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34화 (34/227)

#034. 102번 구역 (2)

“달라스라고 해. 주로 하던 일은 장물 팔이. 88번 구역에서 넘어왔어. 돈 좀 만질 수 있다기에 달려왔지.”

“벅. 용병이다. 따로 소속은 없어.”

리프반의 밑에 모인 이들은 나를 포함해 총 여섯이었다.

1층의 상황이 정리된 후 리프반의 방에 모였다.

“난 케이번. 돈 되는 일은 다 해. 얼마 전엔 조직에 고용되어서 전쟁을 치르기도 했었고.”

별달리 실력 있어 보이는 녀석은 없었다.

나름 총과 슈트들로 무장했지만 싸구려 카피 제품 티가 확 났다.

“좋아. 혹시 여기서 마법사를 직접 상대해 본 녀석이 있나?”

“…….”

리프반의 물음에 용병들은 서로 눈치만 봤다.

쉽게 찾아보기 힘든 존재니 소문으로만 들어봤을 가능성이 컸다.

리프반이 이를 씩 드러내며 말했다.

“뭐, 상관없어. 내가 전문가니까. 내 지시만 믿고 따르면 된다고.”

“그쪽은 직접 싸워 봤다는 얘긴가?”

리프반이 품속에서 작은 패를 꺼냈다.

실제 흑마법사를 퇴치한 이들에게 발부되는, 교단의 감사패였다.

문신과 달리 이번은 진품으로 보였다.

“포상금도 받았지. 산 채로 잡은 게 아니라 액수가 적어지긴 했지만.”

용병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졌다.

“아지트는 보통 지하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지. 누구든 발견하면 얘기해. 전투엔 원한다면 참여하지 않아도 좋아. 나 혼자도 충분하거든. 그만큼 분배금은 떨어지겠지만.”

설명이 이어졌다.

흑마법사의 습성이나 마법을 상대할 때의 유의점 같은 것들.

모두 직접적인 경험이 없다면 알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조금 어설픈 부분이 있긴 하지만.’

흑마법사와 싸워본 적이 있다는 말이 아예 거짓은 아닌 듯했다.

“마법을 쓰기 시작하면 숨기보단 바로 달려드는 게 낫다는 얘긴가?”

“그래. 몸을 숙이고 지그재그로. 일단 마법을 쓰면 방향 바꾸기가 어렵거든.”

이야기를 할수록, 용병들의 눈빛에 담겨있던 미심쩍음이 사라져 갔다.

용병 하나가 슬쩍 손을 들고 말했다.

“마나를 다룰 수 있다고 했는데 좀 보여 줄 수 있나?”

리프반의 기분이 상했을까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아, 아, 당연히 의심하는 건 아니고. 난 마나 유저를 만나는 게 처음이거든. 그것도 든든한 아군으로 말이야. 신기해서 그래.”

“맞아. 사람들 얘기로는 높은 곳에 쉽게 뛰어오르고 강철을 우그러트리기도 한다던데.”

시선이 리프반에게 몰렸다.

모두 눈에 은근한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뭐, 그럼 보여 주지.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리프반은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재떨이를 집었다. 대리석으로 된 물건이었다.

“흡!”

손아귀에 쥐어진 재떨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내 완전히 반으로 갈라져 부서져, 그 아래 담뱃재가 툭툭 떨어져 내렸다.

“…세상에.”

“맙소사.”

“이 정도면 됐겠지. 이제 나가서 우리 포상금을 찾아보자고.”

분명 일반인들의 기준에선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어떤 특별한 기계 장치를 단 것도 아닌, 정말 맨손으로 해낸 일이었으니까.

“그, 그래 나가자고. 다른 녀석들에게 빼앗기기 전에.”

“같이 하겠다고 말한 게 좋은 선택이었어.”

리프반을 선두로 하여 용병들은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문을 닫기 전 방을 돌아보았다. 반으로 갈라진 재떨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마나 회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전 퍼포먼스를 보여줄 때 역시, 마나의 파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짜였다. 나처럼 마나를 감추는 유물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 이상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상상 이상으로 강한 악력을 타고났거나, 재떨이에 미리 어떤 조작을 해 두었거나.

‘…뭐, 어느 쪽이든 나와는 상관없지만.’

나는 재떨이를 무심히 바라보다 문을 닫고 일행을 따라갔다.

* * *

“잘 찾아봐. 시체들 아래 지하로 향하는 계단 같은 게 있을 지도 모르니까.”

“아, 젠장. 누구 코마개 하나 남는 사람 없나? 다른 녀석들처럼 민가나 황무지 쪽을 먼저 뒤지면 안 되는 거야?”

“여기가 확률이 가장 높아. 보라고, 사제 놈들도 다른 곳보다 이곳에 더 많이 몰려 있잖아.”

리프반의 말대로였다.

묘지에는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수의 사제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장대형의 마나 탐지기를 손에 들고, 곳곳을 수색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용병들 틈에 섞여 하나하나 묘비를 살펴 나갔다.

얼기설기 돌을 쌓아 만들거나, 나뭇가지를 엮어 만들거나.

더러 제대로 된 것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그런 모양새였다.

‘묘비 세울 돈도 없다는 거겠지.’

나는 고개를 들어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묘지 한가운데 자리한 여신상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단의 신앙.

대지의 여신 테유메사.

그녀는 어디에나 있었다.

일종의 마나 송수신 탑 역할을 하니, 사제들의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함이었다.

“내겐 스카웃 제의가 먼저 왔었거든. 문신도 그때 새겼지. 지금은 조직을 나와 아무 쓸모도 없어졌지만 말이야.”

리프반이 이야기를 풀 때마다 용병들은 감탄했다.

그러면서 녀석의 기분을 맞추려 노력하는 모습이, 이번 일이 끝나고도 같이 다니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용병 세계에서 실력자와 함께한다는 것은 그만큼 생존 확률이 올라간다는 의미기도 했으니까.

“카인이라고 했나? 이쪽 세계에 발을 디딘지 아직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싸움이 일어나면 일단 숨으라고. 살아남아 경험을 쌓는 게 우선이니까.”

리프반이 등 뒤를 지나며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시선은 그 보다는 사제들 쪽에 머물러 있었다.

‘마법을 쓴다면 도움이 될 텐데.’

물론 탐지 마법은 큰 의미가 없었다.

지하 벙커는 외부에 대한 마법저항력을 갖추고 있으니까.

하지만 걸음을 빠르게 한다거나, 안력을 강화하는 등의 마법은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흑색 마나를 들킬 염려가 있어 마법 사용을 자제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사제 중 하나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금발 머리의 청년이었다.

“용병 분들이신가 보군요. 혹시 단서를 찾게 되면 공유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물론….”

삐빅-

순간 사제가 들고 있던 마나 탐지기가 울렸다.

“…….”

회로는 분명 꺼두었다.

유물을 이용해 이중으로 은폐도 해두었다.

그럼에도 감지가 되었다는 것은, 교도소에 보급된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최신 기종이란 얘기였다.

사제의 시선이 물끄러미 나를 향했다. 둘러댈 말을 꺼내려 할 때 용병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이게 마나를 탐지하는 장비인가 보군요. 우리 대장이 마나 유저라 신호를 보내네.”

“그러니까 말이야. 성능이 아주 확실한데.”

용병들은 낄낄거리며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수색에 열중인 리프반을 가리켰다.

“…….”

사제는 나와 리프반을 번갈아 쳐다보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투로 말했다.

“예. 그렇군요. 아무쪼록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여신님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다른 사제들 쪽으로 사라지는 그를 보며 나는 작게 숨을 돌렸다.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소 귀찮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날 오후와 저녁 내내 이뤄진 수색은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용병들은 모두 숙소로 복귀했고, 사제들은 조를 이루어 야간에도 수색을 계속했다.

날이 밝았을 때, 가장 마지막 수색조를 맡았던 사제 넷이 묘지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지금이라도 발을 빼야 하는 거 아니야?”

“일종의 경고 표시 같은데. 자꾸 자기 집 근처를 들쑤시고 다니니까.”

리프반의 ‘걱정마라’는 한 마디에 용병들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생각보다 상황이 위험함을 분명 인지는 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포상금에 눈이 멀어 발을 빼지 못하고 있을 뿐.

어쨌든 어제와 마찬가지로 수색은 계속되었다.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었고, 사람들의 짜증과 분노는 점차 달아올랐다.

“찾았다!”

외침이 들려온 건 시간이 오후 두 시를 지났을 때였다.

다른 무리의 용병 쪽이었다.

황급히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다른 이들이 주위에 몰려든 상태였다.

“뭐야, 찾았다고?”

“어디야? 어디에 있는데?”

외침의 당사자는 쭈뼛거리며 비석 하나를 가리켰다.

몸체가 눕혀져 땅에 반쯤 박혀 있는 형태의 비석이었다.

“아래 부분을 잘 봐. 땅과 비석 사이에 틈이 벌어져 있거든.”

“진짜야. 진짜다!”

“아래 공간이 비어 있는 거 아냐?”

“일단 밀어 보자고.”

체격이 큰 녀석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몸을 숙여 비석 밑면을 힘껏 밀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았다.

비자금의 은닉처, 혹은 흑마법사의 아지트일 수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벙커일 가능성도 있었다.

드드드-

“밀린다! 밀려!”

“진짜잖아. 아래 계단이 있어!”

소란을 들은 사제들도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비석이 삼 분의 일쯤 밀렸을 때, 내 바로 옆쪽 시체 더미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

본능적으로 방호 마법을 발동했다.

콰직-!

무언가 날아들었다.

방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옆구리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시야가 뒤집히고, 쨍한 하늘이 보였다.

“…….”

나는 공중을 날고 있었다.

시선을 흘긋 내리자, 몽둥이를 든 거대한 괴물이 보였다.

3미터는 될법한 비대한 몸체.

얼굴에 씌워진 구속구.

신체 곳곳에 결합된 기계 장치.

양손에 든 클럽과 거대 갈고리.

쿵!

짧은 비행이 끝나고 나는 시체 더미 뒤쪽에 떨어졌다.

더미 반대편에선 벌써 전투가 벌어진 듯 고함과 함께 무언가 날아가고, 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 도망쳐! 괴물이다!

─총 든 놈들은 쏴! 쏘라고!

뼈에 금이 갔는지 몽둥이에 맞은 부위가 욱신거렸다.

순간적으로 방호를 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터였다.

‘주민들을 납치하던 게 저걸 만들기 위함이었나.’

순간 여러 단어가 머리를 스쳤다.

인체 실험, 신체 개조, 정신 세뇌 따위의 것들.

바닥에 대자로 누운 채 잠시 상황을 파악했다.

간밤에 죽은 사제 넷은 저 괴물에게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런 괴물을 만들어 낼 정도라면, 흑마법사 본체의 실력 또한 만만치 않다는 얘기였다.

‘도망치지 않고 버티는 데에서 이미 답이 나와 있긴 했지.’

어쨌든 모두 나와는 상관없다.

사제들의 주의가 다른 곳에 끌린 틈을 타, 마법을 사용해 부근을 빠르게 수색하면 될 뿐.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려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보우&도스 이곳에 잠들다.」

찾던 비석이 머리맡에 있었다.

비문은 사람이 서 있을 때 볼 수 있는 위쪽이 아닌, 옆면에 새겨져 있었다.

‘…이런 곳에 있었군.’

자리에서 일어나 비석을 살폈다.

시체 더미에 가려 건너편에선 이쪽이 보이지 않았다.

드드드-

마법으로 근력을 강화해 밑 부분을 힘주어 밀었다.

곧 비석이 밀리며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캄캄한 어둠. 나는 불빛 하나를 일으켜 아래로 향했다.

계단은 깊지 않은 바닥에 닿았고, 앞으론 좁은 복도가 이어졌다.

“…….”

계속 나아가던 중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반 우즈는 분명 마법사를 고용해 은닉처에 이런저런 함정을 설치해 두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기에 지금 벙커는 너무도 고요했다.

“설마.”

탁. 탁. 탁.

추측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복도는 외길이었다. 걸음을 빨리해 끝 쪽 방에 닿았다.

“…….”

방은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한 구석, 나뒹굴고 있는 지폐 몇 장을 제외한다면.

걸음을 돌려 지상으로 향했다.

아지트를 찾던 흑마법사가 비자금의 은닉처를 발견했다,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추측이었다.

나는 시체 더미에 올라서 상황을 주시했다.

전투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용병들은 물론 사제들 역시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엄호해! 장갑이 부착되지 않은 오른팔부터 공략한다!”

“사, 살려 줘!”

거인의 몸에 결합된 장치들은 주입되어 있는 마나로 작동하는 듯했다.

위험한 순간마다 빛과 함께 충격파가 발산되거나, 거인의 움직임이 가속되거나 했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비교적 최근에 부착된 듯 새것으로 보이며, 또 굉장히 고가의 장치들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거인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흑마법사의 아지트로 향하는 비석은 삼 분의 이쯤 밀려 있었다. 사람이 들어가기엔 충분한 공간이었다.

나는 시체 더미에서 내려와 마법으로 기척을 지웠다.

그리고 거인 뒤편의 계단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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