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화. 열차 (2)
“내 짐이 사라진 것 같은데 좀 봐 줄 수 있나?”
“예? 짐 말입니까?”
때마침 통로엔 승객이 없었다.
나는 수화물 칸으로 승무원을 유인했다. 그가 어리둥절 짐을 살피는 사이, 등 뒤로 다가가 손날로 목을 내리쳤다.
“가방을 이쪽에 놓으신 게 맞는 …!”
기절한 그에게 「수면」 마법을 걸었다.
깨어 있는 이를 재우는 정도의 효과는 없으나, 무의식 상태의 상대에겐 꽤나 효력을 발휘하는 마법이었다.
‘적어도 저녁까지는 깨어나지 못하겠지.’
유니폼을 벗겨 갈아입었다.
본래의 옷을 가방에 욱여넣은 뒤, 피스톨과 약병을 꺼내 품속에 감췄다.
‘이런 안쪽까지 오는 사람은 없겠지만.’
승무원을 들쳐 메어 수화물 칸 안쪽,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가방과 함께 기대어 놓았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칸 밖으로 나가 수레 손잡이를 잡았다. 여전히 통로엔 아무도 없었다.
슬쩍 음식 쟁반을 열어 보았다.
칠면조 구이나 스테이크 따위의, 고급 음식들이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렸다.
병을 꺼내 약을 뿌렸다.
무색무취.
라이카가 사자의 후각을 지녔다 할지라도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자신할 수 있었다.
쟁반을 닫고, 마지막으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려 외모를 바꾸었다. 심호흡 뒤 수레를 밀고 나갔다.
끼익- 철컹-
열차와 수레바퀴 소리가 맞물려 실내를 울렸다.
“예약자분이 주문하신 식사를 가져 왔습니다.”
목소리 톤을 바꾸어 입을 열었다.
문을 가로막고 있던 승무원은 나를 흘긋 보고는 몸을 비켜 길을 열어 주었다.
똑똑.
노크를 하자 잠시 뒤 문이 열렸다.
“늦었군. 들어 와라.”
호텔의 럭셔리 룸을 연상케 하는 내부.
정장 차림을 한 몇 명의 남자들.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모두 기억에 있는, 라이카의 부하들이었다.
‘라이카는 다음 칸인가.’
문을 연 부하를 따라 수레를 끌고 나갔다.
다시 한번 연결 통로를 지나고, 다음 칸 문 앞에 도착했다.
똑똑.
“라이카 님. 식사가 도착했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 와라.
끼익-
마찬가지로 호화로운 특실이었다.
한가운데, 라이카가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성인 남성의 3배는 될법한 몸집.
목 주위를 두른 회백색 갈기.
삐죽이 튀어나온 송곳니와 발톱.
단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으으….”
방 한구석에서 신음이 들렸다.
부하 하나가 입에서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었다.
‘따귀를 맞았나. 라이카의 심기를 거슬렸나 보군.’
종종 있던 일이었다.
라이카가 괜히 폭군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으니까.
수레를 밀어 테이블 앞에 도착했다. 그 위에 하나하나 쟁반을 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곁눈질로 방의 구조를 머릿속에 입력해 나갔다.
“이자에게 먼저 먹여보도록 하곘습니다.”
“되었다. 잡스러운 수작을 걱정하는 건 겁쟁이들이나 하는 짓이지.”
라이카가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책을 읽는 채였다.
「대륙에 존재했던 숲에 관하여」
테이블 한쪽엔 그 외에도 ‘숲’이나 ‘나무,’ ‘토양’에 관련된 책들이 몇 권 쌓여 있었다.
수백 년 전 악마들의 침공 이후 대륙은 식생이 제대로 자랄 수 없는 황폐한 땅이 되었다.
실제 사실은 다르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진 역사는 그렇다.
그리고 모든 수인(獸人)은 본래 도시가 아닌 숲에 살았다.
숲의 복원.
그것이 라이카의 목표였다.
얼마나 큰 돈이 들든.
실제로 숲을 본 적이 없을지라도.
숲에 대한 향수는 본능 깊숙이 각인되어 있으니.
요리를 모두 테이블에 올렸다.
고개를 꾸벅인 뒤, 수레를 끌고 들어온 문으로 향했다.
“거기 잠깐.”
라이카가 나를 불러 세웠다.
여차하면 피스톨을 꺼내 쏠 준비를 하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팁이다.”
라이카가 손가락으로 동전을 튕겼다. 동전은 정확히 내 앞주머니에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긴장을 풀고 다시 등을 돌렸다.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와 함께 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정 스케줄은 21번 식당 칸 15시입니다. 10분 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다.”
끼익- 탁.
특실 칸들을 연이어 빠져나왔다.
연결 통로의 문을 열어 수레를 열차 밖으로 밀어 없앴다.
그 뒤 수화물 칸으로 돌아와 다시 원래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얼굴 역시, 제르비아가 알아볼 수 있도록 이전의 것으로 바꾸었다.
‘남은 시간은 열차 앞쪽을 둘러봐야겠어. 21번 식당 칸이 어디인지도.’
걸음을 옮기며 나는 음식에 넣었던 약을 떠올렸다.
상대는 세계관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이니 먹는 즉시 약효가 돌진 않을 것이다.
아마 체내에 흡수된 후 1시간 뒤쯤, 마나 사용에 제약을 가하기 시작할 것이다.
섭취자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은밀하고도 서서히.
‘그리고 부하는 어림잡아 10명.’
특실은 총 3칸이었다.
가운데 칸에 라이카가 있었고, 가장 앞칸 인원은 다섯이었다.
맨 뒤 칸에도 같은 인원이 배치되었다 치면 계산은 그랬다.
철컹- 철컹-
중간중간 식당 칸이 나타났지만 21번 칸은 없었다.
계산상, 위치는 열차 중간 조금 앞쪽이었다.
“…….”
원래 칸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려던 때, 나는 내 몸에 달라붙은 눈빛 하나를 느낄 수 있었다.
제르비아.
멀지 않은 위치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후드를 쓰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으나, 그 아래 드러난 눈빛은 분명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선반에 올려진 가방을 보고 내 자리를 알았나 보군.’
크게 개의치 않았다.
선반에서 가방을 내려 어깨에 걸쳤다.
어차피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거래 현장에 제르비아를 유인해 충돌을 유도할 것.
그리고 혼란한 상황 속 기회를 노려 라이카의 목숨을 끊을 것.
열차 앞쪽 다음 칸으로 향했다.
통로 문을 닫으려 할 때, 자리에서 일어나는 제르비아의 모습이 문틈으로 보였다.
‘앞쪽도 그리 의심스러운 승객은 보이지 않는데.’
기관실 바로 앞칸에 닿는 동안, 열차와 각 칸의 구조를 모두 머릿속에 입력해 넣었다.
그리고 걸음을 돌려 다시 열차 중간지점의 21번 식당 칸에 도착했다.
차량 몇 개를 합친 듯 널찍한 공간으로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1층은 창가를 보며 식사할 수 있는 테이블이, 2층엔 일반 테이블 외에도 외부와 차단된 룸이 존재했다.
“미디움 굽기의 스테이크와 양상추 볶음. 술은 필요 없다.”
구석 자리에 앉아 적당히 음식을 시켰다.
어차피 정해져 있는 거래 장소.
자리를 잡고 대기할 생각이었다.
오래지 않아 제르비아가 식당 칸에 뒤따라 들어왔다.
그녀는 내 위치를 파악하더니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교단에서 이번에 무료 배급량을 줄였다던데.”
“뭐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 아니겠나.”
“이번에 황실에서 내건 사업 건은….”
“마탑에서 신입을 뽑는다던 걸요.”
승객들의 대화를 들으며 시간을 죽였다. 대다수는 어느 정도 신분이 있어 보이는 이들이었다.
중간에 한 번 열차는 정차했다.
그리고 예정 시간이 되었을 때, 멀리 맞은편 문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가운데 있는 이는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30대 정도의 남성. 워렉이었다.
무리는 문 앞에 문지기를 한 명 남겨 놓았다.
그리고 식당을 한 차례 둘러본 후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2층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안쪽은 볼 수 없게 되었다.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은 거래품인 약일 확률이 높겠지.’
슬쩍 제르비아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 역시 워렉을 알아본 듯 약간 동요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내 쪽에 위치한 문이 열렸다.
라이카와 부하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으며, 문지기를 남긴 뒤 종업원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제르비아를 보자, 그녀는 통신구를 이용해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청력을 강화해 내용을 얼핏 들었다. 다음 정차역에 지원 병력을 요청하고 있었다.
‘사실 라이카의 움직임이 그리 비밀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외모.
거기에 본인 자체가 은밀함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다.
때문에 경찰에서도 라이카의 행로를 추적하려면 얼마든지 추적할 수 있다.
다만 이제껏 라이카를 잡지 못한 것은, 그를 잡기엔 너무도 큰 인력을 투입하고, 또 그만큼의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
분명 인지는 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검거하려 들지 못하는 인물이 라이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앞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것도 목격자가 정의감 투철한 제르비아 그녀라면.
‘제르비아. 너는 어떤 선택을 할 거지.’
후드 너머 엿보였던 그녀의 혼란스러움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상적인 선택지는 분명 다음 역에서 지원 병력과 합류해 모두를 제압하는 것.
하지만 행동력 강한 그녀의 특성상 방 안의 동태를 살피는 등 먼저 움직임을 취할 가능성이 컸다.
식당 벽시계의 초침이 째깍거리고, 실내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계속해 제르비아를 주시했다.
잔을 들어 커피를 입에 가져다 대는 순간, 나는 천장에 모여드는 마나를 느꼈다.
“……!”
쾅! 콰광!
천장을 뚫고 포탄들이 떨어져 내린 것과 내가 몸을 구른 것은 거의 동시였다.
“꺄아악!”
“여, 여신님 맙소사!”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승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대피했다.
탁. 타닥.
천장에서 밧줄이 내려왔다. 그것을 타고 붉은 해골 가면을 쓴 괴한들이 나타났다.
어림잡아 40명, 아니 50명 그 이상.
일부는 어깨에 바주카를 짊어지고 있었고 나머지는 단검을 들고 있었다.
‘레드 스컬.’
블루 서펜트와 마찬가지로 전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조직 중 하나였다.
조직원 개개인의 무력은 뛰어나지 않으나 그 압도적인 숫자로 승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하는, 지나간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메뚜기 떼 같은 녀석들이었다.
바닥에 몸을 바짝 밀착시킨 채 상황을 주시했다.
단검을 쥔 녀석들이 보호막을 전개하고 있던 각 문의 문지기들에게 달려들었다.
챙! 채쟁!
문지기들은 무기를 꺼내 대응했지만 수에 밀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 위로, 수 개의 단검이 매섭게 날아들어 꽂혔다.
“끄윽!”
“2층이다! 약과 돈의 확보가 우선이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의 지시에 따라 수하들이 우르르 계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테이블 쪽에서 무언가 번쩍이며 튀어 올랐다.
‘제르비아.’
폭발적인 도약이었다.
공중에서 검을 빼 들고.
자세를 바로잡고.
순식간에 모든 동작을 마치고, 우두머리를 향해 검을 내리치며 떨어져 내렸다.
챙!
검과 검이 맞부딪혔다.
“더러운 범죄자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역시 상황 판단이 빨랐다.
범죄자들이 ‘왜’ 이곳에 있는가는 중요치 않았다.
그녀 입장에선, 범죄자들이 이곳에 ‘있다’라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할 터였다.
‘범죄자들을 제압해 열차의 안전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겠지.’
그녀의 후드는 이미 벗겨진 채였다.
우두머리가 쩔쩔매며 뒤로 밀려갔으나 곧 수하들이 달라붙으며 공방은 호각을 이루어갔다.
‘저 녀석들이 제르비아를 상대로 오래 버틸 것 같진 않지만.’
2층으로 시선을 돌렸다.
룸에 있던 인원 역시 밖으로 나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워렉. 원하는 금액이 적다 했더니 이런 함정을 파두었군.”
“아, 아니! 나도 모르는 일이야! 여기에 왜 레드 스컬이… 절대 손을 잡거나 그런 게 아니…!”
라이카가 손톱을 휘두르고, 워렉은 몸이 찢겨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더 이상 미동조차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철컥.
워렉의 부하들이 대응하려 했지만, 그보다는 라이카의 부하들 쪽이 움직임이 더 빨랐다.
워렉의 부하들 이마에 총이 딱 붙어 겨눠졌다.
“쏴라.”
라이카의 지시와 함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이마에 구멍이 뚫린 시체 몇이 바닥에 쓰러졌다.
“너희 둘은 기관실로 가 열차를 멈춰라. 그동안 이곳을 정리하고 있을 테니. 약과 돈을 가지고 돌아간다.”
“예. 알겠습니다.”
부하 둘이 룸으로 들어갔다.
무언가를 받침대로 도약하는 소리와 폭발음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아마 천장을 뚫고 열차 위로 이동하려는 듯 보였다.
“버러지 같은 놈들.”
다른 부하들은 지척에 다다른 레드 스컬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라이카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피우던 시가를 마저 피웠다.
그리고 불이 담배 끝을 태웠을 때, 거친 포효와 함께 전장에 뛰어들었다.
크어엉─!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상황이 아주 재밌게 돌아가는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