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화. 118번 구역 (2)
구역 외곽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폐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는 지부장의 말을 떠올렸다.
「우리 정보원은 마을 곳곳에 퍼져 있거든. 한 시간 전 한 남자가 폐건물로 들어갔어. 옆구리에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소매 안쪽엔 바다뱀 문신이 보였지. 관심 있으면 가봐. 어렵지 않게 흔적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아직까지 살아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야.」
나는 시선을 흘긋 아래로 내렸다.
나부라진 쓰레기들 사이, 말라붙은 핏자국이 한 건물로 점점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짜일 가능성도 간과할 순 없겠지. 위명을 등에 업으려 큰 조직의 문신을 멋대로 새기는 녀석들이 있으니까.’
물론 실제 거대 조직이 활동하는 중간 번호 대에선 그런 녀석들을 찾아볼 수 없다. 발각되는 순간 척살되어 버리니까.
하지만 이곳은 외곽, 높은 번호 대의 구역. 가짜들이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상대가 만약 진짜라면.’
부상, 그리고 이곳이 높은 번호의 구역이란 걸 감안하면 추격자들에게 쫓기고 있는 카인의 부하가 아닐까.
‘그게 가장 가능성 있는 추측이겠지.’
마나 회로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멈춘 뒤 핏자국을 따라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끼익-
곳곳이 헐린 자그마한 크기의 3층 건물.
열린 문으로 발을 내디딘 순간, 나는 약간의 안도와 불안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위층에서 마나 회로가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꺼질 듯 미약한 흐름.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지만, 동시에 회로를 은폐할 정도의 여력조차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안쪽이군.’
깨진 창으로 햇빛이 희미하게 비쳤다. 넓은 홀 공간 끝쪽, 상자 뒤에서 얕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거리를 좁히려던 그때.
탁. 타닥.
아래층에서 거침없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점차 계단으로 가까워져 왔고, 나는 급히 근처의 상자를 디딤대 삼아 환풍구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꼬리를 길게 남기면 우리가 못 찾으래야 못 찾을 수가 없어서 말이지.”
남자 셋이었다.
얼굴 전체를 가린 마스크와 검은 의복.
그들은 더 수색할 것도 없다는 듯 조금 전까지 내가 바라보고 있던 상자 쪽을 향해 외쳤다.
“어서 나와.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는데 피차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기억에 있는 목소리였다.
백수왕 라이카의 부하였다.
단순 무력으론 간부 중 최강.
사자의 외형을 한 수인족.
그리고 카인 축출 계획의 주동자.
‘나머지도 라이카의 부하일 테지. 머리 색과 체격으로 보면 대충 누구인지도 추측되고.’
잠시간의 정적 후, 상자 뒤쪽에서 중년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지 않은 체구에 퀭한 눈.
붉게 물들어 있는 옆구리.
나는 단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막심.
어린 카인이 조직에 처음 발을 디디고 성장해 오는 동안 쭉 옆을 지켰던, 충실한 부하이자 아버지 같은 인물이었다.
“꼴이 말이 아닌데. 조직원들 사이에선 나름 입지적이었던 인물이 지금은 처량히 쫓기는 신세라니.”
“…….”
노골적인 비아냥에도 막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울분에 찬 눈으로 상대들을 쏘아볼 뿐이었다.
“뭐, 어쩔 수 없기는 해. 카인 그 새끼가 조직의 보스를 배신하려 했으니, 부하들도 죗값을 치러야지.”
“카인 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외침과 함께 막심이 기침을 했다.
바닥에 몇 방울 피가 흩뿌려졌다.
그 장면에 라이카의 부하 셋이 껄껄대며 웃었다.
“아직도 배신자를 감싸고 도는 거야? 충성심이 대단하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회유해도 꿈쩍하지 않았겠지만.”
“시간이 없으니 계산을 좀 빨리하지. 우리 사무실, 라이카 님의 금고에서 빼돌린 것 있지? 그걸 내놔. 그럼 적어도 죽을 때 고통스럽진 않게 해 줄 테니까.”
그와 동시에 라이카의 부하들이 회로를 가동했다.
색색의 마나가 기의 형태로 몸을 감싸는 동시에, 그 강렬한 흐름이 이곳까지 여실히 느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막심이 쥐어짜듯 이를 갈며 말했다.
“…너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뭘 모르는 건 그쪽이겠지.”
“카인 님이 배신자라고. 그리고 훔친 물건을 내놓으라고. 그래 돌려주지.”
막심이 품속에서 작은 서류철을 꺼냈다.
“이게 뭔지 아나?”
“훔친 물건이겠지. 대충 기밀문서라고 듣긴 했거든.”
“그래. 아주 충격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지. 알고 싶지 않나?”
“우린 내용에 관심 없어. 배신자를 처단하고 문서를 회수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야.”
막심이 서류철을 펼쳐 읽기 시작하자, 막 걸음을 떼던 라이카의 부하들이 멈칫했다.
카인을 제외한 간부들 간의 회의록이었다.
날짜와 계획 과정, 대화 등, 조작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상세한 내용들이 막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알겠나. 카인 님은 누명을 썼다. 그것도 특히, 너희들이 따르는 라이카가 계획을 주모했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듯 막심이 몸을 비틀거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뭐?”
“그 서류의 내용이 사실이라 해도 뭐가 달라지냐는 거야. 어쨌든 카인은 감방에 갇혀 평생 못 나올 테고, 우리가 따르는 분은 라이카 님인데.”
부하들이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순진하게 카인이 정말 보스 암살 계획을 짰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겉으로 드러난 정황이 너무 명확하고 자연스러우니 수긍할 뿐이지.”
“속으론 다들 알력 다툼이겠거니 점치고 있었지. 뭐 어쨌든 알려지면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부하들이 품에서 나이프를 빼 들었다. 그리고 당황한 막심을 향해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나는 현재 주어진 정보를 취합하고, 취해야 할 적절한 행동을 계산해 냈다.
부하 녀석들의 이름은 페트란, 미라크, 카셀.
마나 회로 1레벨의 유저로 수준은 초급 기사보다 약간 낮은 정도.
‘가장 이상적인 그림은 셋 모두를 제압해 정보를 캐내는 거겠지만.’
단순히 상대를 죽이는 일과 제압하는 일의 난이도는 다르다.
지금 내 수준으로 손속에 사정을 두며 싸우긴 무리였다.
거기에 막심까지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차칵.
서브 머신 건을 꺼내 빠르게 탄창을 갈아 끼웠다.
짧은 심호흡 뒤.
나는 「방호」 마법을 캐스팅함과 동시에 환풍구 아래로 뛰어내렸다.
“누구냐!”
라이카의 부하들이 일제히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내 손에 들린 총을 발견한 순간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일단 잡아!”
녀석들이 뛰어들고,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방호 전개.
좌표는 나 자신과 막심의 주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출력으로.
조정간 단발.
조준점은 녀석들의 발밑 세 곳.
탕! 탕! 탕!
총구가 불을 뿜었다. 착탄과 동시에 마법이 발동하며 폭발이 일어났다.
노후 되어 있던 바닥은 녀석들이 서 있는 위치를 중심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런 미친!”
바닥 잔해와 함께 녀석들이 1층으로 떨어졌다.
층고가 높지 않아 낙하 충격은 크지 않아 보였지만, 순간 자세가 흐트러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구멍 앞으로 다가가 총구를 아래로 향했다.
탕! 탕!
“레드 스컬? 빅 존? 어느 조직 새끼가 지금 겁도 없이!”
푸른 막이 생겨나 녀석들 몸을 밀착하듯 감쌌다. 탄환은 그에 가로막혀 폭발했다.
마법사가 아니라도 마나로 몸을 보호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방호」와는 발현 원리가 달라 효율성이 한참 떨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론 첫 마법이 막힌 순간 승부가 결정 났겠지.’
마법사의 약점은 마법을 사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데에 있다.
호위 없이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게 정설이며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완성된 마법을 탄에 저장해놓는 방식이라면, 지연 시간 없이 마법을 쏟아붓는 일이 가능했다.
적어도 탄환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는.
“이 새끼가!”
나는 일정 간격으로 방아쇠를 당겨 녀석들의 접근을 막았다.
탄피가 떨어질수록 녀석들의 얼굴이 험악해져 갔다.
분노도 분노지만 당황스러울 것이다.
총은 분명 마나 유저 사이에서 비주류 무기일뿐더러, 이런 식의 전투는 겪어 보지 못했을 테니까.
방어막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조정간의 위치를 연발로 바꾸었다.
‘더 상황을 잴 필요는 없겠지.’
타다다다-!
그동안 꾸준히 비축해 온 십 수발의 탄환이 방어막의 한 점으로 박혀 들었다.
거대한 연쇄 폭발과 함께 막이 부서지고, 그 뒤에 있던 녀석들이 폭발에 휘말렸다.
탓!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 인영 하나가 내 쪽을 향해 튀어 올랐다.
화상을 입어 붉게 달아오른 피부.
분노로 희번덕거리는 눈동자.
적갈색 마나에 둘러싸인 나이프가 쇄도해 왔다.
까드득.
주위를 감싸고 있던 「방호」가 단번에 부서져 버렸고, 나는 급히 몸을 틀었다.
어깻죽지가 나이프에 꿰뚫림과 동시에, 나는 백에서 일반 탄환이 든 피스톨을 꺼내 녀석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었다.
탕!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녀석은 그대로 다시 1층으로 추락했다.
먼지가 잦아들고, 그 사이로 다른 녀석들이 보였다. 새카맣게 그을린 채 바닥에 쓰러져 미동조차 없었다.
“…….”
어깨에 꽂힌 나이프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순간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거침없이 빼내어 던졌다.
낙하한 나이프는 시체가 된 녀석 중 하나의 가슴팍에 꽂혀 내렸다.
‘까딱했으면 저기 누워 있는 건 녀석들이 아니라 나였겠지.’
상황이 벌어지고 끝나기까지 채 2분도 지나지 않았다.
기습으로 우위를 점하고, 탄환을 비축해 뒀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신. 누구지? 대체 무슨 목적으로….”
막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동자엔 경계심이 어려 있었다.
여차하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단 결연한 의지도 엿보였다.
몸 상태로 보아선 당장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보였지만.
“일단 적이 아니란 건 확실하지.”
“멈춰! 다가오지 마라! 정체를 우선 밝혀!”
내가 걸음을 떼자 막심은 피스톨을 꺼내 내게 겨눴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오랜만이다, 막심. 막심 크라우드. 내 목소리를 알아보겠나?”
그 순간 막심의 몸이 뻣뻣이 굳어버렸다. 그의 성을 아는 이는 한정적이었다.
“서, 설마. 아, 아니 그럴 리가. 그분은 지금 분명 교도소에….”
나는 얼굴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변용 마법을 해제하고 얼굴을 드러냈다.
“카, 카인 님?”
순간 막심의 몸이 비틀거렸다.
하지만 어떻게든 자세를 바로잡은 뒤 다시 총구를 겨눴다.
“말도…안 돼. 카인 님을 사칭하는 가짜겠지. 뭐 하는 놈인지 정체를 밝혀라…. 그렇지 않으면 당장….”
나는 카인과 막심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일, 당사자들이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일들을 이야기하며 거리를 좁혔다.
막심의 경계심이 점차 누그러들고, 그의 눈동자엔 눈물이 고였다.
“저, 정말… 카인 님이신 겁니까? 대체 어떻게….”
“더 이상 말하지 마. 상태가 더 안 좋아지니까.”
나는 막심을 벽에 등을 기대어 앉힌 뒤 부상을 살폈다.
허리 오른편의 거대한 자상.
쉼 없이 흘러나오는 피.
내부의 중요 장기들이 손상된 듯 보였다.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할 정도였다.
우웅-
내 손에서 나온 새하얀 빛무리가 상처로 흘러들었다.
“시, 신성 마법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사고로 위장해 교도소를 탈옥했다. 난 지금 죽은 사람으로 되어 있지. 말하지 마. 상처가 벌어진다.”
치료의 적기를 놓친 탓일까. 치유마법은 큰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상황이… 이해는… 되지 않습니다만. 카인 님은 언제나… 예상하기 힘든 분이었죠….”
오히려 그동안의 긴장이 풀린 탓인지, 점차 호흡이 가빠지고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져 갔다.
“면목… 없습니다. 카인 님을… 지켰어야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이나마 얼굴을 뵐 수 있으니….”
나는 꿋꿋이 치료에 열중했다.
그 상태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렸을 때 마나는 모두 소진되어 있었다.
“…….”
그리고 막심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주름진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있었다.
“…고생했다.”
나는 막심의 눈을 감겨 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묘한 감정이 일었다.
이 세계에 떨어진 뒤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지 못한 건 아니다.
오히려 주어진 상황에 따라, 악(惡)이라 판단되면 직접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카인이라는 인물의 입장에서, 소중한 이가 죽는 모습을 직접 눈앞에서 보았다.
그것도 목표를.
언젠가 모든 슬럼을 가난과 굶주림에서 해방시키겠다는 목표를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었던 이의 죽음을.
[‘카인 리베르’와 동기화가 진행 중입니다.]
[현 동기화율 - 77.0%]
“…썩 좋은 기분은 아니군.”
나는 입술을 비틀어 물었다.
곧 감정을 가다듬고 1층으로 내려가 마나를 흡수했다.
[회로 레벨: 1]
[마나: 52 / 372]
한 명당 15씩. 총 45의 마나가 상승했다.
녀석들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2층으로 올라왔다.
막심의 품에서 서류철을 꺼내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그 내용을 확인하며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