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증명의 서(6) >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한줄기 벼락이 쉴 새 없이 이동했다.
꽝! 콰지지지직! 꽝! 콰지지직!
빛이 번쩍일 때마다 전기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긴다.
간간이 터지는 굉음에, 고막이 얼얼할 정도였다.
“헉, 미친!”
“끄아아아악!”
벼락이 지나간 자리엔 악마들의 시체만이 가득했다.
‘어떻게······.’
그 광경을 바라보던 안우정은 경악했다.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 거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섰다.
“말도 안 돼!”
“특전을 반납했는데도 저 정도라고?”
새까만 막에 가려져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는다.
알 수 있는 건, 머리 위에 쓰여진 <1>이라는 숫자와 창을 쓴다는 것뿐.
말 그대로 완전한 익명이 보장된 경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1번이 누구인지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안우정과 같은 지구 출신.
하위 리그에서 최강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젠장, 젠장!”
“악시덴 님! 어, 어떻게 해야······.”
성계 대항전을 혼자 힘으로 우승시켰고.
“저런 스킬을 무한정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모두 상관 말고 계속 공격하라!”
“이대로 계속 공격하는 건 피해만 늘어날 뿐입니다!”
지구 출신 중에서 최초로 상위 리그에 오른 인물.
“구현된 새끼들이 지랄을 하네!”
“씨발 새끼들. 죽어!”
그뿐만이 아니라, 상위 리그에 올라와서 참가했던 모든 경기에서 극찬받았고.
꽝! 콰지지지직! 꽝! 콰지지지지직!
고작 2년 만에 랭커 한 자리를 차지한 플레이어.
‘렌······!’
하지만 안우정은 지금의 평가도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랭커의 반열에 묶어두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이미 상위 리그에서 보일 수 있는 실력의 범주를 넘어섰어.’
고위 리그.
플레이어 렌은 어느새, 안우정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멀어져 있었다.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도대체 뭐가 달랐던 거지?’
그래서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팀의 주인, 루디악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덕분에, 남부럽지 않을 정도의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매 경기에서 각종 보너스를 차지했으며, 플레잉 코치 시스템을 통해 포인트를 몰아받아서 스텟도 꽤 높다.
‘왜 너는 그 자리에 있고······.’
아이템 또한 마찬가지.
자신은 태양신의 진노라는 신화 등급의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아이템만 비교했을 땐, 안우정이 렌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왜 난 오를 수 없는 건데?’
안우정이 자신의 애검, 레바테인을 꾸욱 쥐었다.
노력?
노력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젠장······.’
무척 참담했다.
더 이상 뒤쫓는 게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나도······ 나도 노력했다고······!’
안우정의 몸에서 푸른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화륵! 화르르륵! 쏴아아아아아아―
“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어어어!”
청염에 닿은 악마들의 몸이 녹아내렸다.
‘태양만 떠 있었더라면.’
옅은 달빛이 지상에 내려앉았다.
하필 밤이라서 <태양신의 진노>에 딸린 옵션 대부분이 잠겨 있는 상황.
만약 옵션이 모두 활성화되어 있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다.
꽝! 콰지지지직! 꽝! 콰지지지직!
“씨발! 고작 한 놈 때문에 열한 성계가 아무것도 못 하다니!”
그래봤자 렌과 같은 위용을 보이지 못했겠지만.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제발 좀 닥치라고!’
안우정은 태양신의 진노가 속삭이는 말에 신경질을 냈다.
현재 그는 무척 짜증 나 있었다.
코드 제로 경기에선 악마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실제로 상위 플레이어들을 상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 상황.
렌뿐만 아니라, 다른 랭커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무척 불쾌했다.
‘난 약하지 않아.’
83번이 부채를 휘두르자, 섬뜩한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951번의 검이 춤을 출 때마다, 악마 서너 명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637번이 창을 휘두르며, 무자비하게 악마들을 도륙했다.
그 모든 것들이.
‘난······.’
질투가 났다.
‘약하지 않아.’
화르르르르르르르륵!
안우정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청염이 뿜어져 나왔다.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 * *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꽝! 콰지지지지직!
‘후우.’
한동안 악마들을 도륙하는 것에 집중하던 나는, 한숨 돌릴 겸 주변을 둘러보았다.
“낄낄! 광대 새끼들이 발악을 하는 구나!”
여전히 악마들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상황.
‘제법 많이 죽었네.’
어느새 살아남은 플레이어의 숫자가 절반 가까이 줄어 있었다.
‘잠깐 쉬어야겠어.’
섬전 스킬을 사용해 플레이어들 사이로 스며든 나는, 인벤토리에서 마력 회복 물약을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남은 마력은 71%.
이 물약을 마시면 적어도 5% 정도는 회복이 될 것이다.
‘확실히 몽환의 달빛이랑 거래하길 잘했어.’
생각 외로 쓸모가 많은 아이템이었다.
체력과 마력이 1분에 1%씩 회복되는 데다가, 스킬 추가 슬롯도 존재하고, 보름달에 한해서 스텟을 15%나 올려준다.
물론 달이 떠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긴 하지만.
[킬 수 순위]
[1위. <1> ― 977킬]
[2위. <17> ― 701킬]
[3위. <196> ― 684킬]
[4위. <444> ― 671킬]
[5위. <1,101> ― 659킬]
[6위. <99> ― 638킬]
‘이걸로 지구 우승은 확정이네.’
킬 수를 체크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처럼만 계속 흘러가면, 3경기도 결국 지구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아직 안심하긴 일러.’
2위와의 차이가 300킬 가까이 벌어졌다.
덕분에 1위를 뺏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콜로세움에선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예상외의 상황이 벌어져, 갑자기 내가 죽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나가리지.’
이번 경기는 시간제한이 없는 미션.
죽기 직전까지 사냥만 하다가 끝나니까, 이론적으로는 1만킬 이상 차이가 벌어졌어도 뒤집힐 가능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그게 가능한지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결국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다시 시작해 볼까.’
정신 없이 창을 휘두르느라 뻐근해진 어깨를 돌린 나는, 격전이 펼쳐지는 곳으로 향했다.
띠링!
[<섬전>을 사용합니다.]
꽈앙!
그리고는 악마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한 뒤, 뇌전을 뿌리며 악마들을 도륙했다.
멈춰 있던 킬 수가 빠르게 상승했다.
현재 남은 체력은 93%.
뇌신 강림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체력 소모가 10배나 되는데도, 거의 풀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체력 소모보다 사냥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는 뜻.
띠링!
[정신 스텟이 1 하락합니다.]
‘쯧, 애매한데.’
그래서 고민이 됐다.
미카엘에게 성계 대항전이 끝나자마자 스킬 한 개 업그레이드를 받기로 한 상황.
원래는 주저 없이 뇌신을 플래티넘 등급으로 올리려고 했다.
다이아몬드 등급의 스킬을 가질 기회였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생각보다 피의 각성이 너무 좋아.’
피의 흡수, 피의 강화, 피의 회복, 섬전, 벽력 등등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중 뭐가 됐든, 각성하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효율을 보일 것이다.
게다가 블라디미르 가면이 없으면 폭뢰를 쓰기가 쉽지 않기도 하고.
‘한번 고민해 봐야겠는데?’
폭뢰는 뇌정, 뇌신 강림, 천뢰십보를 활성화시키고, 아세리안이 선물해 준 벽력섬전이란 창까지 들고 있어야 발동한다.
뇌정으로 업그레이드시켜도, 뇌신 강림으로 인해 소모될 체력을 감당해내지 못하면 폭뢰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
‘가면 없이 뇌신 강림의 체력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명경지수를 강화하는 건 너무 아까운데.’
추가 스킬 슬롯은 밤에만 활성화된다.
결국 낮에는 피의 각성을 사용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가면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경기가 끝나고 실제 효율을 계산해봐야겠군.’
아무래도 이번 경기가 끝나고 대기실에서 생각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그때였다.
띠링!
[<피의 각성>이 1 포인트 상승합니다. (1,000/1,000)]
[2차 <피의 각성>이 발동합니다.]
‘이게 뭐지?’
눈앞에 뜬 알림창에 순간 당황했다.
2차 피의 각성? 이런 게 있었나?
‘아!’
순간 뇌리를 무언가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코드 제로 경기에서 이성을 잃었을 때, 마치 수증기가 잔뜩 낀 유리창 너머로 본 것만 같은 희미한 기억이 있었다.
‘1천 킬을 추가로 달성하면 2차 각성이 열리는 거였군.’
어쩐지 경기가 끝나고 스텟이 너무 많이 올라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2차 각성이 열리면서 효율이 더 상승했던 모양이었다.
띠링!
[2차 <피의 각성>이 <섬전>을 강화시켰습니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섬전> 능력의 효과가 1,000% 증가합니다.]
[<섬전> 능력의 쿨 타임이 0.6초로 줄어듭니다.]
‘뭐?’
눈을 번쩍 떴다.
0.6초?
이건 그냥······.
‘계속 순간 이동하면서 싸우게 해준다는 거잖아?’
만약 상대방이 0.6초마다 순간 이동을 하면······.
‘개사긴데?’
그런 생각을 하며, 무한 순간 이동을 사용해 보려고 할 때였다.
‘윽!’
싸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내 몸에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살기에 의아해하는 플레이어들.
그리고 놀라서 뒷걸음질 치는 악마들.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순간 내 시야가 줌 인이 된 것처럼 한곳에 쏠렸다.
두근― 두근―
목동맥의 작은 울림, 격전을 펼치느라 흘리고 있는 피, 무기 사이사이에 껴 있는 살점 조각까지.
‘아름다워.’
죽이고 싶다.
녀석들이 뿌리는 달콤한 피에 취하고 싶다.
‘씨발.’
그런 생각들 때문에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잔뜩 분비된 도파민에 뇌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띠링!
[정신 스텟이 1 하락합니다.]
[정신 스텟이 1 하락합니다.]
[정신 스텟이 1 하락······.]
‘침착하자.’
“스읍, 후우. 스읍, 후우.”
나는 서둘러 심호흡했다.
산소가 온몸으로 퍼져나가자, 조금이나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괜찮아.’
약간 혼미하긴 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마음을 다잡자, 정신 스텟 하락이 뚝- 하고 멈췄다.
[정신 이상 기운 상쇄율 : 90%]
‘부작용이 이 정도 수준이었을 줄이야.’
나는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현재 내 정신 스텟은 253포인트.
역천자와 최강의 성계 30%, 피의 강화 30%, 달의 메아리와 몽환의 달빛이 20%, 열반 스킬이 30%, 대천사의 눈물이 40%를 올려준다.
정신 스텟만 놓고 봤을 때는 어지간한 고위 플레이어들 못지않았다.
‘부작용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는데.’
게다가 지금은 열반 스킬까지 활성화 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정도 수준이라면.
‘열반 없이는 사용할 수가 없어.’
지금도 겨우 평정심을 유지 중인 상황.
명경지수였다면 그냥 이성을 잃고 날뛰었을 것이다.
정신력이 지금보다 더 높아진다고 해도 제어가 될 것 같진 않고.
‘후우.’
가볍게 목을 돌렸다.
그리고는 어깨, 가슴, 등, 허벅지, 엉덩이 순으로 살짝살짝 몸을 풀었다.
몸 상태는 이상 없음.
“스읍, 후우. 스읍, 후우.”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정신적으로도 제어 가능.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섬전.’
꽈앙!
2차 피의 각성 효과를 체크해 볼 때였다.
“······!”
서걱! 서걱! 서걱!
꽈앙!
서걱! 서걱! 서걱!
‘미친.’
정신이 혼미했다.
‘너무 빨라.’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장면이 휙휙 변한다.
내 의지대로 순간 이동을 하고 있음에도, 움직임을 제어하기가 어려웠다.
“무, 무슨!”
“말도 안 돼!”
장면이 바뀔 때마다 경악하는 악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사자인 나도 당황할 정도의 순간 이동.
그런 내 공격을 악마들이 대응할 수 있는 확률은.
“으으······.”
서걱! 서걱! 서걱!
전혀 없었다.
그때부터 대학살이 펼쳐졌다.
[<섬전>을 사용합니다.]
[<섬전>을 사용합니다.]
[<섬전>을 사용합니다.]
[<섬전>을 사용······.]
‘익숙해지니까 나쁘지 않은데?’
킬 수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씨발! 저게 말이 돼?”
“하······.”
“저런 녀석이 왜 아직도 상위 리그에 있는 거지?”
내 움직임을 눈에 담기 위해,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던 플레이어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띠링!
[<섬전>을 사용합니다.]
꽈앙! 콰지지지지직!
전장이 빛으로 물들었다.
< 172화. 증명의 서(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