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여우 사냥(2) >
이곳에서 조선 노동당 1호 청사까지의 직선거리는 4.5킬로미터.
실제로 내가 움직여야 할 거리는 7킬로미터에 가깝다.
‘청사를 앞두기 전까지 발각되선 안 돼.’
나는 숨죽인 채 빼곡하게 들어선 건물 사이사이를 돌아다녔다.
―아들, 어둡진 않아? 양초 좀 더 켜줄까?
―올해는 비가 좀 와야 할 텐데······. 이러다간 올해도 굶겠어.
―오늘 아침에 김씨한테 들었는데, 이번 9.9절에는 특식이 나올 거라더군.
‘평양도 야간 통행금지가 있어서 다행이야.’
대부분 불이 꺼져 있는데도, 골목을 지날 때마다 말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촛불을 켠 채 생활하는 모양.
만약 통행금지가 없었다면 깜깜한 밤이라도 돌아다니는 사람이 꽤 있었을 것이다.
‘묘한 분위기네.’
북한의 수도.
사진으로만 접했을 뿐, 직접 와보는 건 처음인 도시.
평양은 서울의 1980년대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촌스럽고, 투박하다.
그리고 낡았다.
싼 가격에 빨리, 그리고 많이 지어야 했기 때문.
‘대동강까지는 문제 없이 침투할 수 있겠어.’
혹시나 암살에 실패하면, 그림자 이동으로 도망쳐야 한다.
그럼 이 거리를 또다시 지나야 한다는 뜻.
그래서 나는 침투뿐만 아니라, 지리 숙지 및 정보 수집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뚜벅― 뚜벅―
그렇게 좁은 골목길만을 이용해, 숨죽인 채 평양의 중심부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순찰을 돌고 있는 녀석들이군.’
귓가에 미세하게 들려오는 둔탁한 발소리.
통행금지 시간에 평양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는 건 군인밖에 없을 테니, 아마 확실할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나는 곧장 왼쪽 집의 담장을 넘었다.
담장 내부엔 작은 마당이 펼쳐져 있고, 출입문에 나 있는 작은 창문 너머로 촛불의 옅은 불빛이 새어 나온다.
“······.”
여러 개의 숨소리가 들리지만, 규칙적인 걸로 미루어 봤을 때 당분간 움직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흠······.”
“왜 그러십니까, 특무 상사님?”
“여기 폐가인가?”
담벼락 너머로 들려오는 군인들의 말소리.
마력장에, 내가 숨어든 맞은편 집을 가리키는 군인들의 모습이 느껴졌다.
“맞습니다. 가족 중에 반동분자가 있어서,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격리조치했습니다.”
“이봐, 상급 병사. 안에 누가 없나 확인해 보게.”
“옛!”
끼이익―
중년인의 말에, 맞은편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병사.
삐걱거리는 경첩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쯧. 생각했던 것보다 순찰을 꼼꼼하게 하는군.’
외곽인데도 이 정도면, 내부로 들어갈수록 침투 난이도가 더 빡세질 것이다.
물론 모두가 중년 군인처럼 꼼꼼하진 않겠지만.
“아무도 없습니다!”
“좋아, 이만 가지.”
다행히 군인들은 내가 숨어든 집까지 수색하진 않았다.
‘후우.’
골목을 빠져나가는 군인들의 모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꺼내 들었던 단검도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다.
타깃의 위치를 모르는 상태로 발각되는 것만큼은 피해야 했으니까.
녀석들이 여기까지 수색했으면, 결국 죽여야 했으리라.
‘그랬으면 시간이 촉박했겠지.’
순찰조가 돌아오지 않으면, 중앙에서는 추가 수색대를 파견한다.
그리고 결국 순찰조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호위에 더욱 박차를 가했을 것이다.
독재자의 위치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단 하나의 흔적도 남기면 안 된다.
‘오늘 밤은 제법 길겠군.’
담장을 뛰어넘은 나는, 옅은 달빛을 맞으며 조용히 이동했다.
└렌 수준이면 그냥 푸슉푸슉 하고 다 학살한 다음에 타깃 죽이면 되는 거 아님? 왜 저렇게 조심스럽지?
└지구에서 들어오는 애들 보니까 검도 제대로 휘두를 줄 모르더만 ㅋㅋ 이렇게 약해 빠진 성계에선 스텟 20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ㄴㄴ 검을 제대로 휘두를 줄 모르는 게 아니라, 애초에 쓸 필요가 없어서 그럼. 제대로 침투 시작되면 님들도 알 게 될거임 ㅋㅋㅋ
└두만강이었나? 뭔 강 건널 때 들려온 굉음 있지? 그게 지구 성계가 주로 쓰는 총이라는 무기에서 나는 소리임. 손가락만 까딱해도 한 명 죽이는 건 일도 아님.
3시간 후.
‘후우. 결국 여기까지 왔어.’
조선 노동당 1호 청사까지 남은 거리는 2킬로미터.
쏴아아아아아아아―
눈앞에는 커다란 강이 펼쳐져 있었다.
대동강이 평양을 관통해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 두만강을 건너던 것처럼 하면 되겠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있었다.
‘냄새가 밸 수도 있지.’
이번에는 시내로 들어간다는 것.
악취가 난다면, 아무리 은신을 잘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다리를 건너는 수밖에 없겠군.’
나는 대동강 옆에 난 샛길을 따라, 저 멀리 보이는 대교 쪽으로 쭉 올라갔다.
그리고 500미터쯤을 앞두고, 낮은 포복으로 전환했다.
대교 입구를 다섯 명의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
‘당연히 병력이 배치돼 있을 줄 알았지.’
평양은 강이 사방을 감싸고 있다.
남쪽에는 대동강이, 서쪽과 북쪽은 보통강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북쪽은 합장강이 흐른다.
결국 시내로 들어가려면 무조건 대교를 지나야 한다는 뜻.
그런 요충지에 순찰 병력을 배치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
‘확실히 최정예들로만 구성해 뒀네.’
야심한 시각,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제법 지루할 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군인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현 상태에서 대교를 건너는 방법은 두 가지뿐.
첫 번째는, 저 다섯 명을 죽이고 지나가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대교 밑으로 지나가야겠군.’
평범하지 않은 방법으로 통과하는 것.
다리를 만들기 위해선, 가장 먼저 철골로 뼈대를 세워야 한다.
하지만 통짜로 지으면 경제성이 떨어지기에, 마름모꼴로 교차해 가며 구축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턱을 잡고 이동하면 충분히 건널 수 있을 것이다.
‘후우.’
판단을 마친 나는 어둠 속에 스며든 채, 대교를 향해 기어갔다.
5분이면 도착할 거리가 1시간 넘게 걸렸지만, 다행히 내가 다가온 걸 알아채는 군인은 없었다.
‘얼마 안 남았어.’
대동강만 건너면 1킬로미터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
나는 대교의 난간을 잡고, 조용하게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고는 철골에 스파이더맨처럼 매달린 채, 팔다리를 부지런히 놀렸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하며.
“이봐, 영광 거리 쪽 순찰은 끝났나?”
“옛!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대교를 건너고 중심부로 들어오자, 무수히 많은 군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1호 청사 코앞인 데다가, 바로 위에 호위 사령부가 있다 보니 철통같이 경비를 하는 것.
‘여기부턴 문제없지.’
이걸 예상하고, 여기서부턴 세세하게 경로를 짜뒀다.
육각형 모양의 건물, 조선 중앙은행을 지나.
“정지! 지금은 통금 시간입니다!”
“정찰총국 소속 리명철 대좌요. 나는 야간 통행증이 있소.”
국립 연극 극장, 그리고 평양 제2 백화점을 통과하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상위님. 특이 사항 있었습니까?”
“회의가 늦게 끝나서 고위 관료분들이 많이 돌아다니시더군. 평소보다 더 엄격하게 신원 확인을 하라는 명이 있으셨다네.”
조선 민속박물관을 거쳐 이동하는 것.
다행히 지나오는 동안 날 발견하는 북한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거의 다 왔어.’
현재 내 눈앞에는 고위 당원 아파트가 있다.
바로 뒤에는 2개의 경비 초소가 있고, 그 너머가 바로 내 목적지, 1호 청사였다.
이제 목적지를 코앞에 둔 상황.
그런데 문제는.
‘방법이 없군.’
아파트에 딱 달라붙은 채 포복을 유지하고 있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워낙 빽빽하게 병사들이 자리하고 있는 탓에, 도저히 침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민대학습당 쪽으로 돌아가야 하나?’
남은 거리는 400미터.
무척 가까운 거리지만, 청각과 마력장의 범위가 미치는 곳은 아니다.
‘어쩔 수 없지.’
딱 100미터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마지막 관문이 너무 높았다.
‘돌아서 가는 수밖에.’
해가 뜰 때까지 앞으로 3시간.
그 전에 어딘가에 숨어들어야만 하는 상황이라, 나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그때였다.
투둑― 투둑―
‘어?’
고위 당원 아파트에 딸린 공원.
예쁘게 심어져 있는 잔디와 나무를 무언가가 때린다.
한줄기 물방울이 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나이스.’
어두컴컴한 하늘 위에서 빗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집중력이 흐트러질 거야.’
나는 내심 쾌재를 질렀다.
우의를 입든, 아니면 비를 피하기 위해서든.
녀석들은 움직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뭐야, 이 미친 새끼들은?’
하지만 내 기대는 이내 산산이 부서졌다.
청사 앞을 지키던 군인들.
녀석들은 단 한 치의 움직임 없이, 그대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비가 오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눈치.
‘후우. 어쩔 수 없지.’
나는 엎드려 있던 자세 그대로 반대 방향을 향해 꿈틀거렸다.
이곳을 통해서는 침투하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 행동 또한 곧 멈춰야 했다.
“정지! 손 들어! 불응하면 발포하겠다!”
누군가가 공원으로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
50대 중반 정도의 중년인이었는데, 그를 발견한 군인들이 총을 겨누었다.
“쏘지 마시게, 젊은 친구. 나는 전략군 부사령관 김정대 중장일세.”
등장한 인물은 별 두 개의 계급장을 달고 있는 김정대 중장.
하지만 군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부사령관님이라도 신원 확인과 몸수색을 해야 합니다. 그대로 손을 들고 계십시오.”
“편하게 하게나.”
김정대의 말에, 총을 겨눈 채 천천히 다가가는 군인들.
나는 그 모습에 제법 놀랐다.
‘진짜 훈련이 잘돼있네.’
중장이면, 한국에서는 소장급의 지위.
무려 별 두 개의 고위 장성에게 총을 겨눈 채 다가가고 있음에도, 군인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기색이었다.
경계에 흐트러짐이 없고, 맡은 임무에 예외도 두지 않는다.
‘쯧.’
이들이 얼마나 많은 훈련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숨죽인 채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어.’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군인들이 이동할 때마다, 근처에 있던 나무의 귀퉁이를 천천히 돌았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군인들이 수색을 위해 다가가자, 철통같던 경계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사락― 사락―
잔디를 밟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실례하겠습니다.”
그 사이 김정대 중장에게 도착한 군인들.
‘지금!’
나는 다른 나무 뒤로 숨기 위해 튀어나왔다.
그때였다.
번쩍!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진 것처럼 순간, 사방이 환해졌다.
“······?”
“······!”
그 바람에 뒤를 돌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군인들.
“누, 누구냐!”
‘씨발.’
그 순간 나는 재빨리 들고 있던 단검을 던졌다.
그러고는 인벤토리에서 또 다른 단검을 꺼내며, 녀석들을 향해 빠르게 짓쳐들어갔다.
푹!
“커헉!”
빠르게 날아간 단검이, 선두에 있던 군인의 목에 박히고.
철컥!
그사이 다른 두 명의 군인이 노리쇠를 당겨 총알을 장전했다.
녀석들이 개머리판을 견착하는 게 슬로우 모션처럼 보인다.
‘쏘게 하면 안 돼.’
띠링!
[<전광석화> 능력을 사용합니다.]
[10초 동안 민첩 스텟이 +20% 상승합니다.]
야심한 밤, 총소리는 더욱 크게, 그리고 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하지만 전력을 다해 녀석들에게 달렸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손가락 마디의 관절이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 꺾이고 있었다.
‘씨발.’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순간적으로 엄습해 오는 불안감.
뒷목이 쭈뼛쭈뼛해지며,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심장이 거칠게 박동했다.
마력장으로 총구 방향을 읽은 나는 재빨리 <섬전>을 사용했다.
꽈아앙! 탕! 탕! 탕! 탕!
굉음이 침묵을 찢어발긴다.
“헉, 무슨!”
원래 내가 있던 방향으로 총을 쏘던 두 명의 군인이, 급하게 총구를 바꿨지만.
‘늦었어.’
섬전을 통해 이미 거리가 1미터까지 좁혀진 상황.
서걱! 서걱!
푸슈우우우욱!
경동맥이 잘리며, 사방으로 피가 솟구쳤다.
“꺼어어어억······.”
발밑에서 두 명의 군인이 꿈틀거리며 죽어갔다.
“헛, 누구냐!”
그러고는 허리춤에 달린 권총을 빼 들려는 김정대 중장의 턱을 때려 기절시켰다.
띠링!
[지구인 ‘김정대’의 그림자에 표식이 등록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6시 방향 총소리다!”
“사령부에 어서 보고해!”
‘젠장.’
주변에서 경계를 서던 군인들이 고함을 지르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순 없어.’
주변에 나뒹구는 소총 하나를 발등으로 차올려 잡은 나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겨눈 채 총알을 발사했다.
탕! 탕! 탕! 탕! 탕!
‘쯧. 잘 안 맞네.’
총구 방향은 정확했지만, 제대로 견착하지 않은 탓에 격발 중 흔들리는 게 문제.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크윽!”
“끄아악!”
계속해서 쏘다 보니, 이 상태에서 쐈을 때 총알의 궤적이 어떻게 날아갈지가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쏘는 족족 적들의 심장 혹은 머리를 꿰뚫었다.
‘일단 1호 청사를 수색하고 와야겠어.’
탕! 탕! 피잉! 피이잉! 탕!
나는 날아드는 총알을 피하며, 청사 쪽으로 돌진했다.
지금의 스텟으로 총알을 피하는 건 무리지만, 마력장의 범위 안에 있다면 총구 방향을 읽는 정도는 가능한 상황.
총알이 그릴 궤적 안에만 있지 않으면 되기 때문에, 적들 사이를 파고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앗! 녀석이 관저로 향한다!”
“막아! 절대 수장님께 보내면 안 돼!”
‘어? 관저?’
경계병들의 외침을 들은 나는 곧장 오른쪽으로 틀었다.
1호 청사 바로 옆에는 15호 관저가 있다.
그리고 15호 관저 또한 독재자의 집무실 중 하나.
‘제발 관저에 있어라.’
나는 마음속으로 염원하며, 관저로 향했다.
‘왼쪽 모퉁이 뒤.’
탕!
‘세 번째 나무 옆.’
탕!
‘왼쪽 건물 옥상’
탕!
그렇게 곳곳에 있는 북한군을 처치하며, 관저까지 30미터 정도를 남겨뒀을 때였다.
‘이건?’
관저 내부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말소리.
―수장 각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도련님과 여사님은 저희가 모실 테니, 어서 이쪽으로!
―몇 명이나 쳐들어왔지?
―한 명입니다!
―위대한 공화국의 전사들이 고작 한 명을 못 막아서야, 쯧.
―송구합니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독재자!’
< 191화. 여우 사냥(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