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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한 천재마법사-18화 (18/227)

#018화. 수 싸움 (2)

톡- 톡-

작은 불빛 하나만 켜진 집무실.

제르비아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렸다.

“…….”

「카인과 나눈 얘기 말씀이십니까? 성경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도관님.」

반 우즈는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는 태연했다.

하지만 얼굴엔 두려움과 불안감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카인. 반 우즈. 레드스컬. 잠입. 비자금. 협박….”

그녀는 단어를 소리 내 발음하며 연결 고리를 맞춰 나갔다.

레드스컬의 비자금 횡령 사건은 경관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20억 실링은 당시 사건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행방이 묘연했으니까.

‘카인 리베르의 목적이 레드스컬의 비자금이라면.’

해당 시간 근무를 서던 교도관의 말로는 카인은 주위, 특히 감시탑의 눈치를 보며 우즈에게 접근했다고 했다.

그리고 무언가 건네받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만약 그가 모종의 협박으로 비자금의 위치를 알아냈다면.

그러면 반 우즈의 얼굴에 나타났던 감정도 설명이 된다.

“…….”

그녀는 종이에 타임 라인을 정리하고 추리를 적어 나갔다.

오늘 밤 점호 시간에 있을, 불시 검사를 생각하면서.

***

같은 시각.

카인은 에스텔과 정신 병동에 와 있었다.

“이걸 잠시 맡기지.”

“…마법에 쓰는 촉매네요. 그것도 아주 많이. 어떤 계열의 마법에 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에스텔은 카인이 내민 비닐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마법을 써서 이곳을 나갈 생각인 거죠?”

“…….”

“…….”

몇 초간 눈이 마주쳤다.

에스텔이 먼저 작은 한숨과 함께 시선을 피했다.

우수에 찬 눈빛이었다.

밖에서 다른 관계로 만났더라면, 자신이 깊은 호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얼굴이 잘생긴 것과는 별개로, 답답한 마음이 들고 약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눈앞의 이 남자는 침묵은 금이란 격언을 과할 정도로 중시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며칠 내로.”

“네?”

속으로 카인을 씹어대고 있던 에스텔이 정신을 차렸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

“그 반지로 내 생사를 확인할 수 있으니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순간 그녀는, 그 말이 어쩐지 성경의 한 구절처럼 느껴졌다.

「내 세상에 잠시 모습을 감추되 그것은 죽음이 아니하고 잠시 사라짐뿐이니, 불안에 떨지 말고 기다릴지어다. 나의 돌아옴과 함께 풍요의 영광이 함께할 지어니.」

가난하고 굶주리는 신자들이 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구절이었다.

“키프텔과 할 얘기가 있으니 들어오지 말도록.”

끼익-

“잠시만요.”

에스텔이 카인을 불러 세웠다.

사실 가장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만약 이 사람이 과거 교단에 속해 있었다면….’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니었다.

며칠 전, 문틈 사이로 병실을 엿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방안을 가득 메운 새하얀 빛을 보았다.

순간 말문이 막히고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

그 기분이 무엇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어릴 적, 성당 깊숙한 곳 거대한 종교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압도되는 감각, 그리고 그 거룩함.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사고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분명 신성 마법이었어.’

만약 그가 과거 교단에 속해 있었다면.

그래서 몸 어딘가 인장을 지니고 있다면.

인장의 회수를 거부하고 탈주한 ‘배교자’라면.

그러면 미스터리가 일부나마 설명이 된다.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제들은 다른 위치에 인장을 받는다고도 하니까….’

손등 외, 드러난 다른 부위에도 인장은 보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 눕혀 놓고 옷을 벗겨 확인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

자신은 그렇게 대담하지 못했다.

「그게 궁금했군. 얼마든지 확인해라.」

그런 대답이 돌아올 리도 없다.

무엇보다, 한 가지 가능성이 두려웠다.

그의 몸에 인장이 없다면.

‘…인장 없이 신성 마법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해.’

차라리 약해진 신앙심으로도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는 가능할지라도.

주위 사례가 있을뿐더러 자신 역시 그러하니까.

하지만 자신의 추측이 틀리다면, 그땐 이 모든 상황을 정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입술을 달싹거리지만, 하고 싶은 말은 나오지 못했다.

“…아니에요.”

“…….”

카인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 탁.

“오, 오늘도 와 주셨군요!”

키프텔이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바닥에 연신 이마를 박아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 저같이 미, 미천한 것의 죄를 씻어 주기 위해 이렇게 몇 번씩이나….”

지난 며칠간의 방문, 키프텔의 정신 상태는 썩 좋지 않았고, 암시 마법으로 세뇌를 시키는 데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제, 제가 일을 말입니까. 뭐, 뭐든 맡겨 주신다면…!”

카인은 품에서 작은 조각상 하나를 꺼냈다.

소장에게 주었던 것과 똑같은 물건이었다.

“모레 아침 교도관과 산책을 나갈 때 동쪽으로 향해라.

“도, 동쪽 말입니까?”

“그래. 이 조각이 너를 인도할 것이다. 여신이 서 있는 곳으로. 네 죄를 완전히 씻어낼 수 있는 곳으로.”

우웅.

손바닥에 일어난 마나의 빛무리.

카인은 「각인」과 「지연」을 통해 두 가지 마법을 조각상에 부여했다.

「화염 폭발」과 「마나 탐지」였다.

단 「화염 폭발」은 마법 발현에 필요한 절반의 원소만을 새겨 넣었다.

‘나머지 절반의 원소는 소장이 가진 조각상에 새겨져 있지.’

두 조각상이 짝이 됨으로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아, 아아─.”

키프텔은 몽롱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다, 빛무리가 이번엔 자신에게 향해 오는 걸 보고 황급히 부복했다.

우웅.

「기민한 발놀림」

「단단한 피부」

「근력 강화」

키프텔의 몸에 세 가지 마법이 「각인」되었다.

[회로 레벨: 1]

[마나: 0 / 300]

‘…모두 최대 출력으로. 그만큼 지속 시간은 짧겠지만, 소장의 집무실까지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니.’

「각인」의 활용은 두 가지였다.

정해진 트리거에 따라 발동하거나.

혹은 설정해 놓은 시간에 자동으로 발현되거나.

카인은 굽힌 무릎을 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는 키프텔을 내려다보았다.

“…….”

키프텔은 철조망을 뛰어넘어 동쪽을 향해 달릴 것이다.

조각상을 품에 안고.

교도관들을 뿌리치고.

눈먼 총알 몇 발은 버텨 내며.

끓어 오르는 힘을 신의 가호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소장의 집무실에 가까워질수록, 조각상은 「화염 폭발」에 필요한 나머지 반의 원소를 찾아 더 크게 공명할 것이다.

가능한 변수들을 계산했다.

키프텔의 신체 조건.

강화 마법의 출력.

교도관들의 위치.

집무실까지의 거리와 동선.

예상 도착 시간은 3분 15초에서 25초 사이.

어느 정도 상황을 연출할 필요도 있었다.

자연스럽진 않을지라도, 드러난 물증은 ‘마법’이 아닌 ‘사고’를 가리키도록.

‘…소장이 조각상을 전시한 진열장은 오른편 벽. 그 너머가 바로 전력관리실이었지.’

중요 시설은 모두 최상층에 밀집해 있었다.

특히 전력 관리실은 폭발 사고 위험이 있어 인화물질의 소지가 철저히 금해지는 장소였다.

‘문에 걸린 자물쇠 정도는 힘으로 뜯어낼 수 있다. 아인종의 피에 「근력 강화」까지 최대 출력으로 받았으니.’

“공명음을 따라가다 보면 건물 꼭대기에 갈색 문이 나타날 것이다.”

“그, 그곳으로 들어가면 되겠습니까?”

“그래. 그 안에 낙원으로 향하는 문이 있다. 하지만 악마가 그 앞을 지키고 있지. 눈이 마주친 순간 너를 홀려 더 많은 죄를 짓게 할 것이다.”

“제, 제, 죄를! 그,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카인은 품에서 물건을 꺼냈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 깃털 문양이 새겨진 라이터.

작은 유리병 하나.

라이터는 작업실 담당 교도관에게 거금을 주고 묶음으로 구한 물건이었다. 품 안에는 몇 개가 더 존재했다.

그리고 유리병은 병동에 비치되어 있는 소독용 알코올이었다.

“오른편에 회색 문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 들어가 불을 놓아라. 그리고 벽에 바짝 붙어 악마의 숨소리를 들어라. 녀석이 숨을 헐떡이면 열기를 못 버티고 있다는 증거다.”

“과, 과연! 그러면 악마가 도망칠 수밖에 없겠군요! 그, 그러면 갈색 문 왼쪽 방에도 불을!”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녀석이 왼쪽 방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른쪽 방에서 벽에 귀를 붙인 순간, 두 조각상에 새겨진 원소가 합쳐져 「화염폭발」이 발동할 테니까.

“할 수 있겠나.”

“예, 옙! 무, 물론입니다!”

성물이라도 하사받듯, 키프텔은 두 물건을 경건히 받아 들었다.

***

“지금부터 야간 점호를 시작한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모든 감방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고함을 질렀던 교도관이, 뒤를 돌아보며 공손하게 말했다.

“수석 교도관님. 보통은 입구와 가까운 방부터 점호를 시작합니다.”

혹시 점호와 함께 소지품 검사가 불시에 이뤄질 경우, 안쪽에 있는 방장이 다른 방의 소란을 듣고 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안쪽은 대개 교도관들이 편의를 봐주는 ‘반장’의 방이었다.

“아뇨. 안쪽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제르비아의 검은 부츠가 성큼성큼 복도 끝 방으로 향했다.

각자의 침상 옆에 기립한 죄수들.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 한 사람, 카인을 제외하고는.

“저, 수석 교도관님?”

차트를 든 교도관이 말했다.

원래라면 방의 위생이나 비품 등을 살펴야 하지만, 자신의 상관의 시선은 카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부차적인 절차는 모두 생략하겠습니다. 엎으세요.”

“예?”

“엎으라고 했습니다.”

교도관들이 당황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오늘 불시 검사가 있단 얘기를 듣지 못했다.

그리고 검사를 하더라도, 반장의 방은 어느 정도는 형식적으로 넘어가는 게 관례였다.

‘확실히 게렉 교도관님 때와는 다르다는 건가.’

“다시 말합니다. 엎으세요. 그러지 않으면 명령 불복종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예, 예!”

교도관들이 굳어 있는 죄수들 사이로 움직였다.

쿵! 드륵!

엎어진 사물함과 흩어진 물건들.

속과 분리된 베개 피.

마구잡이로 뒤집힌 매트리스.

그 혼란 속,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카인과 제르비아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평온한 표정, 과연 언제까지 지을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카인에게 건수를 잡아낼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놈이 더 이상 여유를 부리지 못하도록 조금씩 포위를 좁혀갈 생각이었다.

“수석 교도관님! 여기 금고가 있습니다.”

“카인. 네 것이겠지. 열어라.”

카인이 고개를 까딱이자 몰핀이 열쇠를 가져왔다.

끼긱-

열린 금고엔 돈과 담배 외엔 들어있지 않았다.

‘죄수들 간에 돈을 걷는 건 소장님 암묵 하에 이뤄지는 일이라고 했지. 내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그래도 분명 다른 곳을 더 찾아보면….’

제르비아의 시선이 카인의 사물함 주위 바닥을 훑었다.

큰 생각 없이 성경을 집어 들어 펼쳤고, 그 순간 놀람을 금치 못했다.

정사각형으로 파인 공간에 라이터 하나와 담뱃갑이 들어 있었다.

가슴이 세게 뛰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은 발견이었다.

“죄수는 화기나 도검류 일체를 소지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 카인 리베르, 할 말 있나? 이건 분명 처벌을….”

“그 물건들이 제 것이라 어찌 단정하시는 건지요, 교도관님.”

“뭐?”

그 순간이었다.

카인의 눈짓을 받은 죄수들이 앞다투어 나서기 시작했다.

“교, 교도관님! 제 물건입니다. 제 성경과 바뀐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제 겁니다! 절 처벌 하십쇼!”

“벌점을 제게 주십쇼!”

“이 무슨─!”

당황한 제르비아가 주춤주춤 물러섰다.

“이 성경은 분명 네 자리에─!”

“이 방의 죄수들은 모두 저를 따라 성당에 다니고 있습니다. 같은 생김새의 성경이 여섯 개니 실수로 바뀌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요.”

으득.

“그리고 전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절 ‘아주 잘’ 아신다고 했으니 그 정도는 알고 계시겠지요.”

제르비아는 악문 이가 바스러질 것 같았다.

성경과 라이터는 분명 카인 리베르의 것이었다.

드러난 정황은 물론, 자신의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죄수들이 저런 식으로 나온다면 자신은 카인을 처벌할 수 없다.

적어도 표면적인 논리상은.

‘상황을 오래 끄는 건 불리하다. 교도관들도 보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이 한 발짝 물러나야 했다.

제르비아는 차트를 든 교도관에게 말했다.

“카인을 제외하고 모두 자신이 범인이라 하는군요. 전부 처벌하세요. 규정대로.”

“예, 예! 너희! 모두 벌점이다! 조용히 해라, 조용!”

교도관들이 봉을 들고 움직였다.

죄수들이 진정될 생각을 하지 않자 팔을 뒤로 꺾어 어깨를 내리 눌렀다.

“…….”

“…….”

제르비아와 카인.

두 사람의 시선은 여전히 맞부딪히고 있었다.

“성경은 돌려주셨으면 좋겠군요. 여신님의 귀한 말씀이 담긴 물건이라 말입니다.”

“조사가 끝난 뒤에 돌려주지. 또 무슨 짓을 해놓았을지도 모르니.”

제르비아의 정복 망토 안쪽에는 아공간 마법이 걸려 있었다.

그녀는 성경 여섯 권 모두를 그곳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순간, 카인의 무표정한 얼굴에 미세한 변화가 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 얕은꾀가 언제까지 통할지 두고 보지.”

그녀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죄수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교도관들이 그녀를 따라 우르르 사라졌다.

곧 다음 검문이 이어지는 듯 옆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교도관들에게서 풀려난 죄수들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다, 다행입니다. 카인 님이 벌점을 받지 않으셔서.”

“그래. 모두 잘했다.”

죄수들이 방을 정리하는 가운데, 카인은 침대에 앉아 성경에 대해 생각했다.

제르비아의 성격은 꼼꼼하다.

사소한 단서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으며 자신의 의문이 해결될 때까지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압수한 여섯 개의 성경 역시 살필 것이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발견할 것이다.

얇은 종이로 만든 이중바닥을.

그 안에 든 쪽지 하나를.

102. 남동부.

묘비. 지하. 금고.

‘그 단어들이 무얼 뜻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리겠지.’

두 사람이 제르비아의 집무실로 불려갔다는 사실은 이미 파악해두었다.

반 우즈.

그리고 접선 당시 근무를 서고 있던 교도관.

의심은 하나, 생각의 소용돌이에 말려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내 행선지가 결국 어디가 될 것인지 말이지.’

불시 검사쯤은 이뤄지리라 예상했고, 며칠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즉, 안배였다.

자신이 탈옥한 후, 추적자가 이쪽을 무사히 따라오도록 만들기 위한 안배.

설정상 「길치」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이 정도 배려는 필요할 터였다.

그녀는, 밖에서도 자신을 위해 해줘야 할 일이 있었다.

***

이틀 뒤 아침, 야외 청소 시간.

외벽 쪽 창고로 가는 길목.

“좋은 아침이에요.”

에스텔이 내게 다가와 성경을 건넸다.

그리고 교도관이나 다른 죄수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귓가에 속삭였다.

“사실 당신을 믿는 게 지금도 맞는 선택인지 헷갈리지만, 꼭 성공해요. 살아 줘요. 그래야 나도 살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알았어요.”

그녀가 몸을 돌려 성당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계속 걸음을 옮기며, 어제 작업실에서 그녀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성경이 하나 더 필요하다고 해서 가져오긴 했는데, 네? 수석 교도관이 빼앗아 갔다고요? 대체 성경을 왜….」

「갑자기 칼을 왜─! 미쳤어요? 성경에다 그렇게 칼질을 하면…. 아, 그렇게 보관함으로…. 처음 줬던 것도 그 꼬라지로 만들었어요?」

「아뇨. 화가 나거나 그렇진 않은데, 아니, 조금 나긴 하는데 황당한 기분이 더 크네요.」

「어쨌든 여기에 맡겨 놨던 물건들, 라이터 묶음이랑 촉매 주머니를 넣어서 내일 아침에 길목에서 달라는 거죠? 알았어요. 어려운 부탁은 아니네요. 이제까지 나 굴려 먹던 거에 비하면.」

생각하는 사이 창고 앞에 도착했다.

외벽 위엔, 총을 든 경비들이 바깥을 주시하고 있었다.

“…….”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필요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남은 일은 이 벽을 뚫고 밖으로 나가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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