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화. 118번 구역 (1)
11-A마을을 떠나 바이크를 타고 달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멀리 석양 아래 110번대 구역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앞에 도착해 바이크에서 내렸다.
만일의 가능성에 대비해 마법으로 얼굴을 바꾼 뒤 안쪽으로 진입했다.
‘…열악하군.’
허름한 건물들과 낡은 보도.
하늘을 메운 공장의 매연.
하천을 흐르는 검은 폐수.
내가 글을 쓰며 상상했던 모습이 그대로 눈앞에 재현되어 있었다.
발이 닿는 대로 천천히 걷다 보니 굴다리였다.
안쪽엔 노숙자들이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 중 하나에게 다가가 물었다.
“열차 역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은데.”
고개가 삐거덕 들어 올려졌다.
어떤 의욕도 의지도 찾아볼 수 없는 퀭한 눈초리였다.
“…….”
그는 말없이 자신의 앞에 있는 깡통을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그 안에 동전 하나를 던져 넣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나가서 남쪽. 쭉 가다 보면 빵집 하나가 나와. 지나서 일곱 블록 쯤 계속 내려가면 열차역이 있어.”
“묵을 만한 숙소도 알고 있나?”
다시 침묵.
땡그랑.
동전 하나를 더 던져 넣었다.
“여행자인가? 조심하는 게 좋을 텐데. 여긴 양아치들이 운영하는 곳이 많….”
뎅- 뎅-
종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시체처럼 나부라져 있던 노숙자들이 번개같이 일어나 굴다리 밖으로 뛰쳐나갔다.
천천히 뒤따라나가, 그들이 향하는 곳을 확인했다.
‘…성당이군.’
다리 건너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 앞 공터, 여신상 앞에 빈민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허겁지겁 식판을 나눠 받는 모양새로 보아 식량 배급 차량이 도착한 것 같았다.
─줄 서세요, 줄!
사제의 분주한 목소리가 멀리 들려왔다.
무얼 심어도 자라지 않는 황폐한 토양 때문에, 이 세계엔 기본적으로 식량이 부족하다.
안쪽 구역으로 향할수록 토지의 질이 조금씩 나아진다곤 하나, 크게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다.
‘수도에 황금의 땅이 존재하긴 하지만.’
교단이 관리하는 비옥한 농토.
하지만 그것은 상류층을 위한 것.
외곽 구역의 하층민들에게 배급되는 양은 극히 일부다.
─조금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집에 아이들이 있어서….
─앞에! 빨리 빨리 좀 받고 비켜! 여기 사정없는 사람 있는 줄 알아?
바이크를 끌고 남쪽으로 향하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저들이 배불리 먹을 일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카인이 그랬듯이.
길을 따라 내려가자 노숙자의 말대로 허름한 승강장 하나가 나타났다.
돈이 묻힌 구역은 102번.
내가 현재 있는 구역은 118번.
수도를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정반대 위치였다.
바이크로 이동하기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구역들을 직선으로 가로지르지 않는 이상은.
‘하지만 중산층 거주지 이후로는 구역 간 이동에 신분증이 필요하니.’
당장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으니, 열차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본래 인근 광산의 물자 수송을 위해 운영되었던 열차로 100번대와 110번대 구역을 포함한 외곽을 원 형태로 순환했다.
하지만 자원이 고갈되기 시작한 뒤론 차량을 개조해 여객 기능을 겸하고 있었다.
단점이라면 열차의 대수가 많지 않아 가장 가까운 정차 시간이 이틀 뒤 점심이라는 것 정도.
창구는 한산했다.
애초에 특수한 목적이 없다면 이런 외곽 구역에 방문할 일 자체가 없을 테니.
“성인 한 명. 예, 9천 실링입니다.”
공무원 역시 무기력하긴 마찬가지였다.
표를 챙겨 승강장 밖으로 나왔을 때, 한 무리의 아이들과 마주쳤다.
씻지 못해 때가 진 얼굴.
누덕누덕한 옷가지.
쭈뼛쭈뼛 다가와 내민 손바닥.
‘내가 외지인인 걸 알아보고 구걸을 하는 거겠지.’
무리 지어 생활하는 고아들일 가능성이 컸다.
또다시 과거 카인의 기억이 떠올랐고, 나는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아이들의 손바닥 위에 떨어트렸다.
“……!”
1천 실링.
생각보다 많은 액수에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영원한 구제는 불가능하다.
다만 잠시 배고픔을 잊을 수 있을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터였다.
아이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허겁지겁 뒤돌아 뛰어갔다. 지나치며 보았던 빵집 방향이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 다음 목적지로 향하려 할 때.
부스럭.
근처의 노숙자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시선은 아이들의 뒷모습을 향해 있었고 주머니 끝엔 나이프 손잡이가 튀어나와 있었다.
말없이 다가가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대로 근처 골목으로 잡아끌었다.
녀석이 몸을 버둥거렸지만, 마법으로 강화한 근력을 노숙자 따위가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끅! 끄극!”
벽 쪽에 밀쳐 넣고 목을 움켜쥐었다. 손아귀를 통해 녀석의 에너지가 빨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툭.
생명을 잃은 녀석의 몸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회로 레벨: 1]
[마나: 322 / 327]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었다.
아마 영양 상태가 부실해, 소수점 단위로 상승하지 않았을까.
골목을 빠져나와 빵집 앞으로 향했다.
조금 전 보았던 아이들이 양손에 들린 빵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있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다 자리를 떴다.
따릉-
거리를 돌다 낡은 호텔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시간을 소요해도 특별히 더 나은 곳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체크인을 하려고 하는데.”
“아, 예. 며칠 동안 묵으시려 합니까?”
다소 불량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였다.
그는 포커에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내가 다가가자 대응했다.
“이틀.”
“예. 이틀 밤 묵으시고,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에단.”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이름으로 대답했다.
“예. 하루에 5천 실링. 총 1만 실링입니다. 체크아웃은 이틀 뒤 오후 2시까지 하시면 됩니다.”
돈을 꺼내 값을 치렀다.
그 과정에서, 종업원의 시선이 돈주머니에 필요 이상 오래 닿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 키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 방으로 향했다.
간단히 짐을 풀고 마나를 확인했다.
[회로 레벨 : 1]
[마나: 327 / 327]
탄창을 꺼내 마탄 하나를 제작했다.
유물 덕에 마나 회복 속도가 올라 탄을 비축하기가 한결 수월해진 상태였다.
피스톨 두 정과 탄창 몇 개를 외투 안에 챙겨 호텔 밖으로 나갔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술집들의 간판을 살폈다.
단순히 술을 마실 목적은 아니었다.
대륙 전체에 뿌리내린 정보 집단, ‘크로우’의 지부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발품을 판지 얼마나 되었을까, 글씨 한 획이 미묘하게 깃털 모양을 하고 있는 간판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내부는 허름하고 어둑했다.
위치가 후미진 탓인지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바에 앉자 잔을 닦고 있던 바텐더가 메뉴판을 내밀었다.
쓱 훑어보다 대답했다.
“검은 새의 울음을 주문하지.”
메뉴에는 없는 술이었다.
“저희가 팔지 않는 술이군요.”
“분명 이 가게에서 마실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왔는데.”
바텐더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한참 시선이 마주치고, 그가 등을 돌려 진열장을 옆으로 밀었다.
끼기긱-
드러난 벽엔 통로가 드러나 있었다.
“복도 끝에서 두 번째 방입니다.”
망설임 없이 바를 넘어 통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바텐더가 말한 위치의 방문을 열자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맞이했다.
“이런 외딴곳의 지부를 찾다니, 정말 오랜만의 손님인데.”
남자는 자신을 118번 구역의 지부장이라 밝혔다.
책상 위엔 잡다한 서류와 함께 다른 지부, 혹은 본부와 연락을 주고받기 위한 통신용 구슬이 보였다.
이 세계의 과학은 분야에 따라 발전도가 천차만별이었고, 마법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래 무슨 정보가 필요해서 온 거야?”
“찾고 싶은 사람이 있다.”
“여긴 흥신소가 아니라 정보를 파는 곳인데.”
나는 주머니를 꺼내 사냥개들에게서 빼앗았던 패물들을 책상 위에 쏟았다.
좌르륵.
“…뭐 찾으려면 못 찾는 건 또 아니지.”
지부장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패물 더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였다.
‘의뢰금의 일부는 지부장이 수수료로 먹는 걸로 되어 있었지.’
추산금액은 150만 실링가량.
의뢰의 난이도와 정보의 시세를 감안하면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전 대륙에 퍼트려 놓은 정보망을 고려하면 사람 하나 찾는 것쯤 간단한 일일 테니까.
“그래. 누굴 찾고 싶은 거야? 아주 사소한 특징이라도 좋아. 말만 해 보라고.”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말을 이었다.
“…라크센, 18세. 수도 남동부 몰센 타운에 거주. 프라르텐 남작가의 사용인으로 일하고 있으며 금발에 금안, 키는 178센티미터.”
지부장이 당황한 얼굴을 했다.
“뭐야. 거주지까지 이미 완벽하게 알고 있잖아? 우리한테 의뢰할 필요가 있는 거야?”
완벽히 알고 있을 수밖에.
내 소설의 본래 주인공이니까.
향후 이 세계엔 그를 중심으로 ‘혁명’이나 ‘변혁’이라 부를만한 거대 사건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나로 인해 이야기가 어그러졌을 가능성이 있다.’
카인은 본래 주인공의 조력자가 되어야 했을 인물.
그런 인물이, 주인공이 이용해야 할 정보를 가로채고, 또 지정된 자리에서 벗어나기까지 했다.
거대한 흐름이 바뀌진 않을지라도, 내 행동이 이야기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저택을 방문한 마탑 장로의 눈에 띄어 제자로 들어가는 시점.’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는지.
또 내 행동으로 인해 흐름을 벗어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단어를 조금 수정하지. ‘찾기’가 아니라 ‘확인’ 정도로. 남작의 저택에서 일을 하는지, 용모는 말한 것과 일치하는지, 이름은 라크센이 맞는지.”
“…괴이한 의뢰인데. 어려운 일은 아니야. 수도에 있는 단원을 움직이면 되는 일이니까.”
지부장이 패물로 손을 뻗었다.
“이틀 뒤에 와. 이곳이 아니라 다른 지부를 찾아도 좋아. 정보망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 뭐 하는 거야?”
내가 패물을 끌어당기자 지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건을 아직 다 말하지 않았다.”
“어쩐지 원하는 정보에 비해 거는 돈이 크더라니. 뭐가 또 궁금한데?”
“최근 블루서펜트의 동향.”
지부장이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꼈다.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경찰로 보이진 않는데. 적대 조직인가?”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그는 말을 이었다.
“뭐,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지. 우리야 돈만 받으면 되니. 특별히 원하는 분야가 있나? 그냥 블루서펜트라 하면 너무 광범위해서 말이야.”
“간부 카인.”
지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방을 비웠다. 그리고 몇 분 뒤 서류를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앞서 건 조건에서 비용을 제하고 남는 금액으론 정보를 많이 살 수 없다는 걸 알아 두라고.”
“알고 있다. 그 서류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그때 더 지불하지.”
“일단 그쪽은 카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두 달 전 경찰에 붙잡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는 것 정도.”
“그래 뭐. 교도소에 붙잡혀 간 것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이쪽 세계에선 워낙 큰 사건이었으니까.”
지부장이 서류를 뒤적거리며 건성으로 말했다.
“여기 있군. 항목 A-13, 카인의 수감 직후 조직 내 동향. 가장 두드러진 변화로, 카인이 관리하던 구역을 두고 간부들 간의 신경전이 격화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같은 조직이라곤 해도 세력과 구역은 나뉘어 있으니까.
그들이 손을 잡은 건 가장 눈에 거슬리는 카인을 축출하기 위함이었을 뿐이었다.
“항목 A-14. 카인의 관리구역. 어디인지 궁금해? 각 간부의 세력이 섞여 아직까지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고 하더라고.”
“아니. 그건 필요 없다. 그보다 카인의 부하들은 어떻게 됐지?”
지부장의 손가락이 서류를 쭉 훑어 내렸다.
“여기 있네. 지금 낸 돈으론 이걸 듣는 걸로 끝이야. 급이 높은 정보거든.”
“듣겠다.”
“…A-31. 카인의 체포 직후 그의 부하들에게도 척살령이 내려졌어. 카인이 조직의 보스를 배신하려 했다. 일단 표면상의 이유는 그래.”
“부하들은 모두 도망쳤겠군.”
“목격담에 의하면 맞서 싸운 녀석들도 있지만, 도주한 녀석들도 적지 않겠지. 추격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우리 길드에 걸려든 정보들이 좀 있거든. 어때 추가금을 내고 듣고 싶지 않아?”
“…되었다. 여기까지 듣지.”
카인과 부하들에 대한 정보.
내 추측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으니, 더 들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파악해야 할 정보는 그것뿐이 아니니.’
돈을 굳이 아끼진 않지만,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쓰는 낭비를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
“그래 그럼 요금 정산을 좀 하자고.”
나는 패물에서 절반을 떼어 책상 위로 밀었다.
“라크센에 관한 정보는 주에 1번 총 한 달에 걸쳐 전달받지. 나머지는 나눠서 지불하겠다.”
내가 내건 금액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만한 조건이었다.
‘일시불로 지불했다간 나중에 정보를 두고 장난질을 당할 가능성도 있으니.’
“한 달 동안 대상을 감시해 달라는 얘긴데, 그러면 이걸론 단가가 안 맞지. 그리고 우린 선수금 따위의 개념이 없다고. 어딜 가든 일시불이 원칙이야.”
지부장이 으르렁거렸다.
“아니. 정보의 시세는 이게 맞다. 그리고 지부장 재량에 따라 계약 방식은 변경할 수 있지.”
“뭐야, 그쪽이 그걸 어떻게 알아. 정보를 사러 좀 많이 다녀보셨나? 알면 얘기가 빠르겠네. 어디까지나 ‘재량’이고 난 룰을 바꿀 생각이 없어.”
때때로 이런 녀석들이 있었다.
상대를 얕보고 의뢰의 단가를 후려치려는 녀석들.
“정보를 사고파는 이가 시세조차 제대로 모른다니 실망인데.”
“시세를 모르는 건 그쪽이지 샌님. 말한 조건대로라면 50만 실링은 더 받아야 하거든.”
서로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공기가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이거 말로 해선 안 되겠는데─.”
지부장이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날려 왔다. 그의 몸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마나 유저.’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도 빠른 속도였다.
쉬익-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몸을 튼다.
주먹이 목 옆을 스치며 아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신경 쓰지 않고, 지부장의 이마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파지직.
손바닥에 피어난 푸른 전류가, 당장이라도 먹잇감을 집어삼킬 듯 넘실거렸다.
“……!”
아마 지부장도 유효타를 날릴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위협적인 상황을 연출만 할 의도였겠지.
“마, 마법사였나. 진즉 얘기했으면 내가 이런 식으론 대접 안 했지.”
“움직이면 그대로 감전당할 거다.”
“아, 알았어. 그쪽이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그 마법부터….”
그 순간, 목에 붙어 있던 패드 윗부분이 슬쩍 떨어졌다.
접착 후 시간이 지난 데다 조금 전 주먹에 스친 탓인 듯했다.
“뭐야. 그 바다뱀 문신… 아하, 상황이 이렇게 그렇게….”
파직-!
전류가 강해졌다.
“거, 걱정하지 말라고. 소문 같은 건 낼 생각 없으니까. 나도 마법사한테 찍히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마법사는 마나를 다루는 직군 중에서도 특별하다.
단순히 신체를 강화하거나 무구에 기를 덧씌우는 것을 넘어, 기적에 가까운 현상을 일으키는 이들이 마법사니까.
“그, 그쪽도 카인의 부하였던 거지? 지금 쫓기고 있는 상황이고. 흩어진 동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던 거고.”
내 침묵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지부장은 그 뒤로도 멋대로 말을 뱉어댔다.
“…….”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만약 나에 대한 정보가 이 녀석을 통해 다른 누군가에게 넘어간다면.
‘뭐 상관은 없나. 어차피 마법으로 얼굴을 바꾼 상태이니.’
정보가 어떤 식으로 퍼지든 내가 카인이라 유추하긴 쉽지 않다.
나는 분명 아직까지 감옥에 ‘수감’된 죄수이니까.
‘아니, 오히려 추적을 역이용한다면….’
생각 하나가 머리를 퍼뜩 스쳤다.
처리할 업무가 많을 테니 간부들이 직접 추적에 참여하고 있을 가능성은 낮다.
기껏해야 위에서 지시를 내리거나 보고를 받는 정도일 터.
‘추적자들이 말단 조직원, 혹은 행동대장 급이라 가정하면.’
주의만 기울인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역으로 제압 가능하다.
조직원 대다수의 프로필과 전투패턴을 내가 알고 있으니까.
나는 지부장을 흘긋 바라보다 입을 뗐다.
“네가 어디서 어떻게 떠들고 다니든 관심 없다. 단, 정보는 4주가 아니라 8주에 걸쳐 나눠 받기로 하지. 후불금도 없는 걸로.”
지부장이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 그건 진짜 시세에 안 맞는데. 나, 나도 장사를 하는 입장이라 반 토막 난 금액엔 맞춰주기 힘들어. 대신 정보를 하나 더 받는 건 어때? 정말 그쪽이 흥미 있을 만한 정보거든.”
“…흥미라고. 듣고 재미없다면 정말 재미가 없어질 텐데.”
“일단 들어봐. 가치 없는 정보라 생각되면 날 죽여도 돼.”
새파란 전류가 눈앞에 넘실거리는 상황에서도 저리 꿋꿋하다니, 정말 가공할만한 직업정신이었다.
“말해 봐.”
“일단 이 마법부터 치워 주면 안 될까. 정말 숨 막혀 죽을 것 같거든.”
마법을 해제하자 지부장은 숨을 고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 구역에 당신 말고 다른 블루서펜트가 들어왔어. 불과 몇 시간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