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6화 (16/227)

#016화. 조각 (2)

켄드락 교도소의 정문.

죄수 호송용 차량이 멈춰 섰다.

철컥.

운전석 옆자리 문이 열리고, 탑승자가 땅에 발을 디뎠다.

척!

대기하고 있던 교도관들이 경례를 올렸다.

“됐습니다. 내리십시오.”

허리까지 오는 푸른 생머리.

벨트에 찬 장검.

이십 대 중반의 아름다운 외모.

그녀의 손짓에 따라 교도관들이 자세를 바로 했다.

가장 앞에 있던 교도관이 다가가 말했다.

“부임을 축하드립니다. 자비르 경위님.”

“발령은 두 달 전이었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른 곳에 지원 업무가 있어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경위님과 함께 근무하게 된 것만으로 영광입니다.”

다른 교도관들도 모두 동감인 얼굴이었다.

그녀가 황실 경찰청장의 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말단에서 시작해 제 실력만으로 쭉쭉 올라오고 있다더니, 과연 분위기부터가 다르군.’

선임 교도관과 함께 그녀가 정문 안으로 사라지고, 남은 교도관들은 아직 여운이 남아 있는 얼굴로 떠들었다.

“원래 소속은 치안국이셨다죠? 저 이지적인 외모로 범죄자들을 썰고 다니셨다니.”

“마나를 다루시잖아. 기사 서품도 받으셨다고 하니 실력은 확실하시겠지.”

“차기 치안국장으로까지 거론되니 말 다 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분이 왜 이런 오지에 발령 신청을 하셨을까요?”

“난들 알겠나. 우리야 좋을 뿐이지. 안 그래도 게릭 교도관님 죽고 분위기도 뒤숭숭한데, 죄수들 기강은 확실히 잡아 주시겠지.”

교도관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량 뒤편으로 다가갔다.

새로 들어온 죄수들을 이동시키기 위해서.

* * *

“오느라 고생 많았네. 제르비아. 어릴 때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자라다니 감회가 새로워. 청장님은 잘 계시고?”

제르비아.

그것이 그녀의 본명이었다.

치안국에서의 활동은 거친 현장에서의 업무가 대다수.

얕보이지 않기 위해 남성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아는 이가 많지 않은 사실이었다.

“예. 잘 지내십니다.”

그녀는 흘끗 주위를 살피며 답했다.

손이 닿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서류들과 테이블 위 체스판.

소장이 일에 그리 열성적이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소장이 하는 일엔 간섭 말거라. 노후 배려차 감찰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그 친구를 보낸 거니 말이야.」

아버지의 말이었다.

‘간섭 말라’의 범위는 소장이 저지르고 있을 부정이나 비리까지 포함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경찰 조직 중 부패하지 않은 곳은 드무니까.

대놓고 범죄 조직과 결탁하고 있는 부서가 있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 아버지 말이니까….’

조금만 참자.

내가 청장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모든 걸 다 바꿔 버릴 테니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곳에 발령 신청을 한 본 목적을 떠올렸다.

“카인이란 죄수가 이곳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아, 그 친구. 두 달 정도 전에 들어왔지. 자네와 현장에서 마주친 적이 있을 수도 있겠군.”

“예. 맞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쫓아왔던 인물입니다.”

“인연이 깊구만 그래.”

“…….”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끊이지 않는 끈처럼 길게 이어진 악연.

‘카인 리베르.’

녀석은 용의주도했다.

어떤 함정을 파도 걸려들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갔으며, 오히려 역으로 함정을 파 공권력을 조롱하는 경우도 있었다.

「…녀석을 쫓다 보면 꼭두각시 줄에 매달려 미로를 헤매는 거 같아. 내 모든 행동이 통제되고, 또 설계에 따라 막다른 길로 향하는 기분이랄까. 그런 거 있잖아. 머리로는 틀렸다는 걸 분명 아는데,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

담당 수사관들의 말이었다.

그녀도 거기에 공감했다.

단순히 일신상 무력 때문에 잡기 힘든 범죄자들과는 궤가 달랐다.

‘…그리고 역으로 붙잡힌 적이 있었지.’

그녀는 목덜미에 난 긴 검상을 만지작거렸다.

카인의 단검이 파고들다 멈추었던 그 자리였다.

「넌 눈빛이 조금 다르군. 뜻하는 바가 있나?」

그때 자신은 씹어 뱉듯 말했다.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으니 목을 그으라고.

다만 너희 같은 범죄자들을 쓸어 버리고 시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이룩하지 못하니, 그게 원통할 뿐이라고.

「…흥미가 식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녀석은 그 한 마디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현장에 큰 소리를 내어, 주위 경관들에게 구출 받을 수 있게 만들면서.

“…….”

녀석의 행동은 지금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순한 동정이었던 걸까.

아니면 자신에겐 죽일 가치도 없었다는 걸까.

혼란스러웠고, 또 수치스러웠다.

며칠 밤낮 패닉에 빠져 있다 결심했다.

녀석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붙잡기로.

그래야만 자신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악명 높은 범죄자일 뿐. 세상을 좀먹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물론 그 뒤로도 녀석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했다.

감정은 집착에 가깝게 변해갔다.

그러던 중 녀석이 붙잡혔다는 소식이 들렸다.

‘내가 붙잡았어야 했는데.’

이를 으득 갈았다.

당시 현장이 달라 직접 카인의 모습을 확인하지는 못했고, 교도소로 이송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발령 신청을 했다.

비록 부임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붙잡힐 때 힘줄이 모두 끊긴 상태였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것 때문에 이곳에서 다른 죄수들에게 당한 건….”

죽었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상태가 되었다면 낭패였다.

“허허. 당하다니 무슨 소리인가. 오히려 다른 죄수들을 다 누르고 반장 노릇을 하고 있는데. 힘줄은 설명이 조금 길지만, 여신님이 내린 기적 덕에 온전히 쓸 수 있게 되었네.”

“예?”

제르비아의 푸른 눈이 더없이 크게 떠졌다.

“지금쯤 작업실에서 조각을 깎고 있을 걸세. 그 친구 솜씨가 아주 대단하거든.”

* * *

여신상의 작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빨리 끝나겠는데.”

「시간이 남으면 소장님을 위해서도 뭔가를 만들어 드릴 텐데. 아쉽군요.」

그 한 마디로, 기상 시간부터 야간 점호까지 자유를 보장받은 덕이었다.

소장이 예술에 문외한이라 해도, 범상치 않은 작품을 알아볼 정도의 식견은 있을 것이다.

상류층으로서 문화를 향유해 온 기간이 있으니.

작업을 잠시 멈추고, 의자에 앉아 차를 기울였다.

‘평화롭군.’

교도소에 들어온 이후 줄곧 달려오기만 했기에, 조금 휴식이 되는 기분이었다.

작업 동안 별일이라 해 봐야 촉매로 쓸 초콜릿을 에스텔이 탐냈던 것 정도였다.

「이게 뭐라고 안 줘요? 알죠, 엄청 비싼 브랜드인 건. 근데 내가 요즘 누구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치사해서 내 돈으로 사 먹고 만다!」

소장과의 긴 면담.

게렉의 운구식 주관.

기적을 내려 달라 떼쓰는 죄수들.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키프텔.

그것 말고도 나를 돕고 있는 일이 몇 가지 더 있었다.

나름 합당한 이유의 분노였다.

나중에 초콜릿을 상자째로 가져다주어 화를 조금 누그러트릴 수 있었다.

「당신 때문에 요즘 머릿속이 엉망진창인 거 알아요? 약속 하나만 해 줘요. 나중에 일이 다 해결되면 당신 정체가 뭔지 말해 주기로.」

그 말엔 그저 고려해 보겠다고만 답했다.

‘그나저나 오늘이라고 했지. 제르비아가 도착하는 게.’

경찰청장의 딸.

후에 주인공 일행을, 정확히는 카인을 뒤쫓아 오는 인물.

후에 세계관 내의 흑막이 밝혀지는 데 특정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것 말고도 이용 가치가 있으니 완전히 떼어내는 것보단 쫓아 오도록 하는 게 낫겠지. 어차피 행동 패턴은 모두 내 손안에 있으니.’

아까 정문 쪽이 시끄러웠으니 지금쯤 소장과 면담이 진행 중일 거다.

아니, 긴 대화를 싫어하는 성격이니 이미 끝났을 수도 있다.

그다음으로 그녀가 향할 곳이라면….

─오늘 부임 온 자비르입니다. 안에 있는 죄수와 잠깐 할 얘기가 있습니다.

─아, 그, 수석 교도관님! 알겠습니다. 들어가십쇼.

마침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나타났다.

긴장과 흥분, 그 밖에 여러 감정이 그녀의 눈동자에 스며 있었다.

나는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자비르 경위님. 신분이 바뀌었으니 제가 존댓말을 써 드려야겠군요.”

* * *

속이 울렁거린다.

목덜미의 검상이 낙인처럼 타오르는 기분이다.

가장 묻고 싶은 말은 따로 존재했다.

「왜 그때 나를 죽이지 않은 거지?」

하지만 입 밖에 나온 것은 다른 말이었다.

“어째서 붙잡혔지?”

“제가 붙잡혀 불만이라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경위님.”

처음엔 동명이인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저 얼굴, 표정, 목소리.

역시 카인 리베르가 맞다.

“카인. 난 널 잘 알아. 세상 그 누구보다도. 절대 이렇게 허무하게 붙잡힐 인물이 아니지.”

스릉.

치솟는 푸른 검기.

제르비아가 검 끝을 카인에게 겨눴다.

“말해. 무슨 꿍꿍이지? 이 교도소에 목적이 있어 들어왔나?”

기사 서품의 첫 번째 조건은 검기로 철을 잘라낼 수 있느냐이다.

일렁이는 검기.

조금만 더 길어진다면 목이 베여 피를 울컥울컥 쏟아낼 것이다.

하지만 카인의 태도는 담담하기만 했다.

“일부러 붙잡혀 들어왔다니, 실력뿐 아니라 농담도 많이 느셨군요. 목적 같은 건 없습니다. 여신님께 맹세코.”

일부러 힘주어 발음한 마지막 일곱 글자.

그 순간 제르비아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과거를 회개하고 지금은 독실한 신자가 되었네.」

소장의 말.

가장 믿기지 않는 부분.

힘줄 복원까진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수도의 주교들은 신의 권능을 행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카인, 그 카인 리베르가 신을 믿는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무언가 목적이 있어 믿는 척하는 거야.’

“계속 헛소리를 한다면 목을 베겠다.”

“그럼 여신님 곁으로 더 빨리 갈 수 있겠군요.”

시선이 맞붙는다.

“…….”

보는 이를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야수의 눈빛.

녀석은 역시 변하지 않았다.

늑대의 본성은 양의 탈을 쓴다고 감춰지지 않는다.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그 자리에서 비켜라.”

조각을 핑계로 다른 수작을 부려온 지도 모른다.

소장의 지원을 등에 업고.

터벅.

카인이 물러나며 뒤에 있던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

제르비아는 순간 충격에 휩싸였다.

세상을 포용하듯 벌린 양팔.

따뜻하고도 자애로운 미소.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동적 감각.

여신이 세상에 현신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말도… 안 돼.’

어릴 때부터 받은 다방면의 교육.

그녀는 예술에 조예가 깊다.

수작과 걸작을 가르는 미세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장담컨대, 이제껏 보아온 조각품 중 이것보다 뛰어난 작품은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범죄자 따위가 이런 아름다운 작품을….’

감탄을 느꼈다는 사실이 곧 수치심으로 바뀐다.

인정할 수 없다.

당장 부숴버리고 싶은데, 차마 그러지 못할 정도의 아름다움이다.

“여신님의 경이로움을 그대로 담아내기엔 제 실력이 부족했습니다.”

“…….”

타올랐던 감정이 수그러들고, 머리가 어질거렸다.

일단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짐을 풀고. 업무 인계도 받아야 하니까.’

속으로 그렇게 변명했다.

스릉, 철컥.

“일단 오늘은 돌아가지. 이제까진 어땠는지 모르지만, 앞으론 허튼수작 부릴 생각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내가 널 주시하고 있으니까.”

제르비아가 떠나가고 문이 닫혔다.

“…….”

카인은 그 자리를 잠시 쳐다보다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 * *

그날 저녁, 나는 에스텔과 함께 정신 병동을 찾았다.

“히, 히히히, 히, 사제님! 제가 어제 공터에서 집채만 한 새를 보았습니다!”

하루 한 번 환자들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게 그녀의 업무.

나는 보조 자격으로 동행했다.

“환자들 상태가 호전되는 경우가 있나?”

“거의 없죠. 약물치료가 지원되는 것도 아니고 교도관들이 하루 한 번 산책시키는 것 빼면 병실에 방치되다시피 하니까요.”

총 10개의 개인 병실.

그마저도 환자들이 금방금방 죽어 나가 빈방이 많다고 했다.

“잠시 자리 좀 비워 주겠나.”

“알았어요. 문밖에서 기다릴게요.”

끼익- 탁.

문이 닫히고, 나는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는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키프텔.”

고개가 삐거덕 내 쪽으로 돌아왔다. 눈의 초점이 완전히 나가 있다.

녀석의 육체는 뛰어났다.

전격 마법을 맞고도 멀쩡할 정도로.

하지만 정신은 그러지 못했다.

“날 알아보겠나?”

“……!”

천천히 커지던 눈동자는 이내 공포로 물들었다.

녀석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기 시작했다.

“힉, 히익! 자, 잘못했습니다. 잘, 잘, 잘못! 나리! 제, 제가 빵을 후, 훔쳐. 죄, 죄송!”

기억이 혼재되어 있는 듯했다.

나에게 당한 기억.

그리고 유년기의 트라우마.

고아였던 녀석은 도둑질을 하다 걸려 태형을 당했다.

시체 꼴로 뒷골목에 버려졌다 특유의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성장해갔다.

“네 죄를 용서하겠다.”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푸석푸석한 머리가 움찔 떨었다.

“저, 저, 정말입니까? 정말입니까? 나리?”

“그래.”

“제, 제가, 그, 그 새끼를 죽인 것도 말입니까?”

“용서하겠다.”

“그, 그 년을 강간한 것도, 그, 그것도 용서를─.”

“네 죄를 모두 사하겠다. 89번 구역의 일가족을 죽인 것도. 행인들의 금품을 빼앗고 다리로 떠민 것도. 97번 구역의 어린아이들을 노예로 팔아넘긴 것도.”

“나, 나리께서는 어, 어찌, 어찌 그 모든 걸-.”

“신을 믿어라. 그러면 모두 용서받을 수 있다.”

우웅-

머리에 얹은 손에서 방안 가득 퍼져나가는 새하얀 빛무리.

오직 신성 마법이 발현될 때만 나타나는 광휘의 색채.

“아- 아아-.”

감격에 찬 표정과 눈가에 또르르 흐르는 눈물.

녀석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아 쥐었다.

“아아- 제게, 제, 제게 용서를-.”

아니, 너는 용서받지 못한다.

아무리 신을 믿어 봤자 죄를 지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에 맞는 속죄, 해야 할 일이 내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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