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2화 (2/227)

#002화. 입소 (2)

“소장님은 잠시 자리를 비우셨고 수석 교도관 자리는 부임 예정자가 늦어 현재 공석이다. 두 분이 올 때까진 내가 이 시설 최고 권위자라 생각해라. 거기 발판 위에 서도록.”

검사실 유리 벽 반대편의 교도관.

그는 ‘권위자’라는 말을 힘주어 발음했다.

나는 발판에 올라서며 그의 명찰을 확인했다.

게렉 그리드.

육중한 몸에 살이 오른 얼굴.

돈을 받고 린치를 묵과했던 그 교도관이었다.

우웅-

빛으로 된 원형 고리가 발판에서 올라와 내 몸을 스캔했다. 곧 모니터에 결과가 표시되었다.

[체내 마나 농도 - 0%]

“대충 전해 듣긴 했지만 정말 일반인이군.”

게렉이 등 뒤로 서류를 넘기자 뒤쪽에 서 있던 교도관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1동으로 분류하지.”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할 얘기가 있으니 나가 있게.”

교도관은 경례 후 문밖으로 사라졌다.

게렉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블루서펜트 간부 자리가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위치는 아니지.”

“…….”

“마나를 다루지는 못한다지만 분명 싸움 실력도 대단했을 거야.”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조직 간엔 전쟁이 빈번하다.

타고난 전투 감각과 두뇌, 신체를 극한으로 단련하는 노력으로 카인은 매번 살아남았다.

그 끝에 간부가 될 수 있었다.

순수 전투력으로만 따지면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간부 후보생들보다 못하지만, 카인은 그 모두를 카리스마 하나로 휘어잡았다.

믿고 따르는 녀석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몸으론 싸움 같은 건 무리지. 안쪽 생활이 만만치 않을 거야. 거친 녀석들이 많거든. 자네도 겪지 않았나? 밖에서 원한이 있었다는 이유로 사람을 패고 말이야.”

나는 싸늘한 눈빛으로 놈을 응시했다.

꺼내고 싶은 본론이 무엇인지 알아차렸기에.

“우리 교도소 자랑거리 중 하나가 죄수들 복지가 좋다는 점이네. 노역에 대한 월급을 주거든. 돈을 모아서 특실에서 지낼 수도 있네. 넓은 방을 혼자 쓰는 거지. 값이 비싸고 지낼 수 있는 기간이 짧긴 하지만 말이야…….”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놈은 큼큼대며 목을 가다듬었다.

“뭐, 어쨌든. 밖에서 실수로 가지고 들어온 물건이 있으면 지금 꺼내도 괜찮다는 얘기네. 아니면 밖에 두고 온 것도 좋고.”

말은 길지만 이야기는 간단했다.

놈은 뇌물을 원하고 있었다.

‘……카인이 가장 혐오하는 게 이런 부류의 녀석들이었지.’

제국에서 부패하지 않은 공무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제국 황실부터가 벽 너머의 가난을 외면하고 있으니까.

카인의 어머니는 이런 부패한 관리들에 의해 죽은 셈이나 마찬가지다.

직접적 이유는 마을을 전쟁터로 삼았던 조직들 때문이지만, 뇌물을 받고 그들의 활동을 묵과했던 건 구역관리들이었으니까.

“전 교도관님께 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서 냉랭함이 묻어났다.

“아니, 잘 생각해 보게.”

놈에겐 아쉽게도, 난 금품을 숨겨 들어오지도, 바깥에 재산을 남기고 들어오지도 않았다.

“자네 전직 간부였지 않나. 그만한 사람이 이런 경우를 대비해 두지 않았다고는…….”

머릿속에 자리 잡은 카인의 기억이 속삭인다.

당장 저 탐욕스러운 돼지의 뺨을 후려치라고.

바닥에 쓰러트려 대가리를 잘근잘근 밟아 버리라고.

「냉철함」으로 가까스로 감정을 내리눌렀다.

그리고 나직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게렉의 입가가 씰룩였다.

* * *

죄수 번호 776.

녹색 죄수복으로 갈아입은 뒤 생활용품 팩을 받았다. 교도관들에게 양팔이 붙들린 채, 검사실 건물 밖으로 나갔다.

곁눈질로 주위를 살피며 풍경을 기억에 눌러 담았다.

‘서쪽은 광산과 공장, 동쪽은 수감시설, 감시탑 숫자도 적진 않아.’

까마득히 높은 외벽 외에도, 교도소 부지 곳곳엔 총과 방호 슈트로 무장한 경비 인력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허튼짓은 생각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수작질하다간 몸에 바람구멍이 날 테니까.”

교도관 중 하나가 윽박지르듯 말했다.

수감 건물에 가까워질수록 죄수들의 고함과 말소리가 커져 왔다.

일과 시간이 끝난 듯, 철망에 둘러싸인 넓은 공터엔 죄수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신참인가! 얼굴이 곱상하네. 운동시간 때 보자고!”

“간부라더니 완전 발 병신이잖아? 절뚝거리는 것 좀 봐.”

“내가 싸워서 이길 수 있겠는데!”

몇몇 죄수들이 철망에 달라붙어 덜컹거리며 야유를 보냈다. 교도관이 권총을 들이대자 순식간에 떨어져 나갔다.

“여기가 네가 지낼 곳이다.”

1동 수감 시설은 총 5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교도관들은 그 중 ‘A반’이라는 현판이 붙은 건물로 나를 이끌었다.

복도를 걸어 끝에 있는 방에 도착했다.

‘방은 한 건물에 스물 남짓. 그게 모여 반이 되는 식인가.’

“들어가라.”

끼익- 두꺼운 철문이 열렸다.

6개의 침대와 돌로 된 바닥.

그 뒤, 창살로 막힌 좁은 창문.

방 안에 있던 죄수는 5명.

모두의 시선이 이쪽에 쏠렸다.

“이고르.”

“예.”

가장 안쪽 침대에 앉아 성경을 읽고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스륵 일어났다.

거구에 근육질. 스킨헤드.

이 방의 방장이 누구인지, 나는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신참이다. 교도소 내에서 지켜야 할 수칙들을 알려 주도록.”

“알겠습니다.”

구석에 박혀 있던 다른 남자가 쥐처럼 쪼르르 다가와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를 건넸다.

그리고 쭈뼛쭈뼛 말했다.

“헤헤, 신고식을 좀 하려고 합니다. 방이 조금 시끄러워질 수도…….”

“죽이지는 마라. 소장님이 안 계신 동안 괜히 시끄러워지면 안 되니까.”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니고요.”

끼익-

문이 닫히고 교도관들은 떠나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자명했다.

파박-!

죄수들이 달려들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당황스럽진 않았다. 재빨리 몸을 날렸다. 카인의 육체에 각인되어있는 전투 감각이, 자연스레 나를 이끌었다.

“이 새끼가!”

공격을 피하고.

“팔 잡아!”

어깨로 상대를 밀치고.

“악!”

힘줄이 멀쩡한 왼쪽 팔로 주먹을 꽂고.

할 수 있는 최대한 저항했다.

하지만 한계는 있었다.

카인이 아무리 무도를 익혔었다고는 하나 성치 않은 몸으론 이만한 인원을 모두 제압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양팔이 붙들린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곧바로 배에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

신음을 참으며 눈빛을 쏘아 보내자, 발길질을 날렸던 녀석이 흠칫 물러섰다.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코를 부여잡고 뒹구는 두 놈과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스킨헤드가 보였다.

녀석은 내 앞에 무릎을 굽혀 앉으며 말했다.

“반갑다, 신참. 난 이 방 방장이자 A반 반장을 맡고 있는 이고르다.”

이고르의 입가에 난 흉터가 웃음과 함께 기괴한 각도로 올라갔다.

뒤에 쓰러져 있던 녀석 중 하나가, 코를 매만지며 다가와 말했다.

“저, 이고르 님. 반장이 아니라 부반장이신…….”

홱- 쿵-!

이고르의 거대한 손아귀가 부하의 얼굴을 붙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다른 부하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제퍼. 저, 저 새끼가 말실수를 하네!”

“잘하셨습니다, 이고르 님!”

이고르는 손바닥을 들어 부하들의 말을 멈췄다.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반장은 독방에 갔다. 100일 형을 받았으니 맨정신으론 돌아오기 힘들지.”

반장. 그리고 독방.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이 교도소엔 내가 직접 조형한 인물이 7명 존재했다. 후에 주인공이 이곳을 습격할 때 특정 역할을 하도록 짜놓았던 인물들.

개중엔 물론 죄수도 있었다.

지금 눈앞의 이 녀석은 아니지만.

“……키프텔인가.”

이고르의 눈썹이 움찔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뭐. 교도관에게 들었나 보군. 어쨌든 이곳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주지. 어렵지 않다. 단둘뿐이다. 첫째, 반장의 말을 들을 것.”

“…….”

“둘째, 첫 번째 규칙을 지킬 것.”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녀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결국 네 말에 복종하라는 거군. 차라리 교도관 말을 들으라고 했다면 이것보단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

이고르가 씩 웃었다.

그리고 말없이 내 배에 주먹을 날렸다.

퍽!

이를 악물었다.

앞서 싸웠던 잔챙이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세기.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카인의 단련된 육체가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은 힘이 전부다. 힘이 없으면 이렇게 억울하게 맞고만 있어야 하지. 교도관들도 썩어빠진 놈들이 많으니, 규칙은 널 지켜 주지 못한다.”

내 입꼬리가 픽 비틀려 올라갔다.

“그럼 내가 힘이 있다면 널 반 시체로 만들어도 되는 건가?”

이고르가 순간 멍한 얼굴을 했다.

이내 아주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크흐흐, 재미있군. 마음에 든다. 그 유머 감각이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알려 주지.”

딱-!

이고르가 손가락을 튕기자 부하 하나가 어디선가 작은 금고 하나를 가져왔다.

위쪽엔 저금통처럼 얇고 긴 홈이 파여 있었고 앞쪽엔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이 교도소에선 노역에 대한 대가로 월급이 나온다. 5천 실링이지. 바깥에서 만지던 돈에 비하면 손톱의 때 만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매점에서 필요한 물건들은 살 수 있다. 특실이나 형량 감면권 같은 재밌는 티켓들을 팔기도 하지.”

5천 실링.

한화로 치자면 5만 원가량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그런 물건들도 모두 의미 없는 일이지.”

“……혀가 길다. 결론부터 말하지.”

“네 월급을 내게 바쳐라. 그럼 내가 널 지켜 주지.”

녀석의 눈은 탐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카인의 목소리가 속삭인다.

돈. 지긋지긋한 새끼들.

차오르는 분노를 다시 한번 꾹 내리눌렀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개소리를 하는군.”

“너뿐만이 아니다. A반 인원 대다수가 내게 돈을 낸다. 어이, 제퍼, 지금 세율이 어떻게 되지?”

“예. 30퍼센트입니다.”

아까 바닥에 얼굴이 엎어졌던 녀석.

순간 콧속에서 터져 나왔던 피로 얼굴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녀석 외의 다른 부하들도 30퍼센트라는 말을 들은 순간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강제로 뜯어가는 돈일 가능성이 크겠군. 주먹에 맞고 빼앗길 바엔 알아서 내고 다른 반으로부터 보호받는 게 낫다는 건가.’

“그래. 너는 노리는 놈들이 많으니까 80퍼센트 정도로 하지.”

크흐흐흐흐-

순간 내 입에서 흘러나온 실소에 이고르와 부하들이 주춤했다.

“정신이 나가 버린 것 같군.”

“자기 처지가 너무 불쌍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간부였다가 팔다리 병신이 되었으니까요.”

“제퍼, 80퍼센트가 많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적당한걸요!”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음 달부턴 너도 80퍼센트를 적용하기로 하지.”

“예, 예?”

대화 내용 따위, 더 이상 내 귀엔 박혀 들지 않았다. 카인의 기억과 감정에 동화되어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 카인이 망설이지 않고 조직에 들어간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스스로 보스 자리에 올라 조직을 내부에서 무너트리기 위해서였지.’

다른 조직을 모두 섬멸한 뒤, 최종적으로 시행할 목표긴 했지만.

어쨌든 여러 작전을 수행하며 이런 잡배들은 수없이 보아 왔다. 그리고 수없이 죽여 왔다. 그런 놈들이 앞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수작질을 부리고 있으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짝-!

손아귀가 날아들고, 내 얼굴이 돌아갔다.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났다.

“그만 웃고 대답해라. 난 내가 웃는 걸 좋아하지 남이 웃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불굴의 의지」특성과 카인의 원 기질.

두 요소는 내 고개를 꼿꼿하게 만든다.

게다가 힘을 되찾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길어야 한 달이다.

그 후엔 내 발밑에 꿇게 될 테니, 그때까지 이 정도 여흥은 부릴 수 있게 놓아줄 수 있었다.

“거절한다. 대머리.”

나는 입안에 든 핏물을 이고르의 얼굴을 향해 뱉었다. 그리고 비릿하게 웃었다.

“이, 이익!”

녀석의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울렸다.

[‘카인 리베르’와 동기화가 진행 중입니다.]

[현 동기화율 - 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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