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여우 사냥(6) >
명상을 하며,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던 상황.
띠링!
[하현달이 떴습니다.]
[<로브:달의 메아리>가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3% 상승합니다.]
[<목걸이:영롱한 달빛>가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20% 상승합니다.]
나는 알림 소리에, 두 눈을 감은 채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시간이 됐군.’
미션 완수까지 남은 시간은 5일.
어떻게 보면, 독재자를 죽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쉽지 않겠지.’
평양 곳곳에 퍼져 있던 모든 병력이 집결하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지난 1주일 간 평양을 넘나들며 녀석들에게 공포를 심어줬으니까.
지금쯤 내가 오지 않을까, 녀석들이 역으로 불안해하고 있을 것이다.
‘후우.’
지나간 기억의 편린들이 날아든다.
두 눈을 바쳐, 초감각을 얻으며 치렀던 회귀 전의 상위 리그 승급전.
성계 대항전 보상으로 얻은 <그림자 표식>을 사용하며 치렀던 상위 리그 승급전.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치르는 고위 리그 승급전까지.
‘시작해 볼까.’
나는 천천히 두 눈을 떼었다.
띠링!
[지구인 ‘리영길’에게 <그림자 이동> 능력을 사용합니다.]
시야가 뒤바뀌자마자, 역수로 쥐고 있던 단검을 휘둘렀다.
푹! 푸슈우우욱!
“······!”
그러고는 몸을 틀어, 죽은 리영길과 함께 경계를 서고 있던 사람도 목을 찔러 죽였다.
“저, 저승사자가 왔다!”
이제 남은 건,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두 사람.
‘어딜!’
죽은 녀석이 손에 쥐고 있던 권총을 빼앗은 나는, 곧바로 총구를 겨누는 두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털썩―
총알이 박히는 반동에, 두 사람이 몸을 뒤튼 채로 고꾸라진다.
이걸로 복도에 있던 군인들 정리는 완료.
‘지하 벙커 안이군.’
높이 3미터 정도의 복도.
주변을 둘러본 나는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하게 움직였다.
죽은 네 명이 보고 있던 방향은 6시.
그렇다면 독재자는 12시 방향에 있을 것이다.
탁! 탁! 탁! 탁! 탁!
―방금 총소리를 확인. 저승사자는 이미 내부로 침투.
―위치는 J구역 7번 복도. 바로 지원을 보내주기 바란다.
‘ㄹ’자 형태의 복도 너머로 둔탁한 군홧발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불필요하게 코너가 많네.’
아마 지하전시사령부의 역할도 겸하고 있어서, 이런저런 장비들이 매립되어 있는 모양.
이런 형태의 복도일수록 침투하기가 까다롭다.
코너 한쪽을 점한 채, 농성을 벌이면 뚫기가 쉽지 않기 때문.
‘나한텐 오히려 유리해.’
코너 바로 앞에 도착한 나는, 벽을 박차며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그리고 3미터에 가까운 위치에서 총을 겨누며 코너를 빠져나왔다.
“헉, 위다!”
벽 너머로 총구를 고정한 북한군 중 한 명이 뒤늦게 날 발견했지만.
탕탕탕탕탕!
권총이 불을 뿜는 것과 동시에, 눈을 번쩍 뜨며 쓰러질 뿐.
‘서둘러야 해.’
‘ㄹ’자 형태를 벗어나자, 길게 쭉 뻗은 일자형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을 전력 질주하니, 주변에서 수많은 기척들이 느껴진다.
‘독재자를 다른 곳으로 빼돌리려고 하는군.’
내게 가까워지는 병력 반, 그리고 멀어지는 병력 반.
절반은 날 막아서려는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독재자에게 향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타깃을 지킨다는 건,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어.’
현재 내 스텟으로는 100미터를 5초 내로 주파가 가능하다.
막아서는 북한군을 뚫어내야 한다는 제약이 있긴 하지만, 그것 또한.
“모두 집중. 놈은 여기로 향할 가능성이 크, 헉······!”
“뭐야, 어떻게 벌써!”
탕! 탕! 탕!
내 발목을 잡을 수 없었다.
‘내 움직임을 눈에 담는 것도 어려울 거니까.’
세 명의 북한군을 죽이고 다시 ‘ㄷ’자 형태의 코너.
코너를 돌면 두 명이 대기 중이고, 또 그 너머를 돌면 아홉 명이 날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시간을 잡아먹히면 안 돼.’
나는 슬라이딩하며, 바닥에 딱 달라붙은 상태로 코너를 벗어났다.
“헉······!”
예상치 못한 자세로 등장한 나를 보며, 숨을 들이켜는 북한군들.
탕! 탕!
한 공간에 세 명의 사람이 있었지만, 총 소리는 두번 만 울렸을 뿐이었다.
곧장 몸을 일으킨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녀석들을 지나쳤다.
‘이제 아홉 명만.’
딸깍―
그리고 들려오는, 기분 나쁜 스트라이크 클립 소리.
‘수류탄!’
반사적으로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든 나는, 크게 팔을 휘두르는 누군가의 움직임에 맞춰 단검을 던졌다.
복도 끝에서 작은 수류탄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게 회전하는 수류탄을 향해 날아가는 단검.
탱!
‘좋았어!’
맑은 쇳소리와 함께, 단검과 부딪힌 수류탄이 궤도를 틀었다.
수류탄이 향한 곳은.
“헉, 미친!”
“모두 엎드려!”
아홉 명의 북한군이 숨어 있던 복도의 코너 뒤.
‘잘 가라.’
꽈아아아아아아앙!
순간 밀가루 포대가 터지듯, 어마어마한 먼지가 복도를 집어삼켰다.
땅이 흔들리고, 천장에서 작은 돌가루가 부스스 떨어졌다.
‘다 죽었군.’
지하다 보니, 쉽게 가라앉지 않는 먼지.
그 너머로 상반신이 터지거나, 온몸에 쇳조각이 박혀서 고꾸라진 아홉 구의 시체가 느껴진다.
밟지 않도록 세심하게 발을 놀린 나는, 그대로 복도를 빠져나왔다.
그러자 보이는 무수한 숫자의 방들.
‘여긴 없어.’
나는 그 공간들을 본 척도 하지 않고 지나쳤다.
모두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퇴로가 막힌 방들.
저런 방에 독재자가 몸을 숨기고 있을 리가 없었다.
―녀석이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못해도 10분 안에는 도착할 겁니다.
―10분이라······. 그 정도면 충분해. 어서 여길 빠져나간다.
―녀석은 어떻게······.
―지금까지 그 많은 시도를 하고도 느껴지는 바가 없나? 못 죽이니까 일단 대피하자고.
거기다 복도 끝 계단에서 이런 대화가 들리기도 했고.
‘여기서 더 내려가는 길이 있었군.’
아마 전시 사령부보다 더 밑에 지하 도로가 뚫려 있는 모양.
‘세 번째 방.’
탕!
“끄억!”
‘네 번째 문 뒤.’
탕!
“쿨럭······!”
‘왼쪽 계단 위.”
탕!
나는 비상구로 돌진하며, 방에서 튀어나오는 모든 북한군을 사살했다.
모두들 총을 겨눈 채 잔뜩 경계하고 있었지만, 거의 투시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보다 유리할 수는 없었다.
‘바로 밑층이 아닌가 보군.’
비상구로 들어오자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계단들.
나는 한 번에 예닐곱 개의 계단을 뛰어내리며 무서운 속도로 내려갔다.
그리고.
띠링!
[<복수의 칼날> 지정 대상 : 지구인 ‘독재자’]
[복수 대상자와 조우했습니다!]
[모든 스텟이 20% 상승합니다.]
‘역시 여기 있었어.’
눈앞에 뜬 알림창을 본 나는 진한 미소를 피웠다.
영리한 여우의 꼬리를 결국 찾아낸 것이다.
‘드디어 그 낯짝을 볼 수 있겠군.’
나는 들고 있던 총을 내던지곤,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근접전을 펼치기엔 최고의 무기.
장검과 단검의 중간 길이, 70센티미터짜리 글라디우스였다.
띠링!
[<스킬:뇌룡의 포효>이 활성화됩니다.]
[<스킬:뇌룡의 포효>이 <스킬:뇌신 강림>으로 각성합니다.]
[근력과 민첩 스텟이 + 40% 상승합니다.]
[<스킬:천뢰십보>가 활성화됩니다.]
[민첩 스텟이 + 30% 상승합니다.]
그러고는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여기서 반드시 죽여야 해.’
이번에 놓치면 끝.
다음 기회는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체력의 안배를 따질 상황이 아니라는 뜻.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배수의 진을 쳤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고.’
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은 것이다.
“헉! 위에서 저승사자가 내려옵니다!”
‘ㅁ’자 형태로 끝없이 이어진 내리막 계단.
밑에서 뛰어 내려가던 북한군 중 한 명이, 계단 틈으로 위를 올려다보더니 소리쳤다.
“뭐? 벌써?”
“예, 4층 정도 위에 있습니다!”
“제기랄! 벌써 여기까지 오다니. 이봐, 너희들은 여기에 남아! 어떻게든 물고 늘어져서 최대한 시간을 벌어!”
제법 고위직인 듯한 인물의 외침에, 20명 정도의 북한군이 계단 곳곳에 위치를 잡는다.
그러고는 숨을 짧게 끊어 쉬며, 계단 위로 총을 겨눈 채 대기한다.
그 모든 게 마력장을 통해, 똑똑히 느껴졌다.
‘할 수 있어.’
좁은 계단 복도에서, 20개의 총구를 피해야만 하는 상황.
하지만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북한군들의 평균 스텟은 12에서 16 사이.
반면에 난.
[이름 : 안우진(닉네임 : 렌)] [소속 : Team 투지]
[리그 : 상위 리그]
[근력 : 45(+5)(+20)] [민첩 : 51(+5)(+26)] [체력 : 37(+5)(+12)]
[정신 : 51(+5)(+26)] [지력 : 32(+12)] [마력 : 37(+5)(+12)]
‘충분해.’
녀석들보다 세 배에서 네 배 더 높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놈들이 1미터를 이동할 때, 나는 4미터를 주파할 수 있다는 뜻.
총을 쥐고 있다 하더라도, 내 움직임을 따라잡을 순 없을 것이다.
그렇게 녀석들과 반 층 정도의 구간을 사이에 뒀을 때였다.
“온다! 모두 집중하······!”
나와 눈이 마주친 누군가의 외침.
띠링!
[<섬전>을 사용합니다.]
꽈앙!
나는 섬전으로 순간 이동해, 녀석들의 간격 안에 들어오는 데에 성공했다.
4배 가까이 차이 나는 스텟.
근접 무기 대 중거리용 무기.
거기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경험까지.
‘단숨에 돌파해 주지.’
그때부터 계단 복도에서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서걱! 서걱! 서걱!
제일 선두에 있던 세 명의 목이 굴러떨어진다.
목과 몸이 분리되며 좁은 복도 계단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쏴, 쏴라!”
탕! 탕! 탕! 탕!
‘어딜.’
총구의 방향을 읽은 나는 2미터 정도 빠졌다가, 총이 격발되는 것과 동시에 다시 대쉬했다.
서걱!
총알에 의해 깨진 시멘트 조각들.
스스로의 힘에 못 이겨, 잘게 조각나며 튕겨 나오는 탄알의 부스러기들이 흩날린다.
“끄아아악!”
“컥!”
“제발 죽어 이 괴물 같은 자식아아아아!”
탕! 탕! 탕! 탕!
붉게 물든 세상 속에서, 살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절규와 함께 총알이 난사된다.
그 속에서 글라디우스가 번뜩이며, 춤을 추었다.
띠링!
[<벽력>이 발동합니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콰지지직!
때마침 터진 벽력.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플라즈마가 사방을 덮쳤다.
“끄윽······.”
털썩― 털썩―
무시무시한 데미지에, 주변에 남은 네 명의 북한군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후우.’
제법 잘 훈련된 스무 명의 군인들임에도, 처치하는데까지는 5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좁은 공간이다 보니, 오히려 일방적인 도륙에 가까웠달까.
이걸로 계단에 있던 적들의 정리는 끝.
적들을 모조리 죽이고 계단의 복도를 나서자, 깜깜한 지하 터널이 나를 반겨주었다.
60미터 앞.
‘독재자.’
뚱뚱한 남자를 사방으로 에워싼 다섯 남자가 보였다.
“이럴 수가! 그 많은 인원이 벌써 죽었다고?”
“모두 사격 개시!”
탕! 피잉! 피잉! 타앙! 타앙!
그러고는 나를 향해 총을 겨눈 채, 방아쇠를 당겼다.
‘왼쪽 가슴, 우하복부, 왼 허벅지.’
방향을 읽고 총알을 모조리 피한 나는, 녀석들을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서걱! 서걱! 서걱!
그리고.
“으으······.”
남은 건,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던 독재자뿐.
‘끝났군.’
글라디우스에서 피가 뚝, 뚝 떨어진다.
살기를 뿜으며 다가가자, 녀석이 볼살을 떨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엄습하는 공포에 다리가 풀린 모양.
나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뚜벅뚜벅 걸었다.
“남길 말은?”
“내, 내가 누군지 아느냐? 백두혈통을 물려받은 위대한 통치자다!”
내 물음에,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는 독재자.
“날씨가 굉장히 춥더군.”
참고로 지금은 여름이었다.
“내가 죽으면 공화국의 수천만 백성들이 고통받을 것이다!”
“아, 돼지 닭다리 패티 햄버거도 나쁘지 않았어.”
돼지와 닭은 엄연히 다른 종.
돼지엔 닭의 다리가 없다.
“굶어 죽을 수많은 백성들이 불쌍하지도······.”
“비오는 날 뜬 해를 본 적 있나?”
“간악한 코쟁이놈들과 대륙놈들의 손아귀에서 민족을 수호할······.”
“지하의 공기는 역시 상쾌하군.”
“무, 무슨 말이냐?”
내가 계속 딴소리를 하자, 의아해하는 독재자.
“헛소리.”
“······?”
“헛소리하지 말라고.”
“······!”
“그럼 잘 가라.”
독재자에게 다가간 나는 서브 미션을 수행한 후, 망설임 없이 글라디우스를 휘둘렀다.
서걱! 푸슈우우우욱!
[제한 시간 : 115:47:37]
[승리 조건 :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독재자, ‘독재자獨材慈’를 처치하라]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기본급 x 1의 승리 수당이 지급됩니다.]
그리고 눈앞에 뜬 미션 성공 표시.
‘서둘러야 해.’
알림창을 본 나는 곧바로 강간범에게 그림자 ‘교환’을 사용했다.
“······.”
그러자 보이는 어둡고 좁은 방.
[<영리한 여우> 미션을 완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너스로 100,000 P를 지급합니다.]
[각종 페널티를 가진 상태로 어려운 미션을 성공하셨습니다.]
[추가로 x 2의 보너스를 지급받게 됩니다.]
손에 묻은 피를 로브에 슥슥 닦은 나는, 테이블 위에 있던 사진을 두 손으로 꼬옥 쥐었다.
‘통과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리고는 소중하게 품속으로 갈무리했다.
[상위 리그-하이블러드나이트143의 8경기를 종료합니다.]
[파이트 머니로 824,000 P를 지급받았습니다. (팀 ‘투지’ 수수료 206,000 P 차감)]
[기본급 +150,000 P / 승리 수당 +150,000 P / 추가 보너스 +300,000 P / 서브 미션 수당 +430,000 P / 수수료 -206,000 P]
[다음 경기부터는 기본급을 200,000 P로 책정합니다.]
[소속된 팀의 팜으로 이동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팜으로 이동하기 위해, 하얀 빛무리가 나를 감싸 안는다.
떨리는 순간.
‘제발.’
눈앞에 새로운 창이 떴다.
띠링!
[지구 성계의 물품이 감지되었습니다.]
[천상계, 중간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
[물품 반입을 허락합니다.]
[고위 리그로의 승급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플레이어 렌이여.]
물품 반입 허락.
‘됐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승급 선물로 미카엘이 허락해 준 모양.
‘드디어 고위 리그.’
벅찬 마음을 끌어안고, 나는 하얀 빛무리에 몸을 맡겼다.
[플레이어 ‘렌’이 고위 리그로 승급하셨습니다!]
* * *
경기도 분당의 한 납골당.
‘어? 별일이네?’
청소를 위해 돌고 있던 김명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故 정미숙.
지금껏 단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던 유골함 앞에, 꽃이 놓여 있었기 때문.
‘그래, 인간적으로 너무했지. 가족이 없던 것도 아니고 말이야.’
생전 한 번도 뵙지 못한 분이지만, 가족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유골함의 유리에 가족사진이 붙어 있었으니까.
가운데에 앉은 채 환하게 웃던 고인과, 그 양옆에 듬직하게 서 있던 두 청년.
‘엉? 이게 어디 갔지?’
하지만 그날 이후, 그 사진은 다시 볼 수 없었다.
그저, 유골함 옆에서.
‘꽃을 놓고간 사람이 가져갔나?’
로즈메리의 꽃잎 만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뿐.
< 195화. 여우 사냥(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