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38화 (38/227)

#038. 스카이 스크래퍼 (3)

“곤란하시겠군요. 원하신다면 다른 의사를 수배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난 그 자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여신의 눈물을 홀짝이며 말했다. 라운지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사실 나는 제대로 된 의사 면허가 없네. 딸과 함께 클랙필드에서 지내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바깥으로 나왔지.」

프로이드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의뢰를 받아 이곳에 도착했네. 그런데 첫 의뢰부터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환자는 유력 조직의 보스.

맡게 된 집도는 심장 수술.

수술 날짜를 잡고 대기하던 중 적대 조직에 딸이 납치되었다고 했다.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군. 수술 중 일부러 실수를 하라는 협박을 받았네.」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수술에 성공하면 딸이 죽는다.

수술에 실패하면 자신이 죽는다.

「부담감에 조직의 호위를 물렀던 게 후회되기도 하네. 조직에 말하는 순간 내 딸은 죽은 목숨이야. 사실 내가 수술에 실패해도 딸이 무사히 돌아올지 모르겠네. 사람 목숨 따위 파리만도 못하게 여기는 놈들이니까.」

그런 이들을 상대해 가며까지 큰돈을 벌려는 이유는 뭘까. 더 깊이 캐묻진 않았다.

“제이문과 스카페이스라는 조직입니다. 92번 구역의 북부와 남부를 양분하고 있죠. 제이문의 보스가 지병을 앓고 있단 소문이 최근 돌긴 했습니다.”

두 번째 칵테일 잔이 내 앞에 놓였다.

“원하신다면 딸을 감금해 두었을 만한 위치를 수색해 두겠습니다.”

“부탁하지.”

수술 날짜는 모레 오전 8시.

그 전에 프로이드의 딸을 구출한다.

다만 이번엔 나 혼자만의 목숨이 걸린 게 아니니 평소보다 신중해야 했다.

‘위치가 완전히 파악되기 전까지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게 낫겠지.’

전투가 벌어져도 나로선 그리 나쁜 일이 아니었다.

적을 죽일수록 내 마나는 계속해 늘어나니까.

“나에 대한 정보를 스카페이스에 팔아넘긴다는 선택지도 있지 않나?”

지부장은 재밌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픽 웃었다.

“설마요. 누가 VIP인지 구분하는 능력 정도는 저에게도 있습니다. 118번 지부장의 귀히 모시라는 부탁도 있었고요.”

띵-

그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이는 라운지를 둘러보더니 이쪽을 보고는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여기 있었네요. 한참 찾았잖아요.”

“…….”

“미인이시군요. 아는 분입니까?”

“어머, 고마워요. 바텐더님도 댄디하시네요.”

에스텔, 그녀가 대체 왜 여기에.

평소의 사제복이 아닌 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손가락의 반지가 반짝였다.

‘골치 아프게 하는군.’

상황 파악은 빠르게 끝났다.

그녀가 가까워져 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전투에 방해가 되어, 나는 반지를 따로 빼 보관하고 있던 상태였으니까.

머리의 지끈거림을 느끼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일이 끝날 때까진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그녀가 순간 움찔했다.

주눅 든 투로 말했다.

“…미안해요. 화났어요?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 없어서….”

“…….”

“사실 그렇잖아요. 자기 일이 뭔지도, 언제 끝날지도 안 알려 주고 무작정 기다리라고만 하니까.”

그녀의 말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잘못을 저지른 뒤 부모 앞에 선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왜 나를 벌써 찾아왔지?”

“그쪽 일을 도우려고요. 도우면 더 빨리 끝날 테니까.”

“일을 그만두었나?”

“아예 그만둔 건 아니에요. 휴가를 냈죠. 아주 긴 휴가.”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잠깐 생각 좀 하지.”

“알았어요.”

그녀는 내 눈치를 보며 다른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다 지부장이 내어준 칵테일 하나를 손에 들고 유리 벽에 다가섰다.

“오늘은 그래도 바람 덕에 매연이 조금 걷혔군요. 날이 좋으면 도시의 전경을 제대로 내려다볼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아쉽네요. 이만한 높이의 건물은 수도에도 잘 없는데.”

탁. 탁.

내 손가락이 천천히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녀를 받아들인다면.’

분명 도움은 될 것이다.

사제 중에서도 그녀만한 실력자는 잘 없으니까.

하지만 동행으로 삼는 순간 내가 책임지고 신경 써야 할 존재가 하나 생겨나게 된다.

‘카인과의 동화율에 영향을 줄지도. 그밖에도 변수가 너무 많아진다, 둘이 되는 순간.’

가까이 붙는 순간 각자의 삶은 어떻게든 서로에게 스민다.

복수의 시작과 끝을 모두 홀로 하려 했던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혼자가 낫다.

나는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

“장소를 바꿔서 이야기하지.”

“알겠어요.”

칵테일을 홀짝거리던 그녀가 잔을 내려놓고 내 뒤를 따라왔다.

띵-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함께 탑승했다.

가까워지는 지상의 풍경을 보며 내가 말했다.

“돌아가라.”

“싫어요.”

대답은 즉각 나왔다.

고개를 돌리자 생글생글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화났군.’

“돌아가라. 방해된다.”

“싫어요. 방해가 될지 아닐지 어떻게 알아요. 아직 같이 다녀 보지도 않았으면서.”

“혼자가 편하다.”

“조직 간부였다면서요? 사람 부리는 데엔 익숙할 거 아니에요.”

“지금은 아니다.”

“그 일이란 게 뭔데요? 당신 마법사라 어차피 가드 필요하잖아요. 내가 그 역할 해 주겠다고요.”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지상에 도착했다.

건물 밖에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못 보던 스포츠카가 주차되어 있었다.

“내 거에요.”

네게 돈이 어디 있느냐는 시선을 보냈다.

“…대출받아서 샀어요. 사제는 신용 등급이 높아 빌릴 수 있는 금액이 높거든요. 전투에 관련된 기능도 이것저것 달려 있어서 당신 일하는 데도 도움 될 거에요.”

“…….”

“…….”

“얼마지?”

“2천만… 실링이요.”

나는 품에서 고액권 지폐 두 뭉치를 꺼냈다.

“뭐예요?

“3천만 실링. 네가 준비해 주었던 바이크를 포함한 값이다.”

그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내가 지금 돈 때문에 이러는 걸로 보여요? 어차피 마병에 걸려 죽고 마는데. 불안해서 그렇다고요, 불안해서! 가만히 있기엔 너무 불안해서!”

그녀가 화를 내며 외쳤다.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입술을 꾹 깨물고는 몸을 돌려 다른 쪽 거리로 향했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는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착용했다.

점점 멀어지던 그녀의 기운이 어느 선에서 멈춰 섰다. 내가 이동을 하자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붙었다.

‘그런 말이 있었지.’

완성되어 작가의 손을 떠난 인물은 저마다의 자유 의지를 지니게 된다.

작가의 통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다.

그 말이, 조금 다른 의미에서 실감되었다.

일단 해야 할 일이 있기에 그녀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었다.

구역 곳곳을 돌며 거리의 구조를 파악하고, 총기와 탄약을 정비하고, 웜에게서 얻은 일부 부산물의 판매를 마쳤다.

그리고 다음 날, 지부장에게서 스카페이스에 대한 정보 파악을 마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질은 구역 북부의 스카페이스 조직원들이 주거용으로 쓰고 있는 호텔에 잡혀 있습니다.”

지부장이 건물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를 건넸다.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아마 꼭대기인 8층에 억류되어 있지 않을까 싶군요.”

“경계가 삼엄한가?”

“예. 무장한 조직원들이 입구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더군요.”

‘옥상에서부터의 진입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겠군.’

평소보다 더 신중히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이번엔 나 외의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달려 있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유의하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뭐지?”

“스카페이스의 간부가 최근 그린 호드와 접촉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린 호드. 3대 조직 중의 하나.

수인들로 이루어진 용병집단이었다.

“전투원을 고용했다는 소리군.”

“예. 제이문과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단 소문이 최근 파다했으니까요.”

그 정도까지 준비한다면, 수술의 성공실패 여부와 관계없이 전쟁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프로이드는 보험 정도에 불과할지도.’

그를 만날 때 주위에 별다른 감시가 붙어있진 않았다. 크게 신경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증거였다.

지부장에게 몇 가지 더 정보를 건네받은 뒤 대금을 치렀다.

건물을 빠져나와, 프로이드와 약속한 카페로 향했다.

“이게 뭔가?”

“통신 기기다. 귀 안쪽에 꽂아 두면 다른 이에게 들키지 않고 내 무전을 들을 수 있다.”

그는 순순히 내 지시에 따랐다.

일종의 안배였다.

딸을 구했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그가 안심하고 수술을 성공시킬 테니까.

“자넨 확실히 내가 아는 마법사들과는 다르긴 하네.”

그의 눈동자엔 여전히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딸과 자신의 목숨은 낯선 이 한 명의 손에 맡긴 셈이니.

“날 믿어도 좋다.”

“…알겠네. 부탁하겠네. 내 딸을 구해 주게.”

그의 눈동자 떨림이 조금 멎어 들었다.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고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탄환을 비축하고.

눈을 감고 벽시계의 초침 소리를 들었다.

‘계속 따라올 생각인가 보군.’

멀지 않은 거리에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 근처 호텔에 방을 잡지 않았을까.

째깍- 째깍-

창밖에 석양이 지나고 저녁이 찾아왔다. 건물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 새벽 3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을 때, 나는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바이크를 타고 구역 북부로 향했다.

고요한 거리를 지나 표적 호텔에서 떨어진, 도주 경로로 생각해 둔 곳에 바이크를 대었다.

‘입구에 배치된 인원은 8명. 총 조직 규모는 150명 정도라고 했나.’

호텔 앞, 가로수 뒤에 몸을 숨겼다.

몇 개 층에 불이 켜져 있었고, 입구엔 총으로 무장한 경비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걸음을 돌려 호텔 옆에 위치한 폐건물로 향했다.

사전 조사해 두었던 장소로, 잠겨 있던 문은 마법으로 쉽게 열 수 있었다.

비상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향했다.

층수는 9층으로 호텔의 옥상이 내려다보였다.

품에서 총을 꺼내 호텔의 옥탑 건물을 겨눴다.

푸슉!

날카로운 촉이 달린 와이어가 뻗어 나가 벽에 박혀 들었다.

총구 쪽 와이어를 잘라 내 근처 기둥에 단단히 묶어 고정했다.

「부유」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마나는 최대한 아껴 두는 것이 좋다.

게다가「부유」는 이동 속도가 느려 지상의 적들에게 발각될 위험이 있으니까.

장비를 꺼내 갈고리 부분을 와이어에 걸었다. 손잡이를 잡고 그대로 난간 밖으로 뛰어내렸다.

끼기기긱!

쏜살같이 허공을 지나, 반대편 옥상 바닥에 안착했다.

잠시 숨을 죽였다.

여전히 주변엔 어둠이 깔려 있었고 지상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조직원이라곤 하나 절대다수는 마나 유저가 아닌 일반인들이다.

‘변수가 있다면 그린 호드의 용병 정도.’

수인들은 기본적으로 이성보다 본능이 발달해 있다.

때문에 피와 전투를 갈망하는 이들이 모여 자연스레 집단을 이루었다.

‘통제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집단보다는 무리에 가깝긴 하지만.’

백 퍼센트 장담할 순 없지만, 이런 하급 조직 간 전쟁에 파견되는 걸로 보아 그리 급이 높은 녀석은 아닐 가능성이 컸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위험을 감수할 값어치는 충분했다.

용병을 제압했을 때 얻게 될 마나와, 즉각적인 힘줄 치료로 더 이상 운신에 마나를 낭비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점이 그랬다.

끼익-

옥탑 건물의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은밀히 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복도에 수많은 방이 이어졌다. 몇몇 방에선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왔다.

잠시 한 자리에 멈춰서 마나를 끌어 올렸다.

「탐지」

여러 종의 원소가 뒤얽힌 마나가 뱀처럼 퍼져나갔다.

마나에 닿은 사물들의 윤곽이 머릿속에 그려져 나갔다.

마나 소모가 극심해 한 층으로 범위가 제한되었지만,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이쪽 방은 3명. 테이블의 올려진 물건의 형태로 봐선 도박을 하는 중인가.’

내부 인원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문에 등을 기대고 있다 벌컥 열고 들어갔다.

“뭐야. 아직 교대 시간은 멀었는데.”

“자, 잠깐. 우리 조직이 아니….”

푸슉!

피스톨이 연이어 3번 불을 뿜었다. 소음기 위에 방음 마법을 덧씌워 무음에 가까웠다.

문을 닫고, 이마가 꿰뚫린 세 구의 시체를 지났다.

‘이 방엔 별다른 단서가 없군.’

빠르게 방을 뒤진 후 다시 문밖을 나섰다.

어둠 속에 스며든 뒤,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다음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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