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3화 (3/227)

#003화. 독방과 마나 회로 (1)

“손 빨리빨리들 움직여라. 이번 달 채워야 할 작업량이 한참 남았으니.”

나는 재봉 기계 밑에 옷감을 밀어 넣으며 흘긋 주위를 둘러 보았다.

작업장 곳곳엔 교도관들이 제압 봉을 들고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이 입소 6일째인가.’

예상했던 대로, 1동에 블루서펜트 출신은 나 외에 존재하지 않았다.

‘조직원 절대다수가 마나 유저이니, 들어 왔다 해도 2동으로 분류되었겠지.’

내가 몸을 의탁할 수 있는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이고르는 앞으로 받을 월급의 80퍼센트를 바치면 ‘보호’를 해 주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노예계약과 다름없는 제안이다.

나를 ‘수하’로 두어 자기 이름값을 높이고 싶은 거겠지.

나는 굽히지 않았다.

그 결과 린치는 곳곳에서 이어졌다.

분위기를 타거나 호기심에 시비를 걸어오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었고, 드물게 밖에서 카인에게 당한 걸 풀러 오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한두 놈은 코뼈가 주저앉거나 속을 게워내게 했으니.

덕분에 하루걸러 의무실을 찾았다.

「스탬프 만들어 줄까요? 올 때마다 도장 하나씩.」

에스텔은 싸우다 다쳐서 오는 죄수들의 모습에 익숙해 보였다. 특유의 나른한 미소로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던질 뿐이었다.

「아니면 내가 위에 말해 봐도 되고요. 의무실 보조로 쓰겠다고요. 그러면 적어도 노역 시간엔 괴롭힘당할 일 없잖아요?」

왜 선뜻 호의를 베푸느냐는 나의 시선에, 그녀가 답했다.

「그냥, 당신, 나쁜 사람 같진 않아요. 웃긴 소리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거든요.」

웃긴 소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실제로 선과 악, 그리고 거짓말을 구분하는 「진실의 눈」 특성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내가 특히 그녀 앞에서 말을 조심하는 이유였다.

「……됐다.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

「엥? 당신 맞고 다니는 거 좋아해요? 혹시 그런 취향…….」

「…….」

캐릭터 설정을 잘못한 것 같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내가 원하는 노역 장소는 따로 있었다.

‘광산.’

노역 장소는 크게 ‘공장’과 ‘광산’으로 나뉘었다. 노동 강도가 어느 쪽이 높을지는 뻔한 일, 벌점이 누적되면 가는 곳이 광산이었다.

‘그곳에서 캐는 광석 중 지르코늄이 있다.’

마법 공학에 쓰이는 주재료.

삼키면 굳어 있는 마나 혈이 활성화된다.

정확히는 ‘폭주’한다. 삼킨 뒤 24시간 내로.

그리고 혈이 터져 죽는다.

하지만 폭주하는 혈을 다스릴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래에 연구가 진척되면 지르코늄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분명 늘지 않을까요?」

소설 초반부에 언급되었던 복선.

아직 쓰지 않은 후반부에 주인공이 회수할 예정이었다.

‘주인공이 혈을 다스리는 법을 개발했지.’

주인공이 후에 이곳을 습격하는 이유 중 하나다. 마법사를 양성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 역시 방법을 알고 있다.

내가 설정을 쓴 작가니까.

카인의 천부적 재능과 나의 지식.

둘을 이용하면 무사히 마나 회로를 구축할 확률은 100%에 가까워진다.

‘지르코늄을 얻을 방법은…….’

여러 가능성을 그려 보았다.

기본적으로 광산엔 노역자나 담당 교도관 외엔 출입할 수 없다.

오고 나갈 때 전체 샤워와 함께 소지품 검사가 이뤄지기에, 몰래 조각을 숨겨 나와 달라는 부탁도 누군가에게 할 수 없다.

‘애초에 사방이 적이라 부탁할 사람도 없지만.’

에스텔? 그녀를 통해서도 불가하다.

「진실의 눈」 때문에 목적을 간파당한다.

교도관들과 친분을 쌓는 것도 불가.

행동반경에 제약이 있는 당장 지금으로선.

남은 결론은 하나다.

직접 내려가, 현장에서 삼켜야 한다.

그리고 확실하게 내려갈 방법도 존재한다.

드드드드-!

박음질 소리 사이로, 옆자리 죄수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야, 너 많이도 만들었네. 나 몇 개만 주면 안 되냐? 나 아직 이번 주 할당량 못 채웠거든.”

“쉿! 말 그만 걸어. 난 한 번 더 경고받으면 광산으로 강등이라고.”

다른 방에 있는 이고르의 졸개들이었다.

녀석들은 교도관과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푹 숙였다. 감시의 눈길이 사라지자 고개 하나가 다시 올라왔다.

족제비처럼 생긴 얼굴. 로튼.

식당에서 내 머리에 식판을 엎었던, 시시껄렁한 수작질을 계속해 걸어오는 녀석.

그리고 린치를 걸 때 가장 흥분해 발길질을 해 오던 녀석.

주변을 둘러 보던 녀석은 완성된 옷이 쌓여 있는 내 물건 바구니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더니 슬금슬금 손을 뻗쳐 왔다.

“오, 신참. 손 한쪽으로 일을 꽤 잘하네?”

적당한 타이밍, 잘된 일이다.

안 그래도 무언가 하나 터트리려 했으니까.

탁.

난 녀석의 팔목을 붙잡았다. 반응할 틈도 없이 그대로 잡아끌어 재봉 기계 아래 밀어 넣었다.

드드드드-!

날카로운 송곳이 녀석의 손등 위에 박혔다.

출력은 이미 최대치로 맞춰져 있었다.

“끄아아아아악!”

규정대로라면 동료 상해는 벌점 15점이다.

나는 녀석의 팔을 어깨로 내리누르며 순식간에 관절기를 걸었다. 몸을 빼내려 할수록 고통만 더해지겠지.

삑! 삐빅-!

“무슨 짓인가!”

교도관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뛰어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미친 새끼가!”

죄수들이 달라붙어 떼어 내려 하는 것을, 사력을 다해 버텼다.

“가, 감히 신성한 작업장에서! 당장 그만두지 못해!”

게렉이었다.

지시 불이행은 벌점 5점이었지.

나는 로튼의 귓가에 속삭였다.

“고통스러운가?”

“끄, 끄으으윽.”

녀석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지는 이미 소변으로 젖어 있었다.

……그렇다고 쉽게 풀어줄 생각은 없다.

‘이 방법을 택한 이상 이고르 패거리가 더 끈질기게 달라붙을 것은 자명하다.’

차라리 어중간한 잔챙이들은 덤벼들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본보기를 보여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더욱이, 아직 이 정도론 벌점이 부족하니…….

“어, 어어?”

나는 로튼의 귓불을 물었다.

그 상태로,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돌렸다.

“아아아아악!”

녀석의 귀가 찢기며 허공에 피가 튀었다. 그와 동시에 교도관들이 내 앞에 당도했다.

지직-!

쇼크 건이 몸에 닿고,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끅, 끄윽, 끄윽!”

반쯤 기운 시야로, 부축을 받아 의무실로 사라지는 로튼이 보였다. 핏자국이 뚝뚝 이어지고 있었다.

“입소 며칠 만에 이렇게 거하게 사고를 쳐 주시는군.”

게렉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턱살을 푸들거리며 말했다.

“지시 불이행, 실내 난동, 노동자 상해, 기물 파손. 자네 일터는 내일부터 광산으로 바뀔 것이네. 그 팔다리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말투는 점잖았지만, 잔뜩 화가 난 게 눈에 보였다. 자신의 담당 작업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는 거겠지.

이고르가 다가와 말했다.

“게렉 교도관님 잠시 제가 교육을 하겠습니다.”

짝!

이고르의 얼굴이 돌아갔다.

“내가 반장들 편의를 괜히 봐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말게. 이런 말썽이 벌어지지 않게 관리 똑바로 하라고 그런 거니까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 * *

짝!

이고르의 손바닥이 내 뺨에 명중했다.

딱히 피할 생각도 없었다.

양팔이 부하들에게 붙들려 있거니와, 몇 번 맞다 보니 익숙해진 탓인지 그렇게 아프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른 죄수들이나 내가 너를 두들겨 팰 때, 선을 넘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아나?”

잘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과감히 행동할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벌점 받는 게 두려워서겠지. 누적되면 독방에 가게 되니까. 심할 경우 형량이 늘어나기도 하고.”

“그걸 알면서……. 깡이 좋은 줄 알았는데 그냥 멍청한 거였군.”

애당초 이 교도소는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어졌다. 범죄 근절이 목적이었다면 이런 흉악범들에겐 진즉 사형이 내려졌을 것이다.

다른 죄수를 죽인다거나, 노동이 불가할 정도의 치명상을 입힌다거나.

그런 경우 교도관이 뒤를 봐준다 해도 처벌은 피하기 힘들다.

‘결국 폭력에도 한계가 있다.’

이고르 같은 녀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누리고 있는 게 많으니 몸을 사릴 수밖에.

날아드는 주먹을 보며 배에 힘을 주었다.

퍽!

“……!”

주먹은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기껏해야 이런 정도다.

아무리 죽도록 나를 패봐야, 나를 실제 죽음으로 이르게 하진 못한다.

골절이나 찰과상, 혹은 타박상 정도.

후유증은 며칠 남겠지만 의무실에서 치료받으면 어렵지 않게 회복 할 수 있다.

“넌 독방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모른다. 한 번만 더 벌점을 받으면 곧바로 독방행이니, 그 배짱도 제대로 꺾여서 나오게 되겠지.”

“기대되는군.”

부하들은 계속 배에 주먹을 맞으면서도 초연히 대화를 이어 나가는 나를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독방.

빛도 소리도 들지 않는,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밀폐 공간. 팔다리를 제대로 뻗기도 힘들며 식사는 하루 한 번 멀건 수프와 빵 한 조각만 주어진다.

대개는 버티지 못한다.

고독과 암흑, 굶주림을 버티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미쳐 버린다.

[불굴의 의지]

분류: 과업 - 패시브

효과: 투지가 꺾이지 않습니다. 모든 정신 간섭에 면역이 생깁니다.

물론 내게는 해당 사항 없는 얘기다.

* * *

깡-! 깡-!

안전모와 마스크를 쓴 죄수들이 광산 곳곳을 바삐 오갔다.

“더 빨리 움직여라! 더 빨리!”

작업 환경이 위험한 만큼, 광산엔 지상보다 더 많은 교도 인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우르르-

나는 한 손으로 수레 손잡이를 힘껏 들려 올렸다. 가득 쌓여 있던 토르늄이 수거 차량의 적재함에 쏟아져 내렸다.

─ 팔 병신이 왜 광산에 쳐내려온 거야? 곡괭이질도 못 할 거면서.

─ 쉿! 들을라. 저 새끼가 로튼 손등이랑 귀를 아작 내 놨잖아. 괜히 건드렸다가 피 볼 수 있어.

수군대던 죄수들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쿨럭.”

광산 가득한 흙먼지에 절로 기침이 나왔다. 몇 개월만 일해도 폐가 망가질 게 분명했다.

‘……나중에 노역 장소를 바꿔야겠군.’

다행히 광산 구조를 파악하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목표인 지르코늄의 채굴터나, 수레가 오가는 경로 등은 모두 머리에 입력되어 있었다.

“허튼짓하지 말고 서둘러 움직여라.”

“알겠습니다.”

나는 수레의 방향을 돌려 안쪽 작업장으로 다시 나아갔다.

사거리에서 잠시 몸을 멈추고 허리를 두드렸다.

덜컹덜컹-

“거기 너, 누가 쉬라고 했지?”

당장 교도관의 불호령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일부러 그의 말을 무시한 채 한쪽 통로를 응시했다.

덜컹덜컹-

“내 말이 들리지 않나?”

무시한다.

안쪽에서 덜컹거리는 다가오는 바퀴 소리가 들려 온다.

“죄수 번호 776 대답해라!”

교도관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통로 끝에서 수레 머리가 보여 왔다. 우툴두툴한 보랏빛 광석 덩어리들이 그 위에 실려 있었다.

지르코늄을 삼키면 늦어도 24시간 내엔 마나 혈이 폭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걸 다스리는 데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방해받지 않고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단 얘기지.’

벌점은 이미 맞춰 두었다.

여기서 내가 특정 행동을 하면, 딱 독방 최소 일수를 받을 수 있는 벌점 치가 완성된다.

타닥-!

나는 내가 잡고 있던 수레를 놓고, 통로 쪽 수레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삐빅-!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돌발 상황 발생. A-08 통로 지원을 요청한다. 너희 저 새끼 잡아!”

교도관은 무전을 친 뒤 주변 죄수들에게 지시했다.

“저 새끼를 때려눕히는 녀석에게 상점 5점을 주겠다!”

우물쭈물하던 죄수들은 곡괭이와 수레를 놓고 눈을 번뜩이며 내 뒤로 따라붙었다.

제대로 뛸 수 없는 탓에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져 갔다.

“사, 상점!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저리 꺼져! 내가 잡을 거니까!”

다행히 간발의 차이로 내가 먼저 수레에 닿았다.

“너, 너 뭐야!”

쿵!

당황한 채 몸이 굳어 있던 수레 잡이를 달리던 자세 그대로 밀쳐 넘어트렸다. 곧바로 몸의 균형을 되찾고 지르토늄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건 작은 조약돌 정도의 크기.

그 이상 큰 덩어리는 마나 혈 폭주가 과해 내가 감당치 못한다.

순식간에 스캔을 마치고 적당한 덩어리 둘을 골라 입에 물었다.

“위에서도 그러더니 또 무슨 지랄을!”

“야, 이 새끼, 입에 뭐 물었어!”

나는 바닥에 몸을 바짝 웅크려 쏟아지는 주먹과 발길질을 등으로 막아냈다.

“야, 야, 너 그거 삼키면 죽어! 몸이 터진다고!”

“미친 새끼가, 작업장에서 사람 죽으면 우리도 피 보는 거 몰라?”

꿀꺽-

덩어리 중 하나를 삼켰다.

등 위론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터였다.

‘연기는 이 정도면 됐겠지.’

어차피 힘 차이에 길게 버티는 건 불가했다.

내 몸은 뒤집혀 위를 향했다.

곧 내 구강 구조를 확인해 보려는 무수한 손길이 얼굴에 날아들었다.

적당히 버티다가 힘이 다한 척 입을 열었다.

먼지 가득한 손가락이 입에 들어와 침이 흥건한 지르코늄을 잡아 꺼냈다.

“상점은 내 거다!”

“썅! 넘어트린 건 난데!”

되었다. 의도했던 상황이다.

지르코늄을 삼키고 죽으려다 실패한 것 정도로 알려지겠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죄수와 교도관들, 그리고 새카만 천장을 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죄수 중 하나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도관님. 이 새끼 웃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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