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여우 사냥(4) >
서초구 내곡동.
반원의 곡선 형태로 지어져 있는 건물.
<우리는 陰地에서 일하고 陽地를 指向한다>
입구에 원훈을 새긴 바위가 놓여 있고, 그 위로 태극기가 펄럭인다.
대통령 직속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이자, 대공 관련 최고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단체.
국가정보원.
“팀장님! 빨리 들어오셔야 합니다! 빨리요!”
“예, 맞습니다. 까치 7호가 전달해 온 정보니까 틀림없어요!”
“뭐? 어디서 문의가 들어왔다고? CIA가 왜?”
그곳은 현재 한바탕 난리가 난 상태였다.
건물 내부에서 일하던 모든 직원이 전화를 붙잡고, 서류를 뽑으며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얼마 후.
“03시경, 이곳에서 총성이 울렸다고 합니다. 청사와 관저에 딸린 초소 앞입니다.”
“세 개의 초소 중 가장 안쪽이군.”
대공수사팀 윤철우 과장은 빔 프로젝터로 위성 지도를 띄어놓은 채, 회의실에 자리한 10명의 남자들에게 설명했다.
“이후 까치 7호가 보고하길, 총격전이 벌어진 뒤 한 사람이 관저로 향했으며, 이후 수많은 사망자가 실려 나왔다고 합니다.”
“인상착의는?”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망자 규모는 어떻게 되지?”
“100명가량입니다.”
직속상관인 소진우 2차장의 물음에, 윤철우 과장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흠, 100명가량이라······. 그 정도면 관저를 호위하던 녀석들도 거의 다 사살됐다는 건데.”
“저희가 파악한 걸로는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독재자가 죽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겠군. 북한 내부 동향은?”
“비상사태에 돌입했습니다. 호위사령부가 평양을 봉쇄했으며, 전군이 무장한 채 대기 중입니다. 이 내용은 국방부에도 전달되어, 우리 군도 현재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어 있습니다.”
윤철우 과장의 말에, 회의실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사람.
팔짱을 낀 채 의자 깊숙이 몸을 묻는 사람 등등.
모두들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흠, 혹시 독재자가 사망했을 확률은 어떻게 됩니까?”
가장 상석에 앉은 중년인.
국정원장의 물음에, 대북 업무를 담당하는 3차장이 입을 열었다.
“제로입니다.”
“백 명이 넘게 죽었는데도요?”
“예. 고작 한 명으론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망자 규모가 제법 되긴 하지만, 내부엔 안가로 빠져나갈 수 있는 루트가 마련되어 있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974부대원들이 막는 사이 안전한 곳으로 몸을 빼냈을 겁니다.”
“아뇨, 전 생각이 다릅니다.”
3차장이 단언하자, 반박하고 나서는 2차장.
그 모습에 국정원장이 팔짱을 낀 채, 말해보라는 듯 2차장을 향해 턱짓했다.
“근거는요?”
“우리 또한 만일에 대비해 암살 계획을 세운 적이 있습니다. 사내社內 최고의 브레인들이 모여 독재자를 암살할 방법을 연구했죠.”
“흐음, 계속 얘기해 보세요.”
“당시 업계 스페셜리스트들을 투입시킨다고 가정했음에도 확률이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북한에 침투하더라도 평양으로 가기 전에 모두 사살당할 수밖에 없더군요.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말입니다.”
“······.”
“그리고 평양에 도착해서도 문제였습니다. 우리와 다르게 북한은 각 구역마다 순찰 병력을 배치해 두니까요. 그 경계망을 뚫고 1호 청사까지 다가간다? 신분을 세탁해 위장 잠입하지 않는 이상 절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2차장의 말에 국정원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단어만 바꿨을 뿐, 3차장이 얘기한 것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
“결국 3차장님의 말씀과 똑같은 것 아닙니까?”
“아뇨, 근데 결론적으로 그 제로에 가까운 일을 누군가가 해내지 않았습니까? 결국 사살했을 가능성도 무시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무시해선 안 된다라······.”
“이쪽 업계는 알려지지 않은 스페셜리스트가 무척 많습니다. 그들 중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들도 분명 존재할 겁니다.”
“흐음, 쉽지 않군요. 아, 참. CIA에서도 연락이 왔다고 하던데?”
국정원장의 말에, 가장 끝자리에 앉아 있던 30대 후반의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외정보국을 맡고 있는 류대승 국장이었다.
“예. 혹시 이번 사태에 대해 아는 바가 있냐는 물음이었습니다만, 우리가 벌인 짓 아니냐는 걸 돌려서 얘기하는 뉘앙스였습니다.”
류대승 국장의 말을 1차장이 이어받았다.
“사실상 독재자를 제거할 계획을 세울 만한 곳이 몇 곳 없으니까요. 그 중 우리가 가장 유력한 후보였겠죠.”
그러나 1차장의 말에 난색을 표하는 국정원장.
“우리라고 해도 이득 볼 게 없지요. 아니, 현 시국에선 손해 볼 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독재자를 죽인다고 해서 통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통일이 된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원장님. 하지만 주변 시선은 그럴 거란 뜻이었습니다. 이봐, 요원 중에서 연락 두절된 자가 있나?”
1차장의 물음에 윤철우 과장이 고개를 저었다.
“모든 까치가 둥지를 사수 중입니다. 저희 쪽은 절대 아닙니다.”
“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원······.”
국정원장의 혼잣말에, 회의실에 자리한 사람들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아낸 건 하나도 없다.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모두들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삐―
―원장님, VIP께서 호출하셨습니다. 바로 청와대로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그때, 인터컴이 울리며 전해진 지시.
“예. 바로 나갈 테니까 차 대기시키세요.”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이 정장 상의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아낸 건 없지만 이거라도 보고하고 와야겠군요. 차장님들께서는 계속 정보를 모아주세요.”
“예.”
“최우선은 사살 여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내부 동향. 어느 단체인지는 가장 후순위입니다. 일단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먼저니까요.”
“알겠습니다. 이봐, 팀원들 모두 모이라고 해. 시간 없으니 서둘러!”
그때부터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국정원이 들썩였다.
하지만 국정원장의 지시에도, 사람들의 머릿속엔 한 가지 궁금증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혼자서 저기까지 뚫고 들어간 저 괴물은 도대체 누구지?’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으니까.
* * *
‘하······.’
눈앞에 쓰러진 인물이 독재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끝난 줄 알고 긴장을 풀고 있었던 탓인지, 더욱 허탈했다.
챙! 땡그랑―
‘뭐야, 이건.’
그때, 세단의 운전석 쪽에서 내 발치로 떨어지는 작은 돌멩이.
마치 악어의 그것처럼, 울퉁불퉁한 표면을 가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돌멩이같은 데다가 울퉁불퉁한 표면을 가지고 있는 무언가는 딱 하나 뿐이었다.
‘수류탄······!’
그 순간 나는 재빨리 스킬을 사용했다.
[지구인 ‘송윤일’에게 <그림자 이동> 능력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4평 정도 크기의 어두운 방 안.
‘여긴?’
각종 필기구와 공책으로 어지럽혀진 책상, 방 한쪽을 가득 채운 침대, 그리고 옷장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침대 위에는 웬 20대 중반의 남성이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총알이 빗발치던 직전의 상황과 다르게, 너무나 평화로운 풍경.
‘송윤일의 집 안이군.’
이곳이 어디인지 깨달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그림자 이동을 사용한 상황.
만약 바깥이었다면 곤란한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었으리라.
‘후우,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겠어.’
인벤토리에서 당소소에게 얻은 수면제를 꺼낸 나는, 자고 있는 송윤일의 입에 뿌렸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다른 가족들에게도 똑같이 수면제를 사용했다.
이 정도면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 내가 한 일은.
‘사이즈가 맞았으면 좋겠는데.’
피로 범벅된 옷을 갈아입는 것.
송윤일의 옷장에서 무난한 상, 하의 한 벌씩을 꺼낸 나는, 화장실로 가서 피를 씻어 냈다.
그러고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 머리맡에 2골드를 꺼내 올려두었다.
이걸로 서울을 돌아다니는 건 안심.
‘어디 가서 조금이라도 쉬어야겠어.’
문을 열고 나서니, 시원한 밤바람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밤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걷자, 흥분됐던 마음이 점차 가라앉는 것 같았다.
‘후우, 설마 대역일 줄이야.’
그리고 향한 곳은 24시간 운영하는 카페.
커피 한 잔을 앞에 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미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것이다.
‘이제부턴 더 어려워지겠군.’
암살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독재자는 분명 꽁꽁 숨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이미 누군가가 암살을 시도한 상황.
제2의 나, 제3의 내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 사망 여부와 관계없이, 더 깊숙이 숨어들려고 하겠지.
‘상관없어.’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다시 북한에 침투해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한층 촘촘해진 호위망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반드시 미션을 성공적으로 끝내주지.’
고위 리그로 올라가기 위해 필요하다면 다 부숴버릴 생각이었다.
‘후우. 할 수 있다.’
영리한 여우는 굴을 여러 개 판다고 한다.
각종 은신처, 호위 부대, 거기다 대역을 세울 정도로 철두철미한 독재자.
그런 녀석을 잡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다.
굴에 연기를 피워, 여우가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것.
‘하얗게 불태워 주겠어.’
그때부터 나는, 영리한 여우를 사냥할 궁리를 시작했다.
└와 여기 전투 스케일 미쳤네 ㅋㅋㅋㅋㅋㅋㅋ
└ㄹㅇ ㅋㅋㅋ 왜 지구 애들이 검만 잡으면 멍청해지는지 알았음 ㅋㅋㅋㅋ 가만히 서서 손가락만 까딱하면 픽픽 쓰러지는데, 누가 검을 씀?ㅋㅋ
└개인적으로 총격전이 박진감 넘치더라. 은엄폐하고 총 쏘고 ㄷㄷ 피지컬이 좋아야 하는 냉병기랑 다르게, 전략이나 전술이 개입할 요소가 넘쳐서 더 흥미로움. 복도를 점거하는 방식이라든가, 침투 등등.
└근데 도대체 저 빠른 총알을 어떻게 피하는 거냐? 진심으로 이해가 안 돼서 묻는 거임
└ㄴㄴ 렌은 피한 게 아니라 미리 궤도 읽은 거임. 어차피 총알은 일자로 쭉 뻗어나가니까 궤도 안에만 없으면 됨.
└근데 그게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 겨누고 있는데 어떻게 다 읽음?
└아! 이제 알았닼ㅋㅋㅋ 원래 지구에서 특수부대 출신이었던 게 아닐까? 그니까 저런 총격전 경험도 많아서 궤도를 읽고 피할 수 있는 거지 ㅇㅇ 어때? 내 추리가 제일 그럴듯하지 않음?
└ㅋ? 렌 상대하던 애들은 그럼 일반인이었냐?
└어... 그것도 그러네..?ㄷㄷ
16시간 후.
강원도 고성의 외딴 지역에 방을 구한 나는, 마지막으로 장비들을 점검했다.
“읍읍! 읍!”
방 한 켠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소아성애자 강간범.
녀석은 내가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올 때 사용할, 세이프 포인트로 잡아둔 놈이었다.
[표식 목록]
[지구인 ‘림혜주’]
[지구인 ‘김정대’]
[지구인 ‘지앙훈밍’]
‘이 정도면 됐어.’
필요한 장비는 모두 착용했고, 컨디션도 완벽하다.
거기다 강간범 새끼도 팔다리를 다 부러뜨린 채, 움직이지 못하도록 칭칭 감아뒀다.
준비는 끝.
스르릉!
“읍읍! 으읍!”
서슬 퍼런 장검을 뽑아 들자, 발광하는 강간범.
녀석의 바지 가랑이 색깔이 진해졌다.
지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쯧.’
내가 자기를 죽이려고 칼을 빼 들었다고 생각한 모양.
나는 녀석을 무시한 채 스킬을 사용했다.
‘가 볼까.’
띠링!
[지구인 ‘김정대’에게 <그림자 이동> 능력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시야가 바뀌자마자 크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푸슈우우우욱!
일격에 누군가의 머리가 바닥을 구른다.
아마 표식에 등록되어 있던 김정대의 얼굴일 것이다.
“······?”
“······?”
김정대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던 20명 정도의 북한군들.
놈들은 피를 흠뻑 맞은 채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이게 무슨······?”
비현실적인 상황에 몸이 굳은 모양.
“자, 장군님이 갑자기······.”
그와 동시에 책상을 밟고 뛰어넘은 나는, 남은 녀석들에게도 검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서걱!
“헉!”
“이런 미친!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순식간에 난도질당하는 20명의 북한군.
‘이 녀석은 남겨놔야겠네.’
나는 그 중 딱 한 명만은 턱을 때려 기절시켰다.
띠링!
[지구인 ‘김광성’의 그림자에 표식이 등록되었습니다.]
이후 침투할 때 경유할 포인트를 만들어둬야 했으니까.
‘이 정도 계급의 녀석이면 되겠지.’
기절한 북한군의 계급장엔 별 하나가 그려져 있다.
한마디로 장성이라는 뜻.
놈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든 나는, 녀석을 질질 끌며 방을 빠져나왔다.
“······?”
탕! 탕! 탕! 탕! 탕!
그리고 복도에서 총을 든 채 경계를 취하고 있는 북한군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으아아악!”
“침입자다! 놈이 장군님들을 죽이고 나왔, 윽!”
아무래도 비상사태다 보니, 실내에서도 모두 총을 소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걸로 내부에 있는 병력은 끝.
바닥에 떨어진 소총 하나를 주워 밖으로 나오자, 육각형 모양의 건물 하나가 보였다.
‘위치는 나쁘지 않아.’
그 옆에는 제법 세련되어 보이는 빌딩 하나가 존재했다.
백두산 건축 연구원.
어제 내가 침입했던 1호 청사에서, 고작 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스킬:뇌신>을 활성화합니다.]
콰지지지지지지직!
뇌전을 끌어올린 나는 근처 나무에 손을 가져다 댔다.
화르륵!
그러자 순식간에 불타오르는 나무.
“헉, 반동분자가 여깄다!
“어서 사령부에 보고, 으윽!”
곳곳에 불을 붙인 나는 그때부터 평양 시내를 활보하며 총을 난사했다.
‘어디, 언제까지 연기를 참나 보자고.’
독재자에게, 정말 지독한 연기를 피워줄 생각이었다.
< 193화. 여우 사냥(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