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화. 역 배당 (2)
「기민한 발놀림」
「근력 강화」
「단단한 피부」
풍(風)과 금(金)의 주 원소와 14종의 보조 원소가 3갈래의 융합을 동시에 마치고 온몸에 기운을 불어 넣는다.
쐐액-!
우와아아아아─!
내가 녀석의 주먹을 피한 순간 다시 한 번 함성이 크게 울렸다.
나는 키프텔과 거리를 벌리고 주위 반응을 살폈다.
─야, 봤어? 지금 저 새끼 움직인 거 봤냐고?
─다리가 멀쩡하잖아. 그동안 숨긴 거야 저 새끼!
─블루서펜트 간부라고 했잖아. 설마 지금까지 큰 그림 그린 건가?
죄수들은 문제가 없다.
어차피 저들끼리 알아서 납득하고, 새로 생긴 화젯거리에 열을 올릴 뿐일 테니까.
감시탑으로 시선을 돌렸다.
잔뜩 당황한 얼굴의 게렉.
하급자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탐지기를 찾아오라는 거겠지.’
탐욕스럽긴 하나 머리가 비상한 인간.
그 짧은 순간 가능성 하나를 떠올렸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강화 계열 마법의 발현은 대개 신체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내가 착용한 목걸이는 신체에 흐르는 모든 마나를 은폐한다.
전문 장비를 사용해도 탐지해 낼 수 없다.
‘어차피 장비를 찾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테니 심어둔 「바람 덩굴」은 그 전에 이용하면 된다.’
“신참! 어딜 보고 있냐!”
쐐액-!
어느 새 거리를 좁힌 키프텔이 주먹을 날려 왔다.
침착히 피하며, 사고를 이어갔다.
‘아직 판돈을 더 키워야 한다.’
죄수들은 물론 교도관들도 아직 주머니를 완전히 열지 않았다.
걸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슈욱! 탁! 탁! 탁!
살가죽과 살가죽, 혹은 뼈마디와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가 녀석과 나 사이를 난폭하게 채워간다.
─죽여! 밀어붙여!
─더 세게 때려! 더! 더!
주먹을 쳐낸다.
몇 번은 일부러 허용한다.
아슬아슬하게 막아내기도 한다.
그럴수록 죄수들의 흥분은 고조된다.
우와아아아아─!
탁! 탁! 탁!
펀치를 막아 낸 팔뚝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단단한 피부」의 출력이 최대치가 아니라곤 하나, 절대 무시할 순 없는 위력이다.
‘지금이다.’
치열한 공방 중 발견한 빈틈, 녀석의 얼굴에 묵직한 한 방을 꽂아 넣는다.
텅!
둔탁한 파열음.
녀석이 볼썽사납게 나가떨어졌다.
우와아아아아─!
광분. 함성. 함성. 함성.
무너질 듯 덜컹거리는 철망.
그를 진정시키기 위한 교도관들의 고함.
손끝에서 올라오는 저릿한 감각.
고개를 돌리자 ‘수첩’에게 지폐 뭉치를 들이대고 있는 죄수들이 보였다.
띵.
[‘카인 리베르’와 동기화가 진행 중입니다.]
[현 동기화율 - 70.6%]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분명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즐기고 있었다.
“일어나라.”
“잠깐 생각 좀 하느라. 힘을 숨기고 있을 줄은 알고 있었지.”
퉷-.
뱉어낸 피가 바닥에 철퍽 달라붙었다.
녀석의 얼굴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블루서펜트 간부라더니 이름값 하네.”
탁!
녀석이 땅을 박차며 달려든다.
‘즐겁긴 하지만.’
감정에 휩쓸릴 생각 따위는 없다.
사전에 계획한 대로, 철저한 계산에 따라 움직인다.
공방을 주고받는 사이마다, 강화마법 3종의 발동과 해제를 쉼 없이 반복해 마나 소모를 최소화한다.
마나 소모가 심할 것 같은 공격은 「바람 덩굴」을 발동해 녀석의 스텝을 꼬이게 만들어 회피한다.
“헛걸음질을 많이 하는군. 다리 병신 흉내를 내는 건가? 이전의 나처럼?”
“이 씹어 먹을─.”
싸움이 길어지지만 녀석은 지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더 빠르고, 매섭고, 난폭해져간다.
싸움에 몰입할수록 본능이 이성의 자리를 대신하는 까닭이다.
‘슬슬 내게 걸릴 돈은 다 걸렸겠지.’
공격을 막아내며 몰핀 쪽을 본다.
스치는 시야.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녀석이 입술을 움직여 입모양으로 말한다.
「6대4.」
내 쪽이 4다.
이제 다시 비율을 조정할 차례다.
─ 신참! 뭐 하는 거야! 아까의 그 기세는 어디가고!
─ 지면! 내 손에 죽는다! 2달치 월급 다 걸었다고”
베팅 가능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구경꾼들은 조급할 수밖에 없다.
“개새끼! 좀 쓰러져!”
공격의 비중을 줄이고 방어에 치중한다.
숨을 헐떡이고, 수세에 몰려가는 것처럼 연출한다.
거리를 벌리는 나를 따라, 키프텔이 사냥개처럼 쉼 없이 달라붙는다.
탁! 쿵!
그리고 이어지는 키프텔의 태클.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
녀석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몸에 올라탄 채, 핏발 선 눈으로 주먹을 계속 내리칠 뿐.
퍽! 퍽! 퍽!
양팔을 모아 가드를 올린다
한 방 한 방이 망치로 내리 치는 것 같은 충격이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
누가 보아도 완전한 열세와 절망을 연기해야 하니까.
─베팅 마감까지 3분! 3분 남았어!
“이 새끼가 아까부터 계속 딴 데를 보네. 아직 여유가 있나 보지?”
타격이 거세진다.
녀석의 뒤로 어둑어둑해지고 있는 하늘이 보인다.
모여들고 있는 짙은 구름 역시도.
그리고 게렉이 보인다.
녀석은 죄수를 통해 ‘수첩’에게 뭔가 전해 보내고 있었다.
‘예상대로.’
상황이 명료할 때만 베팅한다.
낮은 배당률을, 한도까지 건 베팅 금액으로 커버한다.
그게 이제까지 게렉이 보여 온 패턴이었다.
투둑투둑.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굵어져 얼굴과 몸 곳곳을 때려왔다.
바짝 말라 있던 목구멍에 습기가 차올랐다.
때리다 지친 기색으로 키프텔이 말했다.
“헉, 헉…. 비가 오네. 네 녀석 죽는 날 날씨론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베팅 마감까지 1분!
─키프텔! 키프텔에게 1만 실링!
─3천 실링!
죄수들이 ‘수첩’에게 급박히 몰려든다.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숫자.
오래지 않아 외침이 들린다.
─베팅 끝! 이제 더 이상 못 걸어!
“…난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뭐?”
말없이 「근력 강화」의 출력을 최대로 높인다. 내리치는 녀석의 팔을 붙잡는다.
다른 한 손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키자, 녀석의 자세가 흐트러지고 반대편으로 몸이 기운다.
“어, 어?”
땅에 발을 딛고, 당황한 녀석을 힘껏 엎어 쳐 날려 버린다.
챙-!
녀석의 몸이 철망에 날아가 꽂혔다. 그러다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일순간 찾아온 정적.
쏴아아-
이내 함성이 터졌다.
빗소리에 묻혀 그 내용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히힉. 그래 이제 진짜 실력 발휘를 하네. 기다리고 있었지 내가.”
녀석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어깨까지 들썩이며.
‘이제부터가 진짜다.’
온몸의 긴장을 곤두세운다.
남은 마나를 아낌없이 끌어 올려 강화마법의 출력을 높인다.
콰광─!
빗줄기 속 천둥이 치기 시작한다.
폭력과 폭력이 맞붙는 순간.
이제까지와는 서로 전혀 다른 움직임의, 전력투구였다.
쏴아아-
막고, 때리고, 피하고, 구르고.
공방이 격렬해질수록 사람보다는 짐승의 싸움에 가까이 변해간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체력과 마나는 급속도로 깎여 나간다.
콰르릉─!
그 사이 세상이 몇 번인가 점멸한다.
죄수들의 고함이 빗소리에 섞여 이지러진다.
어느새 내기의 승패와 관계없이, 싸움 자체에 깊이 몰입해 있음이 느껴졌다.
“히힉!”
우위는 쭉 내 쪽이지만, 키프텔은 쓰러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들이라면 몇 번을 실신했을 상황에, 벌떡벌떡 일어나 버린다.
땅에 몸이 닿을 때마다 에너지가 회복되는 것처럼, 더 기민하고 난폭해진 움직임으로.
‘…하지만 상관은 없다.’
쓰러지지 않으면 쓰러질 때까지 때려눕히면 되는 일이니까.
녀석은 일어날 때마다 몸의 잔 흔들림이 늘고 있다.
체력이 분명하게 소진되고 있다는 증거다.
계속 난타전이 오간다.
거리를 좁혔다 벌리며 서로에게 데미지를 누적시킨다.
당장 누구 하나가 기절해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마나는 아직 여유가 있다. 이대로 시간을 끌어도 괜찮지만, 변수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감시탑을 본다.
게렉은 몇 번이고 쓰고 있던 마나 탐지경을 내려놓은 채다.
긴장 가득한 얼굴로 이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하늘을 본다.
일정 주기로 천둥 번개가 치고 있다.
그 속에 담긴 마나의 흐름을 본다.
결국 자연 현상도 대기 중 마나가 뒤엉키고 그 안의 원소들이 맞부딪혀 일어나는 현상.
「마나 감응」특성을 지닌 내게는 보인다.
원소들의 움직임.
원소들의 충돌.
원소들의 화학 작용.
그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탓!
키프텔을 향해 뛰어든다.
녀석 역시 마주 달린다.
쿠르릉─
번개가 내리치는 타이밍.
그 순간을 읽는다.
2초. 1.5초. 1초. 0.5초
바로, 곧 지금.
콰광!
세상이 빛으로 둘러싸인 그 찰나, 끌어올렸던 전(電)계 원소를 순식간에 마법으로 발현해 낸다.
파지직!
「차지드 볼트」
주먹 끝에 맴도는 푸른 빛 뇌전이 녀석의 몸에 닿는다.
빛이 사라지고 세상이 원래의 색을 되찾는다.
실제로는 극히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전후의 장면은 바뀌었다.
코트 안에 선 사람은 둘에서 하나로 줄었다.
키프텔은 멀찍이 밀려나 바닥에 쓰러져 있었으니까.
의식을 잃은 듯 한참을 일어나지 않는다.
─이겼어! 카인이 이겼다고!
잔뜩 흥분한 죄수들.
당장이라도 철망을 넘어트릴 기세다.
내 이름이 쉴 새 없이 연호된다.
─카인!
─카인! 카인!
─카인! 카인! 카인!
…머리가 울린다.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몸 곳곳이 욱신거리고 속도 좋지 않다.
확실한 승자 선언을 위해, 키프텔에게 다가간다.
까뒤집은 눈으로 몸을 움찔거리고 있는 녀석.
출력 조절을 했으니 큰 내상을 입진 않았을 거다.
탕!
그때 총소리가 울렸다.
내 발 바로 앞에 작은 구멍이 패여 있었다.
─중단! 날씨 때문에 중단이다!
확성기를 든 게렉.
뻔한 일이다.
키프텔에게 큰 금액을 베팅했겠지.
─이 싸움은 무효다!
빗줄기에 소리가 조금 묻히긴 하나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곧 죄수들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우! 말도 안 돼!
─날씨 때문에 중단시킬 거면 진작시켰어야지!
게렉은 반발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난간에 몸을 더 바짝 붙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다! 카인!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였다간 발포하겠다!
조금만 더 허리를 숙이면 그대로 떨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자세로.
─우우우우!
죄수들이 감시탑을 향해 돌멩이며 음료수 캔이며 던지기 시작했다.
빗줄기와 바람이 거세 대개는 난간에 부딪혀 떨어졌다.
─이것들이!
움찔하며 난간 뒤로 숨던 게렉.
투사체들이 거리가 닿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는 더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이것들이! 교도관 지시를 무시하는 건가! 당장 멈추지 못해! 너희는 모두 벌점이다!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게렉은 지금 마나 탐지경을 쓰고 있지 않다.
눈치를 보아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육안으로 알아볼 수 없는 마법이라면, 발현점이 신체 외부에 있다 할지라도.
교도관들도 총구를 죄수들에게 겨누느라 내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 상태였다.
나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어 눈치를 살피다 힘껏 던졌다.
쉬이익-!
목표는 게렉의 몸 뒤, 빈 공간.
돌이 빗줄기를 뚫고 매섭게 날아갔다.
돌이 목표지점을 지나는 순간, 나는 돌에 각인되어 있던 마법을 발동시켰다.
거센 바람이 게렉의 등을 떠밀었다.
다른 교도관들이 붙잡을 틈도 없이, 녀석이 난간 아래로 떨어졌다.
─ …….
떨어진 곳은 철망 안, 죄수 무리 한복판.
죄수들이 피라냐처럼 달라붙어 게렉을 짓밟는다.
─ 끄억! 꺽!
─ 떨어져! 떨어져라!
교도관들이 허둥지둥 총구를 겨눴지만 발포하지는 못했다.
함부로 쏘았다 게렉이 맞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시야가 어두우니 더더욱.
─ 떨어져! 떨어져라!
할 수 있는 건 그저 황급히 감시탑에서 내려와 공터 안으로 진입하는 것뿐.
─ 흩어지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 좆까! 어디서 우리 내기에 개수작이야!
─ 이, 이 새끼들이.
탕! 탕!
바닥에 연달아 총을 내리쏘지만 물러나는 죄수의 숫자는 많지 않다.
애초에 무리 안쪽의 죄수들은 총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했을 거다.
비와 함성, 소음 가득한 상황이니까.
탕!
─ 다시 한번 경고한다! 흩어져라!
역시 큰 효과는 없다.
교도관들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역력하다.
‘딜레마군.’
찔러 주는 돈이 없으면 대놓고 차별을 가하던 게 교도관들이니, 쌓여 있는 반감이 적지 않다.
함부로 진입하자니 게렉과 같은 꼴이 날 것 같고, 그렇다고 무차별 난사를 가할 수도 없다.
죄수들의 분노에 한 번 붙어 버린 불은 쉬이 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비가 아무리 세차게 내린다 해도 말이지.’
나는 의식 없는 키프텔을 흘긋 확인하고는 코트 철망 문으로 향했다.
밖엔 부하들이 자물쇠를 풀고 기다리고 있었다.
끼익-
“고생하셨습니다. 카인 님.”
언제 수감건물까지 뛰어갔다 왔는지 몰핀의 손엔 우산이 들려 있었다.
난 이고르를 보며 말했다.
녀석은 어딘가 감격한 얼굴이었다.
“‘수첩’은 챙겼나?”
“예. 일단 제퍼를 붙여 자기 방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걷은 돈 모두 챙겨서요.”
“잘했다.”
“아,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는 아직 대치 중인 교도관과 죄수 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수감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지.”
“예.”
나를 따라 우산이 움직였다.
내일부터, 아니, 어쩌면 당장 오늘 밤부터 몹시 바빠질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