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해방(3) >
띠링!
[초승달이 떴습니다.]
[<목걸이:영롱한 달빛> 이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10% 상승합니다.]
[달빛의 힘으로 인해 <목걸이:영롱한 달빛> 능력이 활성화됩니다.]
[1분당 체력과 마력이 5%씩 회복됩니다.]
[<스킬:열반>이 활성화됩니다.]
[정신 스텟이 +30% 상승합니다.]
[정신 이상 기운 상쇄율 : 63%]
당소소와 함께 찾은 특수 중력 대련장.
챙! 카앙! 채챙! 캉!
“거기서 그렇게 들이대면 안 되지! 칼 맞아 죽을 일 있어?”
“죄, 죄송합니다!”
“여기선 이렇게 움직여야 해. 잘 봐!”
내부에서는 무수히 많은 팀원들이, 달빛 아래에서 대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디 보자······.’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당소소와 싸울 만한 상대를 물색했다.
당소소는 준네임드급 플레이어.
어지간한 플레이어들로는 그녀의 실력을 가늠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대련할 상대가 없다고 날 찾아온 상황.
나는 당소소보다 더 강한 플레이어를 붙여줄 생각이었다.
“지그 선배님! 이번에 새로운 공격법을 익혀서 그러는데, 저랑 대련 한 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한 시간 뒤에 하자.”
“옙!”
마침 대련장 한쪽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지그.
‘음, 지그가 좋겠군.’
상위 플레이어인 지그라면, 당소소 실력의 한계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그 님.”
“······? 아, 안우진 님.”
한동안 날 빤히 쳐다보던 지그가 뒤늦게 반응한다.
가면을 벗은 지 며칠 됐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모양.
“혹시 다음 대련 일정이 있으십니까?”
“아뇨. 안우진 님이라면 있어도 빼야죠.”
“그럼 대련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바로 준비할까요?”
검을 꺼내 들며 몸을 푸는 지그.
나는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
“상대는 제가 아니고 당소소 님입니다.”
“아······.”
내 말에 지그가 흠칫했다.
그가 당소소의 고운 얼굴을 보며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
“어떤 이유로 제게 대련을 부탁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당소소 님의 실력을 보려고 하시는 거죠?”
“맞습니다.”
“그럼 안우진 님이 직접 싸워보시는 게 더 나을 겁니다.”
“······.”
지그의 대답에 나는 팔짱을 꼈다.
‘그 정도라고?’
내가 직접 싸워 보라는 것.
한마디로 당소소의 실력이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그에게서 당소소와 싸우길 꺼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독이랑 암기 때문이겠지.’
뭐 때문에 그러는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사천당가는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전투명가.
그 입지를 독과 암기만으로 세웠다고 했다.
당소소는 그곳의 적장녀嫡長女.
당연히 독과 암기에 능통할 것이다.
‘악마의 눈으로 봤을 때도 독과 관련된 각성 능력을 많이 갖추고 있었어.’
다만 내가 놀랐던 건, 나름 상위 플레이어인 지그에게 저 정도의 반응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상대해 보죠.”
지그에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당소소를 데리고 대련장의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플레이어 ‘렌’에게 30G의 중력이 적용됩니다.]
‘오랜만에 느끼는 압력이군.’
그러고는 당소소와 비슷한 수준의 움직임이 나오도록 중력을 설정했다.
“따로 준비하실 시간이 필요하십니까?”
“괜찮아요.”
내 물음에 고개를 젓는 그녀.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손뼉을 짝! 하고 쳤다.
[맵 : 폐허 원형 투기장]
[3초 후 대련이 시작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조신하게 대답한 당소소가, 녹색 무복을 펄럭이며 허리에 둘러진 연검을 꺼내 들었다.
[2초 후 대련이 시작됩니다.]
‘보자······. 마력 상쇄, 뇌신 끄고. 이 정도면 되겠지.’
열반을 제외한 모든 스킬을 비활성화시킨 나는 검을 꺼내 들었다.
그녀에게 주는 핸디캡이랄까.
이 정도는 되어야, 당소소가 상대할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1초 후 대련이 시작됩니다.]
자만심은 아니었다.
다만, 이전에 비해 내가 너무 강해졌을 뿐.
[경기 시작!]
‘실력 좀 볼까.’
검을 돌려 가볍게 손목을 푼 나는, 경기 시작 콜과 동시에 당소소에게 돌진했다.
그녀의 무기는 연검軟劍.
탄성이 강해서 검신이 무척 유연하다는 특징이 있다.
‘저 정도면 채찍처럼 휘두르는 것도 가능하겠는데.’
내가 들고 있는 검보다 리치가 훨씬 길기 때문에, 거리 조절이 필수였다.
‘움직임이 굉장히 가볍군.’
내가 거리를 좁혀오자,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당소소.
그녀가 크게 휘두르자, 연검이 내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채찍이 번뜩이는 느낌.
‘연검을 쓰는 것 치고는 너무 정직한 공격인데.’
그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나는 검을 가볍게 들었다.
그때였다.
채애앵!
“······?”
연검과 내 검이 부딪히자, 공중으로 비산하는 하얀 가루들.
‘독!’
그 광경에 흠칫한 나는 재빨리 숨을 참으며 뒤로 빠져나갔다.
띠링!
[<독:마비쇄백분痲痺碎魄粉>에 중독되었습니다.]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10초당 민첩 스텟이 1%씩 하락합니다.]
[정신 이상 기운 상쇄율 : 63%]
[10초당 정신 스텟이 0.3%씩 하락합니다.]
[<귀걸이:대천사의 눈물>이 정신 계열 공격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쯧.’
하지만 나름 민첩하게 반응했는데도 이미 가루를 들이킨 후였다.
‘마비 독이군.’
상태창을 힐끗 살핀 나는 당소소를 주시했다.
연검에 독 가루를 미리 뿌려뒀던 모양.
그때부터 전세가 판이하게 달라졌다.
“하앗!”
내가 중독됐다는 걸 눈치챈 당소소가 마구 공격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허벅지와 가슴을 향해 연검이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챙! 채챙! 챙!
‘실제 전투였으면 간담이 서늘했겠어.’
나는 당소소의 공격을 막아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하니 연검에 독 가루가 뿌려져 있을 줄이야.
어쩐지 연검을 꺼내 들고 조신하게 서 있더라니, 독 가루가 흩날릴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았다.
챙! 챙! 채챙!
‘그래도 이 정도면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 어?’
뭐지?
순간 나는 움찔했다.
쇄도하는 연검을 막고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느껴졌기 때문.
감각에 집중하니, 아주 작은 크기의 바늘이 내 가슴을 노리며 날아들고 있었다.
마력장이 아니었다면 알아채기가 쉽지 않을 정도의 은밀한 공격.
‘까다롭군.’
나는 내심 감탄했다.
암기가 작을수록 던지기도 어렵다.
그런데 그녀는 자연스럽게 연검을 휘두르는 와중에 저 암기들을 날린 것이다.
쐐애애애애액!
‘알아채는 게 어려울 뿐이지, 못 피할 정도는 아닌······.’
그래서 날아드는 암기를 피하기 위해 몸을 빼는데, 연검이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하며 날아들었다.
그 절묘한 공격에, 나도 모르게 흠칫했을 정도였다.
‘와······. 이건 무조건 맞으라는 거잖아?’
첫 번째 독, 마비쇄백분으로 인해 민첩이 많이 깎인 상황.
지금 상태에서 연검과 바늘을 동시에 쳐내는 건 무리였다.
아니, 마음 먹으면 피할 자신은 있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실력을 체크 중인 상황.
굳이 전력을 다해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연검을 맞아줄 수도 없고.’
맞는 순간 몸이 찢겨나갈 것이다.
판단을 내린 나는 검을 휘둘러 연검을 쳐냈다.
그리고는 왼팔을 들어,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바늘을 맞아 주었다.
푹! 푹!
[<독:무형화혈독無形化血毒>에 중독되었습니다.]
[독에 의해 내장이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뭐?’
상태창을 본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내장이 녹아 내리기 시작한다고?
“끄으으윽······.”
그 순간, 무시무시한 통증이 찾아왔다.
마치 온몸이 불에 휩싸인 느낌이었다.
‘후우, 별의 별 독이 다 있군.’
나는 이를 앙다문 채, 날아드는 연검을 막는 데 전념했다.
챙! 채챙! 챙! 챙! 챙!
두 개의 독에 중독된 순간부터 당소소의 독무대가 시작되었다.
연검과 바늘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쉽지 않네.’
스텟과 스킬을 봉인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밀려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른다.
그녀는 단순히 스텟만 보고선 판단할 수 없는 경지였던 것이다.
서걱!
마비와 통증 때문에 움직임이 느려진 사이, 연검의 끄트머리에 어깨가 살짝 베였다.
띠링!
[<독:역산속근독力散束筋毒>에 중독되었습니다.]
[<근육 경직> 상태에 빠집니다.]
[10초당 근력 스텟이 1%씩 하락합니다.]
‘여기엔 또 다른 독이 발라져 있었어?’
몸에서 힘이 쭈욱 빠져나가며,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정신이 혼미한데,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 사이 연검이 번뜩이며 날아들고, 집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바늘이 쇄도한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은 당황하기 바빴을 것이다.
‘지그가 난색을 표할 만 했군.’
독은 모르면서 당하니까 위험하다.
그런데 사천당가에서 독을 사용한다는 건 무림인이라면 다 알만한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천 당가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전투명가로 꼽힌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암기를 다루는 뛰어난 테크닉, 그리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독을 사용할 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저 심리전.
그런 것들이 사천당가의 진정한 저력인 것 같았다.
“······.”
그때 연검을 휘두르다 말고, 갑자기 녹색 소매로 코를 가리는 당소소.
‘또?’
그 순간, 나도 재빨리 숨을 참았다.
그리고 울리는.
띠링!
[<독:신선폐神仙廢>에 중독되었습니다.]
[<마력 경색> 상태에 빠집니다.]
[10초당 마력 스텟이 1%씩 하락합니다.]
독에 중독되었다는 알림창.
‘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무섭네.’
이로써 나는 네 개의 독에 중독되었다.
게다가 근력, 민첩, 체력, 정신, 마력까지 다섯 개의 스텟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
―사천당문의 독인에게는 열 걸음 이상 다가가지 말라.
언젠가 모용악이 내게 해준 말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말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이 정도면 더 이상 볼 필요도 없겠어.’
상대할 만한 사람이 없다?
인정한다.
이 정도면 주창범이나 모용악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부터 제대로 해볼까.’
마음을 먹은 나는 당소소에게 짓쳐 들어갔다.
쐐애애액! 쐐애액!
그러자 연검을 휘두르며 뒤로 빠져나가는 당소소.
‘어림 없지.’
나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피하며 거리를 좁혔다.
독에 중독됐고, 스텟이 하락했고, 통증이 심하고, 암기가 까다롭다?
고작 그런 것들에 발목 잡힐 내가 아니었다.
“······!”
순식간에 가까워지자, 당소소가 서둘러 암기를 날린다.
워낙 얇은 데다가,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 상황.
‘초감각 앞에선 소용없어.’
팅! 팅! 팅! 팅! 팅!
나는 손목만을 움직여, 얇은 바늘을 검 끝으로 툭툭 쳐냈다.
서걱!
그러고는 도망가는 그녀의 허벅지를 베었다.
‘끝이군.’
기동력을 상실한 이상, 당소소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목을 향해 검을 찔러넣으려 할 때였다.
“항복이에요.”
당소소의 차분한 목소리.
내 검이 그녀의 턱 밑에서 멈췄다.
‘후우.’
그리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대련일 뿐, 굳이 죽일 필요는 없으니까.
“정말 놀라운 실력이네요. 깜짝 놀랐습니다.”
검을 갈무리한 나는 그녀를 극찬했다.
진짜로 깜짝 놀랐다.
그녀가 이렇게나 잘 싸울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칭찬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는 당소소.
“혹시 뭔가 부족한 점이라던가, 고쳐야 할 점이 있었나요?”
‘음······.’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스텟이야 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으니 낮은 게 당연하고.
연검과 암기의 연계도 무척 뛰어나다.
굳이 보완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딱 하나.
“연검의 기교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명의 강자와 일대일 승부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다대일 상황에서 독을 믿고 싸우기엔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더군요.”
“스텟 하락까지 시간이 조금 걸려서 그러는 거죠?”
“맞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짚어주자면, 목 위로도 공격을 하는 게 좋겠더군요. 안 그러면 공격을 읽힐 수도 있으니까요.”
당소소의 공격은 허벅지부터 목 아래까지, 상반신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연검에 베인 곳도 어깨였고, 암기는 복부 쪽으로만 찔렸다.
그 무엇 하나도 머리 쪽으론 날아오지 않았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수련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버릇이 든 모양.
“아, 그건 잘생긴 얼굴에 상처 내기 싫어서 그랬어요.”
그러나 이어지는 당소소의 말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후우.’
얘 또 이러네.
팜에 들어온 이후, 잠잠해졌다 싶더라니.
‘아직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군.’
이럴 땐 무시하는 게 상책이었다.
“아무튼, 당소소 님이 어떤 취지로 훈련을 도와달라고 하신 건지는 공감했습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돼죠?”
상대할 만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훈련을 도와달라.
그 이유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다만 문제는.
‘도와줄 만한 게 있나?’
내가 독에 관한 지식은 전무하다는 것.
그렇다고 연검의 기교를 수련하겠다는 건 아닐 것이다.
그 정도라면 다른 플레이어들도 얼마든지 상대해 줄 수 있을 테니까.
“상대에게 하독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 중이라서요.”
하독 할 방법을 연구중이다라······.
한마디로 독에 중독되어 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뜻.
‘흠.’
나는 한동안 고민했다.
‘다양한 독에 중독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독은 효율적인 데다가, 극강의 살상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독을 쓰는 플레이어와도 마주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이어지다 보니, 나한테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좋습니다. 다양한 스타일, 다양한 무기로 상대해 드리죠. 매일 이 시간이면 되겠습니까?”
내 물음에 당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에는 스텟 단련을 해야 해서 저도 이 시간이 좋아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당소소와의 훈련.
그날 이후, 나는 하루하루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매일 같이 장기가 녹아내리고, 한번은 피부가 갈라지고.
가끔은 환각에 정신줄을 놓기도 했다.
그리고.
“기분이 이상하군요. 이것도 독입니까?”
“어머, 실수로 잘못 사용했네요. 절혼환락산이라는 독이에요.”
“무슨 효과인데요?”
“욕정에 미치는 효과요.”
“······!”
때로는 이상한 독에 중독되기도 했다.
< 184화. 해방(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