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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176화 (176/205)

< 176화. 영혼의 반쪽(1) >

불세출의 천재.

언제나 몽연에게 따라붙는 수식어였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우쳤고,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했다.

―이 아이는 무당의 미래가 될 것이다.

장문인, 장로님들, 심지어 사형제들까지.

모두들 몽연이 언젠가, 무당을 지키는 가장 날카로운 검이 될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 누구보다 성취가 빨랐기도 하고.

―강함을 좇지 말거라.

그런 모두의 기대 속에서, 몽연은 절대 자만하지 않았다.

언제나 사부님께서 내면의 성숙을 강조하셨기 때문.

사부님은 천애고아였던 자신을 거두어 길러주셨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어.’

때로는 아버지처럼, 힘들어 할 땐 형처럼, 그리고 외로움에 잠겼을 땐 친구처럼.

언제나 몽연을 진심으로 대했던 사부님의 가르침 덕분에, 그는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 예를 다했고, 지위의 고하와 상관없이 존중해 주었으며, 의와 협을 위해 움직였다.

―과연 무당의 기재로다!

―무량수불. 너무 이른 나이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저 아이보다 더 나은 이의 이름을 댈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내 지금이라도 당장 이 결정을 철회하도록 하지.

―······없습니다.

그 덕분에 몽연의 이름 곁엔 언제부터인가 한 가지 별호가 따라붙었다.

무당칠검武當七劍.

검의 조종祖宗, 무당파에서 가장 날카로운 일곱 개의 검에게 붙는 수식어.

그의 명성이 사해에 울려 퍼졌다.

‘무당의 이름에 먹칠을 해선 안 돼.’

그럴수록 몽연은 사문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더욱더 자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무당산 근처에서 마두가 출현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간 몽연.

그는 그곳에서 거대한 악과 조우하게 되었다.

―네가 무당칠검이라고 불리는 아이로구나.

마교의 교주 천세운.

그는 차원이 다른 고수였다.

고작 백여 합도 받아내지 못하고, 몽연이 패배한 것이다.

‘앞날이 걱정되는구나.’

검 끝이 목덜미를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도, 몽연은 무당의 안위를 걱정했다.

눈앞의 노룡老龍이 몸을 일으키면 강호에 파란波瀾이 불어닥칠 테니까.

정파 무림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인 무당.

그곳에 혈겁이 드리울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죽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로군. 아이야, 만약 내가 살려 준다면, 내 제자가 되겠느냐?

그럼에도 몽연은 기꺼이 죽음을 감내했다.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

그저, 무당파가 온전하길 바라는 수밖에.

[콜로세움의 챔피언이 되면 소원을 한 가지 이루어 드립니다.]

[콜로세움에 입장하시겠습니까?]

사후 세계의 전장, 콜로세움.

‘신기한 세상이네.’

그곳에 처음 발을 디딘 몽연은 감탄했다.

자연의 힘이 담긴 사술詐術을 사용하고, 무구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능력을 올려준다.

늑대와 호랑이, 토끼를 닮은 종족들이 사람말을 한다.

거기다 날개를 가진 상위 개체, 신神이라고 불리는 경외의 존재까지.

지금껏 몽연이 쌓아 올린 상식에서 벗어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사부님 곁으로 돌아가고 말겠어.’

그 낯선 환경에서도, 몽연은 꺾이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가 스승께 받은 은혜를 다 갚지 못했으니까.

다행히 그가 이곳에서 적응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같은 팀 안에, 그와 친분을 가진 무림인들이 제법 있었던 덕분이었다.

―무당칠검, 현정賢正 도인 아니시오?

현정은 몽연의 도호道號.

그들의 도움으로 빠르게 적응한 몽연은, 콜로세움 안에서도 금세 두각을 드러냈다.

[플레이어 ‘몽연’이 상위 리그로 승급하셨습니다!]

열두 개의 세상에 모인 그 누구도 그의 검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단숨에 상위 리그로 올라온 몽연.

초반에는 제법 애를 먹었지만, 이곳에서도 그의 활약은 달라지지 않았다.

―상위 리그 탑 랭커의 자리를 위협할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다. 어느 성계에서? 바로 무림에서!

―쿠 훌린, 라그나 로드브로크, 을지문덕. 세 사람의 닉네임 곁에 ‘몽연’을 추가해야 한다.

―참가한 모든 경기에서 보너스를 휩쓰는 몽연! 그의 질주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금세 상위 리그의 최강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참가하게 된 성계 대항전.

‘세상은 정말 넓구나.’

1경기에서 맞부딪히게 된 쿠 훌린은 정말 강했다.

상위 리그 최강자 중 한 명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 정도.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몽연은 쿠 흘린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크게 밀리지 않으며 싸웠고, 마지막엔 양패구상으로 끝나게 되었으니까.

비록 1경기의 승리를 챙기진 못했지만, 몽연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무림의 랭커는 세 명.

‘주소월 님과 예천화 님이 계시니까 충분히 할 수 있어.’

남은 네 경기에서 승리를 챙긴다면 무림을 우승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맞이하게 된 2차전.

콰지지지지지지직!

꽈아아아아앙! 꽈아아아아앙! 꽈아아아아앙!

‘뭐······ 야······?’

몽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고, 한줄기 섬광이 몽연의 눈을 어지럽힌다.

‘저게······ 상위 플레이어라고······?’

창을 휘두를 때마다 악마들이 녹아내린다.

그 모습은 지상에 강림한 뇌공雷公을 연상케 했다.

플레이어 렌.

요 근래 상위 리그에서 명성이 울려 퍼지던 신흥 강자.

실제로 보게 된 그의 무력은, 몽연이 감히 범접할 수 없다고 느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정말 대단해.’

자신이 절대 보일 수 없는 위용.

아마 단 한 번의 공격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할 것이다.

사방을 휩쓰는 뇌전의 칼날에, 단숨에 도륙당하겠지.

몽연의 마음에 허탈함이 피어올랐다.

―1경기와 2경기를 승리로 가져간 렌. “아직 우승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지금부턴 내 실력으로 도전하겠다.”

‘어?’

2경기를 마치고 나왔을 때였다.

생각해 보니, 플레이어 렌은 성계 대항전 특전을 받은 상태.

‘그랬구나.’

그제야 그 압도적인 무위가 이해됐다.

감히 범접할 수 없게 느껴졌던 그 실력이, 사실은 특전 덕분이었다는 걸 알게 된 몽연은 안도했다.

자신이 약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이번 경기에서 보이는 게 진짜 실력이겠지.’

그리고 시작된 3경기.

꽈앙! 꽈앙! 꽈앙! 꽈앙!

―무, 무슨!

―말도 안 돼!

벼락이 이동하는 느낌이었다.

등줄기가 오싹했다.

전장이 강렬한 빛에 잠기고, 온 세상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

눈으로도 움직임을 제대로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

‘이, 이럴 수가.’

지금 이 순간, 경쟁해야 하는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몽연은 경외심이 피어올랐다.

우리와는 격이 다른 플레이어였다.

절대 이길 수 없다.

몽연의 마음이 완벽하게 꺾여 나갔다.

―결국 세 경기를 내리 쓸어가며, 지구가 우승을 확정짓다.

―압도壓倒. 그 단어 이외에는 생각나지 않던 경기.

그리고 맞이하게 된, 4경기.

[4경기 9라운드]

[생존자 : 5명(부전승 1명)]

[렌 vs 몽연]

몽연은 자신이 상대하게 된 플레이어의 닉네임을 보고 눈을 번쩍 떴다.

‘렌······.’

계속 올라가면 끝끝내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상대.

하지만 몽연은 절망하지 않았다.

이길 생각은 버린다.

지더라도 저 대단한 고수에게 한 수 배우고 싶다.

그걸 통해 부족한 걸 채우고 싶다.

이번 싸움을 통해 무엇이라도 얻어내고 말 것이다.

“몽연이라고 하오. 한 수 부탁드리겠소.”

그런 각오로 검을 들어 올렸다.

스르릉―

플레이어 렌이 창 대신 검을 꺼내 들었지만, 몽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저런 강함을 손에 쥔 자가 멍청할 리 없으니까.

분명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기에 검을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전투.

챙! 콰지직! 챙! 콰직!

‘뭐지?’

렌과 격돌하게 된 몽연은 처음부터 최선을 다했다.

유능제강柔能制剛.

무당의 검이 가진 극치.

그의 검은 한 줄기 바람 같고, 도도히 흐르는 물 같다.

가지고 있는 다섯 개의 기술도 모두 부드러움을 살려줄 수 있는 것뿐.

그래서 렌의 무력을 어느 정도 흘려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전 경기랑 같은 플레이어 맞아?’

하지만 뜻밖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검이 부딪히자, 렌에게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것이다.

이전 경기에서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다대일에 특화되어 있던 것인가?’

몽연은 렌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챙! 콰지직! 챙! 콰직!

‘그럼 얘기가 달라지지.’

이 정도라면 충분히 대등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몽연의 검이 더욱 빠르고, 부드러워졌다.

그때였다.

챙! 콰지직! 챙! 콰직!

‘어······?’

렌의 눈빛이 달라지고, 분위기가 순식간에 급변했다.

순간 뒷목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방금 전까지 쉴 새 없이 울리던 쇳소리가.

“······!”

들리지 않았다.

몽연과 렌, 둘 다 격렬하게 검을 휘두르고 있지만, 검 끝에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이게······ 가능하다고?’

렌 역시, 자신의 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몽연은 두 눈을 의심했다.

상대의 공격을 흘려낸다는 건 기교만으론 절대 불가능했으니까.

그게 가능했으면 검 좀 쓴다는 사람들은 전부 다 무당의 검을 터득했을 것이다.

‘말도 안 돼.’

이건 기교가 아닌 감각의 문제였다.

검의 속도, 무게 중심, 향하는 방향 등.

그 모든 걸 감안한 상태에서, 완벽한 타이밍에 휘둘러야 한다.

어설프게 따라 하려 했다간 상대의 검에 맞아 죽기 딱 좋았다.

그런데 그걸.

후웅― 후웅― 후웅―

렌이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다.

‘하······.’

격렬하게 싸우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몽연이 허탈하게 웃었다.

천재.

하늘 위의 하늘.

그런 수식어는 자신이 아닌, 이런 사람에게 붙어야 하는 말이었다.

서걱!

붉은 피가 허공에 흩뿌려진다.

왼쪽 어깨가 불에 덴 듯 화끈했다.

렌의 재능에 감탄하는 사이, 평정심이 흐트러진 것이다.

서걱! 서걱!

그때부터 몽연의 몸에 생기는 상처가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아예 상대가 안 되는 수준이었어.’

렌의 주무기는 창.

거기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찍어 누르는 스타일을 주로 구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싸움은, 몽연에게 완벽한 패배나 마찬가지였다.

‘많은 걸 배웠다.’

몽연은 깔끔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서걱!

그의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와 미친;; 이걸 이긴다고?

└중간에 검 부딪히는 소리 안 들릴 때부터 소름 돋았음 ㅁㅊ

└1경기랑 2경기까지만 해도 특전빨인줄 알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이가 없네ㅋㅋㅋㅋㅋㅋ

└3경기까지도 사실 스킬빨이라고 봐도 무방했음 ㅎ;;

└까도 까도 뭐가 계속 나오는 느낌ㅋㅋㅋ 진짜 상위 리그 경기 보면서 감탄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진짜 대박이네 ㅋㅋㅋㅋㅋ

└스킬빨, 템빨 제외하고 순수 기량으로 압살 ㄷㄷ 저런 애들이 보통 롱런하지ㅎ 어서 고위 리그 ㄱㄱ

└심지어 주무기도 아님 ㅋㅋㅋ 렌이 저런 스타일 구사할 줄 안다는 것도 처음 알았음; 강했다가 부드러웠다가~

└상식 외의 괴물이네 진짜ㅋㅋㅋㅋ 그냥 고위 리그로 올려라ㅋ 저런 애들은 여기서 노는 게 오히려 손해임ㅅㅂ

* * *

‘후, 쉽지 않네.’

목이 분리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몽연.

그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의 테크닉이 너무 뛰어났다.

‘흘리는 스킬도 가지고 있었지.’

몽연의 검에는 내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움직임이 존재했다.

아마 보정을 받은 거겠지.

그럼에도 내가 이길 수 있었던 건 초감각과 스텟, 그동안의 경험 덕분이었다.

‘전투가 더 길어졌으면 위험했을지도.’

중간에 그의 검술이 흔들리지만 않았다면, 아마 싸움이 더 길어졌을 것이다.

그랬으면 꼴사납게 창을 꺼내야 할 수도 있었고.

‘이제 3명 남았군.’

앞으로 두 경기.

이제 준결승, 그리고 결승만 남은 상황.

띠링!

[4경기 10라운드 부전승 대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플레이어 ‘쿠 훌린’ vs 플레이어 ‘을지문덕’]

[두 플레이어 중 승자와 결승전을 치르게 됩니다.]

‘또 부전승이군.’

뭐랄까, 이번에는 내게 일부러 부전승을 줬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미 상위 리그 최강자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상황.

쿠 훌린과 을지문덕 중에서 이긴 상대와 내가 결승전에서 맞부딪히는 게 모양새가 좋을 것이다.

‘누가 이길까.’

사실, 내가 원하는 결승전 상대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1분여 후.

띠링!

[잠시 후 11라운드가 시작됩니다. 준비하십시오.]

다행히도 미카엘은 나를 오래 내버려 두지 않았다.

포근한 빛이 내 몸을 감쌌다.

띠링!

[4경기 11라운드]

[생존자 : 2명]

[맵 : 명예의 전장(소)]

[렌 vs 쿠 훌린]

[3초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직경 1킬로미터 정도의 원형 투기장.

그 너머로 거대한 관중석이 만들어져 있다.

높이가 50미터를 넘을 정도.

굳이 비교하자면, 이탈리아에 있는 고대 투기장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크기는 몇십 배 더 거대했지만.

‘저들이······ 관객인가?’

관중석에는 엄청난 숫자의 인형人形이 빼곡하게 앉아있다.

등 뒤에선 후광이 흘러나오고, 모습이 흐릿흐릿하게 보인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과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 플레이어가 날 노려보고 있었다.

[2초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연출이 제법 뛰어난데.’

그동안은 관객이 보이지 않기에, 그냥 의미 없이 죽고 죽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게 직관적으로 느껴지다 보니, 내가 저들 앞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과연 결승전답다고나 할까.

[1초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드디어 만났군.’

100미터 앞, 하얀 장막에 둘러싸인 플레이어를 본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쓴, 무척 강인한 인상의 사내.

부리부리한 눈을 뜬 채, 창을 들고 있다.

상위 리그에 올라왔을 때부터 나와 비교되던 플레이어.

1회차에도 고위 리그까지 무난히 버텼던 강자.

상위 리그라는 시험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건너야 할 존재.

‘쿠 훌린.’

[경기 시작!]

시작 콜과 동시에, 나는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내 들었다.

‘시작해 볼까.’

상위 리그라는 커다란 시험의 피날레를 장식할 때였다.

< 176화. 영혼의 반쪽(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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