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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한 천재마법사-7화 (7/227)

#007화. 체크메이트 (1)

“간밤에 발생한 특이 사항이 있나?”

“없습니다.”

매일 아침 이뤄지는 점검, 교도관은 매서운 눈으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사물함을 열어 보기도, 봉으로 이불을 들춰보기도 했다.

그러다 별로 트집 잡을 게 없었는지 이고르의 부하, 제퍼의 앞으로 다가와 봉으로 가슴팍을 쿡 찌르며 말했다.

“성인이 되어서 이불 하나 똑바로 못 개나?”

제퍼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이불은 평소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분 안 좋은 일 있나 오늘 갑자기 지랄이네.’

“점검 끝. 청소 시작하도록.”

교도관이 사라지고 죄수들은 느릿한 걸음으로 문을 향했다. 각 반, 또 각 방이 맡은 야외 청소 구역이 있었다.

밖으로 나가기 전, 이고르가 카인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뜻을 굽힐 생각이 없나? 보호세를 내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없다.”

거대한 손아귀가 카인의 뺨을 향해 내리쳐졌다.

쐐액-!

카인은 마나를 끌어 올려 피부를 강화했다.

짝!

소리는 컸지만 아프진 않았다.

깃털이 닿았다 떨어진 정도의 감촉.

“소름 끼치는 놈.”

아무런 동요 없는 카인의 눈동자를 보며, 이고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제 보아도 그랬다.

가만히 들여 보다간 그 새카만 동공에 빨려들어가 잡아 먹힐 것만 같은 느낌.

“청소를 해야 하니 지금은 이 정도로 하지.”

이고르의 거대한 몸이 문밖으로 사라졌다.

그 뒤, 제퍼가 다가왔다.

“나도 한 대 때려야겠다. 아침부터 교도관이 지랄을 해서 말이야.”

카인은 눈앞에서 입가를 씰룩이고 있는 제퍼를 보며 어떻게 행동을 취할지 잠시 고민했다.

[회로 레벨: 1 - 마나 152 / 165]

독방에서 나온 이후에도, 카인은 꾸준히 회로의 마나를 돌렸다.

장소 간 이동을 할 때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나.

일과가 끝나고 샤워를 할 때나.

가능한 모든 시간 짬짬이.

독방에서 온전히 정신을 집중할 때와 같은 효율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나 양은 꾸준히 늘었다.

‘부하들에게도 적당히 맞춰줘야겠군.’

제압은 어렵지 않다. 마나를 쓰지 않더라도, 본신의 힘으로 어느 정도 저항할 수도 있다.

하지만 회로를 구축한 지금, 쓸데없이 상황을 길게 만들 필요가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회로 강화에 정신을 조금 더 집중하는 게 이득이다.

탁!

하늘 높이 올라간 제퍼의 손이 누군가에게 붙잡혔다. 아직 나가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몰핀이었다.

“뭐야?”

“아니, 그, 독방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잖아. 두개골이 너무 많이 흔들리면 또 머리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어. 그러면 이고르 님도 곤란해지겠지.”

스스로 생각해도 개소리다.

하지만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네 머리통이 철과처럼 터져 나가는 장면이 상상됐어, 하고 말해 줄 순 없잖아, 내가.’

몰핀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의 눈에, 현재 상황은 겁대가리 상실한 토끼가 호랑이 몸을 들이 받는 꼴이었다.

“또 최근에는 이 녀석을 괴롭히라고 직접 지시하신 적이 없으니까.”

“음. 알겠다. 신참, 운 좋은 줄 알아.”

제퍼는 나름 납득한 얼굴로 문밖을 나갔다.

“휴우.”

몰핀은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잘했다.”

“아, 예. 감사합니다. 헤헤.”

몰핀은 이미 마음을 돌린 상태였다.

카인을 따르기로 말이다.

애초에 이고르에 대한 충성심이 그리 높지도 않았을 뿐더러, 전에 보았던 카인의 몸놀림과 악력을 생각하면 그게 맞는 선택이었다.

‘어쩌면 키프텔보다 강할지도 몰라.’

전 A반 반장 키프텔.

이고르도 그에겐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제가 들은 얘기로는 말입니다.”

몰핀의 입에선 자연스레 존댓말이 나왔다.

자신보다 족히 열 살은 더 어릴 카인이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당연했다. 이 교도소 내에선 힘이 전부.

나이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또 중요한 건 처세술이다.

반장 자리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그 흐름을 미리 파악하고 올라타는 기술도 중요했다.

“열흘 뒤가 월급일이지 않습니까. 그때 이고르가 움직일 겁니다. 자기 말에 거역한 본보기로 돈을 모두 빼앗을 속셈입니다.”

카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

“예, 예.”

“그밖에 이고르가 한 말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가 내게 전해라. 지금처럼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몰핀은 은근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남들이 모르는 기회를 자신이 먼저 붙잡았다는 생각에 말이다.

* * *

사람들의 대국을 구경한 지 사흘째.

“이번 판도 내가 이겼구만. 돈 이리 달라고.”

“염병! 월급 나오면 한 판 더 둬!”

나는 슬슬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머릿속으론 이미 가상의 상대와 수백 번 대국을 마쳤다.

혼자 쌓은 실력이 실제로 먹힐지 시험해 볼 차례였다.

“다음 판은 내가 둬 볼 수 있을지 궁금한데.”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아, 이게 옆에서 보다 보면 재밌어 보일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쉬운 게임이 아니라서 말이야. 초심자가 두기에는…….”

“우리가 그냥 게임을 하진 않거든. 재미 삼아 돈을 걸고 하는데 자네는 아직 월급도 안 나오지 않았나.”

난처해하거나, 대놓고 무시하거나.

예상했던 반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말 없이 돈을 꺼내 체스판 위에 올렸다.

1만 실링.

몰핀에게 빌려 온 돈이었다.

“아니. 자네가 돈이 어디서…….”

“뒤가 구린 돈이 아니란 건 장담하지.”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여러 가능성을 가늠해 보고 있는 거겠지.

훔쳤거나, 혹은 밖에서 가지고 들어왔거나.

어느 쪽이든 쉽게 뿌리칠 수 유혹은 아니다.

1만 실링이면 두 달 치 월급이니까.

“험프리. 생각 없으면 자리 좀 양보해줄 수 있겠나? 내가 신참 상대를 좀 해 주지.”

“그러지. 나는 아무래도 좀 찜찜해서.”

자리에 앉아 있던 험프리가 비키고, 구경하고 있던 중년이 그 자리를 채웠다.

“앉지.”

나는 앞자리에 앉았다.

“한 판에 1만 실링은 너무 과한 금액인 것 같고, 2천 실링은 어떤가? 우린 보통 그렇게 두거든.”

“아니. 난 1만 실링 그대로 걸지. 그쪽은 2천 실링만 걸어도 된다.”

중년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 입으로 말한 거니 후회하지 말게.”

대국은 시작되었다.

‘……어렵지 않다.’

상대의 실력이 뒤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수에 거침이 없고 형세를 만들어 가는 솜씨가 보통은 아니었다.

‘다만 내 눈에는 모두 보인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 최종적으로 무슨 수를 노리고 있는지.

나는 천천히 상황을 유도해 나갔다.

적의 수에 말려든 척하면서 어느 순간 흐름이 나에게 기울도록.

“허, 이런!”

오래지 않아 승부는 내게 기울었다.

단 한 수 차이로, 내 폰이 상대의 킹을 잡았다.

사람들 눈에는 영락없이 접전으로 보였을 터.

“처음 둬 보는 것 맞나?”

“딱 봐도 거짓말이구만. 밖에서 좀 두다 들어온 솜씨야.”

나는 2천 실링을 건네받았다.

그 돈을, 체스판 옆에 있는 내 판돈에 얹었다.

“이긴다면 모두 주지.”

잠깐의 정적.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무게는 적지 않았다.

“다음, 다음은 내가 두겠네.”

일부러 실력 전부를 보이진 않았다.

이 정도면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대국을 위해 계속해 차례를 기다렸다.

“아니, 여기서 하필이면 비숍이 걸려서…….”

“딱 한 수 차이였어! 한 수!”

철저하게 상황을 조작했다.

모든 대국에서 아슬아슬한 차이로 승리하도록.

처음엔 돈이 목적이던 이들이, 이젠 승부욕이 잔뜩 발동해 달려들었다.

“…….”

“…….”

“곧 운동 시간이 끝나니 여기까지 하지.”

돈을 잃은 이들의 허망한 시선이 내 손에 들린 지폐 뭉치에 향했다.

나를 벗겨 먹을 생각으로 가득했을 텐데, 오히려 그 반대 상황이 되었으니 그럴 만했다.

“……받지.”

내가 딴 돈은 5만 실링.

어차피 이 정도의 금액은 지금 당장으로선 의미가 없다.

나는 그중 반을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주었다.

“아, 아니. 진짜 주는 건가?”

“받으라니 받기는 하네만…….”

“고, 고맙네! 고마워!”

어차피 이 감옥을 순수 자력만으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손과 발이 되어 줄 이가 필요하고, 그 수는 많을수록 좋다.

암시를 걸려 해도 근간이 되는 감정은 필요하니, 이렇게 미리 호의를 사 두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 * *

“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

식당에서 방으로 돌아가는 길, 익숙한 얼굴의 녀석들이 따라붙었다.

총 3명. B반.

이 세계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 내게 발길질을 가하고 있던 그 녀석들이었다.

‘날파리들이 아직 덜 떨어져 나갔군.’

녀석 중 한 명이 길목에 있던 교도관에게 다가가 무어라 말을 건넸다. 교도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좀 얘기하자고. 여긴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나는 못 이기는 척 녀석들을 따라 걸었다.

식당 뒤편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교도관의 눈도, 지나는 죄수들도 없었다.

천천히 뒷걸음질 쳐 녀석들과 거리를 벌렸다.

뒤는 막다른 벽이었기에 녀석들도 별다른 제지를 가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람들이 널 꺼리는 게 잘 이해가 안 가거든. 괜히 건드렸다가 피 본다고? 그건 로튼 그 새끼가 등신이었던 거지.”

가장 앞의 녀석이 껄렁대며 말했다.

나머지 둘이 낄낄거리며 동조했다.

“조심히만 다루면 되는 거지. 다치지 않게 말이야. 일 못 할 정도로 때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고.”

나는 손을 등 뒤로 해 바닥에 있던 작은 돌조각들을 마나로 끌어 올려 잡았다.

“우리가 그래도 인정이 있어서 또 주먹을 쓸 생각은 없고. 네가 성의만 적절히 보이면 그냥 보내 줄 수도 있거든.”

녀석의 시선이 내 주머니로 향했다.

내가 체스로 돈을 따던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어때?”

체격이 건장하긴 하나 녀석들 모두 전문적인 전투 기술을 익힌 걸로 보이진 않았다.

‘한 손만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지. 어디 마법도 시험해 볼 겸.’

“거절하지. 가지고 싶다면 빼앗아 가 봐라.”

“쉽게 풀릴 일을 꼭 매를 벌어야…….”

녀석의 말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힘줄이 멀쩡한 손에 마나를 실어 돌을 던졌기에.

“……!”

명치에 돌을 맞은 녀석의 몸이 푹 고꾸라졌다.

표정이 일그러지고, 숨을 제대로 쉬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내 왼쪽 손은 멀쩡하다.”

쓰러진 동료를 놀란 눈으로 지켜보던 녀석들이 정신을 차리고는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표적이 계속해 움직여 방금과 같은 세기로 돌을 맞추는 건 힘들어 보였다.

“이 비겁한 새끼가!”

앞서 달려오던 녀석이 주먹을 날리기 직전, 나는 왼손에 실었던 마나를 거두고 체내의 마나 흐름에 집중했다.

여러 종의 원소가 내 세밀한 인도에 따라 손끝의 한 점으로 모여들고, 외부의 발현점으로 쏘아져 나갔다.

“……!”

녀석의 발치에 바람이 일어났다.

채 몇 초도 되지 않아 완성된 마법이었다.

이미 관성을 충실히 따르고 있던 녀석의 몸은 앞쪽으로 푹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간단히 몸을 비틀어 주먹을 피하고, 난 녀석의 얼굴이 떨어질 위치에 무릎을 가져다 대었다.

콰직-!

“아악!”

코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코를 움켜쥔 자세 그대로, 녀석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내 절뚝이는 다리도 달리다 넘어지진 않는데, 나보단 네 쪽이 더 병신에 가까운 것 같군.”

뒤이어 날아드는 다른 녀석의 주먹을, 바람을 일으켜 궤도를 살짝 밀어냈다.

주먹은 맥없이 내 귀를 스쳐 허공을 갈랐고, 나는 나머지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녀석의 동공에 초점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

마나를 실은 주먹이니, 일반인은 기절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코가 부러진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 할 때, 나는 녀석의 뒤통수를 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리눌렀다.

“으으, 씨발, 아악-!”

그리고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듯 사정없이 짓누르며 좌우로 움직였다.

“아, 아아악! 그, 그만, 그마안-”

방음 마법을 펼쳐 식당 앞 편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했다.

‘……오래 끌 순 없지. 마나가 무한정은 아니니.’

나는 머리채를 잡아 들어 바닥에 세차게 한 번 꽂아 넣는 걸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머리채를 들어, 몸을 움찔거리고 있는 녀석의 귓가에 속삭였다.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 마라. 그땐 정말 죽여 버릴 테니까. 알겠지만 난 독방 신세나 형량이 늘어나는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으니까.”

털썩.

손을 놓자 녀석의 얼굴이 바닥에 처박혔다.

나는 손을 탁탁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치에 돌을 맞았던 녀석은 정신을 차린 채였지만, 몇 분도 안 되어 일어난 눈앞의 상황에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지나쳐 다시 방으로 향했다.

* * *

2차 상담일이 돌아왔다.

나는 교도관을 따라 소장의 집무실로 향하며 몰핀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아니 이게 무슨 돈입니까?」

「맡아둬라. 원금은 돌려주지.」

나는 체스에서 딴 돈을 모두 그에게 맡겼다.

이고르가 발견하면 또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으므로.

「아, 아닙니다. 맡겨 드릴 수 있긴 하지만 제가 드린 돈은 그대로 가지셔도…….」

「괜찮다. 난 이고르처럼 측근들에게까지 돈을 빼앗을 생각이 없다.」

「카, 카인 님.」

별것 아닌 호의에 녀석은 감격한 얼굴을 했다.

이고르의 폭력이 연일 이어지긴 했지만, 피부를 강화해 버티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회로 레벨: 1 - 마나 185 / 185]

그리고 힘을 숨길 날도 머지않았다.

며칠 뒤면 마나가 목표했던 200에 달한다.

회로 레벨이 오르고, 마나의 출력 효율 역시 달라진다.

“들어가라. 안에서 소장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생각하는 사이 집무실 문 앞에 도착했다.

끼익-

“어서 오게.”

의자에 앉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1차 상담 때와 이야기 주제가 크게 다르진 않았다. 교도소 적응이나 생각나는 개선 사항 같은 것들.

상담이 2차로 끝인 게 다행인 부분이었다.

한 귀로 흘려듣다 대화에 잠시 공백이 생겼을 때, 나는 트로피가 진열된 유리장 쪽을 흘긋 보며 미끼를 던졌다.

“체스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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