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여우 사냥(1) >
팀 ‘불굴’ 팜.
안우정은 체력 단련실에서 트랙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허억, 헉. 이번에야말로 랩 타임 40초를 뚫겠어.’
마의 구간에 들어선 뒤로는 아무리 훈련해도 스텟이 거의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우정은 훈련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작게라도 스텟이 오르고 있긴 했으니까.
이게 쌓이다 보면 언젠가 거대한 힘이 될 거라는 걸, 안우정은 그동안의 교훈을 통해 알고 있었다.
‘조금만 더!’
마지막 바퀴.
안우정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결승선을 통과했다.
랩 타임 40초 07.
‘제길.’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40초의 벽을 뚫을 수 없었다.
고작 몇십분의 1초 차이로.
“헉, 허억, 허억, 헉.”
그 사실에 실망한 채, 바닥에 철퍼덕 누워 숨을 고르던 안우정.
그는 숨을 고르며, 아쉬움을 털어냈다.
오늘 실패했다면, 내일 다시 도전하면 돼.
깰 때까지 두드리고 또 두드려 주겠어.
그런 마음으로 스스로를 달랜 것이다.
‘우진이는 잘하고 있으려나.’
문득, 승급전을 치르고 있을 동생 생각이 났다.
‘한번 볼까?’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안우정은 바닥에 누운 채로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여기 진짜 신기한 게 많은데? 나중에 마계 애들 완전히 봉쇄하고 아버지께서 중간계에 두른 차단막 해제되면 여행 한번 가봐야겠음.
└ㄹㅇ 나도 꼭 가볼 생각임. 다른 열한 성계랑 아예 분위기 자체가 다르네 ㅋㅋ
└할 건 많을 거 같은데, 다들 너무 평화롭게 돌아다니니까 생각보다 심심한 동네일 것 같음 ㅋㅋ
└그게 또 지구만의 매력이 될 수도 있지 ㅋㅋㅋ 아무튼 꼭 한 번 가 볼 만한 곳인 건 확실 ㅇㅇ
커뮤니티 댓글을 확인하던 안우정이 눈을 번쩍 떴다.
‘어? 지구?’
고위 리그로 올라가기 위한 동생의 승급전으로, 지구 성계가 나온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안우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지구 성계라면, 어떤 미션이 나오든 큰 문제 없이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천상계를 쩌렁쩌렁 울리고 있는 동생을 위협할 수 있는 게 없을 테니까.
└근데 이번 미션 너무 지루하지 않음? 도대체 며칠 동안 걷기만 하는 거야?
└북한이란 나라는 근데 산밖에 없냐? 왜 산으로만 다님?
└기초 스텟이 20으로 너프됐는데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렌이 스텟 낮은 거 치고는 굉장히 빨리 움직이고 있는 거임. 날개도 없는 상태에서 산으로만 다니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ㅆㅂ 지금까지 렌 분석한 거 폐기해야겠네; 생명체 죽여야지 체력 회복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봄 ㅠ
└님들! 근데 기초 스텟 20 치고는 움직임이 너무 가볍지 않나여? 최소 30은 넘어 보이지 않음? 내 눈이 잘못된 건가?
하지만 댓글을 쭉 내려보던 안우정의 심장이 철렁했다.
‘스텟이 20으로 하락한 채로 북한에 들어갔다고?’
지구는 다른 곳들과 달리, 열병기가 발달한 성계.
기초 스텟 20이면 한 분야의 최고 자리에 있는 스포츠 선수의 육체 수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총알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괜찮을까?’
안우정의 마음 한 켠에 불안감이 날아들었다.
미션의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북한이라는 맵만 놓고 봤을 때 절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봐, 우정. 왜 이렇게 얼굴이 심각해?”
안우정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 다가온 한 플레이어.
“아, 송준경 씨.”
안우정이 팀 불굴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는 플레이어, 무림 출신의 송준경이었다.
“무슨 일 있어? 아, 맞다. 오늘 동생이 승급전이라고 그랬지?”
“네, 맞아요.”
“하핫, 이게 형제의 마음인가 보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렌이라면 가볍게 부수고 올 테니까.”
송준경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스텟이 20으로 하락된 걸 모른다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반응.
“자, 자. 훈련 끝났으면 이만 가 볼까? 슬슬 베르네트의 승급전이 끝날 시간이야.”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요.”
“이걸로 상위 플레이어가 또 한 명 늘겠군. 어서 축하해 주러 가자고.”
송준경의 말에 안우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 공터.
“여기도 참 많이 변했어.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금방 망할 것 같았는데 말이야.”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을 본 송준경이 말했다.
“팀에 소속된 상위 플레이어들이 한 번에 죽었을 때 말하는 거죠?”
“맞아.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온몸이 덜덜 떨려. 굶어 죽어서 이곳에 왔는데, 또 배를 쫄쫄 굶게 됐었으니까. 당시에 자네랑 나랑, 없는 골드 모아서 감자 하나를 나눠 먹으며 버텼지.”
안우정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팀에 소속된 사용인들이, 재료가 없어서 요리를 해주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릴 때가 생각날 정도였지.’
배고픔.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이후로는 느껴보지 못했던, 무력감.
동생이 성계 대항전에서 지구를 우승시키지 못했더라면, 자신들은 분명 굶어죽었으리라.
물론 팜도 망했을 테고.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대화를 하는 사이, 어느새 상태창에 표시된 시각은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송준경도 그걸 깨닫고는 말문을 닫았다.
“······.”
10초.
게이트가 평소보다 늦게 열리는 것에 의아해하는 안우정.
30초.
마음 한켠에서 불안감이 조금씩 싹튼다.
1분.
그 불안감은 서서히, 안우정의 온몸을 잠식해 들어갔다.
“······.”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린 지, 어느덧 5분이란 시간이 흘렀다.
‘제길.’
주먹 쥔 안우정의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며 피가 뚝뚝 떨어졌다.
끝끝내 공터에선 게이트가 생성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베르네트가 죽었다는 뜻.
“······후우, 이만 가세.”
먼저 동료의 죽음을 받아들인 송준경이 안우정을 잡아끌었다.
콜로세움.
소원을 이루기 위해, 서로의 심장에 검을 겨눠야 하는 전장.
플레이어에겐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건, 안우정과 안우진 형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부디 잘 끝나야 할 텐데.’
동생을 떠올린 안우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꼴값을 떨고 있네.”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비아냥.
안우정과 송준경이 차갑게 굳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고작 누구 한 명 죽었다고 슬퍼하고 있는 꼴이라니, 과연 하등한 종족답구나.”
온몸에 수북하게 난 털, 엉덩이 근처에서 살랑이는 꼬리, 길다란 송곳니를 드러낸 채 입꼬리를 올리며 이죽거리는 남성.
“왜 시비지, 세호.”
2주 전 팜에 새로 들어온 네임드, 호인족 세호였다.
송준경의 물음에 세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별것도 아닌 것들이,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목에 힘주고 있는 게 아니꼽더군.”
“······.”
“너무 슬퍼하지 마라, 하등한 종족들이여. 어차피 너희들도 곧 따라가게 될 테니까. 다시 만나서 찐하게 회포를 풀도록.”
방금 막 동료가 죽은 상황.
‘이 고양이 새끼가.’
순간 욱! 하고 무언가가 올라온다.
안우정이 살기를 뿜어대며, 인벤토리에서 레바테인을 꺼내 들었다.
“참게, 우정!”
그러자 급히 가로막으며 안우정을 말리는 송준경.
“비키시죠. 저런 녀석은 팀에 있어봤자 도움 될 게 없습니다.”
안우정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도 알고 있다네. 허나, 녀석은 루디악 님이 눈여겨보고 있는 대형 네임드 아닌가.”
“······.”
“만약 손을 봐줘야 하는 상황이라도, 감정적으로 접근해선 안 돼. 자네 지금 너무 흥분했어.”
“후우.”
송준경의 만류에 온몸을 바르르 떨던 안우정이,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준경 씨의 말이 맞아.’
같은 팀에 소속된 플레이어에게 칼을 뽑는다?
그 순간 팜의 단합력은 산산조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선례를 남겨두면, 조금 기분 나쁘다고 검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분명 생겨날 것이다.
‘너무 흥분했어.’
팜에서, 그것도 이렇게 많은 팀원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피를 보는 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생각을 정리한 안우정이, 다시 인벤토리에 레바테인을 넣었다.
“크흐흐흐. 칼을 뽑아 들고도 다시 집어넣다니, 정말 한심하구나. 크하하하하!”
그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하며 등을 돌리는 세호.
차분하게 가라앉던 안우정의 분노가, 다시 수직 상승했다.
‘그냥 죽일까.’
안우정의 몸에서 살기가 새어 나오자, 송준경이 등을 토닥였다.
“잘 참았네. 어차피 녀석도 곧 알게 될 것이야. 지금 우정이 검을 휘둘렀으면 100퍼센트 죽었을 거라고.”
“······예.”
“제까짓 게 네임드라고 해 봤자, 상위 플레이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 물론 이제 갓 들어온 녀석이 나보다는 강하지만.”
송준경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쯧.’
그 말을 듣자, 순간 허탈했다.
맥이 탁- 풀렸다.
만약 내가 저 몸으로 콜로세움에 들어왔다면.
‘그럼 우진이를 따라갈 수 있었을 텐데.’
지구인은 왜 이렇게 약한 걸까.
그 사실이 못내 서글펐다.
‘처음 들어왔을 때 저 정도의 스텟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아니, 질투가 났다.
저 당당함이.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해 주는, 저 강함이.
“자, 우리도 이만 가세.”
잡아끄는 송준경의 손에 이끌린 안우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라면 안으로 삭혔을 분노.
거기다 넘어선 안되는 암묵적 규칙인, 팜 내에서 칼을 겨누기까지.
‘동생을 만나서 그런 걸까.’
요즘 들어 감정 기복이 무척 심해진 것 같았다.
* * *
‘하, 씨발.’
산 아래로 거대한 도시가 보이자, 나는 실 끊긴 인형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2주일이나 걸렸네.’
북한의 최북단 남양에서 출발한 지 무려 14일 만에, 평양에 도착한 것이다.
[제한 시간 : 330:02:26]
오는 동안의 여정을 떠올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옥이었지.’
한반도의 산세가 얼마나 험준한지 깨달았다.
봉우리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데다가, 하나하나의 높이가 얼마나 높던지, 체력이 회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 미만 구간을 아홉 번이나 터치한 것이다.
거기다 사람을 마주치면 안 되기에, 길이 없는 곳으로만 다녀야 했고.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평양은 확실히 사람이 많네.’
현재 시각은 오전 6시 58분.
저 멀리 지평선에선 해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근처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일단 좀 쉬어야겠군.’
나뭇잎이 빼곡하게 들어찬, 나무 위로 오른 나는 회복의 물약 하나를 들이켰다.
지금은 못 들어가기에, 밤이 찾아오면 침투할 생각이었다.
‘일단은 타깃의 위치를 찾아야 하는데.’
나는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하며 두 눈을 감았다.
숙면을 취하려는 건 아니었다.
침투 및 암살까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려는 것.
‘미션이 어렵다고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었군.’
타깃의 위치를 모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그런데 북한 최고 특수부대라는 974부대의 호위망, 게다가 총이라는 화기까지 고려한다면?
‘확률이 너무 낮은데.’
미션을 성공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깎여나갈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어.’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콜로세움에서 싸워온 지 어느덧 13년 차.
그동안 무수히 많은 미션을 받았고, 실행했고, 도전했다.
그 모든 것들을 돌이켜 보면, 이번 미션은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첫 번째 목적지를 정해야 해.’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은 나는, 평양의 지리를 떠올리며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십수 개의 은신처, 서른세 채의 별장, 그리고 북한 곳곳에 존재하는 관사.
나는 그중에서 한 군데를 찝었다.
‘조선 노동당 1호 청사.’
독재자의 집무실이 있으며, 다른 곳들과 달리 경계가 가장 삼엄한 곳.
별장이나 은신처는 확률상, 기간 내에 오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1호 청사는 다르다.
‘처리할 업무도 있을 테니까 무조건 한 번은 들를 거야.’
내가 확신하는 이유가 있었다.
1호 청사의 경계가 가장 삼엄하기 때문.
이곳은 안전하다고 느낄 테니, 무조건 한 번은 올 것이다.
이걸로 작전은 끝.
이제 남은 건 딱 하나였다.
‘밤이 기다려지는군.’
바로, 때를 기다리는 것.
“스읍, 후우. 스읍, 후우.”
나는 머리를 비우기 위해 명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띠링!
[보름달이 떴습니다.]
[<로브:달의 메아리>가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5% 상승합니다.]
[<목걸이:영롱한 달빛>가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30% 상승합니다.]
[달빛의 힘으로 인해 <영롱한 달빛> 능력이 활성화됩니다.]
[1분당 체력과 마력이 5%씩 회복됩니다.]
[<스킬:열반>이 활성화됩니다.]
[정신 이상 기운 상쇄율 : 45%]
그 순간은 금방 찾아왔다.
‘평양까지 강행군한 온 보람이 있네.’
산을 내려가는 길.
하늘에 걸린 둥근 달을 본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에 힘이 샘솟는다.
정신은 더욱 또렷해지고, 호흡도 안정화되었다.
이제 남은 건 타깃을 제거하는 것뿐.
“······.”
밤이 되자, 평양 내외를 분주히 돌아다니던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북한은 현재 전력난에 허덕이는 상황.
수도인 평양, 그것도 신분이 고귀한 몇몇만이 밤에 불을 켤 수 있다.
그 탓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시내까진 무사히 들어갈 수 있겠어.’
서울과 다르게, 평양 외곽은 논밭으로 가득했다.
먹을 것을 자급자족하는 북한의 특성상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논두렁을 따라 이동하길 한참.
‘여기서부턴 신중하게 움직여야겠군.’
어둠이 내려앉아 깜깜하던 밤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밝아졌다.
집 안에서 흘러나온 빛들이 길거리를 비춘다.
드디어 시가지로 들어온 것이다.
‘후우.’
독재자를 죽이기 위해.
그리고 고위 리그를 위해.
‘시작해 볼까.’
단검을 꺼내든 나는 은밀하게 중심부로 향했다.
* * *
안녕하세요, 하루하온입니다.
어제 한 독자님께서
<장백산맥 → 백두산맥> 이 정확한 표현 아니냐.
혹시 작가가 한국말 잘 하는 중국인인 것 아니냐. 이건 동북공정이다.
라는 말씀을 남겨 주셨습니다.
백두산맥 : 원래 이름은 마천령산맥. 북한에서는 백두산맥이라고 불린다.
장백산맥 : 요동반도~흑룡강+송화강 유역 = 북한 국경 바깥에 있는 산맥.
백두산맥과는 아예 별개의 산맥이다.
한마디로 제 소설에 나오는, 북한 국경 전에 만난 장백산맥은 애초에 국내에 없으며, 백두산맥이라고 불리지 않는 산맥입니다! (백두산맥은 위 언급과 같이, 마천령산맥이라고 북한 내부에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한국인(교포 X 순수하게 대한민국 혈통)입니다!
이상입니다!
< 190화. 여우 사냥(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