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20화 (20/227)

#020화. 황야 (1)

바위 지대를 지나자 탁 트인 황야가 나타났다.

모래알을 품은 바람.

갈라진 땅과 드물게 자라난 식물.

곳곳에 쌓인 고철 더미.

나는 근처의 더미 중 하나에 다가갔다. 안쪽을 뒤져 형태가 멀쩡한 바이크 한 대를 찾아냈다.

에스텔이 준비해 둔 물건이었다.

뒤쪽에 달린 박스엔 물과 건조 식량, 약간의 돈, 그리고 깔끔한 스타일의 옷과 바지, 외투가 들어 있었다.

「옷은 내 취향대로 골랐어요.」

그녀의 쪽지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쪽지를 불태워 없앤 뒤 옷을 갈아입었다.

화상 방지용 패드를 목덜미에 붙여 문신을 가렸다.

갈아입은 죄수복도 태워 버릴까 하다, 고철 더미 잘 보이는 곳에 던져 놓았다.

‘어느 정도 쫓아올 수 있도록 힌트는 주어야겠지.’

제르비아.

나에 대한 강한 집착.

단서를 모아 추리를 완성할 두뇌.

‘답을 정해놓고 사고를 이어나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내가 살아 있다고 믿을 확률이 높다.

100퍼센트에 가깝다 해도 좋을 정도로.

‘교도소 주변부터 수색하겠지. 이미 102번 구역에 대한 힌트를 주었으니, 중간에 흔적을 놓친다 해도 그곳에 미리 가 있을 터.’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단독으로 추적해올 가능성이 높다.

상부에 알려 봐야 잡아도 다시 감옥에 가두기밖에 못하니까.

그녀의 대의는 악(惡)의 완전한 근절이니, 내 목숨을 원할 것이다.

나는 돈이 든 봉투를 확인했다.

200만 실링.

‘…무리했군.’

마병.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해왔을 테니, 돈 역시 크게 모아두지 않았을 터다.

이건 아마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이겠지.

드드드-

난 바이크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핸들을 당겼다.

황야의 거친 토양에 맞게끔 개조된 거대한 바퀴가, 굉음을 내며 굴러가기 시작했다.

쉬이익-

바람이 뺨을 스치고, 풍경이 빠르게 뒤로 지나갔다.

황야, 속칭 불모지는 드넓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하다.

제국의 영토는 가장 중심에 있는 수도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주위를 다음 번호 대의 구역이 ‘원형의 띠’ 형태로 감싸며, 외곽으로 갈수록 번호가 높아지는 구조다.

양궁이나 다트의 과녁과 같은 형태.

이 황야는, 그 모든 땅을 다 합친 것보다도 넓다.

하루 종일 전속력으로 바이크를 몰아야 가장 외곽에 있는 110번대 구역에 도착할 것이다.

‘중간에 몇 번 정비를 해야겠지.’

황야 곳곳엔 탄광촌이 존재한다.

연료나 잠자리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부아앙─!

그렇게 달린지 얼마나 되었을까.

바이크 3대가 따라붙었다.

─어이 형씨. 누구 허락을 맡고 여길 지나가는 거야? 일단 좀 멈춰 보실까?

각 바이크에 2명씩.

뒤에 탄 녀석 중 하나가 확성기를 들고 소리쳤다.

사냥개들이다.

세력을 꾸려 마을이나 여행자들을 약탈하는 녀석들.

바이크의 거리가 좁혀졌다.

“유적 나들이 나오셨나? 관광을 나왔으면 관광비를 내야지.”

철저하게 약해 보이는 이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왔으니, 슬슬 나타날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나는 대답하지 않고 바이크의 속도를 높였다.

곧 험악한 욕설과 함께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두두─! 두두두두─!

과감히 핸들을 꺾는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바이크가 S자를 그린다.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차체를 비껴 지난다.

운전을 하면서 마법을 쓰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다만 최대한 마나를 아껴야 했다.

끼이이익!

급히 브레이크를 밟는다.

사냥개들이 양옆을 지나쳐 멀어진다.

한참을 가다 돌아오는 녀석들을 향해, 나 역시 다시 질주한다.

티디딩─!

바이크에 바짝 몸을 붙여 최대한 조준에서 벗어난다.

차체에 부딪힌 총알이 요란히 튕겨 나간다.

「방호」를 둘러, 몸쪽에 날아든 눈먼 총알 역시 막아낸다.

그리고 녀석들이 양옆을 스치는 순간.

나는 양손을 핸들에서 놓았다.

「염동」.

“어, 어?”

“잠깐 빌리지.”

녀석들의 총이 내 손에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두 자루는 마력의 끈으로 내 몸에 묶고, 한 자루는 양손으로 쥐었다.

「염동」의 좌표를 바로 핸들로 향해, 흔들리는 바이크의 중심을 다시 잡았다.

[‘카인 리베르’와 동기화가 진행 중입니다.]

[현 동기화율 - 72.5%]

익숙한 그립감.

이제 역할이 바뀌었다.

사냥감들을 향해, 나는 속도를 높였다.

고개를 돌린 뒷좌석 녀석들이 박스에서 새로운 총을 꺼내고 있었다.

“이─씨발─가! 우리 총─!”

거리가 있어 목소리는 듬성듬성했다.

나는 차분히 조준 자세를 취했다.

마나 유저의 감각은 일반인보다 몇 배는 뛰어나다. 수련을 쌓을수록 초감각에 가깝게 변한다.

‘다만 저 방탄복이 거슬리니.’

녀석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옷 형태의 방탄복을 두르고 있었다.

두두두두─!

총구가 불을 뿜는다.

과녁은 뒷바퀴.

내 것과 달리 녀석들의 바이크는 양산품이다.

어느 정도 내구성을 갖추고 있다고는 하나, 이런 식으로 탄창 하나 분에 해당하는 총격을 받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

텅─!

둔탁한 폭발음과 함께 바퀴가 터져나갔다.

차체 뒤쪽이 들리고, 탑승하고 있던 녀석들이 투석기의 포탄처럼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녀석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주인 잃은 바이크가 주인을 덮쳐오고 있었기에.

쿠당─!

“끄아악!”

바이크에 부딪혀, 녀석들은 한참이나 밀려 나갔다.

그 뒤론 움직임이 없었다.

탕! 탕! 탕!

다른 바이크의 녀석이 피스톨을 꺼내 마구잡이로 쏘아댔다.

총탄이 바람을 가르며 바이크 옆을 스친다.

몇 개는 강화 유리로 된 바람막이에 명중해, 균열을 만든다.

딸칵. 딸칵.

녀석의 탄이 떨어진 틈을 타, 숙였던 몸을 일으킨다.

들고 있던 총을 버리고, 묶어 두었던 것 중 하나를 다시 손에 쥔다.

텅─!

총구가 불을 뿜는다.

두 번째 바이크에 탄 녀석들도, 동료들이 앞서 밟았던 절차를 밟는다.

“오, 오지 마!”

작전을 바꿔 도망치는 세 번째 바이크. 추격해 주저 없이 마무리했다.

끼익.

바이크에서 내려 한 녀석의 얼굴, 정확히는 투구의 눈구멍을 향해 총을 겨눴다.

기괴한 각도로 꺾여있는 팔다리.

멀지 않은 곳에 나부라진 녀석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너, 너! 우리 두목이 누군지 알고, 시, 신호탄만 터트리면 주변 동료들이! 후회하기 싫으면 총 내려놓고 꺼져!”

탕!

땅바닥에 피가 튀고, 녀석의 고개가 푹 꺾였다. 다시 들리지 않았다.

“…….”

헛웃음이 나왔다.

일평생 빼앗는 자의 입장에서 살아온 녀석들이 죽을 때는 왜 그토록 억울한 표정을 짓는지.

탕! 탕! 탕!

주위를 돌며 다른 녀석들도 마무리를 했다.

하나 같이 팔뚝에 전갈 문신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짠 설정에는 없으니, 보잘것없는 잡배들이란 증거다.

나는 녀석들의 물건을 노획했다.

가장 먼저 챙긴 건 방탄복이었다.

박스 안에 새 물건이 들어 있었다.

다만 녀석들이 입은 갑옷에 가까운 형태와는 달리, 얇은 조끼형태였다.

‘괜히 움직임이 굼떠지니 이쪽이 훨씬 낫겠지.’

그 외에도 많은 걸 챙겼다.

피스톨과 SMG 각 2정.

소음기와 대량의 탄창.

물과 건조식량. 신호용 폭죽.

그리고 약간의 귀금속.

내 박스에 넣을 수 있을 만큼 꾹꾹 눌러 담았다.

“…….”

출발 전, 총알 하나를 손에 움켜쥐었다.

교도소 안에서 끝없이 고민했다.

어떻게 복수를 이룰 것인가.

블루서펜트의 간부는 총 5명.

내가 빠졌으니 현재는 4명이다.

녀석들의 프로필은 모두 알고 있다.

개개인의 본거지, 약점, 버릇이나 전투 습관 같은 것까지도.

하지만 문제는 그들 하나하나의 무력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제일 강한 녀석이 황실의 기사단장 수준이었지.’

마나 유저 간의 전투에선 보유한 마나의 총량이 절대적 요소로 작용한다.

간부들의 마나는 2500을 넘는다.

내 성장이 빠르다곤 하나 그동안 쌓인 격차를 단숨에 좁히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말단 조직원들도 마나를 다루니, 그 또한 걸림돌이 될 게 뻔하다.

혼자 다니길 고수하는 녀석이 있는 반면, 항상 호위를 대동하는 녀석도 있으니까.

몇 가지 전제를 세웠다.

단기간에 무력 차를 좁힐 수 있을 것.

한 번에 다수를 상대하는 상황도 염두 할 것.

기본적으로 게릴라를 지향할 것.

쥐고 있던 총알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붉은 기운이 주먹 주위를 맴돌다 사라졌다.

「화염 폭발」의 각인이었다.

탄창에 총알을 밀어 넣고 피스톨과 결합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바위로 총구를 향했다.

“…….”

후우.

한 차례 숨을 고르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안력 강화」로 동체 시력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눈동자에 푸르스름한 빛 무리가 감돌기 시작했다.

‘마나 유저 간에 총은 분명 비주류 무기.’

간단한 방호 마법에도 쉽게 막히고, 총알을 모두 쳐내거나 총구 방향을 읽고 피해 내는 녀석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한 발 한 발의 위력이 포탄에 버금간다면.’

탕!

총알이 격발되었다.

탄두와 바위 표면이 맞닿는 찰나의 순간, 각인된 마법을 발동시켰다.

콰광─!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일었다.

불붙은 파편이 떨어져 내리고, 먼지가 걷힌 자리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성공을 예상하긴 했지만, 실제 그것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의 흥분감은 작지 않았다.

‘기대 이상인데.’

일반적인 마법 활용은 아니었다.

총기는 비주류일뿐더러, 마법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같은 방법을 시도를 했던 이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아마 전투방식으로 채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각인된 마법은 본래의 것보다 위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마법이해도가 극에 달한, 나와 같은 경우가 아니면 말이다.

거기에 높은 사격 숙련도까지 요구된다.

단순히 마법의 각인이 가능하다 해서 운용할 수 있는 전투법이 아니다.

‘…이 방법이라면.’

마법은 비축해 둔 총탄으로 대체.

전투 중 마나는 모두 신체 강화에 쏟는다.

그러면 내 수준을 상회하는 녀석들의 상대도 어느 정도 가능했다.

물론 단점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화염 폭발」의 각인에 사용된 마나는 75.

마나가 회복되는 속도를 고려하면 탄 생산은 시간당 1개꼴밖에 되지 못한다.

그 외에도 붙은 조건이 까다롭다.

며칠이 지나면 각인되어 있던 마법이 휘발된다는 점.

아직 회로 레벨이 낮아 직접 사용은 가능하지만, 각인이 불가능한 마법도 존재한다는 점.

‘2레벨에 도달하는 게 최우선 사항이겠군.’

레벨이 올라가면 마나에 관련된 모든 능력치가 대폭 증가한다.

그러면 숨통이 조금 트일 것이다.

나는 잔불이 남아 있는 대지를 잠시 바라보다 품안에 피스톨을 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바이크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달리고 또 달렸다.

멀리 사냥개들이 보일 때는 방향을 틀어 충돌을 피했다.

최소한의 무기를 확보했으니,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종종 철갑을 두른 무인 차량이 풍경을 스쳤다.

탄광촌을 돌며 주민들이 채굴한 자원을 식량이나 무기로 교환해 주는, 일종의 자판기와 같은 차량이었다.

옆면에 각인된 제국의 문양과 덮개가 닫혀있는 포구들이 눈에 띄었다.

‘…일단 무기는 주변 마물들로부터 방비하라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척박한 환경으로 황야 일대의 마물은 멸종했다고 알려진 지 오래다.

무기 지급은 실질적으로 ‘사냥개’들로부터 스스로 몸을 방비하라는 의미가 강했다.

‘사냥개들은 소탕을 해 봤자 바퀴벌레처럼 계속해 나타나니.’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선 인력을 투입해야 하고 또 그만큼의 비용이 들어간다.

이 오지에는 그럴 만한 가치는 없다는 얘기였다.

차라리 주민들이 모두 떠나 자원 수급을 하지 못하게 된다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달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슬슬 연료 게이지가 끝을 보여 왔다.

끼익.

근처의 고철 더미 옆에 바이크를 세운 뒤 옆면에 부착된 연료통을 떼어냈다.

투입구에 통을 기울이자 연료가 꿀렁거리며 넘어갔다.

해의 위치를 보아 정오는 한참 넘긴 시각이었다.

‘슬슬 어디든 들러 정비를 해야 ….’

그때였다.

거대한 고철 더미 너머, 바이크 소리가 다가와 멈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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