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화. 조각 (1)
“골치 아프구만.”
다이아만 소장은 한 손으로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불과 30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숙소에서 차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들어온 보고로 집무실에 다시 출근한 상태였다.
쏴아아-
밖엔 여전히 비가 내렸다.
해가 완전히 져 교도소 내 시설 불빛만 간간이 보였다.
“게렉이 죽었다고.”
1층에 수습되어 있는 시체를 올라오며 확인하긴 했다.
천을 들쳐 얼굴을 확인하진 않았다.
흥분한 죄수들에게서 구해 냈을 땐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훼손된 상태였다고 했다.
굳이 역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그 비대한 체구만으로 신원은 확인할 수 있었다.
“흐으음….”
죄수들이 돈을 걸고 싸움 내기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교도관들이 참여한다는 사실 역시도.
다만 이제까지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고, 관여하기 귀찮다는 이유도 있었기에 내버려 두었었다.
“입단속들을 조금 시켜야겠구만.”
일을 조용히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곳에 근무하는 이들 대다수는 별다른 연고가 없다.
챙겨야 할 가족이나 친지가 있는 이들은 애초에 이런 오지에 파견을 지원하지 않았을 테니까.
교도관들도, 죄수들도 모두 소모품일 뿐이다.
“외벽 위에서 순찰을 돌다 실족사, 그쯤이 좋겠어.”
소장은 상부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게렉의 죽음에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떠넘겼던 업무 일정 부분을, 다시 자신이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몹시 귀찮을 뿐이었다.
‘잠깐 고생을 해야겠군. 뭐 곧 수석 교도관이 도착할 테니.’
똑똑.
“들어오게.”
문이 열리고, 우의를 걸친 교도관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일단 죄수들은 모두 진정시켜 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수고했네.”
“이대로 대기시키면 되겠습니까?
“어렵겠지만, 폭행에 가장 직접적으로 가담했던 놈들 몇 명만 골라내게.”
사각사각.
보고서 위를 움직이는 펜은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총살하게. 교도관 살해가 규정상 그러하고, 죄수들에게 본보기를 보일 필요도 있으니.”
어차피 달마다 나오는 감찰관은 광산의 남은 매장량이나 공장이 잘 돌아가는지만 확인할 뿐, 그 외의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죄수들이 내기로 걸었던 돈은 어떻게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교도관의 얼굴에 얼핏 기대감이 어렸다.
자신이 키프텔에게 걸었던 돈이 원복 될지도 모른다고.
“뭐, 그것까진 내버려 두게. 죄수들도 민심이란 게 있으니. 총살에 돈까지 빼앗으면 반발이 심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교도관이 고개를 꾸벅였다.
몸을 돌려 나가려던 그가 깜빡했던 것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한 가지 더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그, A반 8번 방의 카인 말입니다.”
“그 친구도 현장에 있었나?”
“…싸움 참가자가 카인입니다. 상대는 14번 방의 키프텔이라는 죄수였습니다.”
소장의 이마가 살포시 찌푸려졌다.
“팔다리를 못 쓸 텐데?”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몸이 멀쩡했습니다. …그리고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농담을 하고 싶나?”
정작 본인도 게렉의 죽음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했다.
“저, 정말입니다.”
소장이 고개를 들어 교도관을 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하아. 일단 알겠네. 나가 보게. 내일 아침에 카인을 데리고 오도록 하고, 내가 직접 확인해 볼 테니.”
“예. 알겠습니다.”
교도관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쏴아아-
빗소리를 들으며, 소장은 보고서 작성을 마쳤다.
그리고 눈을 감고 양손을 깍지 낀 채 기도를 올렸다.
‘아쉬운 친구야. 나처럼 신을 믿었으면 그리 허무하게 죽지 않았을 것을.’
물론 게렉을 위한 기도는 아니었다.
‘게렉 그 친구 재산이 아깝긴 하군. 계좌에 있는 돈 모두 국가에 귀속될 테니….’
신앙심은 진실되지만, 남을 위해 진심으로 빌어본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얼마 남지 않은 정년, 탈 없이 보낼 수 있도록 해 주소서.’
그저 스스로의 안위를 위한 기도를 올릴 뿐.
* * *
다음 날 아침.
소장의 집무실.
“좋은 아침일세.”
“예.”
“간밤에 일이 조금 많았는데 말이야.”
나는 짐짓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말했다.
“게렉 교도관님의 일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눈을 감고 양손을 모아 쥐었다.
소장이 나를 따라 자세를 취했다.
시간이 지나고, 동시에 눈을 떴다.
“누구도 상황을 막을 수 없던 분위기였다고 들었네. 사고란 게 원래 갑작스럽게 일어난다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일이지. 장례는 저녁에 간소히 치를 생각이네.”
“그분의 영혼은 여신님이 잘 인도해주실 겁니다.”
소장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차 좀 들겠나?”
“예.”
쪼륵.
“죄수들이 여흥으로 내기를 즐긴다는 건 알고 있었네.
나는 찻잔을 들며 소장을 바라보았다. 슬슬 본론을 꺼내는 눈치다.
“그리고 자네가 싸움에 참가했고, 꽤 격렬했다고 들었네.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지금 자네를 보니 그 보고가 사실인 것 같아.”
내 얼굴과 팔뚝 곳곳에 나 있는 생채기들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간밤에 치유마법으로 다스렸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아까 들어올 때도 평소처럼 다리를 절지 않더군. 조금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나?”
의문스런 소장의 눈빛.
달각.
찻잔을 내려놓고, 준비한 대사를 차분히 읊조렸다.
“전 구원 받았습니다.”
“구원이라니?”
소장의 눈에 이채가 감돈다.
짚이는 게 있을 터다.
소장 같은 고위직이라면, 교단과도 어느 정도 교류가 있을 테고, 그에 대한 지식도 적지 않을 테니까.
“전 이곳에 들어와 깨달았습니다. 밖에서 지금껏 정녕 잘못된 삶을 살아왔단 걸 말입니다.”
나는 목걸이를 매만졌다.
옷 앞주머니엔 성경을 꽂아 놓은 상태였다.
“정확히는 소장님 덕에 성경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게 된 이후부터입니다.”
여기서 띄워주기 한 번.
소장이 큼, 하고 마른기침을 삼켰다.
“주말마다 성당에 나가 설교를 듣고, 방에 돌아와서는 이고르 형제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소장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긴장과 기대 등의 여러 감정이 얼굴에 엿보였다.
“…그리고 에스텔 사제님이 저를 꾸준히 치료해 주시던 중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힘줄이 끊긴 쪽의 손바닥을 자유자재로 쥐락펴락 해 보였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필시 저와 에스텔 사제님, 그리고 함께 기도해준 이고르 형제의 신앙이 여신님께 닿아 일어난 기적이라 생각합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장님의 가르침 덕입니다.”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네만….”
소장이 생각에 잠긴다.
현 상황과 자신의 상식을 대조해 보고 있겠지.
깊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잇는다.
“그래서 전 제가 여신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제가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요.”
“……?”
“여신님의 신상을 세우고 싶습니다.”
소장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신상? 공터에 있는 것과 같은 것 말인가? 자네 마음은 알겠네만 현실적으로….”
“무얼 말씀하시는지는 압니다. 신상을 만들 재료도, 그걸 깎을 기술자도 구해야 하지요.”
“맞네. 의욕만으로 쉽게 실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네.”
나는 주머니에서 수첩 종이 한 장을 꺼내 소장 쪽으로 밀었다.
“2,555,000…. 이게 무슨 숫자인가?”
“어제 받은 배당금입니다. 이고르 형제의 도움을 받았기에 순전히 제 돈은 아니지만, 그는 이미 신상을 세우는 데 동참 의사를 밝혔습니다.”
“…내 생각보다 꽤, 내기 규모가 컸던 모양이구만.”
소장이 마른 침을 삼켰다.
“여신님의 가호로 얻을 수 있던 돈이니 모두 수도 교단에 기부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 전달은 소장님이 맡아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희는 교도소를 나갈 수 없으니까요.”
“에스텔 사제에게 맡기는 게 편하지 않겠나? 사제도 종종 수도에 다녀오는 걸로 아네만.”
소장이 자세를 고쳐 앉는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단지 체면을 차리기 위해 던져 보는 말임을 나는 알고 있다.
“아닙니다. 소장님이 맡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소장님 덕택이 크니까요.”
“그럼 알겠네. 자네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 에스텔 사제에겐 따로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 될 것 같네. 이것 말고도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은 사람이니.”
“알겠습니다.”
소장의 얼굴을 스치는 안도감.
사양하는 걸 내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까 조마조마했겠지.
“단 기부에 조건이 있습니다. 기부금의 일부로 광산의 광석들을 구매하고 싶습니다.”
“광석 말인가?”
“예. 신상을 깎을 재료 말입니다.”
나는 소장에게 설명했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광석이 필요한지.
또 얼마만큼의 분량이 들어가는지.
“흠….”
고민하는 척하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다.
255만 실링.
소장의 연봉을 생각하면 큰 금액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금액도 아니다.
‘빼돌리겠지.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게다가 내가 요구한 양은 광산의 전체 채굴량에 비하면 손톱만큼도 되지 않는다.
“재료가 있다 해도, 신상은 누가 깎는단 말인가? 이런 오지까지 기술자를 부르기엔….”
계획대로다.
「사제의 신성 마법으로 힘줄이 복원되었다.」
이 말을 소장이 어느 정도 믿느냐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소장 같은 부류를 움직이려면 행동에 대한 명분도 함께 주어야 하지.’
여신이 내린 구원의 산증인이자 독실한 신자의 바람을 들어준다는 명분.
거기에 자신이 어떻게 처리하든 남들이 모를 눈먼 돈까지 생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챙길 것이다.
여신의 화를 사지 않는다고, 본인이 생각하는 적정선 내에서.
“신상은, 제가 직접 깎을 수 있습니다.”
* * *
“따라서 오게. 작업실이 완성되었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담당 교도관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난 아직도 안 믿겨. 처음 들어올 때부터 연기했다는 거잖아?”
“그건 아닐걸. 듣기론 사제님이 기적을 내려 주신 거라던데.”
가는 길목마다 죄수들이 수군거려왔다.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휙 돌리거나 눈을 내리깔기 바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반장이란 직위는 누구든 남은 형기를 괴롭게 만들 수 있는 위치였으니까.
전과 같았다면 노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나를 보고 시비를 걸어오는 녀석들이 진즉에 생겨났을 것이다.
“아, 이거 먹고 또 일하러 가야 하잖아.”
“그래도 넌 공장이라 낫지. 난 땅 밑으로 먼지를 뒤집어쓰러 가야 한다고.”
“엊그제 전체 휴무 내려졌을 때가 좋았는데. 어디 또 누구 안 끌려가나.”
폭행 주모자로 몰린 4명은 교도관들에게 끌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말은 안 했지만 모두가 알았다.
그들이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다만 애도하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하루 간의 전체 휴무와 저녁 특식.
눈앞에 내려진 당근을 먹어 치우기 바빴을 뿐.
애당초 친한 몇몇 외에 죄수들 간에 동료애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교도관님.”
앞서 걷던 교도관이 내 부름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오히려 달라진 게 있다면 교도관들이다.
죄수들의 분노.
그리고 게렉의 죽음.
‘게렉 꼴 날까 봐 두려운 거겠지.’
태도가 유해지거나.
긴장한 티를 역력히 드러내거나.
키프텔을 때려눕힌 장본인과 함께 있다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교도관의 얼굴엔 긴장 외에도 다소 피로감이 어려 있었다.
격일로 이어지는 휴무에 제대로 쉬지 못한 탓이었다.
바로 어제, 게렉의 관을 땅에 묻느라 비번이던 이들이 모두 동원되었으니.
“드십시오.”
나는 주머니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 건넸다.
쪼개어 먹을 수 있는 직사각형 바.
하나에 5천 실링에 달하는 고급 브랜드 제품으로 각성 성분이 함유되어 있었다.
몇 주 전 사일로를 포섭했고, 그 결과 어제 매점에 들어온 물량을 모두 내가 사들였다.
‘촉매 재료로 쓰일 양은 이미 충분하니.’
소장은 내게 담당 교도관을 붙였다.
그래 봐야 동선 간 이동을 함께하고 작업실 문 앞을 지키는 것 정도지만.
자주 볼 얼굴이니, 나에 대한 경계를 풀어놓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아, 아아. 고맙네.”
오래지 않아 작업실 앞에 도착했다.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가건물이었다.
‘나쁘진 않군.’
교도관에게 목례 후, 안으로 들어갔다.
성인 남성 키만 한, 제각기 다른 종류의 4개의 광석 ‘덩어리.’
구석 책상 위 준비된 조각칼, 정, 끌 따위의 도구들.
모두 내가 요청한 대로였다.
앞치마를 두르고, 정과 망치를 들었다.
깡! 깡!
각 ‘덩어리’들에서 작은 조각들을 얻어낸 뒤, 초콜릿 조각과 함께 손바닥 위에 올렸다.
「연성」
몰려든 마나가 들끓으며 손바닥이 뜨거워진다.
오래지 않아 초콜릿과 광석 조각들이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고체와 액체, 그 사이 어딘가의 물질들이 한 점에 모여 엉겨든다.
환한 빛이 일었다 사라지고, 그 자리엔 구슬 형태의 단단한 촉매가 남는다.
[회로 레벨: 1]
[마나: 60 / 260]
‘알고는 있었지만 마나를 엄청나게 잡아먹는군.’
마나로 열을 가해 물질의 원소 비를 흐트러뜨리고 융합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는 마법.
쉬이, 또 자주 쓸 수 있는 마법은 아니었다.
현재 내 레벨로서는.
성경을 꺼내, 완성된 촉매를 수납공간에 넣었다.
외벽의 강도와 그걸 뚫기 위한 마법의 출력은 이미 계산을 마쳤다.
사용할 마법은「화염 폭발」.
어느 정도 한계선이 있지만, 촉매는 한 번에 여러 개의 사용이 가능하다.
‘원하는 양을 모으려면 한 달은 걸리겠군.’
조바심낼 필요 없다.
어차피 탈옥 직후 편히 움직이기 위해 안배해 두어야 할 것들도 있으니.
“…소장에게 보일 것도 있으니 남은 마나로는 조각을 하면 될 테고….”
도구를 들고, 조각을 깎기에 가장 적합한 광석 덩어리 앞에 섰다.
소장은 조각에 문외한이었다.
책에서 읽은 지식이 있으니, 전문가 행세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 「이해력」 특성은 마법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니.’
깡!
나는 거침없이 정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신상을 조각할 생각은 맞다.
다만 신을 기리기 위함은 아니다.
깡!
절벽 쪽 외벽에도 경비병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폭발 마법은 필연적으로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깡!
즉, 안전하게 탈옥하기 위해선 다른 곳에 시선을 모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외벽 감시를 서는 모든 인원이, 그곳으로 지원을 나갈 수밖에 없도록.
그 정도로 화려하게.
깡!
나는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완성된 신상을, 어디에 설치하도록 유도하면 좋을지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