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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177화 (177/205)

< 177화. 영혼의 반쪽(2) >

“······.”

철컥!

시작 콜과 동시에 오연한 표정으로 창을 들어 올리는 쿠 훌린.

내가 상대했던 녀석 중, 처음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

‘이런 녀석과 싸워보고 싶었지.’

나와 비슷한 부류인 모양이었다.

어차피 서로가 검 끝을 겨눠야 하는 상황.

대화 같은 건 무의미했으니까.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쿠 훌린]

[성향 : 저돌]

[근력 : 312(+?)] [민첩 : 273(+?)] [체력 : 300(+?)]

[정신 : 136(+?)] [지력 : 51(+?)] [마력 : 291(+?)]

[각성 능력 : <감각 증폭> <오뢰신창五雷神槍> <마력 상쇄> <특급살기> <고급박투술> <기아스> <최상급치료술>]

[업적 특전 : 빛의 왕자]

‘대박인데?’

쿠 훌린의 스텟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상위 리그 최강자로 언급되던 플레이어답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만났던 상대 중, 유일하게 천세운과 비벼볼 수 있을 정도의 스텟이었다.

‘능력도 다양하네.’

내 눈길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건, 감각 증폭.

처음 보는 능력이었지만, 이름만으로도 어떤 류의 능력인지 알 수 있었다.

초감각과 비슷한 거겠지.

“흡!”

그때, 짧게 호흡을 끊어 쉰 쿠 훌린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콰지지직!

‘어?’

녀석의 몸에서 뇌전이 뿜어져 나오는 걸 본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챙! 콰직! 콰지직!

서로의 창이 교차하자, 스파크가 사방으로 터졌다.

보기 드물게, 쿠 훌린 역시 뇌전 속성의 스킬을 다루고 있었다.

마력 상쇄 덕분에 데미지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창을 잡고 있는 손이 저릿저릿했다.

‘이러니까 계속 비교됐던 거군.’

창을 사용하고, 뇌전 속성을 다루며, 성격이나 스타일도 비슷하다.

관객들 입장에선 나랑 쿠 훌린의 싸움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슷한 두 사람 중 누가 이기나 궁금했겠지.’

한 명은 상위 리그에서 군림중인 최강자.

그리고 또 한 명은 하위 리그 역대 최고라고 불리며 승급한 신입생이었으니까.

“흡! 흐읍! 흡!”

후웅! 후웅! 챙! 콰직! 콰지직!

짧은 기합을 내뱉으며 격렬하게 밀어붙이는 쿠 훌린.

탐색전 따윈 필요 없다는 듯이, 초반부터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뇌전의 데미지에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는 모습.

‘얘도 마력 상쇄를 가지고 있었지?’

스킬로 가지고 있는 나와 다르게, 쿠 훌린은 마력 상쇄를 각성 능력으로 가지고 있었다.

혼자서 마력을 상쇄하는 방법을 깨우쳤다는 뜻.

스킬처럼 엄청난 효율을 보여주진 못하겠지만, 슬롯 하나를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유용할 것이다.

챙! 콰직! 콰지직! 챙!

‘스텟의 우위로 밀어붙여야겠군.’

서로가 마력 상쇄를 가지고 있어, 데미지가 제대로 안 들어가는 상황.

나는 자세를 낮추며, 빠르게 대쉬할 준비를 했다.

팟! 파바밧!

그러자 민첩하게 반응하며 뒤로 빠져나가는 쿠 훌린.

그 모습에 내가 몸을 세우자, 녀석이 다시 치고 들어왔다.

감각이 좋다 보니, 녀석은 지금 내 근육 움직임을 읽고 한 박자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왠지 내 분신이랑 상대하는 것 같네.’

창술, 감각, 스킬, 거기다 구사하는 스타일까지.

하위 리그 성계 대항전에서 상대했던 내 분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녀석이 가지고 있다는 감각 증폭이 초감각보다 뛰어나진 않을 것이다.

쿠 훌린에게선 마력장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굳이 표현하자면 내 하위 호환이랄까.

챙! 콰지직!

“······.”

“······.”

쿠 훌린의 창이 뱀처럼 휘며 내 목을 노리고 날아든다.

그 공격을 가볍게 막아낸 나는, 역으로 녀석의 심장을 노리며 맞찔러 들어갔다.

채챙! 챙! 콰직!

‘제법이네.’

감각이 좋다 보니, 수비가 무척 훌륭하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한 박자 더 빠르게 움직인다는 건, 여러모로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흡! 흐읍!”

창을 짧게 쥔 채, 조금씩 거리를 좁히는 쿠 훌린.

‘어림없지.’

나 역시 창의 리치를 조절하며 맞불을 놓았다.

챙! 콰직! 파바밧!

서로의 무기가 부딪치는 쇳소리와 뇌전의 스파크가 터지는 소리.

“습, 후우.”

짧게 끊어 쉬는 숨소리, 그리고 흙바닥을 긁는 소리만이 커다란 경기장을 메웠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상대하기 힘들었겠는데.’

창술도 뛰어난 데다가, 보유하고 있는 능력들도 훌륭하다.

뇌전 속성 스킬을 보유하고 있어서 장기전도 힘들다.

게다가 감각이 좋아서, 상대의 강점과 약점 공략에 수월하기까지.

‘슬슬 끝내볼까.’

하지만 쿠 훌린의 불행은, 그 모든 게 내겐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것.

띠링!

[<스킬:뇌룡의 포효>가 <스킬:뇌신 강림>으로 각성합니다.]

뇌신 강림을 발동시킨 나는, 그때부터 전력을 다해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도망치게 놔둘 줄 알고?’

이상함을 감지한 쿠 훌린이 재빨리 뒤로 빠졌지만, 그것까지 감안해서 대쉬했던 것이기에 날 뿌리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전투의 양상이 달라졌다.

지금까진 쿠 훌린이 주로 공격하고, 나는 방어에만 집중했다면.

채애앵! 콰지지직! 챙! 콰지지지지직!

이젠 내가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붓고, 쿠 훌린은 수비를 견고히 하며 내 공격을 막기 바빠졌달까.

“······!”

서로의 역할만 바뀐 채, 똑같은 전투 양상이 펼쳐졌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평온했던 나와 달리 쿠 훌린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는 것.

채앵! 콰지직! 채앵! 챙!

창을 받아낼 때마다 녀석의 팔이 한 마디씩 꺾여나갔다.

‘상위 리그에 들어온 초창기에 상대했다면 곤란했겠지만.’

쿠 훌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챙! 콰지지직!

녀석의 호흡이 무척 거칠었다.

그리고.

‘이젠 내 하위 호환일 뿐이야.’

채애앵!

내 힘을 견디지 못한 녀석의 창이 경기장 한쪽으로 날아갔다.

제대로 마음먹고 싸우자, 단숨에 승패가 결정난 것이다.

‘잘 가라.’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서 있는 쿠 훌린.

서걱!

녀석의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띠링!

[4경기 <상위 리그 최강자> 결승전이 종료되었습니다.]

[‘렌’ 승리!]

[4경기는 지구에서 승리를 가져갑니다.]

[당신이 상위 리그의 최강자입니다.]

[축하합니다!]

‘드디어.’

나는 한동안 알림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당신이 상위 리그의 최강자입니다.

저 글귀가.

‘나쁘지 않군.’

오랫동안 내 마음속을 맴돌았다.

―승리, 승리, 승리! 그리고 또 승리! 그 누구도 질주를 막지 못한다!

―스킬빨? 스텟빨? 왜, 이젠 테크닉빨이라고 해 보시지? 모든 면에서 플레이어들을 압도한 렌.

―감히 얘기할 수 있다. 상위 리그 역사상 가장 완벽한 플레이어라고!

└이제야 논란이 종결됐네ㅋㅋㅋㅋㅋ. 쿠훌린무새 새끼들은 앞으로 커뮤니티에 글 남기지 마라 ㅋㅋㅋㅋ

└편안~ㅋㅋㅋㅋㅋ

└렌이랑 붙는데 쿠 훌린이 이긴다고 하는 애들은 그냥 지능적 안티인 거 아니냐?ㅋㅋㅋ 어떻게 렌을 안 고를 수가 있는 거지?ㅋㅋㅋㅋ

└예전에 라그나 로드브로크랑 싸울 때 누가 봐도 쿠 훌린이 지는 각이었는데, 오히려 라그나가 압살당해서 그럼 ㅋㅋㅋㅋ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객관적으로 실력 차이가 너무 심하잖아 ㅋㅋㅋㅋ 렌이 가지고 놀다가 끝낸 수준이던데?

└이제 더 이상 렌 vs 쿠 훌린 이딴 거 안보이겠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쿠 훌린 vs 몽연 님들 누구 보시나여?

└아 씨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만 좀 쳐 기어 나오라고 ㅋㅋㅋㅋㅋㅋ

띠링!

[지금부터 5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5경기 : 보물 쟁탈전(개인 PvP)]

[게임명 : 깃발 쟁탈전]

[맵 : 나블루스 화산섬(중)]

[관객 수 : 8,794,177명]

[알림!]

[앞선 경기들과 달리, 5경기엔 스킬 임팩트가 그대로 보여집니다!]

머리 위에 <7>이란 숫자가 쓰여있다.

근처를 둘러보니, 빽빽하게 솟아있는 나무들이 보였다.

지형은 산지.

경사가 제법 있고, 계절은 여름인지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산의 꼭대기엔 구름이 걸려 있다.

높이가 제법 있······.

‘뭐지?’

맵을 둘러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광경.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인지 나뭇가지가 어지러이 엉켜 있다.

흔적이 남기 쉬운 지역이라는 뜻.

‘익숙한 이름이다 했더니.’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린 나는 피식 웃었다.

[승리 조건 : 경기 종료 시점에 붉은 깃발을 소유한 자]

[붉은 깃발을 만지면 자동으로 머리 위에 표식이 남게 됩니다.]

[붉은 깃발의 소유자를 처치하면 자동으로 붉은 깃발의 표식이 옮겨지게 됩니다.]

[현재 생존자 수 : 1,103명]

[붉은 깃발 소지 플레이어 ― 없음]

[경기 종료까지 남은 시간 : 12:00:00]

[경기 시작 후 30분이 지날 때까지 붉은 깃발을 아무도 차지하지 않으면 랜덤으로 한 명의 플레이어에게 주어집니다.]

[3초 후 경기가 시작합니다.]

천 명 가까이 되는 플레이어들이 피를 쏟으며 죽었고.

‘오랜만이군.’

마지막에 빅터와 생사결을 펼쳤던 맵.

팀 투지에 들어오고서 처음으로 뛰었던 경기.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붉은 깃발전이 펼쳐졌던 곳.

나블루스 화산섬이었다.

[2초 후 경기가 시작합니다.]

붉은 깃발전이 열렸을 때와 비교해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1회차까지 통틀어, 내게 처음으로 퍼오블과 파오블을 안겨 주었던 경기.

그렇기에 나한텐 제법 의미 있는 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운이 좋은데?’

저 멀리, 지평선 끝으로 해가 지고 있다.

곧 있으면 밤이 찾아올 것이다.

[1초 후 경기가 시작합니다.]

‘이번 경기는 마음 놓고 플레이해도 되겠지.’

굳은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쭉 켰다.

우승에 대한 부담감, 거기다 MVP에 대한 걱정까지 내려놓은 상황.

아마, 이번 경기는 내가 처음으로 홀가분하게 치르는 경기가 될 것이다.

[경기 시작!]

‘좀 돌아다녀 볼까.’

비탈진 산길.

나는 섬의 외곽 방향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죽어도 다시 부활한다는 것.

그건 심리적으로 어마어마한 안정감을 선사했다.

게다가 꼭 이겨야 하는 경기도 아니고, 만약 승리가 필요하다면 마지막 순간 깃발을 쟁취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마치 산책을 나온 것처럼 여유롭게 걸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5분 정도를 돌아다녔을 때였다.

‘쯧, 벌써 만났네.’

어디선가 들려오는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300미터 정도 떨어진 나무 위에 누군가가 숨어 있었다.

활을 들고 있는 걸로 봐선 궁수인 모양이었다.

“······.”

때마침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궁수.

우리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죽이고 가야겠군.’

마음을 먹은 나는 창을 고쳐잡으며, 궁수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온달]

[성향 : 신뢰]

[근력 : 204(+?)] [민첩 : 219(+?)] [체력 : 198(+?)]

[정신 : 109(+?)] [지력 : 2(+?)] [마력 : 203(+?)]

[각성 능력 : <궁왕> <특급창술> <특급마나운용> <고급박투술> <고급추적술> <상급치료술>]

[업적 특전 : 졸본의 신성新星]

‘어?’

이게 누구야.

악마의 눈으로 상대를 확인한 나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반가운 이름이었다.

긴급 미션 당시 파티의 리더를 맡았으며, 고결한 수정의 정보를 공유해 줬고.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순박한 미소가 잘 어울렸던 플레이어, 온달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을 담아 마력을 끌어올렸다.

콰지지지지지지직!

흑막이 가리고 있어서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지만, 이번 경기에선 스킬의 임팩트는 가려지지 않는다고 했다.

창을 들고 있으면서 뇌전을 뿜어대는 모습을 보면 온달 또한 나를 알아볼 것이다.

뿌드드득―

그러나 내 예상과 다르게, 온달이 활시위를 끝까지 당겼다.

목표는 내가 있는 방향.

‘날 못 알아봤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현재 나는 뇌전만 끌어올렸을 뿐, 아무런 공격 의사가 없는 상태.

게다가 이 정도 정보라면 온달 또한 날 알아봤을 것이다.

그런데도 활을 겨눈다고?

핑-!

시위가 튕기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한 발의 화살.

하지만 내가 우려했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푹!

느릿느릿 날아오던 화살이 발치 언저리에 꽂힌 것이다.

‘반갑다고 인사하던 거였군.’

나는 피식 웃으며 등을 돌렸다.

인사 목적으로 쏜 화살이지만, 숨겨진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화살이 박힌 곳 이상으로 넘어오면 싸울 수밖에 없다는 뜻이겠지.’

이곳은 콜로세움의 아레나 내부.

서로 죽고 죽이는 곳이다.

제아무리 이벤트 전이라고 해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존재했다.

특히 친목 활동은 관객들이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만 한다.

‘최후의 순간까지 살아남는다면, 그때 다시 보자고.’

내 등 뒤쪽.

마력장을 통해, 온달도 등을 돌리는 게 느껴졌다.

띠링!

[보름달이 떴습니다.]

[<로브:달의 메아리>가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5% 상승합니다.]

[<목걸이:몽환의 달빛>이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15% 상승합니다.]

[달빛의 힘으로 인해 <몽환의 달빛> 능력이 활성화됩니다.]

[1분당 체력과 마력이 1%씩 회복됩니다.]

[<스킬:열반>이 활성화됩니다.]

[정신 스텟이 +30% 상승합니다.]

[정신 이상 기운 상쇄율 : 90%]

어느새 지평선 끝에 걸려 있던 태양이 사라지고, 나블루스 화산섬에 암흑이 내려앉았다.

머리 위로, 커다란 보름달이 나를 반겨 주었다.

‘정말 효과가 있나 본데?’

나는 왼쪽 귀에 걸린, 대천사의 눈물을 만지작거렸다.

왠지 모르게, 운이 좋아진 것 같았다.

< 177화. 영혼의 반쪽(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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