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영혼의 반쪽(4) >
“안······ 우정······?”
귀에서 삐- 하고 이명이 들린다.
새하얗게 변했던 머릿속이 조금씩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안우정은 우리 형의 이름이고, 나는 현재 성계 대항전에 참가 중.
지금은 5경기 중이고, 깃발 쟁탈 미션임.
게다가 초인들만이 올라올 수 있다는 상위 리그.
따라서 우리 형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음.
그렇게 내 머리는 합리적인 결론을 내놓았다.
‘그래, 확률적으로 말이 안 돼.’
세상에 얼마나 많은 동명이인이 존재하던가.
물론 안씨 성이 흔한 것도 아니고, 거기에 남자 이름이 우정이라면 더 낮아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게다가 형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선, 더욱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형이 누군가를 죽인다는 게 상상이 되질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룬의 반응에서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
“내 이름을······ 어떻게······?”
눈앞의 검은 인영人影.
내 읊조림을 듣고 흠칫하는 플레이어 룬.
변조된 목소리, 하지만 평소 내가 기억하던 형의 말투였다.
‘서, 설마.’
진짜 우리 형이라고?
머리카락이 쭈뼛했다.
제로에 수렴하던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형이 상위 리그에······ 올라왔다고?’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까만 그림자 위에 형의 얼굴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아냐.’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것만으로 확신하기엔 정보가 부족하다.
‘제대로 확인해야겠어.’
두근. 두근.
내 심장이 터질 것처럼 세차게 뛰었다.
혹시? 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나, 나야. 우진이······.”
그래서 처음으로 내 본명을 밝혔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 때문에 발음이 어눌했지만, 분명 알아들었을 것이다.
만약 내 이름에도 반응한다면.
두근. 두근.
확실하게 우리 형일 테니까.
‘제발······, 제발······!’
지금 이 순간, 내 닉네임이 렌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감사했다.
만약 안우진이 닉네임이었다면, 삐- 처리됐을 테니까.
그랬으면,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형이 아니면 어떡하지?’
기대, 불안, 우려 등등 다양한 감정을 담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내 초조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6번, 플레이어 룬.
이름, 안우정.
잠시 정지해 있던 그의 눈동자가 점점 커진 것이다.
“우진이? 아, 안우진? 내 동생?”
그 반응에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형······.”
우리 형이 맞다는 걸.
‘진짜였어.’
└뭐야? 이게 무슨 상황임? 그니까 렌이랑 룬이 형제라는 거임?
└그런듯 ㅇㅇ 렌 본명이 안우진이고, 룬 본명이 안우정인듯. 두 사람은 형제라는 걸 이제야 안 것 같음 ㅋㅋ
└이야 ㅋㅋㅋㅋㅋ 상위 리그에 지구 출신 딱 세 명 있는데, 그중 두 명이 형제네 ㅋㅋㅋㅋㅋㅋ 저쪽 집안은 재능충들만 있나 본데?
└파..
└파..?
└팝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 새끼네 이거 ㅋㅋㅋ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형!”
“동생아······!”
오랜만에 듣는, 형의 따스한 부름.
그 순간 나는 과거의 나로 돌아갔다.
“형······. 흑흑······.”
그대로 달려가, 형을 부둥켜안은 나는 목 놓아 울었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감옥에서 2년, 1회차 10년, 그리고 2회차 2년.
무려 14년 만에 다시 만난, 우리 형.
익숙한 체향이 맡아진다.
“흑흑······ 형······.”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리워했던가.
꿈에서조차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리고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
―동생아, 이 세상에서 피가 가장 비슷한 사람은 우리 둘이야.
―엄마는? 엄마가 우릴 낳아줬잖아.
―엄마도 물론 비슷하지. 하지만 너와 난 그보다 훨씬 더 닮아있어. 엄마와 아빠를 반반씩 섞어놓은 게 우리니까.
서로의 분신分身.
―그러니까 우린 영혼의 반쪽이야.
나를 꼬옥 끌어안은 형의 떨림이 느껴진다.
“네, 네가······ 왜 여기 있어······. 흑흑.”
“형······.”
내 오른쪽 어깨가 축축해졌다.
마찬가지로, 내 눈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물이 형의 어깨를 적셨다.
하고 싶은 말, 그리고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내 입은 같은 말만 반복할 뿐.
“정말······ 정말 보고 싶었어······.”
가슴 사무치도록,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
울음소리에 잠겨, 뒷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도, 나도 정말 보고 싶었다, 동생아······.”
품에서 떨어진 후, 형의 커다란 손이 다가온다.
그리고는 연약한 유리 공예품을 만지듯, 조심스레 내 얼굴을 쓰다듬는 형.
형의 손길에 담긴 체온을 느낄 수 없어, 처음으로 가면의 존재가 원망스러웠다.
“네, 네가 삐― 이었어······.”
형 또한 같은 생각을 했던 건지, 더욱 오열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괴롭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절절한 형의 목소리.
그 말을 듣자 순간 콧등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왈칵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독하게 마음먹기 위해.
‘정말 힘들었지······.’
숨겨두고 애써 억눌러두었던 감정이 튀어나왔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찾아오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중압감.
소중한 열망을 간직하고 있는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압박감.
그럼에도 더 많은 누군가를 죽일, 힘을 갈망해야 한다는 괴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너무 힘들었어, 형.’
또한 그 힘을 가지지 못했음에 절망했다.
평소 담담한 척했지만, 형을 만난 이 순간.
‘너무······ 무서웠어.’
그 속내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형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상위 리그에 올라오기까지, 당신 또한 그 모든 것을 겪었을 것이기에.
당신도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얹은 채,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는 것을 알기에.
형이 고통에 몸부림쳤을 걸 생각하니,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눈물이 끊이질 않았다.
어차피 볼 수 없는 형의 얼굴인데.
그럼에도 눈물로 인해, 형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는 게 너무 싫었다.
그림자처럼 보이는 지금 이 모습이라도, 어떻게든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어.’
내 모든 감각이 형 한 명에게 집중된다.
흐느끼는 형의 떨림, 불안정하게 뿜어지는 숨결, 흐르는 눈물, 강렬한 심장 박동까지.
그 모든 게 고스란히 내게 쏟아졌다.
‘형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흑막이 미치도록 미웠다.
살육의 광기와 살고자 하는 몸부림, 서로가 죽고 죽여야 하는 전장.
그 안에서 마주하게 된 우리 둘.
이 암울한 상황처럼, 흑막이 우리 형제를 갈라둔 것 같았다.
“여길 왜 들어왔어, 왜! 도대체 왜! 이 바보야······. 흑흑······.”
내 옷깃을 잡고 울분을 토하는 형.
당신이 훨씬 힘들었을 텐데도, 그 와중에 내 걱정을 하고 있다.
그 따스한 손길에 나는 어떠한 저항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리저리 흔들릴 뿐.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나는 서둘러 눈물을 훔쳤다.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우리가 있는 곳은 살육의 광기가 난무하는 전장.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형을 만났다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
죄인인 나 따위가 누려선 안 되는 것들이다.
“형이랑, 엄마한테······.”
처음으로 살인을 저질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팀 정의에 소속되어,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그리고 첫 경기에 출전했을 때.
나는 살기 위해 처음으로 피를 묻혔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었거든.”
두 눈을 바치던 순간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본다는 행위는 내가 평생 누리며 살아온 것.
빛을 잃을 때의 그 공포는,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쳐질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대가를 지불했다.
이 말을 전하기 위해서.
“나 때문에 그런 불행을 겪게 해서 정말 미아······.”
하지만 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쐐애애애애애애애애액!
‘뭐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무언가가 마력장 끝에서 걸려들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다섯 개의 각기 다른 무언가가 날아들고 있었다.
물, 불, 바람, 대지, 번개의 속성을 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 깨닫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광역 마법!’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목표 지점은 숲의 중심부.
한마디로 우리 두 사람의 주위로 떨어지고 있다는 뜻.
‘피할 수 없어.’
그 순간, 정지해 있던 두뇌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각 마법에 담긴 파괴력을 생각했을 때, 어느 방향으로 향하든 저 마법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제발······!’
“어어!”
그 순간 나는 형을 감싸 안으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쐐애애애애애액!
그와 동시에 최고조에 달하는 파공음.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많은데······!’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무시무시한 빛이 우리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크윽.”
귀에서 이명이 들리고, 머리가 핑핑 돌았다.
엄청난 위력에 한참을 튕겨 날아온 것 같았다.
‘형은? 형은 어디 있지?’
나는 하나 남은 다리에 의존한 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근처에 내가 내팽개쳤던 창이 있어서, 사라진 한쪽 다리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었다.
[마력 상쇄율 : 50%]
“형!”
완전히 초토화된 숲의 중심부.
“혀어어어엉! 제발 대답해 줘! 제발······!”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나는 형을 애타게 찾아다녔다.
‘이렇게 헤어질 수 없어.’
아직 못다 한 말이 너무 많았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위엔 온통 박살 난 나무의 파편들 뿐.
꿈틀―
‘어?’
그때, 마력장을 통해 숲 한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제발. 제발······.’
나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아.”
그리고 보게 된.
“아······.”
끔직한 형의 모습.
“아아아······!”
심장이 철렁했다.
머릿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아, 안 돼······.”
찢겨나간 두 다리.
덜렁거리는 왼팔은 붙어 있는 게 신기할 정도.
거기다 가슴엔 팔뚝만 한 나무가 박혀 있었다.
누가 봐도 즉사.
“아직 살릴 수 있어.”
하지만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무시한 채, 인벤토리에서 회복의 물약을 꺼냈다.
“형, 눈 좀 떠 봐.”
그리고는 구멍난 가슴에 들이부으며, 형을 흔들었다.
“눈 좀 떠 보라고!”
하지만 내 외침과 손길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제바아아아알!”
찐득찐득한 불안감이 온몸을 잠식해온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단절되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왜?’
형의 머리 위에 있던 <6>이라는 숫자가 작게 점멸하며 사라진다.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던 흑막이 서서히 벗겨지고, 그 너머로 금이 간 악귀 가면이 보였다.
‘왜 우리 형제한테만 자꾸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거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가면에 손을 대자, 툭- 툭-, 가면이 조각조각나며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드러난 형의 맨얼굴.
살짝 그을린 피부에 가지런히 정리된 눈썹.
오똑한 코, 옆으로 넘겨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카락까지.
온갖 고생을 한 탓에, 범생이 같던 얼굴은 강렬한 인상으로 변해있다.
“하······. 하하하하!”
하지만 분명 형이었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형의 얼굴이다.
형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염원했지만.
“하하하!”
이런 상황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갑자기 미친 듯이 웃음이 나왔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
너무나 보고 싶고, 감사했던.
“하하하하하!”
그 사람이 죽은 모습에, 내면의 무언가가 뚝- 하고 끊어졌다.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죽여버리겠어어어어어!”
밤하늘에 대고, 크게 울부짖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반드시!’
심장이 터질 것 같았으니까.
콰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뇌전의 폭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눈가가 아릿했다.
시뻘건 눈물이 뺨을 타고, 바닥으로 흘렀다.
‘누가 쏜 거지?’
뜨겁게 끓어오르던 머리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얼음처럼.
아니, 그 아래의 극한으로.
띠링!
[<갱생更生> 능력을 사용합니다.]
[손상된 육체를 100% 회복시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167:59:59]
치이이이익―
몸에서 연기가 나며, 사라졌던 다리가 빠르게 돋아났다.
찢어지거나, 긁혀서 피가 나던 부위들도 순식간에 아물었다.
‘힘이 부족해.’
내가 약해서 형을 지키지 못했다.
아마 평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죽은 형의 모습이.
‘내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어.’
주변에서 각종 소음이 들려온다.
챙! 채챙! 챙!
“제법이군. 어디 이것도 받아보시지!”
“뭐 이딴 사기 스킬이 다 있어!”
격렬하게 움직이는 플레이어와, 싸우는 소리.
피부로 스며드는 살기가 느껴졌다.
그 모든 것들이 원망스러웠다.
어떻게 다시 만난 형인데.
그래서였다.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그래.’
미치도록.
정말 미치도록 원해.
‘어디 얼마나 강한 힘을 주는지 보겠어.’
이 세상을 피에 잠기게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이를 빠득 갈았다.
그리고.
―내가 가진 힘의 일부를 허하노라.
내 분노에, 가면이 응답했다.
* * *
마계의 최하층.
“하하하하하하하하!”
콜로세움 시스템에 강제로 접근하여 성계 대항전을 보고 있던 왕이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왜 그러는가.”
그 모습에 곁에 있던 한 남성이 물었다.
왕.
마계의 지배자.
그런 존재를 앞에 두고도, 무척 친근한 말투.
하지만 왕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곁에 있던 다섯 존재를 쓸어보며 입을 열었다.
“베리알, 릴리스, 바알, 사탄, 레비아탄. 내 친구들이여.”
나태의 베리알.
질투의 레비아탄.
색욕의 릴리스.
식탐의 바알.
분노의 사탄.
왕의 부름에 다섯 군주가 흥미로운 눈길을 보냈다.
“블라디미르. 아니, 마몬이 깨어났다.”
< 179화. 영혼의 반쪽(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