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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202화 (202/205)

< 202화. 엇갈림(1) >

띠링!

[<니플헤임 당직 미션>을 시작합니다.]

[유형 : 경계(단체 PvP)]

[게임명 : 극한의 대지]

[맵 : 니플헤임(특대)]

[관객 수 : - 명]

[생존한 플레이어 수 : 6 명]

쐐애애애애애애액―

칼날을 머금은 싸늘한 바람에 로브가 찢겨나갈 듯 펄럭인다.

얇게 뭉친 눈발이 항복하라는 듯 내 몸을 두들겼다.

새벽의 소성이 담긴 듯 어두껌껌한 하늘은, 마치 남극의 극야를 보는 것 같았다.

‘니플헤임.’

띠링!

[상현달이 떴습니다.]

[<로브:달의 메아리>가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3% 상승합니다.]

[<목걸이:영롱한 달빛>가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20% 상승합니다.]

“위명은 익히 들었다. 상위 리그를 휩쓸고 왔다지? 나는 조장을 맡고 있는 구트룬이라고 한다.”

마치 문짝을 들고 있는 듯한, 거대한 방패에 검을 패용한 남성.

그가 두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렌이라고 합니다.”

가면을 쓰지 않아서 스텟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딱 보기에도 무척 강인해 보이는 사내였다.

조장 구트룬을 시작으로 남은 네 명이 자기소개를 했다.

“송화경. 무림에서의 활약을 전해들었소. 수많은 무림인들을 대표해 감사를 표하오.”

짙은 청색 무복 가슴께까지 내려온 수염.

한 쌍의 날개, 검을 들고 있는 중년인이 포권했다.

“나는 스벤. 이 조에서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를 만나 반갑군.”

거대한 도끼와, 우락부락한 몸에 가득 둘러진 각종 무기들.

전사 타입의 마초남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쳇, 궁수가 들어왔으면 좋았을걸. 나는 사브르다.”

머리 위로 뽈록 세워져 있는 귀에, 동물의 그것처럼 노란 눈동자가 빛난다.

손에 끼워져 있는 장갑에 거대한 갈퀴가 돋보이는 낭인족이 말했다.

“볼티노. 앞으로 나랑 파트너로 움직이게 될 거야.”

실용적으로 보이는 가죽 갑옷에, 이마부터 턱까지 사선으로 새겨진 흉터.

반월의 곡도를 들고 있던 중년인이 한 손을 흔들었다.

‘고위 플레이어들이라······.’

한 명 한 명 살핀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두들 범상치 않은 기세를 가지고 있다.

성계 대항전에서 만났던 쿠 훌린을 아득히 능가할 만큼.

“사브르, 렌 정도면 어지간한 궁수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니 그만 투덜대도록.”

“우리 조만 궁수가 없어서 푸념 좀 해본 겁니다. 이봐, 악의는 없으니까 오해 말라고.”

구트룬의 핀잔에,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미안함을 표시하는 사브르.

아무런 감흥도 없었던 나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괜찮습니다.”

“새롭게 합류한 조원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군. 자세한 건 파트너인 볼티노에게 듣지.”

그리고는 이어지는 구트룬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시간이 없다고?’

비상 상황에 대비하는 오분대기조 역할인 줄 알았는데, 예상했던 것과 다른 미션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모두들 건투를 빌겠다.”

“조장도요.”

“으으읏! 출발해볼까.”

두 명씩 짝지어 제각기 방향으로 흩어지는 조원들을 뒤로하고, 나는 눈치껏 볼티노에게 따라붙었다.

쏴아아아아아아―

창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우리 둘.

밑으로는 거대한 대지가 펼쳐져 있다.

‘실제로 안 봤으면 못 믿었을 거야.’

그걸 보면서 나는 가슴 한 켠이 섬뜩했다.

물 한 방울 존재할 수 없는 극한의 온도와,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극악의 환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플헤임엔 수많은 몬스터들이 존재했다.

‘이런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엄청나게 강하겠지.’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포효하는 지옥 곰.

수백 마리가 무리 지어 달리는 헬 하운드.

입김을 뿜어대며 도끼를 휘두르는 화이트 오크들까지.

‘상위 플레이어라고 해도 애를 먹겠는데.’

한마디로 저들 하나하나가 중간계를 위협할 고위 몬스터라는 뜻이었다.

펄럭! 펄럭!

그때 크게 날갯짓하며 내 근처로 붙는 볼티노.

“첫 당직이라 생소하지?”

나는 날개가 부딪치지 않도록 간격에 신경 쓰며 입을 열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목적지가 있는 건 아냐. 그냥 순찰을 돌고 있다고나 할까.”

“순찰······?”

내가 말끝을 흐리자, 볼티노가 들고 있던 검으로 지상을 가리켰다.

“땅에도 영역이 있듯 하늘에도 영역이 있지.”

하늘의 영역.

말하자면 영공領空을 뜻하는 것이리라.

“지상에서도 누군가가 들어와서 정찰 및 첩보 활동을 하지 않을까 경계하는데, 하늘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네. 아니, 오히려 하늘이 더 까다롭지. 시야도 넓은 데다가, 워낙 넓어서 발각될 위험도 적고 말이야.”

“그럼 우리는 누군가가 영역 내부로 들어오진 않나 감시하는 역할입니까?”

내 물음에 볼티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제법 힘들 걸세. 특히 스타팅 포인트였던 엘린 성城은 천계가 니플헤임에서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영역. 마계에선 호시탐탐 이곳을 노리고 있지.”

펄럭! 펄럭!

볼티노의 설명을 듣고 있는데, 저 멀리에서 검은 날개를 펄럭이고 있는 한 악마가 보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그래서 전투 준비를 위해 창을 고쳐 잡고 있는데, 볼티노가 한 팔을 뻗어 나를 만류했다.

“······?”

“아직 영역 내부로 침투하진 않았어. 저어기 저 산 보이나?”

“예.”

“저 산까지가 신성력이 미치는 범위일세. 저길 넘어오지 않으면 굳이 싸우지 않아. 그사이에 다른 악마가 침투해 들어올 수도 있거든.”

그 말과 동시에, 날개를 펴며 크게 선회하는 볼티노.

나도 활공하면서 그를 뒤쫓았다.

“비행이 제법 훌륭하군. 적어도 못 따라와서 전력 이탈할 일은 없겠어.”

“······.”

“아무튼, 우리의 역할은 제거가 아니라 저지일세. 영역을 침투해, 엘린 성 근처로 오지 못하게 막는 거지. 그래서 쉬지 않고 돌아다녀야 하니까 제법 바쁠 거야.”

펄럭! 펄럭! 펄럭!

크게 날갯짓하며 더 높은 상공으로 날아가는 볼티노.

나는 우리가 움직인 경로를 그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렇게 움직였군.’

부채꼴 모양의 영역 중심부를 빙글빙글 돌면서 고도만을 조정하던 상황.

뭐 하고 있었나 했는데, 순찰에 가장 용이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볼티노의 뒤를 쫓아, 한참을 비행했다.

그것도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지루하네.’

쏴아아아아아아아―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눈보라.

도화지처럼 하얗기만 한 세상.

볼티노의 설명 이후, 그 위를 비행한 지 어느덧 다섯 시간 째.

영롱한 달빛이 체력을 회복시켜 주니, 그저 무의미한 비행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지루하지?”

내 심정을 눈치챈 볼티노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는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3일 뒤에는 죽을 맛일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하라고.”

“······?”

3일 후.

‘3시 방향 1,824에 하나. 1,827에 두 명.’

영공을 침투한 세 명의 악마.

두 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걸로 보아 상위 악마였다.

‘돌아갈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녀석들을 발견한 나는 곧장 날갯짓하며 녀석들을 따라붙었다.

“흥.”

펄럭! 펄럭!

그러자 날 무시한 채 엘린성으로 향하는 악마들.

‘도착하기 전에 다 죽여주지.’

3일 동안 10명의 악마를 죽이며 얻은 경험에 따라, 나는 인벤토리에서 활을 꺼내 들었다.

쐐애애애애애애액!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에 귀가 얼얼해진다.

‘고급 궁술로 올려둬서 다행이군.’

보통 이 정도의 속도에선 공기 저항 때문에 화살이 똑바로 날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의 대련을 통해, 화살에 마력을 담을 수 있게 된 상태.

핑! 콰지지지지지지직!

활시위를 놓자, 뇌전을 머금은 화살이 섬광처럼 날아갔다.

“헉, 조심!”

“궁수였군. 제길.”

하지만 하늘이 워낙 넓다 보니, 악마들은 가볍게 날개를 트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

“바누젤! 우리가 엄호할 테니, 그대로 가라.”

그러고는 따로 떨어져 나오는 두 악마.

‘일단 한 명씩 처리해야겠어.’

나는 선두를 날아가는 악마를 뒤쫓으며, 계속해서 화살을 날려댔다.

딱히 화살로 죽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속도를 줄여주기만을 기대할 뿐.

“뒤를 잡았다!”

그때 내 등 뒤로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휘이이잉!

따로 떨어져 나간 두 악마가 어느새 내 뒤를 점한 채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나한텐 안 통해.’

“레에에에에에엔! 내가 엄호하지!”

한참 뒤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악마를 척살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던 볼티노가, 어느새 합류하여 두 악마의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제일 앞에서 날아가는 악마와, 그를 뒤쫓는 나.

그리고 그 뒤로 따라붙은 두 악마, 마지막으로 제일 뒤에 있는 볼티노까지.

그때부터 우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분주히 날갯짓해야 했다.

‘마치 전투기 간의 싸움을 보는 것 같네.’

평소의 전투는 전장이 허공으로 옮겨졌을 뿐, 지상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갈 땐 얘기가 다르다.

멈추기 위해선 최소 1초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정도면 적의 목을 베기 충분한 시간.

그렇다고 뒤로 돌 수도 없었다.

날개의 가동 범위가 있기에, 뒤를 돌면서 날갯짓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내가 먼저 죽일 수 있겠어.’

뒤에서 따라붙는 악마들과의 거리는 227미터.

내 앞에 있는 악마는 고작 103미터밖에 차이가 안 난다.

이 상태라면 내가 먼저 악마를 잡아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딜!’

그러자 먹잇감으로 찍어두었던 악마의 날개 근육이 미세하게 변한다.

이대로라면 따라잡힐 거라고 판단하곤, 급선회를 시도하려는 것이다.

마력장을 통해 한발 빠르게 알아차린 나도 급하게 날개를 틀며 선회했다.

“흐읍!”

그러자 빠르게 가까워지는 먹잇감과의 거리.

내 포물선의 크기가 훨씬 작았기 때문에,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

서걱!

그저 눈을 부릅뜬 채, 창으로 스왑한 내 손에 찢겨 나갈 뿐.

‘이걸로 한 놈은 끝났고.’

“안 돼!”

“젠장, 바누젤!”

두 조각으로 나뉘어, 붉은 선혈을 흩뿌리며 추락하는 동료를 보곤 경악하는 악마들.

그 순간 나는 날개를 접으며 지상으로 낙하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

다른 두 악마, 그리고 볼티노 또한 날개를 접으며 따라붙는다.

나와의 거리는 어느새 100미터.

반면에 볼티노는 그사이 가까워져, 70미터 정도의 거리를 남겨두고 있다.

파아아앙!

몸을 웅크려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나는, 지상을 코앞에 두고 날개를 펼치며 저공비행했다.

그와 동시에 바로 선회하면서 녀석들이 도달하기 전에 몸을 정방향으로 돌렸다.

서걱!

“컥······.”

‘나이스 볼티노.’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상을 내려오던 악마 중 한 명의 날개가 찢어진다.

녀석은 그대로 지상에 처박히며,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이로 바뀌었다.

이제 남은 녀석은 딱 하나.

“죽어어엇!”

마지막 악마가 눈을 부릅뜬 채 내게 날아들었다.

현재 속도는 마하 이상.

전투기들이 날아다니는, 초신속의 세계.

즉, 소리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찌르고 들어오는 검이, 마치 벼락이 날아드는 것 같았다.

‘좌상복부로 공격이 들어올 확률이 47프로.’

너무 빨라서 적의 공격을 보고 피하는 건 쉽지 않다고 판단한 나는, 녀석의 검이 향할 궤적을 빠르게 읽어내렸다.

그리고는 확률적으로 가장 낮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왼쪽 쇄골.’

그와 동시에 녀석이 공격을 피하기 가장 어려운 곳에 창을 찔러 넣었다.

빠아앙!

악마와 내 몸이 순간적으로 겹쳤다가 떨어졌다.

나는 녀석의 검을 피하는 데 성공했고, 녀석은.

“끄아아악!”

왼쪽 어깨와 쇄골, 그리고 갈비뼈 몇 개가 통째로 사라진 악마가, 바닥을 수백 바퀴나 구르고서야 멈추었다.

내가 찔러넣은 곳은 왼쪽 쇄골.

급소는 아니지만 속도가 속도인지라, 대포알에 맞은 것처럼 살점이 통째로 뜯겨나가 있었다.

“수고했네. 내가 마무리하지.”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악마에게 다가간 볼티노.

그가 검을 휘둘러 악마의 목을 친다.

‘후우, 끝났군.’

그제야 긴장을 내려놓은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소리보다도 빠른 초신속의 세계.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치명적인 결과가 연출될 수 있다.

그래서 바짝 긴장한 채 전투를 치르다 보니, 정신력의 소모가 너무 컸다.

“정말 대단하군! 이게 승급하고 첫 당직이라고 하지 않았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다가온 볼티노.

“맞습니다.”

“첫 공중전인데도 이렇게 잘 싸우다니! 실제로 보지 못했으면 믿지 않았을 것이야.”

“아, 네.”

“급박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릴 정도였지. 당직 마지막 날에 모이면 조원들에게 얘기해 줘야겠구만. 아마 모두들 믿지 않을 테지, 크흐흐.”

그는 감탄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다다다다 연속으로 말했다.

“볼티노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영화를 많이 봐 둔 덕분이지.’

다른 성계와 다르게, 지구에는 전투기가 존재했으니까.

물론 실제로 전투를 볼 수는 없지만, 영화를 통해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어떤 포인트를 잡고 싸우는지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나 또한 전투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애를 먹었을 것이다.

“휴우, 적당히 쉬었으니 이만 가 보자고.”

한숨 돌린 우리는 다시 고도를 높이며 순찰을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아―

‘정말 개같은 세상이네.’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곳의 날씨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칼바람이 불어닥치고,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보라가 쏟아진다.

창공을 누빌 때마다 얼굴에 부딪히는 눈발이 굉장히 거슬렸다.

그때였다.

꽈아아앙! 꽈아앙! 꽈아아아아앙!

저 멀리 지상 한 쪽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뭐지?’

자세히 살펴보니, 한 무리의 생명체들이 땅에 발을 붙인 채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시작했군.”

그러나 볼티노는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뭡니까?”

“내가 말하지 않았나. 3일 뒤에는 죽을 맛일 거라고.”

“······?”

“상위 플레이어들이 미션을 치르고 있는 거라네.”

“상위 플레이어?”

내가 되묻자, 볼티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상위 리그가 열리는 날이니까.”

< 202화. 엇갈림(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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