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8화 (8/227)

#008화. 체크메이트 (2)

내 말에 소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관심 있다 뿐인가. 내 인생을 바친 취미인걸.”

“그럼 실력이 상당하시겠습니다.”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수도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몇 번 입상한 적이 있네.”

아마추어 수준은 아니란 소리였다.

나는 넌지시 운을 띄웠다.

“저와 한 번 둬보시겠습니까? 저도 꽤 둘 줄 아는 편이니 시시하진 않으실 겁니다.”

“하하. 아닐세. 지금은 내가 처리해야 할 업무도 있고 하니.”

“혹시나 질 수도 있으니 그러시는군요. 이해합니다.”

내 도발적이고도 무례한 발언에 소장의 얼굴이 대번 굳어졌다. 잠시 후 원래의 인자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자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한번 해 보지. 내가 가르침을 주겠네.”

말투는 유했지만, 뻔히 화가 나 있는 게 보였다.

소장은 책장에서 체스판을 가져와 펼쳤다.

“선공은 양보하지. 백을 잡게.”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대국이 시작되었다.

일부러 시간을 끌며 수를 두었다.

소장이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가지고, 또 몰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아슬아슬한 공방이 오가고, 서로의 기물이 먹고 먹히고,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던 소장은 어느새 진지하게 대국에 임하고 있었다.

탁- 탁-

기물이 판을 내리치는 소리가 적막한 방 안을 채워나간다. 그리고 그 끝엔-

“체크입니다.”

“……!”

소장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부릅떠졌다.

“한 판! 한 판만 다시 두게!”

죄수들과 둘 때와 마찬가지로 판을 설계했다.

치열한 접전 끝에 단 한 수 차이로 내가 승리하도록.

소장은 대체 왜 자신이 졌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체스에 가진 자긍심이 적진 않았을 테니까.’

나는 흘긋 시계를 보며 말했다.

“곧 상담 시간이 끝납니다. 저는 이만 공장으로 복귀해야…….”

“상관없네. 내가 담당 교도관에게 말해 두지.”

“그러면 제가 덜 곤란해지긴 하겠군요.깜빡하실 수 있으니 지금 말씀을 전달해 주시면…….”

소장은 ‘끄응’하는 소리를 내더니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교도관을 불러 말했다.

“죄수 번호 776의 상담이 길어질 것 같네. 오전 노역엔 복귀하지 않는다고 담당 교도관에게 전달해 주게.”

“알겠습니다.”

교도관이 퇴장하고 다시 대국이 시작되었다.

형세가 불리해질수록 소장의 앓는 소리는 커져만 갔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네. 꼼짝 말고 있게!”

자존심이 걸린 문제에, 인간은 한없이 유치해지고, 또 한없이 단순해진다.

탁-!

문이 닫히고 몇 초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장 앞으로 다가섰다.

손바닥에서 일어난 푸른 기운의 마나가 자물쇠의 열쇠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안에서 열쇠 모양으로 변해 가던 마나는, 어느 순간 팍, 하고 사라져 버렸다.

“……?”

몇 차례 더 시도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마법 공학으로 만들어진 자물쇠인가. 쓸데없는 곳에 세심하기는…….’

마법 공학 제품은 대부분 수도에서 만들어진다.

자물쇠가 새것 티가 나는 거로 보아, 얼마 전 출장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물건으로 보였다.

「설계 도면 및 증축 계획도」

포기할 순 없다. 저 물건을 꺼내야 하니까.

「기억력」특성이 있으니, 꺼낸 후 페이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차례 넘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 모든 정보가 머릿속에 입력된다.

‘여기에 걸린 마법을 해제하기엔 아직 내 마나가 부족하다.’

방법은 일반적인 열쇠를 쓰는 것.

아마 소장이 가지고 있을 터였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원본을 손에 넣거나, 사본을 만들거나.

탁. 탁.

회로를 구축한 후 한껏 예민해진 청각에, 소장의 급한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화장실에서 좋은 수라도 생각났나 보지.

나는 재빨리 자물쇠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마나가 사라지고, 다시 밀어 넣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자물쇠 구멍에 맞는 열쇠 모양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끼익-

그리고 다시 문이 열리는 타이밍에 맞춰 자리에 앉았다.

“오래 기다렸나? 말을 건드리거나 한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안심하고 두셔도 됩니다.”

나는 픽 웃으며 말했다.

* * *

“그리하여, 선각자들은 방주를 만들고 악마의 공세를 막기 위해 벽을 쌓아 올렸으니.”

주말의 성당.

나는 단상에 선 에스텔을 바라보았다.

정식 예복 차림에 또박또박한 목소리.

뒤편에 자리한 거대한 여신상.

창에서 스민 오후의 햇살.

설교를 하는 그녀에게선 일견 성스러운 분위기까지 감돌았다.

“벽 너머의 땅은 마기에 잠식되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땅이 되었더라.”

어느 정도 상식적인 이야기다.

이 세계의 도시와 마을은 수도 아크라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펼쳐져 있다.

수도의 ‘벽’에서 멀어질수록 땅은 급격히 척박해진다.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니 가장 귀한 것이 식량이고, 가난한 이들은 주린 배로 살아간다.

“사제님. 정말 믿음으로 기다리다 보면 이 땅에 구원이 찾아올까요?”

단상 앞 의자엔 나를 포함해 스무 명 남짓한 죄수들이 경건한 태도로 앉아 있었다.

1동 죄수의 총인원이 500명가량이니, 그리 높은 참석률은 아니다.

‘대부분 높은 번호 대의 구역 출신이겠지.’

‘벽’ 바로 바깥 구역이 1번이며, 수도에서 멀어질수록 번호가 높아진다.

그와 함께 치안 수준이 급격히 하락하고 범죄율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개중엔 생계형 범죄도 적지 않다.

“물론입니다. 여신님께선 단지 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계신 겁니다.”

에스텔은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어딘가 갑갑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설교가 끝나고 죄수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성당을 떠나갔다.

에스텔은 끝까지 남아 있는 나를 보고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한동안 의무실에 뜸해서 죽은 줄 알았는데.”

“이런 곳에서 죽을 생각은 없다.”

“농담이에요. 그렇게 무서운 표정 마요.”

그리고는 나를 성당 한쪽에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따라서 와요. 줄 게 있어요.”

단출한 책상과 책장.

다닥다닥 꽂힌 성경과 예식 용품들.

종교 관련 행사를 할 때 쓰는 집무실로 보였다.

그녀는 책상 아래 놓인 상자에서 성경 한 권을 꺼내 내게 건넸다.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새것이었다.

“자요. 소장님이 당신한테 주라고 하셨어요. 독실한 신자가 한 명 늘어날 것 같다고. 얘기를 들은 지는 조금 됐는데, 줄 기회가 없었어요.”

나는 성경을 받아 포장을 뜯었다.

페이지를 좌르륵 넘기며 내용을 대강 훑었다.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흥미롭다는 투였다.

“정말 신앙 공부를 하려는 거예요? 신을 믿거나 의지할 타입으론 보이진 않는데.”

그녀의 말 대로였다.

첫 체스를 둔 날 이후, 소장은 매일 같이 나를 찾았다.

「아무리 해도 이길 수가 없군. 혹시 누군가에게 따로 사사 받았나?」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소장은 자긍심이 강했지만 그렇다고 고집이 세진 않았다.

다섯 판 째에 자신이 실력이 뒤떨어짐을 인정했다.

그리고 대신 내게 교습을 요청했다.

몇 달 뒤 수도에서 대회가 있으니 부족한 점을 짚어 달라고.

그 덕에 매일 오후 노역을 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죄수들의 부러움과 시기의 눈길이 뒤따랐음은 당연하다.

소장의 명령이니 이고르조차 어쩔 수 없다.

기껏해야 내게 날리는 주먹의 강도를 높일 뿐.

‘성경을 읽어 두면 소장과 할 수 있는 대화 주제의 폭이 넓어지겠지. 친분을 쌓아 두면 내 활동 반경 역시 늘어날 테고.’

교단 설정을 내가 짜긴 했지만 세세한 교리들까지 전부 지정해 놓았던 건 아니다.

내가 설정하지 않았던 세부 요소들은 짜 놓은 큰 뼈대에 맞게끔 모두 알아서 채워져 있었다.

따라서 성경을 들춰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이 존재했다.

“……신을 믿지 않을 것 같다고. 내가 어때 보여서 그러지.”

“세상 염세적이고 냉소적인 느낌? 뭐, 신경 쓰지는 마요. 그냥 내 느낌이 그렇다는 거니까.”

“이 교도소에 안 그런 죄수가 있나. 신을 진심으로 믿는 이를 찾기가 힘들 텐데. 그쪽도 그렇지 않나?”

내 의미심장한 한 마디에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내 눈엔 모두 보였다.

“무슨…… 근거로요?”

“그냥 내 느낌이다. 신경 쓰지 마라.”

“…….”

그녀는 뭔가 농락당했다는 얼굴을 했다.

물론 아무 근거 없이 했던 말은 아니다.

그녀는 110번대 구역 출신이다.

카인과 같이, 후반부 주인공의 동료가 되는 이들이 대다수 그렇듯이.

눈먼 칼에 맞거나, 납치를 당하거나, 추위와 굶주림에 떨거나, 사람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슬럼가.

그녀는 식량 배급을 나왔던 한 사제의 눈에 띄어 교단에 거두어졌다. 신을 믿고 있던 어린 그녀는 그것이 구원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며 가르침을 받았다.

참고, 기다리고, 믿다 보면 구원이 올 거라고.

여신의 축복이 내려와 땅이 기름져지며 ‘생존’은 더 이상 절박한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녀의 신앙은 흔들리고 있다.

성인이 되고 업무로 떠돌았던 대륙은 자신이 어릴 때와 달라진 게 무엇 하나 없었으니까.

‘어쨌든 지금은 그것보다도…….’

나는 한 차례 집무실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유물을 보관한다면 그 장소는 아마 이곳일 가능성이 높았다.

‘책상 위에 있는 작은 상자들이 의심스러운데.’

타이밍 맞게 그녀가 그중 하나를 열었다.

“……!”

“받아요. 설교에 처음 참석하면 주는 목걸이에요.”

“…….”

구리에 은을 조금 섞은 팔각별 모양의 목걸이.

상자 안엔 그녀가 내민 것과 같은 디자인의 목걸이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왜요? 마음에 안 들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을 괜히 설레게 하다니.

“……받아두지.”

일단은 필요할 때엔 착용할 생각이다.

성당에 나올 때나, 소장을 찾아갈 때나.

“다음 주에 또 와요. 제가 선물도 줬으니까.”

“생각해 보겠다.”

* * *

성당에서 막 나서는 길, 성경을 넘기다 종이에 손가락을 베였다.

“…….”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등 뒤 성당 입구와 앞쪽 감시탑.

교도관이 배치되어 있긴 하지만 내 쪽을 보고 있지 않다.

반대쪽 손으로 베인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

은은한 빛이 발해져 나오고, 손을 풀자 손가락의 상처는 감쪽같이 아물어 있었다.

‘신을 믿어야만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니, 웃기지도 않은 소리야.’

일반적으론 그렇게 알려져 있다.

에스텔의 손등에 있는 팔각별 문양.

오랜 신앙생활 끝에 교단에서 그와 같은 ‘표식’을 받아야만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회로가 없는 사제들도 신성 마법을 쓰지.’

일반 마법은 회로의 마나가 그 자원이 된다.

신성 마법은 신앙심이 자원이라 알려져 있다.

신에 대한 믿음이 깊을수록, 더 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실상은.’

나는 멀리 공터에 보이는 여신상을 바라보았다.

극도의 마나 감응 능력을 지닌 카인의 눈에는 모두 보인다.

신상 안에 뭉쳐 있는 거대한 마나의 덩어리가.

또, 신상으로부터 어딘가를 향해 계속해 뻗어 나가는 가느다란 마나의 실들이 말이다.

‘저 실이 표식을 지닌 사제에게 가닿겠지. 의지에 감응해서. 또 각 마을이나 중요 지점에 세워진 다른 신상을 거쳐 수도로 갈 테고.’

결국 신성 마법도 일반 마법의 한 종류다.

교단 수뇌부가 마법의 원리를 공표하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제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고도의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을 뿐.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세계관을 통틀어 극소수다. 에스텔 정도의 직위는 알지 못한다.

‘신상이 곧 일종의 송신탑 역할.’

그러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신상에 채워진 마나는 모두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주위의 메마른 땅을 바라보았다.

‘……내가 창조해 냈지만, 모순적이기 짝이 없는 세계야.’

나는 고개를 작게 저으며 수감 건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 밤 월급을 빼앗으려 수작을 걸어 올 녀석들을.

등 뒤론 눈송이가 소리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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