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32화 (32/227)

#032화. 동행 (2)

끼에에엑!

지상에서 연결돼 나온, 족히 10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몸체.

주둥이에 다닥다닥 돋아난 날카로운 이빨.

“샌드웜…!”

총 다섯.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지하를 달리며 입에 닿는 무엇이든 먹어 치우는 괴물이었다. 그것이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상대해 본 적 있나? 지금이라도 수갑을 풀어 주는 게 나을 텐데.”

“도움 따위 필요 없다.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 샌드웜은 눈이 없어 진동을 통해 먹잇감을 감지한다.”

그녀의 얼굴엔 약간의 긴장감, 그리고 그보다 농도 짙은 흥분감이 엿보였다.

‘분명 교육은 받았겠지.’

명확히 답은 하지 않았지만, 실전 경험은 없을 것이다.

샌드웜은 극히 일부 지역에만 서식하는 데다, 난폭한 성질 탓에 훈련용 표본으로 잡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일단 그녀가 지시한 대로 뒤로 조금 물러서 그 자리에 대기했다.

그녀가 웜들을 향해 도약하는 걸 보며, 몸 주위에 냉기를 둘러 체온을 낮췄다.

끼이엑!

그녀의 움직임에 반응해 웜들이 쇄도했다.

구멍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며 이뤄지는 공격, 그 사이 그녀가 펼치는 전투는 절도 있는 춤을 연상케 했다.

베고. 찌르고. 피하고.

몸체를 발판 삼아 도약하고.

모든 동작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히 이루어졌다.

마나가 실린 검격에 웜들의 비늘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위험한 순간마다 돌을 던져 웜들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모습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과연 수도 최고의 기사 중 하나로 꼽힐 만해.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지.’

생각과 동시, 한 차례 괴성과 함께 웜들의 속도가 빨라졌다.

“……!”

제르비아의 눈동자에 당황스러움이 번졌다.

웜들의 주둥이가 그녀를 향해 폭격해 내렸다.

쾅─!

그녀의 회피 경로를 따라 땅 위에 연이은 폭발이 일어났다.

뿌옇게 먼지가 일고 그 사이 그녀의 모습이 비쳤다.

몇 차례 공격이 스쳤는지, 외투가 곳곳이 길게 찢어지고 그 사이 붉은 상처가 드러나 있었다.

쾅─! 쾅─!

전혀 패턴을 예측할 수 없는, 광폭하고도 변칙적인 움직임이었다.

점차 스텝이 꼬이며 제르비아는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움직임을 중간중간 멈췄음에도, 웜들은 그녀의 위치를 자로 잰 듯 알아채고 공격해 왔다.

‘진동을 통해 먹잇감을 감지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

오랜 시간 이루어진 지하에서의 생존. 눈이 퇴화한 대신 극도로 발달한 다른 감각들을 얻었다.

다만 샌드웜이 감지하는 것은 진동뿐이 아니다.

대상의 온도 역시 감지한다.

인간의 기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아주 세밀한 단위로 말이다.

공격을 피하기 위해 격한 움직임을 취하게 되고, 체온이 상승하고, 그에 반응해 웜들의 공격이 거세지고.

빠져나올 수 없는 모래 지옥과 같은 고리인 셈이다.

모험가의 절대다수는 웜의 숨겨진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먹잇감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녀도 이대로라면.’

슬슬 개입할 때가 되었다.

수갑에 미량의 마나를 흘려 넣어 내부 회로를 정해진 순서대로 건드려 나갔다.

철컥.

수갑이 풀렸다.

한 차례 손목을 푼 뒤 체내의 마나를 손바닥 위로 끌어 올렸다.

허공에 엉겨든 수(水)계 원소가 한 점에서부터 얼어붙기 시작했다.

곧 성인 남성만 한 크기의 거대한 창이 완성되고, 손잡이 끝에 추가적인 마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나의 응축.

그리고 폭발.

탕!

반동으로 인해 몸이 크게 흔들렸다.

추진력을 얻은 창은 냉기를 흩뿌리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갔다.

웜 중 하나의 몸체, 비늘이 벗겨져 살갗이 드러난 부분에 정확히 박혀들었다.

끼에에엑─!

창이 꽂힌 녀석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제르비아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도움이 아니었다면 치명상을 입었을 상황이었다.

─대체 어떻게?

그녀의 얼굴이 그렇게 묻는 듯했다.

하지만 장시간 추궁의 눈빛을 쏘아 보낼 여유 따윈 그녀에게 없었다.

계속된 웜들의 공격으로, 강제적으로 다시 전투에 열중해야 했다.

다음 마법을 준비하는 것과 동시, 웜 한 마리가 지하로 파고들었다.

구구구구─

발밑에서 느껴지는 진동.

방향은 정확히 내 쪽이었다.

‘아직은 괜찮다. 5초.’

연이어 완성된 창들이 긴 몸체의 괴물들을 향해 날아간다.

반동에 몸이 흔들리고, 그때마다 발밑의 진동이 거세진다.

개의치 않고 마법의 연사를 계속한다.

녀석들의 움직임이 아무리 민첩할지라도, 좌표의 계산과 조준은 완벽하다.

‘3초.’

비늘에 벗겨진 취약 부위에 창들은 여지없이 꽂혀 든다.

다수의 창에 적중당한 녀석은,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1초.’

나는 땅을 박차고 뒤로 뛰어 올랐다.

그와 동시, 내가 있던 자리에 웜의 주둥이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찰나의 순간 다음 마법의 캐스팅을 마쳤다.

「부유」와 「얼음 방벽」.

몸을 허공에 고정시키고 얇은 얼음의 막을 구체 형태로 주위에 둘렀다.

흩뿌려진 모래가 방벽에 막혀 떨어져 나가고, 방벽 내부의 온도는 급속도로 떨어졌다.

‘영하 5도.’

웜이 감지할 수 있는 온도는 정확히 영하 4도까지.

먹잇감을 잃은 녀석은 허공에 몸을 멈춰 세운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곧 다시 지하로 들어가 제르비아에게 향했다.

[회로 레벨: 1]

[마나: 182 / 485]

공격 마법의 난사로 마나는 절반 이하로 줄어 있었다.

마법의 유지로 지금도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오래 끌 수는 없겠어.’

강화 마법을 준비했다.

대상은 내가 아닌 제르비아였다.

그녀를 향해 푸른 마나가 쏘아져 나가는 동시에, 나는 마법으로 목소리를 전했다.

「왼쪽이다. 세 걸음 물러선 뒤 횡으로 검을 베어라.」

그녀의 움직임이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웜이 땅 위로 솟구쳐 오르는 타이밍에 맞춰, 그녀의 검이 녀석의 몸체, 비늘이 떨어진 취약 부위를 깊게 베었다.

「뒤로 다섯 걸음.」

쿵!

「그대로 머리를 밟고 도약해. 오른쪽에서 공격이 들어오니 어깨를 틀어라.」

탓─!

강화 마법의 효과를 받으며 그녀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그녀 역시 상황에 대한 이해는 빨랐다. 내가 전달한 명령은 그녀의 몸을 통해 즉각 실행되었다.

「아래 보이는 녀석을 그대로 내리 찍으면 된다.」

콰득.

끼에엑─!

이제껏 고전했던 게 거짓말처럼 웜들은 순식간에 제압되어 갔다.

그녀뿐 아니라, 나 혼자였더라도 이 상황을 무사히 빠져나가진 못했을 것이다.

적의 습성과 공격 패턴에 대한 완벽한 이해.

주어진 모든 동작을 수행할 수 있는 뛰어난 전투 능력

두 요소가 시너지를 발휘한 결과였다.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전투는 끝났다.

먼지가 걷히고, 쓰러진 웜들 사이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

그녀는 잠시 멍해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일으킨 이변에 놀란 눈치였다.

그러다 나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다가와 검을 겨눴다.

“수갑을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해.”

“불량품인가 보더군. 힘을 주니 그냥 풀려 버리던데.”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그녀와 나 사이를 가득 메웠다.

말도 안 되는 변명.

애초에 내겐 제대로 변명할 생각 따위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카인. 역시 넌 여기서 죽어야겠어. 살려 두기엔 너무 위험해.”

나는 픽 웃었다.

“말했듯이 죽일 테면 죽여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이 황야를 어떻게 혼자 빠져나갈지 궁금하군.”

다시 침묵이 흘렀다.

검을 쥔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고민해도 답은 정해져 있다.

자존심이 강하긴 하나 실리 앞에 무리하게 내세울 얼간이가 아니니까.

그녀는 따라올 테면 따라오라는 듯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허락 표현인 듯싶었다.

“잠깐 검을 좀 빌리지.”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뭐?”

“검을 빌리겠다고 했다.”

그녀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선을 넘지 마라, 카인. 잠시 협력할 뿐이지 아군이 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사의 목숨과 같은 검을 빌려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것 말고도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 있을 텐데. 길이는 상관없다. 날이 잘 드는 것이라면.”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품에서 나이프를 하나 꺼내 내게 던졌다.

나는 정확히 손잡이 부분을 낚아채 잡았다.

‘아공간 망토. 아직 걸치고 있군.’

그녀는 잠행용 외투 안에 아공간 망토를 이중으로 착용하고 있었다.

수도에 위치한 마법 공학의 성지.

라티움.

그곳의 공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망토.

작품 후반부 주인공이 탈취하게 되는 물건으로 최대 1세제곱미터의 부피만큼 물건을 보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교도소 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지.’

그녀의 성격상 무기나 장비 따위의, 전투에 도움이 되는 것들로 공간을 가득 채워 놓았을 것이다.

유심히 따라붙는 그녀의 눈길 속에 나는 웜들의 사체로 다가갔다.

그리고 머리 뒤쪽의 유난히 색이 진한 비늘들을 하나하나 떼어내 가방 속에 갈무리했다.

“뭘 하는 거지?”

“다른 곳보다 강도가 높은 특수 부위다. 사용처가 많아 고가에 거래되지.”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최악의 상대에게 계속해 도움을 받고 있으니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고 있을 터.

내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릴 것이다.

작업을 마치고 걸음을 계속했다.

밤이 되기 전에 최대한 이동을 해두어야 하기에, 전투와 짧은 정비가 쉼 없이 이어졌다.

까다로운 몬스터가 나타나 더러 위험할 때가 있었지만, 매끄러운 협력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해가 져서 더 이상의 이동은 무리다. 이 오두막에서 쉬었다 새벽에 해가 뜰 때 다시 움직이지.”

그녀는 오두막의 한쪽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대다수 상황에서 내 말이 옳음을 느껴, 군말은 달지 않는 모습이었다.

화륵-

나는 판자 몇 개를 모아 불을 피웠다.

부서져 뻥 뚫린 천장으로 연기가 올라갔다.

“마법은 선택받은 자들만이 쓸 수 있는 재능이라 들었다. 그런 마법을 너 같은 범죄자가 사용하다니,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별달리 이해받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말이지.”

“…….”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앉은 뒤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별은 총총히 박혀 있고, 장작이 타닥거리는 소리 외엔 사방이 고요했다.

먼저 정적을 깬 건 그녀였다.

“118번 구역 외곽의 한 마을에서.”

그녀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사냥개들에게 붙잡힌 주민들을 구출했다고 들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했지?”

“사람들을 도운 게 잘못이라는 것처럼 들리는군.”

“아니…! 내 말은 넌 전혀 그럴 인간이 아니란 얘기다.”

남을 돕는다. 선행.

카인은 조직에 들어간 이후에도 하층민들을 여러 방면으로 도와 왔다.

다만 조직 내 다른 간부에게 약점으로 잡힐 수 있기에, 아주 비밀리에 진행해 왔을 뿐이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겉으론 드러난 모습만 보아왔을 테니까.

“내 이익에 충실했다고 정도만 해두지.”

“부정하진 않는군. 용병으로 활동한 적도 있나? 몬스터들의 습성을 꿰고 있던데. 마치 수백 수천 번 직접 맞닥트려본 것처럼.”

“좋을 대로 생각해.”

그녀가 입을 꾹 다물었다.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답답함에 화가 오른 듯 보였다.

“카인. 난 너 같은 인간이 싫다. 자신의 이익이라면 남에게 해를 끼치며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들. 대체 인생의 목표가 뭐지? 꿈은? 그렇게 하루하루의 이익을 좇으며 사는 것에 만족하나?”

날 선 목소리였다.

연이은 도움으로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방어 기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목표. 꿈이라.’

존재한다.

내가 주조한 모든 인물은 꿈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행동은 그에 입각해 나간다.

제르비아에겐 범죄를 말살하겠다는 꿈이, 라이카에겐 대수림을 재건하겠다는 꿈이 있다.

그리고 카인에게도 역시 꿈이 있다.

자신이 태어났던 슬럼을 중심으로, 빈민들이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꿈.

‘하지만 그것들이 이루어지는 건 모두 먼 후의 이야기지.’

모닥불은 계속 타올랐다.

제르비아는 한 차례 감정을 쏟아 낸 뒤론 아무 말도 없었다. 내가 말을 꺼냈다.

“불침번을 서야 할 텐데. 웜의 서식지는 벗어났지만, 야행성 몬스터들이 나타날 수 있다. 2시간씩 교대로 서지.”

“어차피 너를 감시해야 하니 나 혼자 서도 상관없다. 잘 테면 자라. 말리지 않겠다.”

태도가 강경해 설득은 힘들어 보였다.

“굳이 사양하진 않지.”

자세를 조금 편하게 고치고 눈을 감았다.

타닥- 타닥-

밤은 깊어갔다.

잠들지 않기 위해 몸을 풀거나 하는 듯 제르비아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틈틈이 들려왔다.

원래대로라면 스스로 뱉은 말대로 밤을 새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아무리 하루 동안의 연이은 전투로 지쳤다 할지라도.

하지만 지금은 그녀도 별 수 없을 테였다.

사막 전갈과의 전투 중 그녀는 다리에 얕은 찰과상을 입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그렇게 유도했기 때문이었다.

‘사막 전갈은 먹잇감을 재운 뒤 은신처로 끌고 가는 습성이 있지.’

꼬리의 침에선 수면 독이 분비된다. 그리고 제르비아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누적된 피로가 정신력을 흩트리기까지 하니 그녀도 별 수 없다.

오래지 않아,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녀가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만일을 대비해 「수면」 마법을 걸었다.

그녀의 외투를 벗기고, 망토를 풀어내어 내 어깨에 걸쳤다.

도로롱-

“…….”

여전히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그녀를 잠시 내려다보다 치유 마법을 사용해 주었다.

흰 빛무리가 스며들며 몸 곳곳의 작은 상처들이 순식간에 아물어 갔다.

주요 몬스터들의 습성은 나와 같이 모두 학습했다.

이해력이 빠르니, 이제 나 없이 혼자 움직여도 될 테였다.

그리고 나 역시도, 아공간에 있는 무기들을 활용하면 남은 구역을 혼자 돌파할 수 있었다.

“좋은 꿈 꾸기를, 제르비아.”

오두막 전체에 알람 마법을 걸어 두고, 나는 홀로 길을 떠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