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화. 믿음 (1)
똑똑.
“소장님. 게렉입니다.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자리를 비운 듯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게렉은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어차피 간단한 내용의 보고.
보고서만 책상 위에 올려 두고 나올 생각이었다.
“…….”
…그럴 생각이었는데.
응접용 테이블 소파에 앉아 있는 한 인물을 보고 게렉은 인상을 찌푸렸다.
카인.
한 달 전에 들어왔던 죄수.
블루서펜트의 전 간부라고 했다.
사실 그 위명이 잘 와 닿진 않는다.
경찰 생활을 하며 제대로 현장을 뛰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상부에 뇌물을 먹이거나 지병 핑계를 대는 둥 온갖 수를 써가며 편한 곳에서만 근무해 왔다.
“소장님은 자리를 비우셨나?”
“예.”
‘건방진 놈. 교도관을 봤으면 일어나서 인사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게렉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 녀석의 눈빛은 입소할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죄수들에게 그토록 시달리고, 또 독방까지 다녀왔음에도 말이다.
‘게다가 나를 더러운 물건 보듯 하고 말이지.’
눈치 하나로 지금껏 살아남았다.
자신은 사람 눈빛에 담긴 아주 미묘하고도 은밀한 속뜻까지도 캐치해 낼 수 있었다.
카인이 쏘아 보내는 감정은 혐오감이었다.
불쾌하고, 역겨운 생물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
‘목걸이는 또 뭐야? 꼴에 성당에도 나가고 있는 건가?’
울컥 화가 치밀지만 참는다.
상급자의 집무 공간에서 자신이 멋대로 죄수를 교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넘어가 주지. 적어도 지금. 이 장소에서는.’
요 몇 주 소장의 체스 교사 노릇을 하고 있다지만, 어차피 죄수는 죄수일 뿐이다.
최근엔 조용히 지내고 있어 달리 건수를 잡을 일이 없긴 했다.
하지만 녀석의 형기는 길다.
자신의 남은 근무 기간도 길다.
‘언젠가 하나는 잡히겠지.’
책상 위에 보고서를 올리고 방을 나가는 게렉.
탁.
“…….”
카인의 시선이 닫힌 문에 머물렀다.
저 물욕 가득한 돼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뻔했다.
사람의 눈빛이나 몸짓에서 풍겨 나오는 미묘한 뉘앙스를 읽어 내는 일엔 카인도 익숙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저런 녀석 따위 신경 쓸 틈은 없다.’
카인은 파일철에서 보았던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급하게 현장을 정리하느라 서류를 모두 살피진 못했다.
하지만 이미 정보는 충분했다.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이곳을 벗어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 * *
“청소 구역은 누가 지정하지?”
“반장이 정합니다. 교도관들은 시설이 깨끗하기만 하면 누가 어디를 청소하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눈치를 보며 답하는 이고르.
내가 말없이 쳐다보자 큰 잘못을 깨달았다는 듯 허둥댔다.
“아, 아! 지금 구역이 마음에 안 드시면 바꿔 드리, 아니, 바꾸시면 됩니다! 바, 반장은 카인 님이니까요.”
녀석은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치료를 받아 어느 정도 회복은 되었지만, 이전처럼 손가락을 쓸 수는 없는 상태였다.
“A반 죄수 중 자재 창고로 가는 인원들이 있더군. 거기에 나를 넣어라.”
“예? 거기는 철망 밖이라 꽤 걸어가야 하는데요. 청소가 끝나고 쉴 시간도 안 남아서 보통 가장 힘없는 죄수들이 갑니다.”
“…….”
다시 쏘아본다.
이번엔 붕대를 감지 않은 멀쩡한 손가락을.
“히, 힉! 죄, 죄송합니다. 다, 다 이유가 있으실 텐데.”
알아서 반응하니 편리하기 짝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빗자루를 들고 자재 창고 깊숙이 들어왔다.
드- 드- 드-
쌓여 있는 자재 사이, 발전기 몇 대가 소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 사이를 지나, 벽에 다다랐다.
‘이 벽 바로 너머에 교도소의 외벽이 있다. 이 창고가 외벽에 딱 붙어 있는 구조이니.’
외벽 강화재엔 아다만티움이 쓰였다.
높은 강도와 마법 저항력을 지닌 금속.
하지만 이 부근의 외벽은 다른 곳에 비해 그 강도가 훨씬 약하다.
‘왜냐하면 다른 금속이 쓰였으니까.’
‘아다만티움’과 외형 및 특성은 같지만 성능은 훨씬 떨어지는 ‘아르콘’이 말이다.
내가 습득한 정보를 조합해 내린 결론이었다.
시설 공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읽었다.
교도소 건설 당시, 어떤 자재가 얼마큼 발주되었으며 또 어디에 쓰였는지.
‘아다만티움의 발주량과 실제 사용량 수치가 맞지 않았지.
그 부족분의 사용처는 서류상 다른 곳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부족분만큼 아르콘이 발주되었다.
사용처는 마찬가지로 나와 있지 않았고.
‘…총책임자가 아다만티움을 빼돌려 먹었다는 얘기가 된다.’
뒤가 구려 완공 다음 해에 스스로 사퇴했다는 가정도 설득력 있다.
빼돌린 자재만 팔아도 평생 먹고살 돈이 생길뿐더러 범죄현장에 계속 머무르는 건 썩 좋은 생각이 아니니까.
내가 총책임자였다면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생각했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만에 하나 발각되는 일이 없길 바랐을 것이다.
‘외벽에 붙어 있는 건물은 이 창고 하나뿐이지.’
두 금속의 외형이 같다고는 하나 벽같이 큰 건축물을 만들 때는 티가 나기 마련이다.
당시 책임자는 ‘아르콘’이 쓰인 이곳 벽을 창고로 가려 버렸다.
‘바깥은 바다로 떨어지는 절벽이니 외부에서 보일 일도 없다.’
창고에 들어오기 전, 창고와 벽 접촉면 근처를 불로 지져 보았다.
그을린 자국이 남았다.
아다만티움이 쓰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
그때 깨달았다.
이곳이 내 활로임을.
[회로 레벨: 1]
[마나: 215 / 215]
다만 지금 내 수준으론 폭발형 마법을 쓴다 해도 이곳을 뚫을 수 없다.
아다만티움에 비해 성능이 떨어질 뿐 아르콘 역시 만만치 않은 금속이다.
‘계속 수련을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반년 이상은 걸린다.’
그렇게 오래 이곳에 갇혀 있을 생각은 없었다.
‘단시간에 마법의 위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생각은 길지 않다.
곧바로 한 가지 가능성이 머리를 스친다.
‘촉매.’
마법의 효과를 증폭시켜주는 일회성 혼합물.
주재료는 귀금속과 희귀 식물류.
단, 증폭된 마법을 감당하는 건 어쨌든 마법사 본인의 몸이기에, 자주 사용할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다.
‘폭발 계열 마법에 쓰이는 촉매의 재료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시작한다.
필요한 대다수 귀금속은 A반 노역지인 광산에서 구할 수 있다.
다만, 나는 출입 금지를 당했기에 내려갈 수 없고 감시가 삼엄해 부하들을 시켜 빼 올 수도 없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수적인 재료들은 매점에서 구할 수 있다.’
매점 담당 사일로가 바깥으로 통하는 줄이 있다고 들었다.
쓰임새가 의심받지 않을 물건이라면 돈을 조금 쥐여 주면 들여올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특정 성분을 함유한 비누나 초콜릿 같은 것들.
‘고급 브랜드의 것들일 확률이 높다. 한두 개가 필요한 게 아니니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들겠군.’
지금 있는 돈만으론 부족할지도 몰랐다. 계획을 위해서는.
* * *
휘릭- 턱.
휘릭- 턱.
책을 뺐다, 읽었다, 넣었다.
서가를 거닐며 텍스트를 거침없이 빨아들인다.
일 순위는 건축학 관련 서적.
외벽의 정확한 강도를 산출해 내야 하니까.
규모가 작은 도서관이지만 다행히 기본서 몇 권 정도는 구비되어 있었다.
원래는 교도관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지만, 나는 소장의 특별 허가를 받아 들어올 수 있었다.
「신앙 공부를 제대로 해 보고 싶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성경이나 성당에서의 설교만으론 부족한 게 많습니다.」
내 말에 소장은 기꺼워했다.
마치 자신의 가르침이 한 사람의 인생관을 바꿔 놓았다는 듯.
‘평소 종교 이야기를 많이 나누긴 했지. 체스를 두며 수시로.’
어차피 교도관들도 잘 이용하지 않는 공간이라 도서관은 적막하기 짝이 없었다.
편하게, 계속해서 책을 읽는다.
다른 분야의 텍스트도 닥치는 대로 흡수해,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을 완벽하게 갖출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책을 덮었다.
당장 필요한 정보는 얼추 모두 모았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도서관을 나와 수감 건물로 향했다.
가까워질수록 귀를 찌르는 함성과 야유 소리.
공터 구석에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는 게 보였다.
─ 때리라고 병신아!
─ 그것밖에 못 해? 내가 너한테 건 돈이 얼만데!
‘또 시작인가 보군.’
대출해 온 종교 서적을 품 안에 넣고, 가까이 향했다. 사람들 틈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죽여! 죽여!”
“아작내 버려! C반 떨거지에게 질 생각은 아니겠지!”
눈앞에 나타난 것은 다시 철망이었다.
흡사 농구대와 같이 생긴 골대가 세워진 작은 경기장 안에, 2명의 죄수가 엉겨 붙어 싸우고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마르코! 이 씹새끼! 지면 넌 내 손에 죽는다!”
흡사 투기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
교도관들도 감시탑 높이 좋은 자리에 모여 아래를 구경하고 있었다.
“마르코에게 2만 실링! 내가 1년 동안 모은 돈 전부다!”
“잠시만. 오케이 접수 완료. 근데 지금 걸면 배당률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 알지?”
수첩을 든 녀석 하나가 죄수들 사이를 바삐 돌아다녔다.
죄수들이 서열을 정리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벌이는 싸움.
엄밀히 말해 투기장과 다름없으며 교도관들의 승인을 받아 벌어진다.
승인 이유는 간단하다.
교도관들도 돈을 걸뿐더러, 교도소 생활이 지루하긴 그들도 매한가지니까.
나는 ‘수첩’을 불러 물었다.
“지금 양측에 걸린 돈의 비율이 얼마나 되지?”
“신참도 걸려고? 잠깐만 보자. 계산하면 대충 6대4 정도네. 마르코에게 걸린 돈 6이야.”
돈을 걸 생각은 없었다.
‘투기’는 자주 열리는 편이지만 전력 차가 크게 나는 이들이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열 정리란 보통 실력이 비슷한 이들 사이에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때문에 양측에 걸리는 돈도 거의 비등비등하다. 큰돈을 걸어도 배당금이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다.
세금을 걷고 매주 내기로 가진 돈을 불려도 내가 가늠하고 있는 금액에 도달하기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 방이 필요하다. 아주 큰 한 방.’
방법은 있다.
전력 차가 압도적으로 나는 두 상대가 붙는다면 판돈은 자연스레 한쪽으로 쏠릴 테니까.
나는 독방에서 돌아올 키프텔을 떠올리며, 다시 수감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 * *
설교가 끝나고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뒤의 성당.
아직 자리에 남아 있는 나를 보며 에스텔이 말했다.
“이제 사람들한테 안 맞고 다니나 봐요? 의무실에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 보면.”
“…내가 다치기를 바라나.”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뭔가 아쉬워서?”
그녀는 쿡쿡 웃다 말을 이었다.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요.”
나는 그녀를 따라 집무실로 향했다. 그래 봐야 단칸방에 불과하지만.
책상 위, 작은 상자 중 어디에 유물이 보관되어 있을지 가늠하고 있자, 곧 그녀가 차를 끓여 왔다.
달각.
두 개의 찻잔이 두 개의 입술로 향했다.
“소장님이 당신 칭찬을 대단히 많이 하던데요. 여신님을 따르는 독실한 신자가 한 명 생겼다고.”
“…향이 나쁘지 않군.”
“목걸이도 꼬박꼬박 하고 다니고. 무슨 생각일까요? 그냥 잘 보이려고?”
“끝 맛에 감도는 산미가 독특해.”
“말해 봐요. 당신 신 안 믿잖아요.”
“22번 구역에서 재배된 루테아 품종인가. 이런 조합이 가능한 차는 그것밖에 없지.”
“그건 또 어떻게 알았─. 아니, 이 차, 당신 얼굴에 좀 부어도 되나요?”
생글거리지만 그 위에 은은한 화딱지가 감돈다.
장난은 그만 쳐야 할 듯싶었다.
여기서 더 말을 돌렸다간 얼굴 전체로 차를 음미하게 될지도 모르니.
“…네 말대로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알아요. 그냥 당신은 뭔가, 다른 사람들과는 느낌이 달라서, 그래서 물어본 거예요.”
“이번엔 내가 묻지. 그쪽은 신을 믿나?”
그녀가 빤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잠시 내려놓은 찻잔을 손가락 끝으로 달그락거리면서.
끝내 그녀가 말했다.
“내가 그렇게 겉으로 티가 났나. 뭐, 이미 답을 알고 묻는 거 같은데─.”
그녀가 작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쌓아두었던 감정을 풀어내듯이.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어요. 먼 옛날엔 여신님이 직접 세상에 현신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니까요.”
그녀가 찻잔을 홀짝였다.
“긴 세월 자신을 믿어오고 있는 신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고요.”
“굶주린 자들에게 구원을 내리지 않고 있지.”
“맞아요.”
“부당한 폭력을 세상에서 몰아내지도 않고 있고.”
“인정해요.”
“그쪽이 가지고 있는 마병(魔病)을 치료해 주지도 않았지.”
“그렇-.”
찻잔을 들어 올리던 그녀의 손이 멈칫했다. 얼굴이 딱딱하고도 매섭게 굳어갔다.
경계심 어린 날 선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놀람, 분노, 당황.
그녀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자신을 거둬 주었던 사제에게 밖에 이야기하지 않았던 사실일 테니까.
나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며 차를 홀짝였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