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178화 (178/205)

< 178화. 영혼의 반쪽(3) >

머리 위에 <6>이라는 숫자를 달고 있는 플레이어.

‘또 밤이야?’

머리 위에 떠 있는 커다란 달을 본 안우정이 고개를 내저었다.

1경기와 3경기에 이어, 5경기까지 경기장엔 싸늘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후우, 운이 안 좋군.’

무려 12시간을 생존해야 하는 미션이다.

게다가 그를 노리고 달려드는 플레이어들은 각 성계 상위 100명.

태양이 떠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대하기가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 최대한 외곽으로 빠져나가야겠어.’

안우정은 숲 곳곳에서 들려오는 벌레와 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조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하위 리그에선 나름 네임드로 불렸던 안우정.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와 마주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저 하늘에 홀로 뜨는 태양이 되고 싶었는데.’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홀로 고고히 떠오르는 태양.

강렬한 빛으로, 저 하늘 가득한 별들을 모두 집어삼킨다.

닮고 싶다.

안우정의 마음에 언제부터인가 그런 마음이 싹터 있었다.

바스락― 바스락―

‘젠장.’

미세한 인기척에 안우정이 곧장 자세를 낮췄다.

누군가가 안우정이 있는 방향으로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피할까?

안우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

이동하려고 하면, 상대도 분명 알아차릴 것이다.

결국 싸움은 피할 수 없다는 것.

‘침착해, 안우정. 할 수 있잖아.’

옅은 한숨을 내쉰 안우정이 자신의 애검, 레바테인의 검자루를 만지작거렸다.

아직 상대는 그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으니, 단숨에 달려들어 기습할 생각이었다.

바스락― 바스락―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예민하게 곤두선 감각이, 상대의 위치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10미터.

‘일격에 죽여야 해.’

안우정이 숨을 죽인 채 숫자를 셌다.

셋.

둘.

하나.

‘지금!’

터질 듯이 수축되었던 허벅지 근육이 순식간에 팽창한다.

그 탄력으로 어마어마한 가속도를 얻은 안우정이 전력을 다해 소태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채애애앵!

주변을 경계하느라 검을 들어 올리고 있었던 상대는, 안우정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처음부터 완전히 꼬였어.’

그 반발력으로 3미터가량 물러난 안우정의 등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

순간 무거운 정적이 숲속에 내려앉았다.

안우정도, 그리고 상대도 서로에게 검을 겨눈 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3미터라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흐르는 긴장감.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으니, 평소보다 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훨씬 스텟이 높아.’

보이는 건 검을 쓴다는 것과, 머리 위에 쓰여진 <901>이라는 숫자뿐.

그럼에도 안우정은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기습을 막아낼 때의 움직임 때문이 아니더라도, 애초에 이 경기에서 자신보다 스텟이 낮은 플레이어는 찾기 어렵겠지만.

‘후우, 하나씩 하자. 일단 압박해 나가는 것부터. 최대한 차분하게.’

화륵― 화르륵―

판단을 마친 안우정이 청염靑炎을 끌어올렸다.

그때였다.

“아, 뭐야. 삐―이라는 녀석이었어?”

갑자기 피식 웃으며 경계 자세를 푸는 901번.

살 떨리는 긴장감이, 순식간에 여유로움으로 바뀌었다.

“고작 지구 플레이어한테 괜히 쫄았네!”

녀석이 검을 휘- 휘- 돌리며 건들거렸다.

‘지구 플레이어?’

그 모습에 안우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번 성계 대항전을 혼자서 씹어먹은 지구 플레이어 렌.

과연 녀석이 렌 앞에서도 저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었을까?

‘완전히 무시하고 있어.’

이를 빠득 갈았다.

저런 말을 듣고도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분했다.

앞선 네 경기에서 모두 죽음을 맞이했던 안우정.

죽음이란 건, 언제 느껴도 기분이 무척 더러웠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죽고 싶지 않았다.

온 세상의 피를 다 묻히는 한이 있더라도.

‘큰코다치게 해주지.’

각오를 다진 안우정이 901번에게 전력을 다해 달려들었다.

그의 온몸에서 무시무시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하핫! 덕분에 따뜻하겠는걸!”

화륵! 화르륵!

레바테인을 휘두를 때마다 청염이 사방을 휩쓸었다.

* * *

바스락― 바스락―

어지러이 엉켜 있는 나뭇가지를 치우는 소리.

“스읍, 후.”

누군가의 호흡.

탁― 탁―

살금살금 이동하는 고양이 걸음 등등.

‘9명이나 있어?’

주변에서 무수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확실히 중심부 쪽이라서 그런지, 제법 숫자가 많은 모양.

그중 한 명은 내가 있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슬슬 사냥을 시작해 볼까.’

창을 고쳐 잡은 나는, 다가오는 상대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초반부터 싹쓸이한 다음, 깃발을 쟁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바스락― 바스락―

“······!”

풀숲을 빠져나오던 플레이어가 나를 발견하곤 경계 자세를 취했다.

번호는 673번.

검과 방패를 들고 있다.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오디세우스]

[성향 : 모험]

[근력 : 189(+?)] [민첩 : 193(+?)] [체력 : 177(+?)]

[정신 : 109(+?)] [지력 : 38(+?)] [마력 : 156(+?)]

[각성 능력 : <용맹의 검> <특급마나운용> <최상급박투술> <상급치료술>]

[업적 특전 : 대서사시의 주인공]

‘이게 누구야?’

상태창을 본 나는 피식 웃었다.

‘오늘따라 유독 낯익은 플레이어를 많이 보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앞서 마주쳤던 온달과 같이, 긴급 미션 당시 만났던 플레이어.

함께 연합해서 루에타 요새를 공략하던 파티의 파티장, 오디세우스였다.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지.’

물론 온달과는 다른 의미의 반가움이었다.

오디세우스는 그때, 혼자 살겠다고 우리 파티를 버리고 갔던 녀석이었으니까.

물론 그에 대한 악감정은 없었다.

목숨은 하나뿐.

자기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경기를 뛸 땐 누구도 쉽게 믿어선 안 되지.’

다만, 내가 녀석이 아니꼬웠던 건 딱 하나였다.

도망치지 않은 척 다시 돌아와서 고군분투하는 녀석이 가증스러워 보였기 때문.

‘기회주의자.’

보통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는다면, 오디세우스 같은 녀석일 확률이 높다.

그런 이유로, 녀석을 꼭 한 번 손 봐주고 싶었다.

“흡!”

나와 눈이 마주친 오디세우스가 날렵한 몸놀림으로 달려들었다.

방패를 앞세운 채, 검을 뒤로 쭉 뺀다.

일격에 날 죽이겠다는 심산인 것 같았다.

‘그렇겐 안 되지.’

띠링!

[<스킬:뇌룡의 포효>가 활성화됩니다.]

[근력과 민첩 스텟이 +25% 상승합니다.]

카앙! 콰지지지직!

전력을 다해 창을 내리치자, 뒤로 튕겨 나가는 오디세우스.

“······!”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뇌전 공격에 내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모양.

“자, 잠깐!”

오디세우스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카앙! 카앙! 카앙! 콰지지직!

“잠, 윽! 잠시만······. 저, 오디세······. 윽!”

카앙! 콰지직!

한동안 공격을 퍼붓고 있자, 창날에서 강렬한 뇌전이 응축되었다.

‘벽력.’

내가 가진 최고의 공격기.

상위 플레이어들에게 한해선, 필살기와 같은 기술.

뿜어져 나온 빛이 주변을 환하게 만들었다.

‘잘 가라.’

“젠장······!”

눈을 치켜뜨는 오디세우스.

녀석이 멍한 표정으로 창날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게 녀석의 마지막이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

“하하하하! 1경기의 복수다!”

“으윽! 제, 젠장······.”

챙! 챙! 서걱!

어둠에 잠긴 숲속에, 붉은 선혈이 흩날린다.

무기를 겨눈 채 서로를 죽이겠다며 살기를 뿜어대는 플레이어들.

“자, 잠깐만! 마법사가 영창하고 있잖아! 녀석부터 죽이고 다시 싸우는 게 어때!”

“흥! 그래 놓고 또 뒤통수 칠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차가운 냉기를 동반한 마법이 떨어진다.

꽈과과과과광! 서걱! 서걱!

나무가 터져 나가고, 땅이 헤집어지며,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안우정의 로브를 두들겼다.

“이게 진정한 축제지! 나랑도 한번 놀아보자!”

‘끝이 없어.’

그런 상황 속에서 안우정은 곤란함을 느꼈다.

거대한 불길을 보고,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끊임없이 합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킬을 안 쓸 수도 없고.’

현재 그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생존을 위해선 청염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

문제는 그가 뿜어내는 불길이, 어두운 밤에는 눈에 너무 띈다는 것이었다.

“흐흐, 가볍게 1킬 더 챙겨볼까?”

거대한 도끼가 날아든다.

두 명을 죽인 1,072번이 어느새 다가와 그를 노리고 있다.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 둔 눈빛.

후웅-! 후웅-!

아슬아슬하게 피할 때마다 들리는 파공음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쉽게 죽어줄 것 같아?’

자세를 낮춘 안우정이, 이를 앙다문 채 1,072번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도끼날이 느껴진다.

“헛, 이놈이!”

그건 곧.

‘됐어!’

1,072번이 무방비 상태라는 뜻.

서걱!

고기 타는 냄새와 함께, 녀석의 머리가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허억, 허억.”

양손을 무릎에 댄 채, 거칠게 호흡하는 안우정.

하지만 쉴 시간이 없었다.

“상위 리그에 막 올라온 녀석치고는 제법인데? 지구 출신은 원래 다 이런가?”

전방에서 또 한 명의 플레이어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번호는 499번.

손에는 검과 방패가 들려있다.

주변에 제법 많은 플레이어들이 존재함에도, 녀석의 호흡은 무척 평온했다.

손쉽게 도륙하며 이곳까지 왔다는 뜻.

‘젠장.’

“미안하지만 더 크기 전에 싹을 밟아놔야겠어. 삐― 같은 녀석이 또 나오면 곤란하거든.”

그 말을 끝으로 499번이 안우정에게 달려들었다.

쉴 새 없이 싸우느라 지쳐 있는 상태였지만, 안우정은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살아남기 위해서.

채앵! 화륵!

방패를 앞세운 채 안우정을 밀어붙이는 499번.

‘크윽. 무슨 힘이······!’

그 평범한 대쉬에도 안우정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갔다.

스텟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상황.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쇄도하는 검과 방패를 피하는 것 뿐이었다.

‘내가 이렇게 나약했던가.’

안우정의 마음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을 거라 믿으며 언제나 최선을 다해 왔는데.

분명 상위 리그에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하, 생각보다 별것 아닌데?”

방패로 공간을 자르며,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붓던 499번이 이죽댔다.

그 모습을 본 안우정의 눈동자에서 독기가 철철 흘렀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순 없어.’

띠링!

[<스킬:염왕>이 활성화됩니다.]

[근력과 민첩 스텟이 +20% 상승합니다.]

안우정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최후의 스킬을 꺼내 들었다.

근력과 민첩 스텟 20% 상승.

마력 수치에 비례해서 불꽃 속성 데미지 최대 2배까지 증가.

대신에 체력 소모가 3배로 늘어난다.

‘죽더라도 너만큼은 길동무로 데려가주지.’

아직 경기가 시작된 지 2시간밖에 안 된 시점에서 사용하기엔, 너무 리스크가 큰 스킬.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 한몸을 불사르는 한이 있어도,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효과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띠링!

[<스킬:염왕> <스킬:화신> <스킬:화룡의 분노>에 깃든 불꽃의 기운이 하나로 합쳐집니다.]

[<팔찌:태양신의 진노>의 숨겨진 옵션 <연옥煉獄> 능력이 활성화됩니다.]

[<연옥煉獄>]

[불꽃에 심판의 힘이 깃듭니다.]

[한 번 붙은 불꽃은 대상의 모든 것을 태우기 전에는 꺼지지 않습니다.]

화륵! 화르륵!

‘이 섬을 통째로 없애주겠어.’

안우정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무, 무슨!”

“끄아아아악! 무, 물! 물!”

“으아아아아악!”

숲의 중심부가 화마에 휩싸였다.

자신에게 달려들던 499번, 주변에서 난전을 펼치전 91번, 248번 등등.

그 누구도 청염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그때였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저 멀리서, 강렬한 빛이 번쩍였다.

순간 깜깜한 숲속이 대낮처럼 보일 정도.

“레, 삐―이다!”

“젠장, 아직 3킬밖에 못 했는데!”

그리고 이어지는 뇌전의 폭풍.

그걸 본 플레이어들이, 안우정이 있는 곳으로 도망쳐 온다.

지옥의 겁화에 잠식된 숲의 중앙부에서.

‘렌······.’

안우정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 * *

밤이슬이 맺히며 풀잎 향이 가득한 숲속.

“씨발! 5경기 정도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잖······.”

창을 휘두를 때마다 서너 개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서걱!

몸속에서 뿜어져 나온 한 움큼의 피가 초록 잎을 가득 적셨다.

‘잘 하면 여기서도 피의 각성을 발동시킬 수 있겠는데?’

띠링!

[<피의 각성>이 1 포인트 상승합니다. (92/100)]

어느새 피의 각성 스텍이 92포인트까지 채워져 있었다.

악마 사냥이 아닌 플레이어들과의 전투.

게다가 맵도 제법 넓어서 중간에 스텍이 초기화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플레이어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모두들 숲의 중심부로 모이고 있는 모양.

‘이번엔 피의 강화가 각성됐으면 좋겠는데.’

지금까지 각성했던 능력은 피의 흡수와 섬전, 두 개뿐.

둘 다 내 예상을 크게 상회할 정도의 효과를 보여주었다.

만약 피의 강화가 발동된다면?

지금도 모든 스텟을 30%나 올려주는데,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이 상승하지 않을까?

‘어서 8킬을 더 채워야겠군.’

마침 주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제법 많았다.

모두들 내게서 멀어지고 있는 상태.

아마 벽력의 임팩트를 보고,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도망가 봤자야.’

멀어지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내게 존재하는 모든 특전들이 다 활성화되어 있는 상황.

내 민첩이 400을 넘어섰기 때문에, 저들은 절대 내 손길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한동안 중심부 쪽으로 내달리고 있을 때였다.

‘일단 한 명.’

300미터 전방에서, 등을 돌린 채 달아나고 있는 플레이어의 모습이 보였다.

번호는 277번.

“으으······ 제, 젠장!”

내가 뒤따라오고 있다는 걸 눈치챈 277번이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서걱!

민첩 스텟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 둘, 셋, 넷. 여기 있는 애들 다 잡으면 발동하겠군.’

맨 뒤 녀석을 처리한 나는, 그다음으로 도망가던 플레이어에게 따라붙었다.

그때부터 학살이 시작되었다.

서걱! 서걱! 서걱!

띠링!

[<피의 각성>이 1포인트 상승합니다. (100/100)]

[<피의 각성>이 발동합니다.]

[<피의 각성>이 <피의 강화>를 강화시켰습니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피의 각성> 능력의 효율이 100% 상승합니다.]

[<피의 강화> ― 생명체를 처치할 때마다 모든 스텟이 일시적으로 1% 상승한다. 3분 이내에 다른 생명체를 처치하지 못하면 스텟 상승이 초기화되며, 최대 60%까지 상승한다.]

‘좋았어.’

도주하던 플레이어들을 모조리 죽이자 등장한 알림창.

그걸 본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가 원했던 대로, 피의 강화가 각성되어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아졌어.’

대천사의 눈물에 들어있는 첫 번째 옵션.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유자에게 엄청난 행운이 찾아온다.

확실히 대천사의 눈물을 얻은 뒤로,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진짜로 효과가 있는 모양.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그나저나.

‘피의 강화 효율이 2배라.’

이미 30스텍을 꽉 채우며 피의 강화 특전이 발동된 상태.

‘끝까지 채우면 어떻게 되려나.’

그래서 무척 기대가 됐다.

60까지 다 채우면, 2차 특전이 풀릴 수도 있었으니까.

‘일단 30명을 더 죽여야겠군.’

나는 서둘러 주위를 살폈다.

3분이 지나기 전에 피의 강화 제물을 구해야만 했다.

그때였다.

꽈아아아아앙! 화륵! 화르륵!

‘청염.’

저 멀리서, 파란 불기둥이 솟구친다.

숲의 중심부가 단숨에 불길에 휩싸였다.

‘플레이어 룬이라고 그랬던가.’

게다가 주창범에게 재능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지.

순간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1회차엔 존재하지 않던 닉네임.

그럼에도 주창범을 제치고, 지구의 두 번째 네임드로 불리기 시작한 플레이어.

‘한번 보고 와야겠군.’

나는 불기둥이 만들어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삐―! 나와도 한 번 겨뤄보······ 끄악!”

중간에 몇몇 플레이어가 등장했지만, 그 누구도 내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도착하게 된.

‘이게 1티어급 스킬이라고?’

불에 잠긴 숲의 중심부.

띠링!

[<달의 메아리>가 외부 온도를 차단합니다.]

일렁이는 화염 속에서, 홀로 서 있는 누군가가 보인다.

보이는 건 눈동자와, 기다란 소태도 뿐.

‘악마의 눈.’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안우정]

[성향 : 불굴→질투(진행 중)]

[근력 : 141(+?)] [민첩 : 148(+?)] [체력 : 144(+?)]

[정신 : 101(+?)] [지력 : 56(+?)] [마력 : 150(+?)]

[각성 능력 : <냉철> <칠전팔기> <고급검술> <고급마나운용> <상급박투술> <중급치료술> <악마표식>]

[업적 특전 : 염왕炎王의 화신]

상태창을 본 나는 멍하니 멈춰 섰다.

내가 이름을 제대로 본 건지, 아니면 헛것을 보는 건지.

‘어······ 그, 그러니까······. 뭐, 뭐부터 해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갑자기 내 머리가 고장이 난 것 같다.

이다음에 해야 할 행동을 생각해야 하지만, 느껴지는 건 쿵쾅쿵쾅거리는 심장 박동과.

‘이, 이게······.’

설렘, 불안함, 기대감, 초조함, 감사함, 슬픔······.

뒷목을 엄습해 오는 다양한 감정들뿐.

그 속에서 나는.

“안······ 우정······?”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 178화. 영혼의 반쪽(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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