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새로운 시야(6) >
“이번 독은 진짜 독할 거예요.”
독 수련용으로 지어진, 부활이 가능한 대련장.
“후우······.”
회복의 물약을 부어 만든 욕조 앞에서, 나는 크게 심호흡 했다.
“기존에 겪어보신 독에서, 졸본에서 들어온 독사의 피, 웨스테로스의 신경 증폭 약초, 알프하임의 쇠락 클로버, 미드가르드의 요르문간드 비늘, 나카츠쿠니 복어의 독, 티르너노그 저주받은 망령의 머리카락, 탐리엘 타란튤라의 피를 추가로 조합했거든요.”
대충 독한 재료를 몽땅 때려넣었다는 뜻.
잠시 후에 있을 고통을 인지한 건지, 몸이 잘게 떨린다.
‘침착하자.’
내 몸은 현재 고문 받기 직전에 보이는 것과 같은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인벤토리에서 꺼낸 저주셋을 착용했다.
‘정신 스텟을 올리기에 이만한 방법이 없어.’
마의 구간을 넘었기에 안 오를 줄 알았던 정신 스텟이, 독 수련법에서만큼은 계속 올랐다.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뜻과 마찬가지였지만, 나한테는 스텟이 오른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회복의 물약을 부어서 만든 욕조.
그 안에 들어가니, 시원하고 상쾌한 감각이 나를 감싼다.
‘이게 통했으면 좋겠는데.’
최대한 오래 생존한 채로 독의 고통을 느끼면, 정신 스텟이 많이 오르지 않을까 싶어서 시도하게 된 방법이었다.
“한 방울만으로도 수백 명을 거뜬히 죽일 수 있는 독이에요.”
그러자 내게 작은 유리병을 건네는 당소소.
그녀에게서 유리병을 받은 나는.
‘할 수 있어.’
독을 단숨에 들이켰다.
띠링!
[<독:감각증폭신경쇠락독>에 중독되었습니다.]
[<근육 경직> 상태에 빠집니다.]
[<감각 증폭> 상태에 빠집니다.]
[<마력 경색> 상태에 빠집······.]
[<마비> 상태에 ······.]
[남은 체력 : 99%]
지금껏 본 적 없는 무수한 알림창이 나타났다.
하나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심상치 않은 효과들.
“어머, 조금만 드시지······.”
“스읍, 후우.”
걱정스러워하는 당소소를 뒤로하고, 나는 계속해서 심호흡했다.
“스읍―.”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후우―.”
잠시 참았다가 폐 속에 있는 모든 공기를 내쉬었다.
그렇게 한동안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있을 때였다.
“스으, 흡!”
식도를 타고 내려간 독.
위장에서 부글부글 끓는 느낌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끄윽······!”
근육이 수축하며 뼈와 혈관을 조여댄다.
마치 온몸의 근육에 쥐가 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두근― 두근―
폭주 기관차처럼 날뛰는 심장이 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참을 수 있어.’
뒷목이 쭈뼛했다.
[남은 체력 : 54%]
“괘애앤차아느으세에······.”
삐이이이이이―
당소소의 말이 길게 늘어지며 들리더니, 이내 이명만이 내 귀에 가득했다.
나는 이가 바스러질 정도로 앙다물었다.
욕조 속, 회복의 물약에 닿아있는 피부가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촉각이 한계의 한계까지 증폭되면서, 무언가와 맞닿는 것만으로도 불구덩이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
‘끄으으으으으으으윽!’
엄청난 고통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근육이 수축하여 말을 듣지 않았다.
시야가 깜깜해지고, 감각이 느껴지질 않아서 내가 누워 있는지, 서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내 통제 안에 있는 건.
‘크윽, 집중······ 하자.’
정신, 딱 하나뿐.
띠링!
[정신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남은 체력 : 17%]
‘버텨······야 해.’
온갖 통증의 향연 속에서, 나는 딱 하나만 생각했다.
내가 이루고 싶은 소원.
초월 리그의 챔피언이 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한 상태임에도 나는 한 가지 사실에 감사했다.
‘지구 성계에 다녀올 수 있어서 다행이야.’
콜로세움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머니의 얼굴이 흐릿하게 기억나던 상황.
하지만 최근에 가져온 가족사진 덕분에, 희미해져 가던 어머니의 얼굴이 다시 또렷해졌다.
그것만으로도.
‘다시 볼 수 있어.’
충분히 버틸 만 했다.
띠링!
[정신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남은 체력 : 3%]
그렇게 억겁과 같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후우······.’
삐이이―
“······차리세요, 안우진 님.”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이명이 줄어들면서 당소소의 목소리가 천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독에 중독되면서, 몸이 보내오는 신호에 따라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감각이 서서히 돌아온다는 건, 딱 하나.
‘결국 죽지 않고 버텼어.’
내가 저 지긋지긋한 독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괜찮으세요?”
어느새 화끈거리던 통증도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음. 음.’
혀도 서서히 움직이고, 깜깜하던 시야가 조금씩 밝아지면서 여러 겹으로 겹친 당소소의 모습이 보였다.
잃었던 감각을 되찾은 덕분에, 지금 내가 욕조 안에 앉아 있다는 것도 느껴졌다.
[남은 체력 : 17%]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백독불침百毒不侵>이 <천독불침千毒不侵>으로 각성합니다!]
눈앞에 뜬 천독불침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지독한 독이었어.’
지금까지 겪었던 독 중 가장 지독했던 녀석의 통증이 1 정도였다면, 오늘 경험했던 건 족히 5는 되는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그때 귓가를 파고드는 당소소의 목소리.
‘아, 아까부터 계속 물어보는 것 같던데.’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서둘러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아, 괜찮습니다. 이제야 좀 정신이 드네요.”
“휴우, 걱정 진짜 많았어요. 안우진 님 얼굴이 퍼렇게 변했다 하얗게 질리기를 계속 반복하는데, 중간에 죽여야 하나 고민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안 좋았습니까?”
“보통 통증이 심하면 금방 죽잖아요. 근데 회복되는 욕조 안에 들어가 계시니, 만의 하나를 생각할 수밖에요. 고문받다가 정신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거든요.”
당소소는 긴장이 풀렸는지 욕조 곁에 무너지듯 털썩 앉았다.
감각이 돌아오면서, 여려 겹으로 겹쳐 있던 그녀의 모습도 또렷이 보인다.
아마 흔들리던 내 동공이 안정되는 걸 보면서 안도한 모양.
‘정신이 얼마나 올랐지?’
나는 가장 먼저 내 스텟창부터 체크했다.
[이름 : 안우진(닉네임 : 렌)] [소속 : Team 투지]
[리그 : 고위 리그]
[근력 : 177] [민첩 : 185] [체력 : 157]
[정신 : 102] [지력 : 104] [마력 : 153]
정신 스텟 102 포인트.
‘대박이군.’
리미트가 해제되고 첫 훈련에서만 무려 3 포인트나 상승한 것이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 효율이 무척 좋네요. 이 독, 앞으로도 계속 만들 수 있겠습니까?”
덕분에 방금 전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내 목소리는 무척 밝았다.
“이걸 또 하신다고요?”
“예. 스텟이 오르지 않을 때까지는 계속해야죠.”
“하······.”
나는 욕조에서 일어나, 곁에 있던 가운으로 몸을 슥슥 닦았다.
코와 입에서 얼마나 많은 피가 흘러나왔는지, 욕조에 가득 담긴 청명한 빛깔을 띠던 회복의 물약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다른 팀원들에게도 추천해볼 만한 훈련법이네요. 넉넉하게 좀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아무도 안 하려고 할 것 같은데요.”
“자, 이만 가시죠. 늦겠군요.”
현재 시각은 17시 23분.
17시 30분에 집무실에서, 권속으로 계약된 팀원들과의 미팅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
“여기 정리 좀 부탁드려요. 독이 엄청 독하니까 조심하시구요.”
“예, 저희가 잘 정리하겠습니다.”
“다 마무리된 다음에 저 약품으로 꼭 세척하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질린 표정의 당소소를 잡아끌자, 그녀가 주변에 있던 사용인들에게 말했다.
처리 중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부를 거듭하면서.
‘당소소가 우리 팀으로 들어와서 다행이야.’
나는 내심 그녀와의 인연에 감사했다.
“앗, 형. 오셨어요?”
“모두들 이미 와 있었군요.”
내 집무실.
당소소를 데리고 들어가자, 아홉 명의 팀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창범, 제이스, 지그, 루치아노, 모용악, 고건하, 카이로시아, 당소소, 수호.
내 바로 뒤에서 우리 팀을 이끌어가는 최상위 플레이어들.
“······.”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떨떨한 표정의 오현석까지.
“자, 모두 모였으니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집무실에 빼곡히 둘러앉은 팀원들을 본 나는, 벽 한쪽에 설치한 칠판에다가 무언가를 적었다.
「근력 스텟 23, 민첩 스텟 25, 체력 스텟 43」
“······이게 뭐예요, 형님?”
칠판에 쓰여진 내용을 본 팀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오늘 올릴 스텟들입니다.”
“저걸 다 올리신다구요?”
“포인트가 도대체 얼마나 있으셔야······?”
올릴 스텟을 모두 합치면 91.
어마어마한 숫자에, 모두들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남은 포인트 : 2,497,800]
‘많이 모이긴 했네.’
코드 제로에서 얻은 포인트가 64만.
승급전에서 82만 4천 포인트를 얻었다.
한마디로, 나머지 103만 포인트는 플레잉 코치를 통해 벌었다는 뜻.
‘이 상태라면 고위 리그도 문제없겠어.’
플레이어들이 팀 투지에 내는 수수료는 30%.
그 30%에서 93%를 아세리안이, 나머지 7%를 내가 가져가는 식이다.
그걸 역순으로 계산하면, 팀원들이 평균적으로 얼마의 포인트를 벌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세리안이 벌어들인 포인트는 1,300만 정도. 팀 전체가 벌어들인 건 5천만에 가까워.’
5천만 포인트.
어마어마한 양이지만, 소속된 플레이어의 숫자가 2만 명이다.
즉, 한 명당 평균적으로 2,500 포인트 정도 벌었다는 얘기였다.
고작 해봐야 하위 리그의 넘버링 3에서 4 정도면 벌어들일 수 있는 포인트.
‘아직 발전 가능성이 훨씬 커.’
우리 팀이 가지고 있는 커리큘럼이라면, 넘버링 6에서 8까지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근데 스텟 올리는 건, 왜 갑자기 얘기해주시는 걸까요?”
감탄하는 팀원들 사이에서, 카이로시아가 흘러내린 은발을 쓸어올리며 물었다.
“앞으로는 내가 스텟 올리는 걸 감안하고 포인트를 써야 효율적이니까.”
“네?”
나는 칠판에 쓰여진 숫자들을 4로 나눴다.
“여러분은 오늘 근력 5, 민첩 6, 체력 10 스텟이 오를 겁니다. 근력이나 민첩보다, 체력 스텟의 상승 폭이 훨씬 크죠. 앞으로 포인트를 쓸 예정이라면, 이걸 감안하고 올리라는 뜻에서 설명해 주는 겁니다.”
권속 계약을 맺으면 내가 올리는 스텟에서 4분의 1만큼 상승한다.
이미 설명했음에도, 이런 자리를 가진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이걸 보너스 스텟이라고 생각해선 곤란해.’
스텟 1포인트도 세세하게 분석하고, 고민해서 올려야 한다.
나는 은연중에 그런 뜻을 내비친 것이다.
더 높은 곳을 지향한다면, 그래야만 했으니까.
“아,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요.”
그러자 고개를 주억거리는 팀원들.
“모두들 지금까진 아주 잘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상위 리그엔 통곡의 벽이라는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 모습에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발 그 벽을 무사히 지나가길.
그래서 상위 넘버링, 랭커, 더 나아가서 이들 중 한 명이라도 고위 리그까지 올라오길.
나는 그런 바람을 담아서 얘기했다.
“조금만 더 힘내시죠. 모두들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어서 들어오신 분일 테니.”
오늘 내가 할 얘기는 이걸로 끝.
마지막으로 감성적인 부분을 자극해 주었다.
아마 식어가는 열정에 새로운 동기 부여가 되었을 것이······.
“전 소원 이뤘는데요?”
“저도 지금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저도요.”
‘뭐?’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나는 당황했다.
사후에 콜로세움으로 입장하는 모든 플레이어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뤄야 할 소원이 없다면?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소원을 이뤘다는 이들에게 물었다.
“원래 소원이 뭐였습니까?”
“누구도 쉽게 넘보지 못하도록 강해지고 싶었습니다.”
모용악이 말했다.
“저는 굶어 죽었거든요. 그래서 배불리 먹고 있는 요즘, 너무 행복합니다.”
지그가 말했다.
“원래는 있었는데, 안우진 님이 대신 이뤄주셨어요.”
당소소가 말했다.
계속 강해지고 싶다는 모용악은 현재 진형행.
굶어 죽기 싫다는 지그의 소원은 이미 이루어진 셈이었고, 당소소는 뭐.
‘그럼 열심히 할 이유가 없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소원이 없으면 왜 매일같이 힘든 훈련을 견디고 있는 겁니까.”
동기가 없다면 행동 또한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저들은 여전히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상황.
“지금의 일상을 지키고 싶으니까요.”
내 물음에 모용악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지그, 당소소도 같은 생각인지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의 일상을 지키고 싶다라······.
팔짱을 낀 채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럴 수도 있겠군.’
누군가에겐 지옥 같은 생활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소중한 일상일 수도 있으니.
모용악의 말에 납득한 나는 스텟 상점에 접속했다.
[근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25,000 P를 소모하셨습니다.]
[근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25,000 P를 소모하셨습니다.]
[근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25,000 P를 소모하셨······.]
물론 내 생각 또한 같다는 건 아니었다.
‘내 동기는 여전히 하나뿐이야.’
소원을 이루는 것.
그걸 위해, 방금전까지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고 왔다.
그리고 내일 또한 그럴 것이며, 1달 후, 1년 후, 10년 후.
‘포기하지 않아.’
100년이 흐른다고 해도 같을 것이다.
[이름 : 안우진(닉네임 : 렌)] [소속 : Team 투지]
[리그 : 고위 리그]
[근력 : 200] [민첩 : 210] [체력 : 200]
[정신 : 102] [지력 : 104] [마력 : 159]
쏴아아아아아아아아―
살을 에는 듯한 북풍한설이 휘몰아친다.
격렬하게 춤을 추는 눈발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여긴······.’
시야를 가리는 거대한 성벽.
하늘 위에는 얇게 펼쳐진 푸른색 막이 감싸고 있다.
[니플헤임에 입장하셨습니다.]
[<달의 메아리>가 외부 온도를 차단합니다.]
고위 리그의 첫 당직 근무가 치러지는 장소는.
“죽은 필릭스를 대신해 들어온다는 게 그대였군. 플레이어 렌.”
얼음의 세계, 니플헤임.
그곳에서 날개를 편 다섯 존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201화. 새로운 시야(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