는 적들은 크게 휘둘러진 메이스에 나가떨어지거나 내가 난사한 탄환에 픽픽 쓰러져 나갔다.
피트와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녀석의 도주 경로를 따라 텅 빈 주사기가 우수수 떨어져 있었고, 그때마다 녀석의 움직임은 한층 빨라졌다.
‘이 정도의 숫자라면…. 이미 치사량을 한참 넘어섰다.’
쿵!
에스텔이 다시 바닥을 찍었다.
3층.
녀석의 모습이 다시 아슬아슬 계단 밑으로 사라졌다.
쿵!
“반대쪽으로 돌아. 혼자 내려가겠다.”
“알았어요.”
2층.
녀석이 한 방에서 자루를 어깨에 들쳐 메고 나가는 것이 보였다.
꿈틀거리는 자루 입구에 갈색 머리카락이 흘러나와 있었다.
‘꼭대기가 아니라 2층이었군.’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든다고! 네놈들 따위가 뭔데 감히 나를!”
녀석의 몸 곳곳이 터질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과다 투여.
약효가 다하는 순간 근육이 붕괴해 죽고 말 것이다.
순간적으로 큰 힘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더라도.
나는 녀석의 발치에 사격을 가하며 계속해 한 방향으로 몰았다.
“여기 새끼들도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상대 보스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꼴 하고는!
반대편에 나타난 에스텔을 보고도 녀석은 멈추지 않았다.
“잡았어요!”
그녀의 메이스가 횡으로 크게 휘둘러졌다.
순간 다리가 크게 부풀더니, 녀석은 크게 도약해 그녀를 뛰어넘었다.
쾅!
메이스는 그대로 허공을 통과해 벽을 무너트렸다.
“너희들도 나만큼 화나게 만들어 주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죽을 만큼!”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뒤를 돌아 달렸다.
옆에 도착해 보조를 맞추는 내게 그녀가 말했다.
“말이 돼요? 분명 못 피하는 각도였는데.”
아예 말이 되지 않을 것도 없었다.
이 세계에서 생명을 깎아 얻는 것들은 대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니까.
추격은 계속되어 지하에 도착했다.
“사, 살려줘!”
“무슨 짓이야 지금 같은 편을…!”
녀석은 스카페이스 조직원들 사이를 날뛰며 한쪽에 주차된 밴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내가 막고 있을게요!”
위쪽 계단에서 몰려드는 적들을 향해 메이스를 휘두르며 그녀가 말했다.
“걱정하진 마. 떨거지들을 쓸어 달란 계약 내용은 확실히 지켜줄 테니까!”
녀석의 입에서 광기 어린 웃음이 흘러나왔다. 조직원 하나를 잡아채, 억지로 운전석에 밀어 넣었다.
나는 도망가는 조직원들 사이를 지나 천천히 밴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총을 겨눴다.
“거기까지다.”
자루를 밴에 실어 넣던 녀석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 타이밍에 맞춰, 나는 마나를 밑으로 흘려보내 자루에 「충격 흡수」 마법을 걸었다.
모든 충격에서 자유로울 순 없더라도, 어느 정도 선까지는 모두 막아줄 터였다.
“내가 정확히 맞췄나 봐? 이렇게 허둥지둥 쫓아온 걸 보면? 그 의사 부탁을 받고 이걸 구하러 온 거지? 그렇지? 내 말이 맞지?”
“…….”
녀석의 후각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건 인정해야 했다.
“인질을 내려놓고 사라져라. 그렇지 않으면 넌 죽는다.”
“워, 워, 쏘시려고? 어디 해 볼 테면 해 보라고.”
녀석이 자루를 앞으로 해 자신의 몸을 가렸다.
다음 행동을 취하지 않는 나를 보고는 킬킬 웃으며 자신, 그 다음 자루 순으로 밴 뒤쪽에 탑승했다.
“내가 이 여자애를 어떻게 할지 알아? 그 의사 앞에 데려가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라고. 그리고 거기서 한바탕 날뛰는 거지. 제이문인지 뭔지 다 쳐 죽여 버리면서 말이야.”
상상만으로 황홀하다는 듯 녀석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쿵.
문이 닫혔다.
“가자고, 출발해!”
“예, 예!”
끼기긱-!
밴이 급출발하며 출구를 향해 궤적을 그렸다.
순간 생겨난 빈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탄창을 조준했다.
탕!
관통력을 극대화한 대인 살상용 마탄이었다.
탄환은 뒷유리를 부수고 앞쪽에 닿는 모든 것을 꿰뚫으며 나아갔다.
커헝-!
잠시 휘청대긴 했지만 차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출구를 향해 올라갔다.
녀석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틀어 어깨가 맞았음을 유리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쾅-!
곧장 달려 올라가던 중 위쪽에서 거대한 충돌 소리가 들려왔다.
밖으로 나가자 스카페이스의 차 몇 대가 앞쪽이 반파된 채 출구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인질을 데리고 사라지는 걸 막으려 했나 보군.’
차량에서 나오는 녀석들을 빠르게 총을 쏘아 마무리했다.
아래를 정리하고 따라온 에스텔에게 말했다.
“차를 가져 왔나?”
“근처에 대 놨죠.”
“쫓아. 무슨 일이 있어도 잡는다.”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에스텔의 스포츠카와 내 바이크에 동시에 시동이 걸렸다.
부아앙-!
요란한 배기음이 도시의 새벽을 울렸다.
골목을, 도로를, 골목을, 도로를.
밴은 쉴 새 없이 곳곳을 오갔고 바이크의 핸들은 이리저리 꺾여 댔다.
바퀴를 겨눠 총을 쏟았지만, 일반 탄환은 모두 튕겨 나왔다.
속도와 내구성.
불법 개조된 차량임이 분명했다.
‘…마탄은 쓸 수 없다. 인질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
상황에 적합한 몇 가지 마법이 떠올랐지만, 지금 당장으로선 사용할 수 없었다.
회로의 레벨이 부족하거나.
혹은 거리를 좁히고 상대의 속도를 낮춰야 한다는 조건이 걸려 있거나.
일단 골목이 끝나고 광대한 다리가 나타났다.
북부에서 남부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도로였다.
‘이제 조금 할 만해졌군.’
더 이상의 장애물은 없었다.
나는 밴을 쫓아 최대 속도로 스로틀을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