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6화 (6/227)

#006화. 죄수가 힘을 숨김 (2)

“편히 앉아 있어도 되네. 그냥 죄수들이 잘 생활하고 있는지 둘러보러 온 거니 말이야.”

소장은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그의 말을 따라 자리에 앉는 사람은 없었다.

카인 역시, 분위기에 맞춰 일어나 있었다.

“성경 공부는 잘 하고 있나?”

소장은 이고르에게 다가와 그의 가슴팍 주머니에 있던 작은 성경을 꺼내 펼쳤다. 이고르가 유일하게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예,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렵지만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1장 3절의 내용을 말해 볼 수 있겠나?”

“어, 음, 태초에 풍요의 여신 테유메사께서 가로되 이 땅에 지상의 것들이 먹을 곡식이 자랄 것이니…….”

이고르는 떠듬떠듬 한 구절을 외웠다.

사실 진심으로 종교를 믿는 건 아니었다.

단지 독실한 신자인 소장에게 잘 보이기 위함.

죄수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훌륭하네. 누가 자네를 3년 전 그때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나?”

소장은 공을 치하하듯 이고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뒤 돌아섰다. 그리고 카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새로 들어왔다던 죄수 중 한 명인가 보군. 이름이 어떻게 되나?”

“카인입니다.”

뒤에 있던 교도관이 다가와 소장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독방에 다녀왔다고. 뭐 상관없네.”

소장은 역시 마찬가지로 카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사람은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가 중요하지. 따라서 나는 죄수들에게 밖에서 어떤 일을 하다 들어왔는지 묻지 않네.”

“…….”

“자네는 신을 믿나?”

카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비틀렸지만, 소장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믿지 않습니다.”

“앞으로 믿으면 되네. 여신님 앞에선 만인이 평등하니, 자네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새사람이 되어 구원받을 수 있을 걸세.”

카인은 말없이 소장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주말에 종교 행사가 있다고 듣긴 했다.

당연히 이제껏 참여한 적 없지만, 소장이 독실한 신자라면……. 이건 나쁘지 않은 정보다.

“알겠습니다.”

카인은 고개를 작게 꾸벅였다.

소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신입 면담은 내일 하도록 하지. 오늘은 시간이 늦었기도 하고, 내가 출장에서 막 돌아와 몸이 피곤해서 말이야.”

* * *

다음 날 오전.

나는 노역 대신 교도관들에게 불려가 소장의 집무실로 향했다.

“편히 앉게.”

소장은 거대한 책상 앞에 앉아 나를 맞이했다.

소장이 어떤 인물인지는 몰핀에게 들었다.

‘원래 근무지는 수도. 정치 싸움보다는 평탄한 노후를 위해 내려왔다고.’

교도소 운영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상 운영 전권을 수석 교도관에게 넘겨 본인은 유유자적 소장 시늉만 낼 뿐이라고.

‘그래도 교도소 내 권력이 가장 큰 사람이란 건 변함이 없지만.’

“지르토늄을 삼켰다고 들었네만, 그래도 삶을 포기해선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우리의 생명 또한 신이 주신 것이니.”

소장의 이야기엔 별 영양가가 없었다.

이외 교도소 생활에 불편함은 없는지, 또 열심히 노력하면 모범수가 되어 형량을 감면받을 수 있다는,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는 얘기들.

“예. 제 생각이 어리석었던 것 같습니다.”

난 한 귀로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곁눈질로 집무실 곳곳을 스캔했다.

벽에 걸려 있는 역대 소장들의 액자.

책장 가득한 종교 관련 서적.

유리장 안의 체스 대회 트로피들.

……그리고 다닥다닥 꽂힌 두꺼운 파일철들.

거리가 멀었지만 강화된 시력 덕에 어렵지 않게 표지에 쓰인 제목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켄트락 교도소 연감]

[출입 및 사망자 현황 보고서]

[설계도면 및 증축 계획도]

유리장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마지막으로, 건의 사항이 있나?”

“……성경을 한 권 받고 싶습니다. 여가 활동 시간에 조금 읽어 보려고 합니다.”

소장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그래. 잘 생각했네. 에스텔 의무관에게 말해 두도록 하지. 내가 가지고 있던 여분은 이고르에게 주었던 게 마지막이라 말이야.”

소장은 2차 면담은 일주일 뒤에 하겠다고 했다.

* * *

내 노역 장소는 다시 공장으로 바뀌었다.

다만 전과 같이 기계를 다루는 라인이 아닌, 손만으로 물건을 조립하는 라인으로 배치되었다.

‘광산에 두자니 또 자살 시도를 할 위험이 있고, 기계를 손에 쥐게 했다간 그걸로 난동 부릴 가능성이 있단 거겠지.’

요주의 인물로 찍혔는지, 나를 주시하는 교도관들의 시선이 전보다 더 많이 느껴졌다.

크게 상관없다.

이제 당분간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으니까.

띠링-

작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죄수들은 교도관들의 인도하에 중앙 공터로 향했다.

저녁 식사와 자율 활동이 시작되기 전, 공장에서 노역하는 죄수들은 모두 이곳에 모였다.

‘명목상으론 운동이나 체력 단련 시간이지.’

기구로 몸을 단련하거나, 골대 앞에서 농구 비슷한 운동을 시작하고 있는 죄수들이 보였다.

물론, 반드시 운동을 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평평한 바위를 테이블 삼아 체스를 두거나,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이도 있었다.

나는 창고 문으로 향하는 계단에 걸터앉았다.

‘철망 입구 쪽은 B반, 감시탑 옆 잔디밭은 C반 구역.’

공터는 각반 세력이 분할 점령하고 있었다.

혹은, 바깥에서 같은 조직이었던 이들끼리 뭉쳐 있거나.

이곳에서 힘이 약한 이는 좋은 먹잇감이 된다.

노동력 손상이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괴롭힘이 이어진다.

‘A반 보호비가 30%, 나머지 반은 20%. 키프텔이 독방에 들어가고 이고르가 세율을 올렸다고 했지.’

대다수는 자신이 속한 반의 반장에게 돈을 내고 보호를 받는다. 어차피 누구에게든 뜯길 돈이니, 그게 현명할 수 있다.

교도관들이 상황을 묵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더 효율적으로 죄수를 관리하는 방법이니까.

장소 이동 간 모든 길목이 높은 철망에 둘러싸여 있고, 곳곳에 교도 인력이 배치되어 있다고는 하나 24시간 완벽한 감시를 이루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교도관들은 반장들의 편의를 봐 준다.

생활 중 일어날 수 있는 소란을 사전에 제압하고, 이상한 낌새를 보이는 죄수를 보고할 수 있도록.

‘공생 관계와 비슷하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터 입구에 있는 매점으로 향했다. 작은 컨테이너에 달린 창문 앞에 물건을 사는 죄수들이 모여 있었다.

“아니, 오늘 아침에 들어왔던 담배가 벌써 동나는 게 말이 돼?”

“반장들에게 먼저 떨어지는 몫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매점 담당 사일로.

그가 불만을 터트리는 죄수들을 달래고 있었다.

“어, 신참 왔네. 필요한 물건 있나?”

나를 발견한 다른 죄수들이 주춤 물러섰다.

전에 같았으면 분명 시비를 걸어왔겠지.

소문은 교도소 내에 쫙 퍼져 있었다.

독방도 무서워하지 않고, 또 어떤 돌발 행동을 저지를지 모르는 미친놈이라고.

썩 마음에 드는 호칭은 아니었지만, 어쭙잖은 녀석들이 달라붙지 않는다는 점에선 만족했다.

그렇다고 아직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지만.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보라고. 아직 월급도 안 나온 신입은 외상이 가능하거든. 물론 나중에 월급에서 자동으로 차감되지만 말이야.”

나는 컨테이너 벽에 붙은 물건 목록을 보았다.

무기로 개조될 염려가 없는 생필품이나 간단한 간식거리가 주를 이뤘다.

“형량 감면 티켓은 얼마지?”

“어……. 한 장에 하루씩 감면되고 2000실링이긴 한데, 신참은 의미 없지 않아? 형량이 150년이 넘는 거로 알고 있는데.”

티켓을 살 생각은 없다.

‘월급은 5000실링. 각 반 인원이 100명, 세율이 20% 고정이라 하면 단순 계산으론 반장은 3분의 1이하로 형량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죄수들이 목숨 걸고 반장 자리를 지키려 하는, 혹은 빼앗으려 하는 이유였다.

다만 반장 자리에 오를 만큼 힘 있는 녀석들은 밖에서 다른 죄수들보다 더 큰 죄를 저지르고 들어왔을 확률이 높다.

최소 수십 년 형을 받은 이들이니, 그에 만만치 않게 긴 시간 동안 반장 자리를 유지해야 티켓으로 형량을 말소시킬 수 있다.

‘말소시켰다 해도, 교도소 측에서 약속을 지킬지는 미지수지만.’

티켓은 죄수들이 서로 감시하도록 만들고, 또 헛된 희망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수첩이랑 연필 하나.”

“자, 여기. 외상으로 달아 두겠다고.”

연필은 보통의 것보다 훨씬 강도가 낮아 힘을 조금만 줘도 부러질 것 같았다.

나는 수첩과 연필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로 돌아왔다.

‘티켓은 내가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반장 자리에 올라갈 자신은 있다.

하지만 내 형량은 170년.

돈을 아무리 긁어모아도 최소 수십 년이 걸린다. 교도소 측에서 약속을 지킬 거란 보장도 없다.

나는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보았다.

철망 너머에는 까마득한 높이의 외벽이 1동 공간을 둘러싸고 있었다.

벽 위의 경비들은 외부를, 감시탑의 경비들은 내부를 주시하고 있었다.

‘종종 철망 밖에서도 사역이 이루어지니 외벽에 가까이 가는 것까진 문제가 없다.’

내게 소설 후반부의 주인공처럼 무한에 가까운 마나가 있다면 깊은 고민 없이 이 교도소 자체를 날려 버리면 될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 마나 양은 빈곤하다.

매일 노역을 해야 하기에 성장 속도가 제한되어 있다.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방에서 벽 바깥으로 이어지는 긴 땅굴을 파거나.

은신 마법을 걸고 하늘을 날아 빠져나가거나.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가장 좋은 건 정문을 통해 빠져나가는 방법.

들어오는 길은 반대로 말하면 나가는 길과 같다.

다만 나는 이 교도소 안에서 깨어났기 때문에, ‘정문 역할’을 하는 저 거대한 사무실의 구조를 알지 못했다.

‘내가 저런 것까지 설정해놓진 않았지. 건물 구조만 어떻게 알아내면…….’

탈옥 방법을 역순으로 세워나갈 수 있을지도.

잠시 고민하던 중 소장의 집무실에 있던 ‘설계도’ 파일철이 떠올랐다.

‘만일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생각이 연쇄 작용을 일으켜 큰 그림을 그려갔다.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체스를 두고 있는 죄수들 쪽으로 향했다.

50대 이상의, 나이대가 조금 있는 죄수들이었다.

2명은 체스를 두고, 나머지는 주위를 둘러싼 채 대국을 구경하고 있었다.

저벅저벅.

그들은 나를 알아보고는 경계 어린 시선을 보냈다. 한창 소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인물이니, 그리 가까이하고 싶진 않은 거겠지.

“무슨 일이지?”

“……흥미가 일어서. 관전을 할까 하는데.”

“체스를 둘 줄 아나?”

“규칙 정도는.”

죄수들은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도 몰라. 괜히 어울렸다가 방장에게 밉보일 수도 있다고.”

“그래도 처지가 불쌍하잖아. 큰 조직의 간부였다는데 절름발이 죄수가 되었으니. 형량도 사실상 무기 징역에 가깝고.”

나름대로 결론을 냈는지 그들은 몸을 벌려 내가 들어올 틈을 만들어 주었다.

“보기만 하라고, 보기만. 뭐 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반에서 내로라하는 체스 고수들이 전부 모여 있는 자리였다. 눈치로 보아 큰 금액은 아니지만 내기로 돈까지 오가는 거로 보였다.

“체크메이트.”

“아, 이런. 수가 모자랐어.”

“다음엔 내가 두지.”

나는 관전하며 대국의 흐름을 천천히 읽어 나갔다. 규칙은 현실 세계의 것과 같다. 한 번도 둬본 적 없단 말도 사실이다.

‘저 자리로 나이트를 옮겼다면 역공이 가능했을 텐데.’

하지만 문제없다.

카인은 설정 상 보유한 이가 몇 없는 「이해력」 특성의 소유자니까.

무력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괜히 간부 위치까지 올라갔던 것이 아니다.

나는 체스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순식간에 머릿속에 기보가 쌓여 가고, 그에 따른 수많은 경우의 수가 파생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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