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해방(6) >
서울.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천만 명이 살고 있는 거대 도시.
평생을 살아온 고향이자, 가지고 있는 모든 추억, 후회, 기쁨, 슬픔이 잠자고 있는 곳.
[미션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독재자를 처치하세요.]
[이번 경기엔 제약 조건이 있습니다!]
[제약 조건 1 : 국제 정세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성계입니다. 타국의 영향력을 이용한 미션 수행을 금지합니다.]
[제약 조건 2 : 플레이어의 기초 스텟이 ‘20’ 으로 하락합니다.]
[제약 조건 3 : 플레이어라는 신분을 노출시켜선 안 됩니다.]
[제약 조건 4 : 지구의 물건은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습니다.]
[제한 시간 : 720:00:00]
‘북한의 독재자를 처치해라.’
미션 내용을 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14년 만에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미션만 생각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로 다짐했으니까.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승급한 채로 팜에 돌아가는 것.
‘근데 북한을 어떻게 들어가지?’
어떤 식으로 수행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한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내 기초 스텟은 20.
그냥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사냥하고 다니기엔 터무니 없이 낮은 스텟이다.
게다가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군의 색채가 강한 국가.
원래는 한 나라였지만, 현 상태에선 남한인에겐 금지된 땅.
다른 의미로 진짜 어려운 미션이 나온 것이다.
‘일단 들어갈 방법부터 찾아야겠군.’
└어? 지구???????
└와 ㅋㅋㅋㅋ 진짜 지구네?! 지구 성계에서 열리는 거 최초 아님!?!?!?
└ㄴㄴ 콜로세움 초창기 시절엔 몇 번 열리긴 했음 ㅎ
└지구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네 ㅋㅋㅋ 진짜 거의 4년만 아닌가? 근데 지구는 왜 리그가 안 열림?
└열릴 때마다 미션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경찰 뭐시기라고 불리는 자경단한테 사살당했음.
└저기 ㅈㄴ 웃긴 동네임 ㅋㅋㅋㅋ 무기 들고 있으면 잡아가고, 복장 이상해도 일단 잡고 봄 ㅋㅋㅋ
└ㅋㅋㅋㅋ 그것만이 아님 ㅋㅋㅋ 국경 넘을 때도 무슨 종이 쪼가리 없으면 못 넘고 골드도 거래할 때 어디서 난 골드냐고 물어봄 ㅋㅋㅋㅋㅋㅋ 개 빵터짐 ㅋㅋㅋㅋ
└고도 문명화돼서 그래요 ㄷㄷ 냉병기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끝났고, 사회 체계도 복잡해서 미션을 내려줘도 뭘 할 수가 없음 ㅠ
└근데 기초 스텟 20이면 너무 낮은 거 아니냐? 렌 툭 치면 죽겠누 ㅠ 저걸로 어떻게 깸?
└ㄴㄴㄴㄴ 여긴 그래도 됨. 육체 능력치 개쓰레기임 ㅋㅋㅋ 그래도 마침 렌이 지구 출... 어? 쟤 누구임?
└뭐냐? 왜 렌이 안 오고 이상한 애가 있음?
└아닌데? 입고 있는 거 보면 쟤가 렌 맞는데??
└뭐야!! 가면 어따 두고 왔어!!!!! ㅅㅂ 렌 분위기는 가면빨인데ㅠㅠ
인벤토리에 창을 집어넣은 나는 은밀하게 산을 내려갔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면 곤란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나는 가죽 갑옷에 워커, 그 위에 검은색 로브를 두른 상태니까.
지구의 누군가가 보면 위화감을 느낄 만한 복장이었다.
‘이상한 사람이 돌아다닌다며 경찰에 신고하겠지.’
자칫 잘못했다간 경찰이 출동해서 신분증을 요구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 주의해야만 한다.
<평창1길>
산 아래에는 구불구불 이어진 좁은 골목에는 단독 주택들로 가득했다.
야심한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산 아래에는 온갖 별들이 반짝였다.
가로등의 등불, 창문 너머로 흘러나오는 형광등의 불빛 등등.
그 사이사이를 돌아다닌 나는 어렵지 않게 옷을 구할 수 있었다.
옥상에 빨래가 널려져 있는 집이 있었기 때문.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겠군.’
착용하고 있던 장비를 벗은 후, 검은색 트레이닝복 세트로 갈아입은 나는 1골드를 꺼내 바닥에 두었다.
금의 가치로 봤을 때, 이 옷보다 몇십 배는 더 거액일 것이다.
‘정보를 좀 구해야 할 것 같은데.’
옥상에서 내려온 나는 남들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돌아다녔다.
트레이닝복에 워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남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을 테니까.
‘다른 성계인들이 수행하기엔 까다롭겠어.’
정보를 구할 방법을 찾던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얻는 건 어렵지 않다.
컴퓨터라든가, 아니면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면 끝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나한테 그 두 가지가 없다는 것.
결국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었다.
‘골드를 함부로 쓸 수 없는 곳이지.’
골드.
즉, 금을 팔면 손쉽게 돈을 구할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은 금을 팔 때도 신원을 확인하는 나라다.
물론 다른 판매 루트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 또한 핸드폰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다른 방법을 이용해 돈을 구해야 한다는 뜻.
‘어쩔 수 없지.’
돈을 구할 수 없다면, 뺏는 수밖에.
‘명동이 어느 방향이더라.’
눈먼 돈, 그리고 검은돈은 탈이 나지 않을 테니까.
└ㅋㅋㅋㅋㅋ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지럽네 ㅋㅋㅋ 진짜 개ㅈ같은 성계네 ㅋㅋㅋㅋ
└ㄹㅇ;; 지구인들이 콜로세움에 들어와서 얼타는 이유를 알았음... 이런 곳에서 살다가 팜에 들어오면 진심 패닉일 듯 ㄷㄷ
└솔직히 학살, 끝! 이런 레파토리일 줄 알았는데, 지금은 ㅈㄴ 궁금함 ㅋㅋㅋㅋ
* * *
“이봐요, 아저씨.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바보야? 엉?”
“······.”
“원금 천만원에 이자율 20프로. 분명 아저씨가 계약서에 싸인 했잖아. 안 그래?”
“아, 아니 당연히 일 년에 20프로인 줄 알았죠······.”
명동, 율재 컨설팅 사무실.
손님과 채무 상담중인 동생들을 뒤로하고,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던 이수철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팔뚝에 새겨진 잉어와 용들이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렸다.
‘씨발, 이번 달에 빵꾸가 왜 이렇게 많아?’
이번 달에 회수하지 못한 돈만 1억 원.
그런 탓에 그는 현재 무척 날카로운 상태였다.
“분명 계약서에도 나와 있잖아! 자, 눈 뜨고 잘 봐! 여기 뭐라고 써 있어?”
“하, 한 달에 20프로······.”
“그치? 근데 그걸 못 본건 아저씨 눈깔이잖아. 안 그래? 아저씨가 잘못 본 건데 왜 우리가 피해를 입어야 하냐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6개월만에 3천만원으로 불어납니까?”
“잘 들어. 첫 달 1,200만원. 그 이자에 이자가 붙어서 둘째 달 1,440만원. 셋째 달 1,728만원. 넷째 달 2,073만 6천원. 벌써 여기에서 이미 2천만원이 넘었잖아.”
“······.”
“그리고 저번달에 이미 2,488만 3,200원으로 불어났네. 이번 달에 2,985만 9,840원이 됐고. 내가 깔끔하게 9,840원은 빼 줄테니까 딱 말해. 언제까지 줄 수 있어?”
“드리고 싶어도 돈이······.”
콰아앙!
“아니, 씨발. 아저씨. 남의 돈을 갖다 썼으면 재깍재깍 갚아야 할 거 아냐. 엉? 배 째라야 뭐야!”
정중하게 돈을 갚아달라며 애걸복걸하는 동생들.
하지만 손님은 채무를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쯧.’
“야, 나와 봐.”
“예, 부장님.”
그 모습에 이수철은 하는 수 없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봐, 김종률씨.”
이수철의 부름에,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올려다보는 손님.
“예, 옛!”
이수철은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입을 열었다.
“돈 못 갚겠다고?”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뿜어져 나온 담배 연기가 손님을 때렸다.
“아, 아뇨. 당연히 갚아야죠!”
“근데? 그럼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갚으면 되잖아.”
“다만 이자를 좀 낮춰 주셨으면 해서······.”
“이자? 낮춰주면 갚을 수는 있고?”
이수철의 물음에 고개를 번쩍 드는 손님.
손님의 눈동자에서 기대감이 한가득 배어나왔다.
“물론이죠! 갚을 수 있습니다!”
이수철이 쪼그려 앉으며 손님과 눈높이를 맞췄다.
“이자를 좀 낮추면 갚을 수 있다라······.”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있던 손님의 손등이 재떨이라도 되는 양 담뱃불을 비벼 껐다.
“끄아아아악!”
“그럼 나도 좀 부탁하자. 내가 좀 힘들어서 그러는데, 이자율 좀 더 올려주면 안 될까?”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치? 말도 안 되지? 근데 왜 당신이 하는 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엉? 왜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고.”
이수철의 거대한 손이 손님의 멱살을 우악스럽게 휘어잡았다.
“내 말 똑똑히 들어. 당신, 딸만 셋이나 있던데.”
끄덕.
“만약 두 달 안에 안 갚으면 당신 딸들. 당분간 볼 수 없을 거야.”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여기 있는 동생들이 잘 교육시킨 뒤에, 어디 근사한 곳에서 엉덩이를 흔들고 있을 거라고. 알았어?”
이수철의 말에 눈을 부릅 뜨는 손님.
“제, 제발! 가족들 만큼은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바아알!”
그가 이마를 땅에 찧으며 애걸복걸했다.
하지만 이수철은 혀를 차며 턱짓할 뿐이였다.
“야, 치워.”
“예, 부장님! 이봐, 아저씨. 돈 생기면 그때 다시 찾아와. 알았어?”
“제발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제발!”
“어허! 빨리 안 나가? 야, 니네. 다리 잡아. 저기 골목 옆에 던져버리게.”
사정사정하는 손님의 팔 다리를 잡아 채는 동생들.
이수철은 그 모습을 뒤로하고, 의자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꼭 좋은 말로 하면 들어 쳐먹질 않아요. 어휴.’
“제가 불 붙여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동생 하나가 두 손으로 공손히 라이터 불을 켰다.
그때였다.
철컥―
뚜벅. 뚜벅.
거칠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웬 남성.
“뭐야, 당신?”
검은 트레이닝복에 워커를 신은 20대 후반의 남자였다.
“누군데 남의 사무실에 함부로 들어오는 거야?”
“어? 이 새끼 봐라. 씨발, 사람이 말을 하는데 쳐다보지도 않는 것 보소.”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동생들이 우르르 일어나 트레이닝복 남성을 경계했다.
그러나 건장한 덩치의 여섯 남자가 에워싸는데도, 표정 하나 달라지지 않는 남성.
그 모습에 이수철의 눈썹이 꿈틀했다.
‘누구지?’
형사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2인 1조로 움직이기 때문.
아니, 설혹 형사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다들 진정하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말 한마디에 동생들을 진정시킨 이수철.
그가 미소를 띠며 당당하게 물었다.
만약 형사라고 해도 자신들은 거리낄 게 없었으니까.
사채도 엄연히 대부업이라는 하나의 사업이고, 실제로 사업자 등록증도 나온다.
게다가 이 사무실엔 계약서가 단 한 개도 없다.
사진만 찍어놓고, 바로 파쇄기에 돌려버리기 때문.
‘털어 봤자 나올 게 하나도 없지.’
그런 이유로 형사라고 해서, 이수철이 기 죽을 이유가 없었다.
“청소하러.”
그제야 첫 마디를 뱉는 트레이닝복 남성.
순간 이수철의 이마 힘줄이 꿈틀했다.
남성이 초면부터 반말질을 해댄 것이다.
주변에 있던 동생들의 얼굴도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수철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정중하게 물었다.
“혹시 잘못 찾아오신 것 아닙니까? 저흰 청소 용역을 쓰지 않습니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은데. 여기 인간 쓰레기들이 널려 있잖아.”
‘뭐?’
“인간······ 쓰레기······?”
그 말을 들은 이수철이 폭발했다.
“뭐야, 씨발. 웬 미친 새끼가 와 가지고! 야, 내보내!”
“알겠습니다, 부장님. 이봐, 남을 대할 땐 정중하게 하라고 가정 교육 안 받았어?”
“빨리 안 나가?”
목과 손목을 돌리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동생들.
그중 한 명이 남성을 밀치기 위해 손을 뻗을 때였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
툭― 우드득! 빠악!
털썩-
‘뭐, 뭐야?’
순식간이었다.
다가오는 팔을 잡아 꺾고, 인중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그 간결한 움직임에 이수철이 눈을 치켜떴다.
“이런 미친!”
“개새끼가!”
그 광경에 눈이 돌아버린 5명의 동생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툭― 빠악! 빡! 툭! 빡!
가볍게 툭툭 친 것 같은데, 네 명이 쓰러지기까지 고작 3초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이게······ 된다고?’
그 비현실적인 장면에 이수철의 정신이 멍해졌다.
영화 속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한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모두들 손목이나 발목 하나가 기형적으로 꺾인 채 쓰러지고, 남은 사람은 딱 한 명.
‘녀석이라면.’
석호균.
영등포 일대를 주름잡던 육월파 출신으로, 의리 있고 깡도 좋은 녀석이라 이수철이 공들여 영입한 녀석이었다.
깜방에 들어간 사이 육월파가 해체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품을 수 없었을 만큼 싸움 실력이 뛰어났다.
“이 새끼, 가만두지 않겠어!”
이수철은 마지막 남은 석호균에게 기대를 걸었다.
막대 형태로 된 잭나이프를 꺼내 드는 석호균.
버튼을 누르자, 툭 하고 시퍼런 칼날이 튀어나왔다.
트레이닝복 남성이 격투기를 배운 프로라고 해도 칼 앞에서는 당황스러울 것이다.
‘뭐?’
긴장한 채로 석호균과 트레이닝복 남성의 대치를 지켜보던 이수철.
그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칼을 꺼내든 석호균을 본 트레이닝복 남성이 피식하고 웃은 것이다.
“죽어!”
그 미소에 눈이 뒤집힌 석호균이 남성의 복부에 칼을 찌르려 달려들었다.
그리고.
퍽! 퍽! 퍽!
“끅!”
칼 잡은 손목을 가볍게 툭, 하고 친 남성이 석호균의 명치를 때린다.
그와 동시에 손날로 뒷목을 내리쳐 기절시킨다.
그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
그리곤 이수철에게 눈을 돌리는 남성.
트레이닝복 남성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던 잭나이프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발끝으로 찼다.
“으악!”
이수철의 얼굴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잭 나이프.
뺨을 스쳐 지나간 잭나이프는 의자에 달린 헤드레스트에 꽂히며 바르르 떨었다.
‘미친······!’
그 광경에 이수철은 확신했다.
트레이닝복 남성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는 녀석이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무심하게 칼을 발로 찰 수 있을 리가 없다.
‘죽을 수도 있어.’
곱상하게 생긴 얼굴.
가지런히 정돈된 짙은 눈썹.
오똑한 코와 얇은 입술.
무척 잘생겼다고 할 수 있는 남성의 눈동자를 본 이수철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바들바들 떨었다.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심한 눈빛이었으니까.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여버리고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랑 다른 세계의 인간이야.’
과거에 저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명동의 왕이라고 불리는 주 회장.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경호하던 한상민 실장이 딱 저런 눈빛이었다.
“도, 돈이 필요해서 오셨습니까? 얼마가 됐든 그냥 드리겠습니다!”
상대가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깨달은 이수철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제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으면 끝.
그는 책상 아래에 있는 금고를 열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책상 위에 꺼냈다.
땡그랑!
얼마나 다급했는지, 골드바를 그냥 던지듯 올려둘 정도였다.
‘제발······.’
오만원 권 지폐 뭉치가 대략 40개.
현 시세로 3,300만 원이 넘는 한국 금 거래소 375그램짜리 골드바 일곱 개.
총 4억이 넘는 금액이었지만, 이수철은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저 이 저승사자가 돈을 받고 물러나 주기만을 기도할 뿐.
그때였다.
“······!”
지금까지 무표정 일색이던 남성이 갑자기 인상을 찡그린다.
‘씨발······.’
그 모습에 이수철의 심장이 철렁했다.
아무래도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이려고 마음먹은 것 같았다.
* * *
[중급신 ‘팔라스’ 님이 서브 미션을 걸었습니다.]
―김종률이라고 불린 남성의 계약, 파기하게 만들기.
[보상 : 10,000 P]
[서브 미션을 수락하였습니다.]
[대신 ‘헤카테’ 님이 서브 미션을 걸었습니다.]
―아름다운 조각품이나 그림 같은 예술품들을 구해와 주실 수 있나요?
대가는 섭섭하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보상 : 100,000 P]
[서브 미션을 거절하였습니다.]
[고신 ‘에우노미아’ 님이 서브 미션을 걸었습니다.]
―지구 성계에 왔을 때 가장 먹고 싶었던 것 먹기.
[보상 : 30,000 P]
‘뭐야?’
지구에 왔을 때 먹고 싶었던 거?
상태창을 본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먹고 싶었던 거라······.’
[서브 미션을 수락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스타벅스에 들러야 할 것 같았다.
‘오랜만에 딸기 딜라이트 요거트 블렌디드나 한 잔 마셔야겠군.’
< 187화. 해방(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