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화. 황야 (2)
─바퀴 자국으로 봐선 한 놈이야.
─쉿, 지금부턴 조용히.
고철 더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벌써 추적이 붙은 건가.’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빠른 시간이었다.
나는 품에서 피스톨 두 자루를 꺼내 양손에 쥔 뒤 고철 더미에 몸을 밀착시켰다.
─두목처럼 이상한 힘을 쓰는 건 아닐까. 혼자 그 난장판을 벌여 놓은 거면.
─…가능성은 있지. 가끔 여행자 중에 무지막지하게 센 놈들이 있으니까.
─그래도 우리 두목보다 세려고.
녀석들이 작게 속삭였다.
회로를 구축하고 청력이 강화된 덕에, 마법을 쓰지 않아도 저 정도의 소리는 선명히 들을 수 있었다.
‘말소리로 보아 두 녀석.’
─잠깐.
살금살금 가까워져 오던 녀석들의 발소리가 우뚝 멈춰 섰다.
멀지 않은 거리에, 내 바이크가 노출되어 있었다.
저벅. 저벅.
녀석들이 다시 움직인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조심스러워진 동작으로.
고철 더미를 지나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그 타이밍.
나는 바람을 일으켜 반대편의 더미에 있는 깡통 하나를 떨어트렸다.
땡강!
“……!”
녀석들의 총구와 시선이 깡통에 쏠린다.
내게 등을 보인 자세가 되고, 다시 발목 부근에 바람을 일으켜 앞으로 고꾸라트린다.
“끅!”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투구 밑에 드러난 녀석들의 목덜미에 총구를 바짝 붙였다.
녀석들의 팔에도 마찬가지로, 전갈 문신이 있었다.
“고개 들 생각하지 마라. 수작 부리는 머리가 날아갈 테니까.”
“예, 예, 아, 알겠습니다.”
“사, 살려만 주신다면.”
상황 파악이 빠르다.
목숨이 걸린 상황이니.
“너희, 사냥개가 맞겠지.”
“마, 맞습니다.”
“규모가 어떻게 되지. 나를 쫓는 인원은 얼마나 되나.”
“…….”
잠시 대답이 끊겼다.
피스톨에 힘을 주자, 다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100명 정도는 됩니다. 지금 선생님을 쫓는 인원은 별동대 10명 정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100명. 규모가 꽤 크다.
아지트가 있을 것이고, 유물을 쌓아 놓았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약탈을 했든, 우연히 입수했든, 쓸 만한 물건들이 있을지도.’
공들여 계획을 짠다면 100명을 소탕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다만 녀석들의 말 중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너희 두목이 이상한 힘을 쓴다고 했지.”
“그, 그걸 어떻게.”
다시 피스톨에 힘을 준다.
“그, 그! 손에서 불을 뿜기도 하고 총을 막는 막을 두르기도 합니다!”
“…….”
마법사다.
종종 그런 녀석들이 있다.
중심지에선 대접을 못 받으니 외곽으로 빠져 행세하는 녀석들.
마법사의 존재 자체가 드무니,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경우는 아니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일반인일 가능성도 있겠지.’
이미 활성화 된 유물을 운 좋게 손에 넣고 다룰 수 있게 된 경우.
“…….”
어느 쪽이건 거슬리긴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이었다.
내가 잠시 생각에 잠긴 틈을 타 두 녀석이 동시에 몸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을 취했다.
하지만 그보다 내 동작이 더 빨랐다. 나는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2개의 총성이 겹쳐 울렸다.
소음기를 장착했기에 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바닥에 고이는 피 웅덩이를 피해, 걸음을 뒤로 옮겼다.
“…….”
생각보다 터프한 녀석들이었다.
‘정보를 더 캐냈어야 하는데, 아쉽군.’
현장은 굳이 정리하지 않았다.
그래야 다른 녀석들이 추적을 계속해 오고 내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니.
철커덕!
녀석들이 가지고 있던 총은 회수할 수 없도록 고철 더미에 던져 숨겼다.
녀석들의 바이크를 찾아내 뒤쪽 박스에 달린 자물쇠를 총으로 날렸다.
‘앞에 마주쳤던 녀석들과 비슷한 구성이군.’
돈, 식량, 탄약 따위의 것들.
내 쪽에 옮겨 담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옮겨 담는다.
빠르게 작업을 마치고 바이크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핸들을 당기자 요란한 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우웅─!
백미러로 2구의 시체가 멀어진다.
황야의 모래바람이, 녀석들의 옷자락을 나풀거리고 있었다.
* * *
햇빛이 조금 누그러졌을 때쯤 마을 하나에 도착했다.
입구에 꽂힌 낡은 표지판이 나를 반겼다.
「11-A」
목적지에 확실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110번대 구역에 인접할수록 숫자가 낮아지니.
“정말 대륙 전역에 세워 놓았군.”
표지판 옆엔 여신상이 메마른 대지를 굽어보고 있었다.
예의 그 자애롭고도 평화로운 미소로.
나는 바이크를 끌고 안쪽으로 진입했다.
“빨리빨리 움직여! 곧 있으면 차 떠나니까!”
마을 입구엔 보급 차량이 도착해 있었다.
열려 있는 광물 투입구 앞으론 먼지투성이의 사람들이 수레를 끌고 긴 행렬을 짓고 있었다.
“젠장! 종일 캤는데 이거밖에 안 된다고? 이걸 누구 코에 붙여!”
옆면에 부착된 모니터엔 교환 가능 품목이 출력되어 있었다.
식자재, 건조 식량, 화폐, 생필품 따위는 물론 총기도 목록에 있었다.
하지만 버튼 앞에서 잠시 멈칫거릴지언정, 총기를 고르는 사람은 없었다.
‘주변에 딱히 사냥개로 보이는 녀석들은 없는데.’
“이봐! 다 바꿨으면 얼른 나와!”
“차 떠난다고! 나 밥 굶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나는 행렬의 끝에 다가가 주민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에 바이크를 정비할 만한 곳이 있는지 알고 싶은데.”
황야의 태양은 다른 곳보다 배는 뜨겁다. 대지 또한 거칠고 험하기 그지없다.
휴식 없이 줄곧 엔진을 혹사시킨 덕에 바이크는 제 속력이 나지 않는 상태였다.
“뭐, 뭐야. 사냥…개는 아닌 거 같고. 그냥 외지인? 여행객이신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탐색하듯 내 몸을 훑었다.
그 뒤 깨진 유리와 총알 자국 가득한 바이크를 보고는 기겁하며 말했다.
“이, 이 근처에 총질할 녀석들은 사냥개들밖에 없는데. 서, 설마 쫓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안 돼. 괜히 도와줬다가 엮이면 나까지 위험해진다고.”
눈이 마주치자 주민들이 시선을 휙휙 피했다.
“…….”
나는 주머니에서 반짝거리는 은화 하나를 꺼냈다.
순간 달라지는 주민들의 눈빛.
교섭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주민 하나를 따라 마을 안쪽으로 바이크를 끌었다.
마을의 총인원은 200명쯤 될까.
허름한 판잣집들이 풍경을 이뤘다.
‘어른들뿐이고…. 아이들은 하나도 안 보이는군.’
분위기도 음울히 가라앉아 있었다.
단순히 고된 생활 때문이라기엔 그 정도가 너무 깊었다.
나는 슬쩍 운을 띄었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어? 응? 아, 아냐 아무것도. 아무 일도 없다고.”
그는 공터 앞으로 나를 안내하고는 같이 있는 모습을 누구에게 들킬세라 어딘가로 사라졌다.
“…….”
고철 더미가 가득 쌓인 공터였다.
한가운데, 철제 마스크를 쓰고 채굴 기계를 수리하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위잉! 위잉!
드릴 소리가 요란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마스크를 벗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못 보던 얼굴이구만. 무슨 일로 오셨나?”
수염을 덥수룩 기른 노인이었다.
탄탄한 몸 덕에 나이 든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수리를 좀 맡기고 싶습니다.”
노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와 바이크를 살폈다. 그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호오. 이건 카프탄 사 모델 같은데, 내 기억에 정확히 없는 걸로 봐선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것 같고. 그리고 이 흔적들은… 싸웠나? 사냥개들과?”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자 같은데 깡이 좋구만. 이 마을 녀석들은 순 겁쟁이들뿐인데 말이야.”
바이크를 살피는 노인을 보며, 나는 읊조리듯 말했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던데.”
“별일이라곤 없네만. 이거 이쪽 부분은 완전히 우그러졌어.”
“아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더군요.”
“…….”
노인의 동작이 멈추었다. 그가 내게 몸을 돌렸다.
“눈썰미가 좋구만. 일단 수리는 가능하네. 대금이 있어야겠지만 말이야.”
나는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노인에게 튕겼다. 10만 실링에 해당하는 고액 화폐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거스름은 필요 없으니 아이들이 어디 갔는지 듣고 싶습니다.”
사실 짚이는 구석은 있었다.
다만 이 추측이 들어맞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뭐,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떠벌릴 일이지. 사냥개들이 모두 잡아갔네. 어딘가 노예로 팔아넘길 생각이겠지.”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그랬다.
총 20명의 아이가 끌려갔다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욱하는 무언가가 속에서 올라온다.
“…힘을 합쳐 저항할 생각은, 사람들이 하지 않았습니까. 분명 보급 차량에서 무기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이 감정의 근원은 카인의 것일 가능성이 컸다.
“허허, 저항? 무기? 사냥개들에게 들키면 그날로 끝이야. 이곳 사람들은 출신이 어디든 평생 핍박받으며 살아온 이들이네. 저항이라니, 그런 건 꿈도 못 꾸지.”
“노인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노인의 팔뚝은 우람했다.
몸 곳곳에도, 총알을 빼내었던 걸로 보이는 둥근 자국이 남아 있다.
퇴역 군인이든, 조직에 몸을 담았었든, 과거가 있는 사람이란 증거다.
“지금은 그냥 늙은이일 뿐이지. 그리고 설령 내가 뜻이 있다고 한들, 혼자서야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사냥개들에게 섣불리 반기를 들었다 전소된 마을도 존재한다고 했다.
“…….”
익숙한 이야기였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카인의 마을 역시 불타 없어졌으니까.
‘조직 간의 전장이 되었지. 무고하게도.’
무기력한 어른들.
그 역시 익숙했다.
무뢰배들이 눈앞에서 아이들을 납치해가거나, 매질을 해 죽이거나.
카인이 나고 자란 마을에선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 어른들은 어떤 적극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지.’
모든 걸 체념한, 안타까운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볼 뿐.
“…….”
카인은 이해했다.
어른들이 슬프지 않은 게 아니란 걸.
어떻게든 어른들 본인이 살아남아, 삶을 강구해 나가는 게 옳은 판단일 수도 있다는 걸.
동시에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자식이 붙잡혀 가는 모습을 지켜만 볼 수 있는지.
티끌만큼의 저항조차도 하지 못하는지 말이다.
[‘카인 리베르’와 동기화가 진행 중입니다.]
[현 동기화율 - 75.5%]
스위치가 눌린 것처럼, 순식간에 감정이 전이되기 시작한다.
‘…기분 더럽군.’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고, 피가 배어 나온다.
이 분노는 사냥개들 말고도, 마을 주민들에게도 향해 있다.
후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카인이었다면, 유물을 탈취하겠다는 목적이 없었어도 이들을 도왔을 것이다.
“아이들은 오늘 밤에 돌아올 겁니다.”
“뭐라고 했나?”
“아이들, 오늘 밤에 돌아올 거라 했습니다.”
노인이 빤히 나를 응시했다. 내 얼굴에 담긴 진심을 읽고는, 그 커다래진 눈동자를 끔뻑거렸다.
* * *
마을 중앙으로 향하자 노인의 말대로 허름한 가게가 나왔다.
마을의 유일한 식당이자, 술집이자, 여관이라고 했다.
따릉.
문을 열자 종이 울리고, 안쪽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몰렸다.
“…….”
어둑하다.
일찌감치 오늘의 일을 접었는지, 곳곳에 술을 마시거나 카드를 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눈빛들이 곱지는 않군.’
이미 외지인이, 그것도 사냥개에게 쫓기는 녀석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나는 바 쪽 자리로 가 앉았다.
곧 너덜너덜한 메뉴판이 나왔다.
단순히 취하는 게 목적인 싸구려 술. 그리고 마찬가지로 싸구려 식자재로 만든 볼품없는 요리뿐이었다.
‘하긴 이런 곳에서 큰 기대를 할 순 없겠지.’
탁.
대충 주문을 마치자, 먼지 낀 보드카 병이 내 앞에 올라왔다.
가게 주인이 나를 보며 말했다.
“오래 머물지 않는 게 좋을 걸세. 지금 마을 분위기가 좋지 않거든.”
“아이들이 없으니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밖에.”
주인의 몸이 움찔했다.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나 보군. 사냥개에게 쫓긴다고 했지. 우리를 더 이상 고통스럽게 하지 말게. 끼니를 해결하고 바이크가 수리되면 이 마을을 바로 떠나.”
딸그락.
얼음 잔에 보드카를 채워 한입에 털어 넘긴다. 쓰다는 감각만 있을 뿐, 취기는 돌지 않는다.
마나 회로는 혈관과 그 흐름을 같이 한다. 체내 불순물을 분해하는 효과가 있어, 마나 유저는 어지간해선 취하지 않는다.
‘쉽게 취하지 못한다니, 그건 조금 슬픈 일인데.’
주민들에 대한 화를 조금 누그러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 마을 사람 수가 사냥개들의 배는 될 텐데, 저항하지 않고 당하고만 있었다는 게.”
주인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말조심하게.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정.
이들에게도 여러 사정과 입장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빼앗긴 부모들 당사자.
당사자는 아니지만, 마을 일원으로서 분노와 죄책감을 느끼는 이.
그저 자신의 일이 아니라 방관하고 안도하는 이.
‘아무리 전투 경험에서 차이가 난다 해도 숫자로 밀어붙이면 승산이 있을 텐데.’
무기를 비롯한 장비는 보급 차량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사냥개들이 종일 마을을 감시할 수도 없으니, 철저히 준비한다면 무기를 몰래 모아 병력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저항을 포기했다.
그런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옆 마을이 불타 겁난다는 이유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바로 그 점이었다.
“아이들보다 자기 목숨이 소중한 것도 사정이라면 사정이겠지.
주인은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다 요리를 위해 안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술을 들고 남자 몇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갔다.
동전 몇 닢을 테이블에 올리자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고 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형씨. 사냥개들에게 쫓기고 있다는 게 사실이야?”
“맞다. 녀석들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듣고 싶은데.”
침묵이 흐르고 남자들이 서로 눈치를 본다.
테이블 위에 동전 몇 닢을 더 추가하자, 그제야 입을 뗐다.
“마을에서 매달 상납금을 모아 내거든. 놈들한테.”
수탈 관계가 꽤 오래되었다고 했다.
그 누구도 뒤집을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다시 110번대 구역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나. 이곳이나 그곳이나 뜯기며 사는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여기가 그나마 낫지. 일을 하면 최소한 배를 곯진 않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못 돌아가. 협곡을 지나야 하는데 놈들 두목이 이상한 힘을 부리거든.”
이미 탈출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지만, 협곡에 쳐진 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나아가지 못하고 붙잡혔다.
“들어오는 건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 거지. 멀리서 봤는데, 은은한 푸른빛을 띠고 있더라고.”
투명한 막. 푸른 빛.
순간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결계.’
결계는 고위 마법이다.
수식의 난해함은 물론이거니와 마나 소모가 극심해 마탑의 장로급 정도가 되어야 운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실력자가 사냥개들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을 리가….’
이런 황야에 그런 인물을 설정해둔 기억은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을 가능케 하는, 다른 물건을 설정해 둔 기억은 있었다.
‘…유물.’
고대 마도 왕국의 유물은 크게 2가지 종류로 나뉜다.
그 자체에 마법이 걸려 유용한 기능을 하는 생활 도구.
그리고 특정 계열의 마법을 사용할 때, 효율을 증폭시켜주는 보조 도구.
‘푸른빛이라고.’
분명 그런 물건 하나를 설정해 두었다.
에피소드 후반부, 주인공이 근방의 유적에서 발굴하게 될 팔찌.
결계 사용 시 소모되는 마나 양을 대폭 줄여준다.
유적 깊은 곳에 잠들어 있기에 그 물건이 벌써 세상에 나왔을 리는 없다.
지금 시점의 주인공은 수도에서 성장 중일 테니, 벌써 이 황야에 등장했을 리도 없다.
여러 가능성이 머릿속에 소거되고, 자연스레 한 가지 가능성이 남는다.
‘이야기의 흐름이 바뀐 건가.’
사냥개 우두머리가 결계용 유물을 손에 넣었다. 그게 어떤 경로가 되었든.
내가 아는 설정이 바뀌는 건, 언젠가 벌어지리라 예상한 일이긴 했다.
내가 탈옥을 한 순간부터, 아니, 이 세상에 떨어진 순간부터 이야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을 테니까.
‘…그래도 아직 백 퍼센트 단정 지을 순 없겠지. 직접 확인해 볼 필요가….’
내가 다음 질문을 던지려던 그때.
끼익- 쾅!
“여기 외지인이 있다고 들었는데.”
사냥개들이 나타났다.
모두 3명.
녀석들의 손엔 총과 칼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