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화. 벽 너머 (1)
“교도관님. 저희는 청소를 위해 들어가겠습니다.”
창고는 다른 시설과 거리가 멀고 중간에 선 감시탑이 적어 인솔 교도관이 붙는다.
그는 하품을 쩍 하고는 대충 알았다는 듯 손짓을 했다.
“그리고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혹시 알 수 있겠습니까?”
“…8시 6분.”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죄수들과 창고로 들어갔다.
“쉬고 있을 테니 청소가 끝나면 말해라.”
“예, 카인 님.”
같은 방은 아니었지만, A반 죄수 대다수는 내게 존대를 했다.
키프텔과의 싸움이 그만큼 임팩트가 컸다는 증거다.
“…그리고.”
나는 죄수들에게 라이터와 담배를 건넸다. 녀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뭡니까?”
“청소가 끝나면 다 같이 피워라.”
죄수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담배와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하지만 취할 행동은 정해져 있다.
“가, 감사합니다! 야, 야! 뭐 해! 얼른 청소 시작하자!”
도구를 들고 빨빨거리며 흩어지는 죄수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창고 가장 안쪽으로 향했다.
곧 외벽과 맞닿아 있는 벽면이 나타났다.
탈탈 소리 내며 돌아가는 발전기.
곳곳에 나부라진 잡동사니.
쌓여 있는 자재들.
창고는 꽤 넓다.
어느 정도 들어오지 않으면 바깥에선 이쪽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망설임 없이 작업을 시작했다.
화륵-
적당한 크기의 나무 조각을 모아 태웠다.
새카만 재를, 벽과 바닥에 사람 형체로 이어지게끔 압착시켰다.
우웅.
곧바로 촉매 주머니를 꺼내 손바닥에 쏟았다.
「화염 폭발」의 캐스팅을 시작했다.
[회로 레벨: 1]
[마나: 285 / 305]
사용할 마나는 「방호」와 「부유」를 펼칠 최소한의 양을 제외한 전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출력으로.’
파직. 파직.
회로를 돌던 마나가 손바닥에 모여든다.
촉매가 하나둘 천천히 깨져 나가고, 힘을 얻은 마나가 날뛰기 시작한다.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회로가 터져 식물인간이 되어 버릴 테니.
‘여기까지 와서 그럴 순 없지.’
파직. 파직.
초 단위로 시간을 재며 캐스팅을 이어나간다.
이를 악물고, 온몸에 땀이 비처럼 흐르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 때, 나는 고개를 내밀어 죄수들을 살폈다.
어느 정도 청소를 마무리하고 담배를 피우려 모여 있었다.
‘예상했던 타이밍이야.’
기존 마법의 캐스팅을 이어나가는 동시에 나는「염동」을 캐스팅했다.
“어어?”
한 죄수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나왔다.
막 불을 붙여 입에 물었던 담배가 제멋대로 튕겨 나갔기 때문이었다.
“야, 그 귀한 담배를 그렇게 뱉어 버리면.”
“야, 나, 나 안 그랬어. 담배가 제멋대로….”
튕긴 담배가 근처 상자 더미에 닿은 순간.
화륵.
나는 상자에 작은 불길을 일으켰다.
“어? 야, 야, 꺼! 얼른! 꺼!”
죄수들이 옷을 벗어 불을 진압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계속 불길을 키웠기에, 효과는 전혀 없었다.
“교, 교도관 불러야 하는 거 아냐?”
“독방에 끌려갈 일 있나! 일단 우리 힘으로 꺼!”
‘이제 슬슬….’
마음속으로 초를 센다.
키프텔이 중앙 건물에 도착해, 최상층에 올랐을 시간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콰광!
바깥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들려 왔다.
“뭐, 뭐야, 씨발!”
“신경 쓰지 말고 불부터 꺼, 병신아! 이거 들키면 독방 며칠 정도론 안 끝난다고!”
지붕 위로도, 경비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소장님 집무실 쪽입니다!
─부, 불길이 치솟고 있습니다.
─무전 수신. 1급 경보 상황 발생. 정문의 최소 인원을 제외하곤 모두 현장에 투입된다. 서둘러 내려가!
투둥투둥.
계단을 울리는 요란한 발소리.
오래지 않아 적막이 찾아왔다.
“…….”
타닥타닥.
먹이를 삼키며 커져가는 창고의 불 소리만 들릴 뿐.
고개를 내밀어 입구 쪽을 살폈다.
죄수들은 모두 도망친 상태였다.
마음속으로 5초를 센다.
파직.
마지막 촉매가 깨졌다.
‘…지금.’
20개의 촉매.
20번의 강화.
모여든 마나가 흉폭한 기세로 벽면의 한 점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형형색색의 원소가 한데 모여들고, 작은 불씨를 보았다고 생각한 순간.
콰과광─!
바깥에서 들려왔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거대한 굉음.
그와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투둑- 투둑-
몸을 감싼 푸른 막 위로 파편이 비산해 내렸다.
‘폭발 방향을 바깥으로만 한정해 놓았길 망정이지.’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어느 정도 소란이 멎어 들고, 움츠렸던 몸을 펼쳤다.
눈앞엔 거대하고도 황량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
그 너머 보이는 푸른 하늘과 바다.
순간 가슴에 찡하는 무언가 올라왔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는 없기에, 곧바로 구멍에 다가섰다.
쏴아-
까마득한 절벽 아래, 푸른 바다가 넘실거렸다.
“…….”
일단 할 일이 있었다.
나는 허공에 마나로 글씨를 새겼다.
마나 유저라면 어렵지 않게 식별 가능한, 휘발성 있는 글씨였다.
글씨 쓰기를 마치고 한 차례 심호흡을 했다.
“후우.”
팟!
남은 마나를 끌어 올리며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뒤편으로, 불길에 휩싸인 발전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수석 교도관님. 인원 파악은 끝났습니다. 부상자 8명에 사망자 3명입니다.”
제르비아가 서류를 받아 들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2건의 폭발.
막 화재를 진압하고 숨을 돌리던 참이었다.
“…소장님은 결국 돌아가셨군요.”
“예. 에스텔 사제가 힘을 썼지만 결국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건 슬픈 감정인가?
모르겠다.
아버지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평소 혐오하던 부류의 인간이었다.
‘일단은 상황의 수습 먼저….’
그래, 그게 먼저다.
지금 최고 지휘권자는 나니까.
누구보다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두 번째 사망자는 키프텔.”
“예. 정신 병동에 수감 되어 있던 죄수입니다. 카인과 ‘싸움’을 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건 알고 있어요. 그리고 소장님과 함께 폭발에 휘말렸다고 했죠.”
“예. 병동에서 탈주해 중앙 건물에 진입했습니다. 동선을 고려하면, 전력 관리실에 불을 놓고 곧바로 소장님의 집무실을 습격할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력 관리실 근처를 우선적으로 수색하도록 하세요. 불을 피웠던 도구가 있을 겁니다.”
계속해 서류를 훑던 그녀의 이마가 찡그려졌다.
“…카인 리베르, 사망?”
“자재창고 A3번에서 일어난 폭발은 죄수들의 흡연이 원인이 된 것 같습니다. 현장에 인체가 연소된 흔적이 남아 있는데, 빠져나오지 못하고 폭발에 휘말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카인이 확실한가요?”
“예. 일단 인원 현황상으로 그렇습니다.”
카인.
카인 리베르가 죽었다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이제까지 아무렇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보고는 가면서 듣겠습니다.”
그녀는 망토를 펄럭이며 창고로 향했다. 교도관이 뒤따랐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냉철함을 유지해야 함을.
하지만 ‘카인의 죽음’이란 말을 들은 순간, 도저히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현장을 정리하고 있던 교도관들이 그녀를 향해 경례를 올렸다.
그녀는 대충 손짓하고 불탄 자재들 사이를 지나 안쪽으로 향했다.
“…….”
그리고 거대한 구멍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외벽은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져 있는 걸로 아는데요.”
“자세한 건 과거 건축 당시 서류를 찾아봐야 할 텐데, 소장님의 집무실 자체가 전소되어서…. 일단 전문 조사관은 모레 도착한다고 합니다.”
“…….”
제르비아는 구멍 옆을 살폈다.
교도관의 말대로 무언가 불에 타 눌어붙은 자국이 사람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이 구멍으로 빠져나간 죄수는요?”
“인원 파악 결과 한 명도 없습니다. 설사 빠져나간다 해도 아래가 낭떠러지라 목숨을 부지하긴 어렵습니다.”
그녀는 구멍 앞으로 다가섰다.
아래로 펼쳐진 절벽.
보는 것만으로 아찔해지는 높이였다.
“…탄약고 쪽은 일단 출입을 금지하세요. 흩어져 불발된 화약이 갑자기 터질 수도 있으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제르비아는 생각에 잠겼다.
동일한 시간대.
두 곳의 장소에서 일어난 폭발.
규모에 비해 놀랍도록 적은 사망자.
억지로 납득하려면야 못할 것은 없지만, 자연스럽지는 못한 상황이다.
마치 누군가 꾸며낸 것처럼.
‘일단 조사관은 사건을 덮으려 하겠지.’
불 보듯 뻔하다.
제국은 불미스러운 일의 처리를 이제껏 그렇게 해왔다.
완벽하진 않지만, 상황을 설명할 증거도 존재한다.
정신 병동의 탈주자.
죄수들의 담배.
하지만 자신은 인정할 수 없었다.
단순한 ‘사고의 연속’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직감은 한 가지 가능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장에서 그녀를 벼려진 칼날과 같게 만들어 주던 직감이었다.
‘만약 카인이 살아 있다면.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꾸민 장본인이라면?’
카인과 싸웠던 키프텔.
카인이 나갔던 청소 구역.
그녀는 한 가지 가정을 세웠다.
만약 카인이 마나 유저라면.
‘그러면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어. 이곳에서 뛰어 내려 살아남을 수도 있고. 다만 그렇다면 어떻게 내 눈을 속여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추적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가장했다면.’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무언가 부족했다.
추리의 빈틈을 메워줄 자그마한 연결 고리가─.
“수석 교도관님. 현장에서 추가적으로 발견된 물건들입니다.”
교도관이 그녀의 상념을 깨고 비닐 팩을 내밀었다.
멀쩡한 라이터 하나.
그리고 깨지고 그을린 라이터 조각들.
“하나는 집무실에서 조금 떨어진 복도에서 발견하고, 다른 하나는 창고 청소를 맡았던 죄수들에게 압수했습니다.”
“…….”
“죽은 카인에게 받은 물건이라더군요. 곧 떠날 사람처럼 어딘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고.”
“…….”
검은 바탕에 새겨진 붉은 깃털.
디자인이 정확히 같다.
카인에게 압수했던 그것과.
‘…카인.’
그녀는 한참이나 멍한 뒤에야 라이터를 받아들었다.
교도소 내엔 종종 사제품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근래 이 디자인의 라이터를 쓰는 사람은 카인 외에는 본 적이 없었다.
“…….”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보기엔 상황이 너무나 공교롭다.
정신 병동의 죄수가 라이터를 가지고 있었다니.
“정신 병동의 출입 대장을 가져오세요. 최근 반년간의 자료 전부.”
“예. 알겠습니다.”
그녀는 교도관이 사라지는 걸 보다 다시 바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차분히 생각했다.
어쩌면 이건 카인이 남긴 메시지일지도 모른다고.
빠직.
손안에서 부서진 라이터들이, 파편이 되어 절벽 아래로 흩날렸다.
“……!”
그리고 고개를 들어 시선을 조금 위로 향했을 때.
그녀는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놀랍도록 아름답게 반짝이는, 하늘을 수놓은 글씨들을.
「또 보길 바라지, 제르비아. 이곳이 아닌 또 다른 어딘가에서.」
악필이다.
글씨가 일렁이기까지 해, 다른 사람이었다면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 어느 필체보다도 눈에 익었다.
다름 아닌 카인의 필체였으니까.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카인이 살아 있다는 사실 외에도, 다른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내 이름을 알고 있어…? 대체 어떻게….’
그녀는 한참 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하아- 하아-.”
나는 목표했던 해안가 위로, 힘겹게 몸을 끌어 올렸다.
「부유」로 어느 정도 낙하 속도를 상쇄했다고는 하나 마나가 부족했기에 몸이 받은 충격은 적지 않았다.
조금씩 회복되는 마나도 계속 헤엄치는 데 썼기에, 지금 나는 탈진 직전이었다.
‘…이 앞의 바위 지대를 지나면 곧바로 황무지였지.’
에스텔이 보여 주었던 지도.
그것을 통해 주변 지리는 완벽히 외워 놓은 상태였다.
‘교도소에서 이곳까지는 1.6km.’
멀지 않은 위치지만, 급할 필요는 없었다.
아직 안에선 상황 수습이 한창일 테니.
주변엔 말라비틀어진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 있었다.
그나마 불쏘시개로 삼을 수 있을 만한 가지들을 모아 바닥에 앉았다.
‘황무지엔 사냥개들이 돌아다니니 마나는 최대한 아껴야겠지.’
착. 착.
주머니에서 라이터 묶음을 꺼내 하나씩 켜보기를 반복했다.
물에 젖어 제대로 작동하는 게 없었다.
물기를 털어 내고, 이리저리 흔들어 바람으로 최대한 말렸다.
화륵.
그러던 중, 하나가 운 좋게 불이 붙었다.
불을 옮겨 붙이고, 곧 자그마한 모닥불 하나가 완성되었다.
“…….”
그 앞에 바짝 붙어 떨어진 체온을 높였다.
온기에 젖어 들며,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했다.
최우선 목표는 복수.
블루 서펜트의 활동지는 30~50번 구역에 걸쳐있다.
신분증이 있어야 제대로 된 활동이 가능한 구역이다.
‘하지만 기존의 신분을 그대로 쓸 수는 없으니.’
첫째로 필요한 건 위조 신분증.
그리고 둘째로 필요한 건 힘줄의 치료.
「근력 강화」의 출력을 최소한으로 낮추면 가벼운 운신 정도는 몇 시간이고 유지 가능하다.
하지만 적과 싸울 때 그런 일이 생길 리 만무하다.
마나의 상당 부분을 강화 마법에 쏟아야 할 테고, 그러면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위조 신분증과 고난도의 복원 수술.’
둘 다 만만치 않게 돈이 들어가는 일이니, 가장 먼저 향해야 할 곳은 102번 구역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한 구역이 머릿속에 곧바로 떠올랐다.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장소.
‘102번 구역에서 돈을 찾은 뒤엔 바로 그곳으로.’
어느 정도 마나가 회복되고 체온이 돌아왔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닥불을 비벼 껐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비틀어진 나무와 메마른 바위들 사이로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