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화. 죄수가 힘을 숨김 (1)
“컥, 컥, 컥컥!”
몰핀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목을 조르고 있는 카인의 팔을 떼어내려 주먹을 퍽퍽 내려쳤지만, 카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쿵!
카인은 팔을 휘둘러 몰핀의 몸을 그대로 벽에 던져 버렸다.
“쿨럭!”
당혹, 충격, 공포.
무엇보다 몸이 아프다.
“너, 너! 어떻게! 힘, 힘, 분명 없을 텐데!”
급히 숨을 들이킨 몰핀이 말을 쥐어 짜냈다.
카인은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몰핀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발을 절뚝이지 않는 모습에, 몰핀의 등 뒤로 한 줄기 소름이 흘러내렸다.
‘설마 이제까지 연기한 건가?’
몰핀은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자살 시도를 했다 들었고, 자신은 녀석이 그때 죽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정반대 상황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대, 대답해! 부, 분명 힘줄이 다 끊겼잖아. 그게 맞잖아!”
몰핀이 꽥꽥대자 카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몰핀 앞에 다가가 무릎을 굽혀 앉으며 말했다.
“시끄럽다.”
“개새끼야! 대답해! 너, 너 이고르 님이 이 사실 알면……!”
짜악-!
순간 몰핀의 얼굴이 크게 돌아가며, 하얀색의 작은 물체가 그의 입안에서 튀어나갔다.
그리고 바닥에 투둑 떨어져 내렸다.
몰핀의 시선이 황망히 그쪽을 향했다.
“내, 내 이빨!”
짜악-!
이번엔 반대편으로 얼굴이 돌아갔다.
“난 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는다.”
* * *
카인은 소모된 마나 양을 확인했다.
[회로 레벨: 1 - 마나 76 / 150]
필요한 움직임에만 강화 마법을 적용하니 생각보다 마나가 많이 소모되지 않았다.
시선을 흘긋 아래로 향했다.
자신에게 덤벼들었다가 곤죽이 되어 쓰러져 있는 몰핀이 보였다.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배, 등, 무릎 같은 부분만 골라 때렸기 때문에 입에서 피가 조금 섞인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것 외엔 큰 이상이 없어 보였다.
“너……! 너……!”
몰핀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카인을 노려봤다.
자신도 분명 싸움으론 어디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녀석의 옷깃조차 스칠 수 없었다.
“말이 조금 길었으면 좋겠는데.”
퍽-!
“우욱!”
카인은 몰핀의 배에 발을 찍어 내렸다.
몰핀은 배를 움켜쥐며 바닥을 굴렀다.
분노로 눈을 희번덕거리며, 몰핀이 뱉었다.
“너, 너, 이고르 님이 널 가만 안 둘 거다. 그, 그리고 내가 지금 여기서 소리 지르면 너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카인의 얼굴은 무표정할 뿐이었다.
“이, 입구에 있는 교도관이 달려올 거야. 그럼 넌 또 독방에 가겠지. 이번엔 열흘 정도로 안 끝나, 알아? 넌 가뜩이나 게렉한테 밉보였으니까.”
“…….”
아무 말 없는 카인을 보며 몰핀은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은 지금 후회 중이다.
자신이 너무 섣불리 행동했다 싶겠지.
순간 자신감을 되찾은 몰핀은 기세등등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 지금이라도 당장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
퍽!
옆구리에 킥을 맞은 몰핀은 옆으로 나자빠졌다.
세상이 핑핑 돈다. 현기증이 난다.
잔뜩 낮아진 시야 위로, 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밌겠군. 질러 봐라.”
“뭐, 뭐?”
“질러 보라고 했다. 마음껏 소리 질러 봐라.”
퍽-!
최대한 몸을 웅크려 고통을 줄여보려 했지만, 발길질은 팔다리를 파고들어 집요하게 옆구리를 노려 왔다.
내부 장기에 이상이 가지 않으면서도, 딱 인간이 최대한의 고통을 느낄 세기였다.
소리가 새어나갈 일은 없었다.
카인은 이미 방 전체에 방음 마법을 걸어 둔 상태였다.
“욱! 이, 미, 미친─.”
“교도관이 오면 뭐라고 말할 텐가? 팔다리 병신에게 얻어맞았다고? 사람들이 잘도 믿겠군.”
몰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다.
피가 나거나, 뼈가 부러지거나, 자신이 폭행당했다는 물리적인 증거 이전에, 녀석은 이미 몸을 성히 못 쓰는 것으로 소문나 있었다.
당장 현장을 목격한 교도관은 믿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리고 사람들이 믿어도 문제일 텐데. 넌 그대로 팔다리 병신한테 진 진짜 병신이 될 테니까.”
“네 몸이 멀쩡하단 걸 말하면─!”
“자신 있다면 그렇게 해 봐라. 난 한동안 이제껏 해왔던 모습을 유지할 생각이니까. 사람들이 네 말을 믿는다면 내게 여러 가지 시험을 하겠지만, 난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
퍽!
“욱!”
“그렇게 될 경우, 난 이렇게 아무도 없을 때마다 널 교육할 생각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퍽!
“널 죽이겠다.”
몰핀은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바뀐 걸 느꼈다.
그 농도 짙은 살기에 식은땀이 삐질삐질 새어 나왔고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바닥에 내리깐 얼굴을, 감히 들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 너, 여기서 사람 죽이면 독방에…….”
“상관없다.”
탁.
엎어져 있는 몰핀의 머리 위에 카인의 발이 올라왔다. 카인은 그대로 마나를 끌어 올려 발을 힘주어 내리눌렀다.
“끅, 끄아아아악──!”
비명이 울려 퍼졌다.
머리가 으깨져 갈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끅, 끄윽, 아, 알겠어. 그만, 그, 그만!”
“말이 짧군.”
“자, 자, 잘못했습니다. 그, 그만….”
발은 그제야 사라졌다.
눈물과 침으로 범벅된 얼굴로, 몰핀은 헉헉거렸다. 3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몸도 정신도 만신창이가 된 것 같았다.
‘지, 진심이야. 진짜 날 죽일 거야.’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믿어도 문제다.
병신에게 진 병신으로 소문난다면 이 교도소에서 남은 형량을 편히 보낼 수 없다.
‘이제껏 모든 사람들을 속였던 녀석이 앞으로도 속이지 못할 거란 보장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도박을 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워, 원하는 게, 아니, 원, 하시는 게 뭡니까.”
“이고르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해라.”
“예, 예?”
카인이 발을 살짝 움직이자 몰핀이 기겁하며 몸을 움츠렸다.
“아뇨! 아뇨! 말하기 싫은 게 아닙니다. 그게, 정확히 뭘 알고 싶으신지 몰라서…….”
“녀석이 교도소에 들어온 시기, 죄목, 평소 습관과 버릇, 신체적 약점, 뭐든 좋다.”
몰핀은 자신이 아는 것을 줄줄 쏟아냈다.
괜히 뜸 들였다간 저 발이 자신의 머리를 또 압착기처럼 내리누를 것 같았다.
“죄목은……. 그냥 사냥개 짓을 하다가 잡혀 들어온 거로 알고 있습니다. 왼쪽 발목이 약한 편이고요.”
사냥개는 황무지를 돌아다니며 작은 마을들을 약탈하는 강도들을 총칭하는 말이었다.
“왼쪽 발목?”
“예. 원래 2년 전까지는 이고르가 반장이었습니다. 그러다 키프텔에게 도전을 받아서……, 아 키프텔은 예전 반장입니다. 설명하자면 긴데─.”
“알고 있다.”
“─예, 어쨌든 도전을 받아 싸우다가 왼쪽 발목을 크게 다쳤습니다. 치유 마법을 받긴 했는데 후유증이 크게 남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카인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몰핀이 우물쭈물 물었다.
“저, 그런데 이런 걸 왜 물어보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반장 자리를 빼앗을 생각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란 말투였다.
실제로 카인에겐 그랬다.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해선 다른 죄수들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위치가 필요했다.
“예, 예?”
몰핀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물론 지금 카인이 강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고르를 이길 수 있을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몰핀의 눈빛에 담긴 뜻을 읽은 카인은 이고르의 침대 머리맡에 있던 과일을 들고 왔다.
철과였다.
단단한 껍질 때문에 먹기 위해선 전용 기계가 필요한 과일.
이고르는 매일 운동을 한 뒤 악력을 측정하기 위해 이 과일을 사용했다.
물론, 일반인으로서 철과를 한 손으로 으스러트리는 일은 불가능하기에, 껍질엔 손가락 자국만 조금 움푹하게 남아 있을 뿐 원형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뭘 하시려는…….”
몰핀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콰득!
카인의 손에 들린 철과가 단숨에 으스러졌고 사방으로 과육이 튀었다.
“…….”
……저건 말이 안 된다.
전용 기계가 없으면 몽둥이로 십 수 번 내리쳐도 깨지지 않는 게 철과인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몰핀을 내려다보며 카인이 말했다.
“내가 반장이 된다면 네게도 한자리 주지.”
카인은 떨어진 파편 하나를 주워 몰핀의 입에 밀어 넣었다. 화한 단맛이 입안에 퍼져 나갔다.
몰핀은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카인은 몇 가지 정보를 더 물은 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말했다.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듣기로 하지. 가봐라. 돌아오는 게 너무 늦어지면 이고르가 의심할 테니.”
“예, 옙!”
몰핀은 부리나케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카인은 남은 마나로 흩어진 과육과 다른 이물질들을 띄워 모두 쓰레기통에 넣었다.
[회로 레벨: 1 - 마나 7 / 150]
그리고 절뚝거리며 창문으로 다가갔다.
식당 쪽으로 뛰어가고 있는 몰핀이 보였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니 어느 쪽을 따라야 하는지는 알겠지.’
만일의 가능성을 대비해 암시까지 걸어 두었다.
대단한 마법은 아니었다.
어차피 현재 마나로는) 기초 마법밖에 사용치 못하니.
현재 품은 감정을 증폭시키는 정도의 암시였지만, 지금으론 그것으로 충분할 터였다.
* * *
「키프텔? 완전히 맛이 갔네. 매일 비명을 지르고 문을 두드리며 꺼내 달라 외치고 있어.」
“크흐흐.”
이고르는 기분이 좋았다.
식당에서 방으로 돌아오던 길에 독방 담당 교도관을 만났다. 그에게서 받은 귀띔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고르 님. 키프텔 그놈, 분명 풀려나자마자 정신병동에 쳐 넣어질 겁니다.”
“A반에 이고르 님을 이길 녀석은 없으니 앞으로도 반장은 쭉 이고르 님이겠죠.”
부하들의 뻔한 사탕발림도 오늘은 썩 듣기 나쁘지 않았다.
이고르는 문을 열고 들어가다 침대에 앉아 있는 카인을 발견하고 흠칫했다.
“오늘 이 녀석이 돌아오는 날이었나.”
“그런 것 같습니다.”
몰핀은 짐짓 놀란 척 연기하며 대답했다.
속으로 수십 번 갈등했지만, 결국 이고르에게 카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말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어.’
이제는 정말 쭉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들켰다간 이고르에게 허리가 접혀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독방은 좀 지낼 만…….”
허리를 굽혀 카인과 눈높이를 맞추던 이고르는 말을 끊고 다시 허리를 일으켰다.
역시 기분 나쁜 눈동자였다.
마치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독기가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전보다 심해진 것 같았다.
‘하긴 이 녀석 정신력 하나는 끝내줬었지.’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멀쩡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독방에서 혹시 전 반장 이야기를 들은 게 있나.”
“……없다.”
“뭐, 됐다. 독방에서 벌벌 떨면서 버티느라 정신이 없었겠지.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으니 널 건드리지 않겠다. 쉬어라.”
이고르는 바닥에 천을 깔고 부하 하나를 불러 윗몸 일으키기를 시작했다.
“이, 이고르 님. 마, 만약 키프텔이 돌아와도 정말 끄떡없을 것 같습니다!”
이고르의 거대한 몸이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발을 잡고 있는 부하가 위태롭게 들썩거렸다.
“…….”
카인은 다시 회로의 마나를 돌리는 데 집중했다. 시비를 걸면 방어 마법을 몸에 걸고 버틸 생각이었다.
저런 반응을 예상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뭔가 더 말을 꺼낼 필요는 없어 보였다.
[회로 레벨: 1 - 마나 46 / 155]
지금 당장 이 방의 모두를 제압할 수 있는가?
대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마나가 완전히 회복된 상태에, 일대일 상황이라면 이고르를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부하들을 늘 대동한다.
한 번에 다수의 인원을 상대하고, 암시를 걸 마나까지 계산하면 아직은 수련이 더 필요했다.
끼익-
그때 문이 열리고 교도관들이 들어왔다.
재킷 가슴팍에 훈장을 달고 있는 이를 보고, 죄수들이 모두 기립했다.
“편히 앉게.”
점잖은 분위기의 중년.
다른 교도관들에 비해 눈빛이 퍽 너그러워 보였다.
이고르도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매무새를 단정히 한 뒤, 깍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출장은 편히 다녀오셨습니까, 소장님.”
제레드 다이아만.
켄트락 교도소장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