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24화 (24/227)

#024화. 사냥개 (3)

‘점멸인가.’

짧은 거리를 넘나드는 공간 도약 계열의 마법.

극악의 마나 소모와 제한된 도약 폭으로 회로 레벨 3은 되어야 제대로 운용 가능한 마법이었다.

허나 녀석의 본신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레벨 2를 갓 넘긴 정도.

‘그렇다는 건.’

“뭐하는 놈이냐. 경찰 같아 보이진 않는데.”

말없이 녀석의 양손을 응시했다.

치렁치렁한 반지와 팔찌.

그중 여럿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증폭 도구가 하나둘이 아니군.’

그리고 왼쪽 손목의 것은, 내가 설정했던 ‘결계용 팔찌’와 외형이 일치했다.

“대답이 없군. 보통 놈은 아닌 것 같은데, 잡아 놓고 불로 지지면 입을 열겠지.”

“…….”

나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팔찌의 출처를 지금 묻기보단, 일단 제압 후 정보를 캐내는 것이 나을 터였다.

그때, 내 뒤편 계단에서 사냥개들이 올라왔다.

“두목님. 지금 침입자가… 그 놈! 그 놈입니다!”

쐐액-

내가 잠시 고개를 돌린 틈을 타 불덩이가 쇄도했다.

나는 다시 몸을 날렸고, 불덩이는 뒤쪽의 사냥개들에게 명중해 폭발했다.

“끄아악!”

“부, 불! 몸에 불이!”

사냥개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다 바닥에 쓰러졌다.

“부하들을 죽여 놓고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군.”

“쓸모도 없는 것들이라 말이지. 어차피 이곳도 곧 떠나려고 했었고.”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던 녀석이, 돌연 정색하며 마법을 난사해 왔다.

펑! 펑! 펑!

‘…방금 분명 마나의 색이.’

내가 뛰는 경로를 따라 연이어 폭발이 일어났다.

캐스팅 속도가 꽤 빠른 걸로 보아 전투에 익숙한 듯 보였다.

티디딩!

몸을 날리는 동시에 녀석에게 총을 난사했지만, 탄환은 모두 검푸른 막에 튕겨나갔다.

“멍청한 놈! 그깟 총 따위로 날 어쩔 수 있을 줄 알고!”

녀석을 중심으로, 계속해 원을 그리며 회피했다.

딸깍.

입으로 안전핀을 뽑아 수류탄을 던졌다.

굉음과 함께 보호막에 균열이 생겼지만 이내 원상태로 수복되었다.

“그런 도구 없이는 마법을 쓸 자신이 없는 건가?”

“호오. 마법이란 개념을 알고 있다고? 완전 무지렁이는 아닌가 본데.”

우웅-

더 많은 장신구에 빛이 들어오고, 녀석의 마법 난사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실내는 순식간에 폐허와 같이 변해갔다.

‘멋모르고 유물의 힘을 남용하는 걸 보면 잔챙이는 분명한데.’

증폭 계열 유물의 기본 원리는 촉매와 같다.

운용 가능한 마나의 양이나 마법의 위력을 증가시켜주지만, 그릇이 되는 건 어디까지나 사용자의 몸.

저런 식으로 과다하게, 단시간 내에 힘을 끌어 쓴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자명하다.

“쥐새끼 같은 놈. 일단 발부터 묶어 주지.”

내 발치에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이건 위험하다.’

순식간에 마법을 읽어낸다.

모여드는 원소들의 종류.

구성비와 결합 순서.

‘투박하다. 시전 속도만 빠를 뿐.’

폭탄을 해체하듯, 마법을 이루는 원소들을 역순으로 분해해 대기 중으로 돌려 나간다.

마나의 흐름에 개입해 마법을 무효화하는 고차원 기술, ‘마력 간섭’이었다.

“지, 지금 무슨!”

녀석의 당황스런 외침이 들려왔다.

제약 조건이 여럿 달려 남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원소를 다루는 능력에 있어 상대와 현격한 실력 차가 존재해야 하며, 이쪽에서도 일정량 마나가 소진되어버리니까.

“마탑에서 보낸 놈이었나! 여기까지 추적해 오다니 끈질긴 자식들!”

녀석의 태도가 일변했다.

‘마탑이라고.’

순간 떠오른 의문은 이어진 상황을 보고 해소가 되었다.

구우우-

녀석의 손에서 검은 기운이 일렁여 나왔다.

기운에 닿은 사냥개들의 시체가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흑마법사였군 그래.”

“이미 다 알고 왔으면서 무슨 헛소리를!”

외부에 발현되는 마나의 색을 결정하는 요인은 두 가지다.

마법과 기술에 사용되는 원소.

개개인 회로의 원소 구성비.

「화염 폭발」시전 시 발현되는 마나는 화(火)계 원소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아 붉은색을 띈다.

거기에 회로 구성비에 따라 개인마다 다른 색이 섞여 들어가는 식이다.

하지만 흑마법사는 다르다.

흑색. 어떤 마법을 사용하든, 그것 외에 다른 색은 없다.

‘…타인의 마나를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축적하니 그럴 수밖에.’

다른 이의 마나를 받아들인다.

여러 종의 원소가 끊임없이 섞여들고, 마나는 점차 혼탁해져 끝엔 완전한 검은색을 띠게 된다.

‘그리고 대다수는 금지된 마법을 쓰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지.’

그들이 흑마법사라 불리는 이유이자, 교단과 마탑의 척살 대상이 된 이유였다.

두두두─!

나는 달려드는 시체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며 위층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방 하나에 숨어들어 바깥소리에 주의를 기울였다.

“숨어 봤자 소용없다! 이 건물 주위로 결계를 둘렀으니까!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해!”

밖에서 녀석의 잔뜩 분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느껴지는 마력이 조금 전보다 더 커져 있었다.

‘유물의 힘에 취했군.’

흑마법에 빠지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힘을 숭상하고 마력 축적에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그 개개인의 마법적 지식이 넓다는 보장은 없다.

이대로 시간만 끈다면, 녀석은 몸에 과부하가 걸려 스스로 쓰러질 것이다.

‘그때까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다면 말이지.’

생각과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분명 지상으로 떨어져 죽었던, 방패병이었다. 건물 벽을 기어 올라오거나 한 것으로 보였다.

그으으─

“또 보는군.”

자리에서 슬쩍 일어났다.

녀석이 달려듦과 동시에 총구가 불을 뿜는다.

팅- 티딩-

강화 마법이 걸렸는지 녀석의 맨살이 총알을 튕겨냈다.

딸깍.

탄이 모두 소진되었다.

총 자체를 버리고, 가방에서 새로운 총을 꺼내 난사했다.

그리고 탄이 다시 소진된 타이밍.

쿵!

녀석이 몸을 날리고, 나 역시 몸을 날렸다.

벽에 처박힌 녀석을 뒤로 하고 나는 복도로 뛰었다.

“거기냐!”

머릿속에 지도를 켜고, 불덩이를 피하며 계속해 달렸다.

내가 찾는 곳은 하나였다.

우두머리의 방.

모아 놓은 유물이 한둘이 아닌지 어느 한 지점에서 무수히 많은 마력의 파장이 느껴지고 있었다.

‘저기다.’

등 뒤에 사냥개들을 주렁주렁 단 채 방 하나 앞에 도착했다.

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문 자체에 강화 마법을 걸었다.

쿵! 쿵! 쿵!

서둘러 방안을 살폈다.

주인의 물욕을 보여 주듯, 유물들은 액자에 걸려 전시되어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며 총을 쏘았다.

쨍그랑!

바닥에 우수수 떨어진 유물들을 주워들었다.

‘해독되지 않은 것들뿐이군. 해독하기엔 실력이 부족해 보관만 해둔 거겠지.’

쿵! 쿵! 쿵!

유물에 쌓인 마기를 분석하고, 순식간에 해독을 마친다.

‘이 팔찌는… 아니야. 지금 상황에선 쓸모가 없어. 이 반지는….’

문밖에 방대한 마력이 모여들고 있었다. 가면이 도착한 듯했다.

‘이거다.’

보석이 달린 목걸이 하나를 손에 쥐었다.

일회성 유물이었다.

일시적으로 최대치를 넘겨 마나를 회복시켜주는.

현재 내 회로 레벨이 낮은 만큼 몸이 상할 게 분명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우웅.

목걸이가 빛을 발했다.

그와 동시에 문이 부서지고, 거대한 화염 줄기가 나를 향해 쇄도해 왔다.

화륵.

바로 눈앞에 다다른 순간.

화염은 사라졌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이미 구현된 마법을 간섭으로 없앴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나는「중력장」을 시전했다.

쿠구궁.

굉음과 함께 건물 전체가 진동했다.

내 손가락 박자에 맞춰, 녀석의 보호막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쿨럭!”

이내 녀석이 무릎 꿇으며 각혈했다.

사냥개들은 모두 바닥에 바짝 붙어 일어나지 못했으며 갑주와 투구가 우둑우둑 구겨져가고 있었다.

‘카인이 어릴 때부터 제대로 마법을 배웠다면 지금 이 정도 수준엔 올랐겠지.’

천천히 다가가자, 녀석의 눈에 공포와 두려움이 어렸다. 힘의 격차를 확연히 느낀 탓이었다.

‘어질어질한데.’

속이 메스껍고 숨이 가빠왔다.

목구멍에서 피 맛이 올라왔다.

더 이상 규모가 큰 마법을 쓰는 건 무리였다.

철컥.

대신 나는 피스톨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남은 마탄을 하나하나 발사해 녀석의 보호막을 완전히 깨트려갔다.

* * *

녀석의 방 한 구석에 있던 담배를 들고 잠시 고민했다.

“…….”

카인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나는 아니다.

‘교도소 안에서는 긴장이 풀리는 걸 막기 위해 일부러 피우지 않았지만.’

지금 한 대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나는 담배에 불을 붙여 피웠다.

후우-

온몸의 긴장과 피로가 한순간 쭉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연기를 피워 올리며 방을 둘러보았다. 가면을 포함해서, 나 외에 살아있는 이는 없었다.

혹시나 해서 가면을 벗겨 보았지만 그냥 잡배에 불과했다.

안쪽 구역에서 인체 실험을 하다 이곳까지 떠밀려온 잡배.

「저, 전, 그냥 유물에 관한 풍문을 떠올리고 찾아가 봤을 뿐입니다.」

자신이 도착했을 땐 누군가 이미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하, 한 명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들을 급히 챙기느라 나머지 유물들을 챙기지 못한 모양새였습니다.」

거짓말은 아닐 터였다.

석상 형태의 파수꾼이 있어 녀석 혼자는 유적에 진입이 불가능하다.

또, 실제 해당 유적엔 이 방에 있는 것보다 뛰어난 성능의 유물들이 존재했었다.

‘한 명이 아닌 것 같았다라.’

이야기의 흐름은 확실히 어그러졌다. 다만 이번 것은 나에 의한 것이 아닐 수 있었다.

나 외에 유적의 공략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백진우.’

아직 세상에 발표하지 않은 내 글을 온전히 다 읽은 건 그 녀석밖에 없다.

내가 진정 친구라고 생각했던, 설마 내 첫 작품의 성공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녀석.

그리고 집필 중인 차기작을 빼앗으려 절벽까지 나를 몰아세웠던 녀석.

‘만약 녀석도 이 세계에 들어왔다면.’

흥분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정말 그렇다면, 녀석에게 복수하는 것이 과업과 더불어 내 최우선 목표가 될 테였으니까.

‘나처럼 빙의 했을 가능성이 크겠지.’

주연 혹은 조연.

짚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내가 안쪽 구역으로 향하며 하나둘 마주치게 될 인물들.

생각을 계속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호탄은 옥상에서 쏘아둔 상태였다.

마을 사람들이 오기 전, 챙길 것들을 챙겨놓을 생각이었다.

‘일단 유물은.’

가면이 사용하던 것들은 모두 마력을 소진하고 골동품이 된 상태였다.

액자에 걸려있던 것들 역시, 지금 내가 사용하기엔 몸에 무리가 가는 것들뿐이었다.

‘아까 같은 짓을 또 했다간 회로가 망가지겠지.’

내가 쓸 수 있다고 판단 내린 건 은색 반지 하나였다.

대기의 원소를 끌어당겨, 마나의 회복속도를 1.5배가량 늘려 주는 물건이었다.

나머지 유물들을 가방에 쓸어 넣은 뒤 방 한쪽 책상 앞에 다가섰다.

검은 보석 하나가 서랍에 담겨 있었다.

흑영석.

타인의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회로의 성질을 뒤틀어 주는 보석이었다.

“…….”

잠시 고민에 빠졌다.

홀로 사냥개들을 상대한 것은 나 자신의 전투력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의 의미도 있었다.

‘간부들을 상대하기엔 한참 부족하다. 또 이 정도 성장 속도로는.’

사냥개들을 상대로 이 정도로 고전할 줄이야.

아무리 마법사가 끼어 있었다곤 하지만.

마법에 대한 지식은 차고 넘치나 마나가 부족했다.

소프트웨어는 비할 데 없으나 하드웨어가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흑마법사의 방식으로 마나를 쌓는다면.’

성장 속도에 가속이 붙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배 이상은.

고민은 길지 않았다.

복수를 위해서. 어차피 이 세상엔 죽어 마땅한 놈들이 차고 넘치니.

까득.

손에 쥔 흑영석에 균열이 생겨났다.

검은빛이 한순간 내 몸을 감쌌다가 사라졌다.

‘조금 이질적인 느낌이군.’

나부라져 있는 우두머리를 향해 손을 뻗자 검은색 마나가 빨려 들어왔다.

쉬익-!

[회로 레벨 : 1]

[마나: 25 / 315]

10의 마나가 늘어났다.

층을 돌며,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거나, 혹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녀석들에게서도 마나를 흡수했다.

일반인이더라도 체내에 미량의 마나는 흘렀다.

[회로 레벨: 1]

[마나: 40 / 327]

총 12명.

1명 당 1씩.

우두머리와 합치면 총 22의 마나가 늘었다.

하루 꼬박 수련에 투자해 5의 마나를 늘린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증가폭이었다.

‘당장 쓸 수 있는 마나도 늘어나니 나쁘지 않군.’

기본 회복에 더해 25의 마나가 차 있었다.

그렇게 작업에 열중하고 있을 때 건물 밖에서 차량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 * *

“아빠─!”

“우리, 우리 딸. 아빠가 미안하다, 미안해.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마.”

바깥엔 주민들이 짐차 몇 대를 끌고 도착해 있었다.

아이들이 각자의 부모를 향해 달려나가고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대체 이 은혜를 어떻게….”

주민 몇몇이 내게 다가와 연신 허리를 숙여댔다.

“…짐이나 옮기지.”

내 지시에 따라 주민들은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처음엔 사냥개들의 시체에 기겁을 했다가도, 적응이 되자 분에 찼는지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건물 위층부터 돌며 무기와 식량, 재물들을 모두 지상으로 내렸다.

“이, 이것들은 모두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쌓인 물건의 수가 적지 않았다.

식량은 적어도 몇 달 치에, 화폐 와 패물 역시 양이 만만치 않았다.

“이제까지 상납한 돈이 얼마지.”

“아, 예. 계산하면 2000만 실링가량….”

물가를 감안하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주민들의 눈빛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혹시 자신들의 돈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

‘심리는 이해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000만 실링.

지금 당장 내게는 큰 의미가 없는 금액이었다.

부피가 상당해 들고 다닐 수 없었으며, 후에 또 큰돈을 벌 기회가 적지 않았다.

‘어차피 당장 필요한 만큼의 돈은 챙겨 놓았으니.’

내 손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나는 불을 일으켜 지폐 더미에 붙여 버렸다.

“지,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지켜 보고 있어 달려들어 진화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당신들은.”

나는 총기들을 띄워 주민들 앞에 흩뿌렸다.

“이 무기들을 산 거다. 다만 늦은 감이 있으니 조금 비싼 값을 치러야겠지.”

주민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불은 그 순간에도 돈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노인장. 당신이 이 사람들 훈련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가, 가능은 하네. 전문적이진 않지만.”

수리공 노인이 얼떨떨해하며 대답했다.

“근처 다른 마을에도 무기를 뿌려 무장시키는 게 좋을 겁니다. 다른 구역의 사냥개들이 넘어올 테니까요.”

“그, 그러지.”

주민들이 자신의 발밑과 불길을 번갈아 쳐다보다 하나둘 총기를 들어올렸다.

어색한 몸짓이었지만, 분명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보다는 나아보이는 모습이었다.

* * *

카인이 떠난 지 며칠 뒤, 한 여성이 11-A 마을에 도착했다.

진청색 생머리와 허리에 찬 장검.

검은색의 바이크 용 슈트.

제르비아였다.

그녀는 새 교도소장이 도착하자마자 직책을 사임하고 카인 추적에 나선 상태였다.

‘보란 듯이 흔적을 남겨 놨었지.’

교도소 근처 해안가부터 수색을 시작했다.

어렵지 않게 발자국을 발견했고, 그 끝 고철 더미에 걸린 죄수복도 찾을 수 있었다.

아드득.

그녀가 이를 갈았다.

상대는 분명 자신을 얕보고 있었다. 그 사실이 몹시 분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뒤로 바퀴 자국을 쫓아 달렸다.

흔적이 지워지거나 중간에 엉키는 경우도 있었지만, 온갖 추적 기술을 익힌 그녀에게 그 빈틈을 메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걸리는 점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냥개들이 보이지 않았어.’

바이크엔 경찰표식이 새겨져 있다.

녀석들이 먼저 피해간다 쳐도, 이상할 정도로 보이지 않았다.

‘마주쳐도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진 않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카인의 추적이 우선이었다.

게다가 사냥개 소탕엔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잡아도 그 자리에 벌레처럼 증식하는 것이 사냥개였다.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자신이 정점에 올라 사법 시스템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고.

‘카인 같은 거물들이 넘쳐나고, 또 그런 녀석들을 잡아야 내가 더 빨리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그렇게 되뇌었다.

작은 범죄들을 못 본 척하는 게 아니라고. 단지 우선순위를 두는 것뿐이라고.

그녀는 마을 안쪽으로 진입했다.

‘감시탑이라고. 황야에서 저런 걸 세워 놓은 마을은 본 적이 없는데.’

안타깝지만 탄광촌은 대개 사냥개들에게 수탈당하고 감시당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곳엔 보초가 있는 데다 나름 절도 있는 자세로 총기까지 쥐고 있었다.

“잠깐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보급 차량 앞에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바이크의 경찰표식에 다닥다닥 꽂혔다.

불신과 경계심 서린, 기이한 눈초리였다.

“뭡니까?”

주민 하나가 툴툴대며 대답했다.

“이 사진 속의 남자가 이곳에 다녀갔는지 알고 싶습니다.”

사진을 쳐다보던 주민의 눈동자가 점차 커졌다.

“마, 마법사님!”

그 외침에 근처의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맞네! 마법사님이네!”

“이 얼굴을 어떻게 잊어. 우릴 구해 주신 분인데.”

저들끼리 분주한 대화가 이어졌다.

“잠시만요. 마법사… 그리고 여러분을 구했다고 하셨습니까?”

“그럼. 대단한 분이셨지.”

자세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상황을 온전히 파악한 순간, 그녀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카인이 주민들을 도왔다고. 대체 왜?’

가슴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마법을 쓴다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

허공에 쓰인 글씨를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예상했었으니까.

하지만 카인이 아이들을 구했다니.

그것도 순수한 선의로.

카인이 다른 조직원이나 범죄자들을 상대로 손속에 가차를 두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뚜렷한 목적이 있을 때에 한해서였다.

‘이번엔 대체 무슨 목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행동 동기를 찾아낼 수 없었다.

“돈은 모두 태워 버리고 무기와 식량을 주민들에게 넘기고 갔다고 하셨죠.”

“아, 왜 똑같은 걸 자꾸 물어봐?”

그녀는 순간 혼란에 빠졌다.

만약 카인이 정말 선의로 주민들을 도왔다면.

확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신은 황야 초입의 사냥개들을 무시하며 지나쳐 오지 않았던가.

‘아냐. 그럴 리 없지.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야. 속을 알 수 없는 놈이니까.’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그리고 다시 바이크에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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