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화. 수 싸움 (1)
오후의 작업실.
깡! 깡!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자세.
제르비아는 자신이 직접 가져온 의자에 앉아 카인을 지켜 보고 있었다.
“…….”
아주 매섭게.
뚫어져라.
업무에 익숙해지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작업실을 찾아와 그녀가 하는 일이었다.
깡-! 깡-!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카인은 작업에 열중해 있었다.
비처럼 쏟아지는 땀.
눈동자에 담긴, 무언가를 빚어 내는 자로서의 열기.
‘…속지 않아. 저런 모습 따위.’
제르비아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카인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몸을 돌렸다.
“와 계신 줄 몰랐군요.”
“…….”
카인의 시선이 그녀의 검에 흘긋 닿았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오전에 저희 반 죄수 하나가 경위님께 휘파람을 불다 손등에 검이 찍혔다고.”
여자라는 성별과 외모를 보고 걸어오는 희롱.
그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익숙한 일일뿐더러, 희롱을 건 녀석들은 곧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되었으니까.
“제가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그 죄수는 따로 교육을 시키도록 하지요.”
다만 지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카인이 도무지 죄수 같지 않은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국법 72조 3항에 따르면 교도소 내의 모든 죄수는 의무적으로 하루 9시간의 노역을 하도록 되어 있다.」
「…같은 조 7항에 따르면 소장의 임의에 따라 지정한 다른 업무로 대체 가능하지요.」
언변과 지식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몰락 귀족의 자제일지도 모른다는 분석 자료가 있었지.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을지도….’
흠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했지만, 카인은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온종일 신상을 다듬고 저녁엔 성당에 가 사제의 일을 돕는다.
카인을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한 죄수도 많다고 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이어 나가며 남은 형기를 마칠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네 형기는 170년이다. 죽을 때까지 나가지 못해. 그걸 알고 말하는 건가?”
“물론입니다.”
170년.
카인의 드러난 행적 외에도, 거대 조직의 간부라는 가중치가 더해진 결과였다.
“내가 재판관이었다면 사형을 내렸을 거다.”
“사형이나 고문을 허용치 않는 제국의 인도주의에 감사할 따름이지요.”
인도주의.
마음에 들지 않지만, 국법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명목으로 상부는 범죄자들을 바로 재판에 넘겨 버리지. 제대로 정보를 캐내지도 않고.’
그게 블루 서펜트와 관련된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마치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것처럼.
‘힘줄이 잘린 채 현장에 방치…. 마치 잡히길 기다리듯이. 내분? 아니, 누군가와 접촉키 위한 교도소 잠입이란 가능성도….’
미간을 찌푸린 그녀는 마나 탐지봉을 꺼내 들고 작업실을 돌아다녔다.
추리가 막혀 답답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저에게 대셔도 센서는 울리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전 마나유저가 아니니까요.”
“…….”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행으로 여겼다.
이런 괴물이 마나까지 다룬다면.
상상만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하아.”
여러 감정이 섞인 한숨.
제르비아는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
책상 위에 놓인 그녀의 탐지봉.
순간 카인의 눈빛이 변했다.
우웅-
마법으로 근력을 강화해 거대한 광석 덩어리를 들어 올렸다.
그 아래 빈틈에 끼어 있던 탐지봉을 발로 밀어 꺼냈다.
그리고 책상 위의 것과 바꿔치기하고, 역순으로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채 10초도 걸리지 않아, 모든 동작이 끝났다.
‘에스텔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 또 늘었군.’
교도관들의 창고에 있던 물건으로, 그녀를 통해 입수할 수 있었다.
마나를 주입해 망가트려 놓았다.
전원은 들어오나 탐지 기능이 작동하지 않도록.
「기억력」 특성을 활용해 겉면의 흠집이나 마모 정도까지 하나하나 본 따 놓았으니, 완벽한 모조품이라 할 수 있었다.
몇 분 뒤 제르비아와 소장이 함께 들어왔다.
소장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오! 완성이 코앞이구만. 앞으로 어느 정도 걸릴 것 같나?”
“내일 오전 중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비르 교도관, 어떤가? 정말 걸작이지 않은가?”
“…예.”
제르비아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신상을 세울 장소를 슬슬 정해야 할 것 같은데. 중앙 건물 앞은 어떤가? 아무래도 그 앞이 교도관들이나 죄수들이 가장 많이 지나치는 곳이니.”
“집무실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겠군요. 좋은 생각입니다.”
카인의 맞장구에 소장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비르,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저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카인이 먼저 위치를 제안했다면 분명 의심했겠지만, 이건 소장이 먼저 낸 의견이었다.
게다가 검사도 이미 수차례 마쳤다. 제작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뿐, 여신상은 평범한 조각상이었다.
“그래. 교도관들에게 지시해 두겠네. 내일 점심 즈음 신상을 운반하라고.”
“예.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따로 작업한 물건입니다.”
카인이 서랍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여신상을 그대로 축소한 것 같은, 손바닥 크기의 조각상이었다.
소장은 조각상을 이리저리 살피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허!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솜씨구만. 작은 원석에 어찌 이리 세심한 조각을!”
지켜보던 제르비아가 책상에 놓여 있던 탐지봉을 집었다.
조용히, 그 끝을 조각상을 향해 겨눴다.
“…….”
역시 센서는 울리지 않았다.
전에 이미 확인했던 물건이지만, 소장이 받은 선물이니 만일을 위해서였다.
“내 이건 체스 트로피 옆에 잘 진열해두겠네. 그러고 보니 둘 모두 자네 덕을 본 물건들구만, 허허.”
소장은 너털웃음을 터트리고는 작업실을 더 둘러보다 문밖으로 사라졌다.
제르비아는 그 뒤를 따르다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 돌려 말했다.
“…소장님이 편의를 봐주신다고 착각하지 마라. 이곳에 들어온 이상 너도 일개 죄수에 불과하니까.”
입술을 꾹 깨물고, 말을 이었다.
“난 너 같은 범죄자들이 정말 싫다. 그리고 빌어먹을 정도로 잘 알고 있지. 사람 목숨 따위 파리 목숨 정도로 아는 악마 같은 놈들. 분명 수많은 민간인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또 죽여 왔겠지.”
카인은 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내가 이곳에 있는 한 허튼수작 부릴 생각 마라. 내가 널 지켜보고 있으니까.”
끼익- 탕!
문이 닫히고, 전투적인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나를 잘 안다고.”
카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알지 못한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손바닥 조각상에 「화염 폭발」을 「각인」시켜 놓았다는 것도.
자신이 이제껏 민간인은 단 한 번도 죽이지 않고, 도리어 살리려 애써왔다는 것도.
그리고 상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건, 그녀가 아니라 이쪽이라는 것도.
* * *
오후 노역이 모두 끝난 운동시간.
나는 잠시 작업을 멈추고 공터로 향했다.
‘반 우즈.’
멀리, 패거리들 사이로 노인 하나가 보였다.
나는 성큼성큼 다가갔다.
길목에 있던 죄수들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오랜만입니다. 반 우즈.”
“…….”
“할 얘기가 있습니다.”
나는 말 없이 주위 죄수들을 쳐다보았다.
잔뜩 경계하고 있는 녀석들.
우즈가 손짓하자 곧 자리엔 둘만 남게 되었다.
“오래간만이군. 33번 구역에서의 전쟁에서 보았던 게 마지막이니, 5년만인가?”
“기억력을 보니 아직 정정하시군요. 다행입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은 들었지. 그때의 애송이가 블루서펜트 간부가 되었다니. 대단하군, 대단해.”
나는 우즈의 팔에 있는 붉은 해골 문신을 보며 말했다.
“자기 조직 보스의 비자금을 들고 도주한 일만큼 대단하진 않을 겁니다.”
우즈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핫-. 그래, 그것만큼 대단한 일도 없지. 자네 목적도 그건가? 그동안 숨긴 장소를 캐내러 들어온 놈들이 적지 않았지.”
3대 조직 중 하나.
레드스컬.
회계를 맡고 있던 우즈는 비자금을 들고 도망쳤다.
죽음을 위장하려던 계획이 실패해 조직원들에게 쫓겼고, 살기 위해 교도소에 들어왔다.
후반부 에피소드를 위해 조형해두었던 단역이었다.
“간부씩이나 보낸 걸 보면 자네 조직도 안달이 났어. 하긴 20억 실링이면 눈이 뒤집히지 않곤 못 배기지.”
우즈가 하얗게 자라난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사실 자네가 언제 접근해 오나 했네. 처음 들어왔을 땐 다른 죄수들한테 당하고만 있었으니.”
나는 우즈가 멋대로 오해하게 내버려 두었다.
탈옥 후 활동을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니까.
“어쨌든 제 목적을 아시니, 이야기가 빠를 것 같습니다.”
“미안하지만 난 입을 열 생각이 없네. 그간 여러 놈이 온갖 협박을 가했지만 결국 날 죽이진 못했지. 왜인지 아나?”
“우즈, 당신이 죽는 순간 돈의 위치가 영원히 묻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 내가 스스로 존재 가치를 떨어트리는 일을 할 리 없지 않겠나.”
“…102번 구역의 공동묘지.”
수염을 쓰다듬던 손이 멈칫했다.
말이 공동묘지일 뿐, 빈민가에서 쏟아져 나오는 시체가 아무렇게나 내던져지거나 최소한의 성의도 없이 매장되는 장소다.
…그리고 황무지와 연결되어 있어 어지간한 평원과 같은 넓이를 자랑한다.
‘무덤 아래 돈을 숨겨 두었다고만 설정해 두었었지. 주인공이 어떤 힌트도 없이 자신의 특성을 활용해 찾아낸다는 전개였으니.’
즉, 돈의 정확한 위치는 나조차 알고 있지 못한다.
무작정 파헤치고 다니기엔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알 수 없다.
“…블루서펜트의 정보력이 그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군.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그 무지막지한 공간을 다 뒤지고 다닐 텐가?”
우즈가 코웃음을 친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 말했다.
“먼저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전 조직의 계획으로 이곳에 들어온 게 아닙니다. 제게 정확한 위치를 알려 주신다고 소문이 퍼질 일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건가. 뭐, 어느 쪽이든 난 입을 열 생각이 없으니 헛수고네.”
“거래를 제안하겠습니다. 제가 돈을 찾으면 10퍼센트를 아드님께 전달하겠습니다.”
우즈는 사실 자신의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가 세상에 미련이 남은 이유는 다만, 고용인의 손에 키워지고 있을 늦둥이 때문이다.
“…그걸 대체 어떻게!”
이제껏 여유롭던 우즈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내년에 성년이 되어 기사 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더군요.”
“네놈! 설마 마르센에게 손을 댄 건 아니겠지.”
우즈가 으르렁거렸다.
나는 픽 웃고는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손대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협조만 한다면,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말해. 이 사실을 레드스컬도 알고 있나?”
“저밖에 모르는 사실입니다.”
우즈는 씩씩거리더니 이내 기세를 누그러트렸다.
머릿속에 여러 계산이 오갈 터.
똑똑한 사람이니 금세 깨달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의 철저한 ‘을’은 자신이란 것을.
“…알겠네. 위치를 알려 주지. 다만 내 아들에게 돈을 전달해 주겠다는 약속을 꼭 지켜야 하네.”
“물론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습니다.”
“뭔가?”
나는 곁눈질로 근처 감시탑을 흘긋 살폈다.
교도관 하나가, 내 쪽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새로 부임한 수석교도관이 접근해 물어 올 겁니다. 카인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냐고. 그때 약간의 연기를 해주시면 됩니다.”
“뭐? 연기 말인가?”
“예. 레드스컬의 보스를 속였던 분이니 충분히 가능하실 겁니다.”
우즈의 얼빠진 얼굴은 다소 오랫동안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