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168화 (168/205)

< 168화. 증명의 서(2) >

꽈아아아아아앙!

방패를 내밀어, 날아드는 마탄魔彈을 막은 나는 곧장 뒤로 빠져나갔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군.’

루에타 요새, 그리고 록탄 성.

두 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번 아타신 거점의 공성전도 비슷하게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오산.

‘여긴 진짜로 방어를 목적으로 만든 구조물이었어.’

성城이란 건, 적의 공격을 보다 원활하게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건물들의 총집합체.

루에타 요새나, 록탄 성은 마성석을 지키기 위한 갑옷 같은 느낌이었다면, 아타신 거점은 정말로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성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곤란한데.’

방패 뒤에 몸을 숨긴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요새들과 달리, 하늘을 덮고 있는 결계가 없어서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방어 요새 개념의 공성전은 모든 생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인 상황.

왜 공성전을 진행하려면 최소 세 배 이상의 전력이 필요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슈우우우욱! 빠아악!

“끄아아아악!”

내 곁에 있던 플레이어 하나가 발리스타의 화살에 맞아, 살점이 통째로 날아갔다.

대포에 맞았다고 봐도 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

‘침착하자.’

바닥을 박찬 나는 화살의 사정거리 뒤로 후퇴했다.

일단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

현재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저 높은 성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

적들은 성벽에 숨어 마음껏 공격을 퍼붓고, 우리는 막기 급급하다.

이대로 가다간 피해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성벽을 넘을 방법을 찾아야 해.’

꽈과과과과과과과과광!

“퉤, 퉤! 씨발, 화살도 피해야 하는데 먼지까지 지랄이네, 지랄이야!”

아군 마법사들의 폭격이 성문을 두들기자,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성문은 아직까지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공헌도 순위]

[1위. ‘탐리엘’ 14,700점]

[2위. ‘졸본’ 12,900점]

[3위. ‘웨스테로스’ 11,100점]

[4위. ‘하이퍼보리아’ 10,000점]

[5위. ‘발리노르’ 9,600점]

[현재 생존 플레이어 수 : 897명]

“젠장! 저 새끼들은 성벽을 도대체 어떻게 올라간 거지?”

“하급 악마들뿐이라 올라가기만 하면 공헌도 꿀 빨 수 있는데!”

성벽 위를 살펴보니, 몇몇 플레이어들이 하급 악마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점프나 이동 관련 스킬을 가지고 있는 일부 플레이어가 성벽 위로 오르는 데 성공한 모양.

꽝! 꽈광! 꽝꽈과광!

후드드드득―

중간중간 아군 마법사의 마법이 성벽 위로 흩뿌려졌다.

‘어?’

순간 나는 눈을 치켜떴다.

생채기도 남지 않은 성문과 달리, 마법에 맞은 성벽 곳곳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저기라면.’

마기 포탄을 피하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나는 마법이 떨어지는 곳을 주시했다.

성벽 위로는 계속해서 마법이 떨어지고 있었다.

성문 대신, 하급 악마들을 죽여서 공헌도를 얻으려는 거겠지.

‘하급 악마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

서둘러 성벽 위를 스캔했다.

내가 마법사라면 한 번에 많이 죽일 수 있는 곳을 노릴 테니까.

그곳에 집중적으로 마법이 떨어지면, 파고들 틈이 보일 것이다.

현재 하급 악마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은.

‘저쪽이군.’

꽈아아아아아앙!

“이런 미친!”

“발리스타에 이젠 투석기까지 쓴다고?”

“성벽만 넘어가면 다 족쳐주겠어!”

투석기가 쏜 바위를 피한 나는 성문의 왼쪽을 향해 내달렸다.

악마들의 공격에 분노한 주변 플레이어들이 눈에 불을 켠 채 나를 앞질러 갔다.

‘다들 공성전 경험이 많나 보네.’

전체적인 수준이 높다 보니, 지금 상황에서 어디를 노려야 하는지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꽈아아앙!

마탄에 맞은 한 플레이어의 상반신이 통째로 사라졌다.

적들은 성벽에 막혀 무방비 상태에 놓인 플레이어들에게 마음껏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푹! 푹! 푹! 푹! 푹! 푹! 푹!

곁에 있던 한 플레이어가 악마들이 쏜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그때였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앙!

날아온 마법 세 방에 성벽을 쌓은 벽돌이 무더기로 무너져 내렸다.

‘나이스 타이밍.’

“성벽이 무너졌다!”

“다 뒈졌어, 이 개 같은 악마 새끼들!”

그러자 성문에 막혀 기회를 노리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갔다.

“못 들어오게 막아!”

“모두 이곳을 지원하라!”

침투하는 플레이어들과, 못 들어오게 막는 하급 악마들.

순식간에 난전이 펼쳐졌다.

‘생각보다 너무 조금 죽었는데?’

좁은 입구 탓에, 앞에서 뚫어주길 기다리게 된 나는 주변을 살펴보며 감탄했다.

일방적인 공세를 당한 상황임에도, 생존한 플레이어의 숫자가 무척 많았다.

“씨발, 비켜! 내가 먼저 들어갈 거야!”

“밀지 마! 밀지 말라고!”

“빨리빨리 안 뚫고 뭐 하고 있소!”

한 번에 엄청난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몰리며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나는 이리저리 떠밀리는 와중에도 주변 전황을 살폈다.

‘시가전까지도 염두에 둬야겠군.’

내부에 가득한 건물들.

가운데 우뚝 솟은 첨탑.

성벽 위에선 플레이어들과 악마들이 뒤엉켜 정신없이 싸우고 있다.

성벽 너머엔 하급 악마들이 득실거렸다.

‘중급은 없네.’

다행히 날개가 달린 악마는 보이지 않았다.

“뚫었다! 얼른 들어가! 얼른!”

“이 빌어먹을 새끼들. 목 닦고 기다려라, 반격 시작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시작해 볼까.’

띠링!

[<스킬:뇌정>을 해제합니다.]

[<스킬:천뢰십보>를 해제합니다.]

무너진 성벽의 틈을 통해 아타신 거점에 들어온 나는 가장 먼저 뇌정과 천뢰십보 스킬부터 껐다.

‘내가 렌이라는 걸 최대한 숨겨야 해.’

뇌전雷電은 내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스킬.

누군가가 나를 알아볼 수도 있었다.

이런 난전 상황에서,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누군가가 등을 노리면 치명적일 테니까.

자칫 잘못하면 팀킬이 들어올 수도 있어서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어차피 성벽을 수비하고 있는 적들은 하급 악마뿐.

뇌전이 없어도 충분할 것이다.

“죽어라, 천계의 개!”

달려드는 악마의 공격을 방패로 막은 후, 검을 찔러넣은 나는 곧장 적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마기 포탑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적들과 뒤섞여 있어야만 했다.

‘방패가 난전에선 깡패긴 하네.’

띠링!

[<피의 각성>이 1포인트 상승합니다. (30/100)]

[<피의 강화> 능력으로 모든 스텟이 1% 상승합니다. (30/30)]

[<피의 강화>로 상승한 스텟이 30분간 유지됩니다.]

적의 공격을 방패로 막는다.

그리고 빈틈을 향해 검을 찌른다.

이 간결한 행동만으로도 하급 악마들은 픽픽 쓰러져 나갔다.

푹! 푹! 푹!

“끄윽!”

내 일격을 막아내는 녀석이 없을 정도.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적들을 학살하던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너무 거슬려.’

어느새 피의 각성 스택이 92포인트까지 쌓인 상황.

열반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라서, 피의 각성은 발동시키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뒤로 빠져서, 3분을 버텨 스텍을 초기화해야만 한다.

띠링!

[<1,004>가 <마기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죽어! 죽어!”

플레이어들 사이로 스며든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급 악마들뿐이라서 그런지, 전황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이벤트전이긴 한가 보네.’

저 멀리, 첨탑 위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급 악마들이 보였다.

녀석들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마 1페이즈, 2페이즈 이런 식으로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 거겠지.

‘안 그러면 공략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야.’

중간중간 중급 악마 한 마리씩만 껴 있어도 이런 학살 장면은 연출될 수가 없었다.

약자들만 모아놓고 싸우는 것과, 소수의 강자가 섞여 있는 건 차원이 달랐으니까.

아니, 오히려 플레이어들이 밀렸을지도.

띠링!

[3분이 지나, 피의 각성 포인트가 초기화됩니다.]

눈앞에 뜬 알림창을 본 나는 다시 악마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젠장! 내가 거의 다 죽이고 있었는데!”

“킬딸 하지 마!”

그리고는 몰려드는 악마들을 죽이며 공헌도를 쌓아나갔다.

└와;; 진짜 박진감 개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로운 상위 게임 메이커가 일을 잘하는데? 센스가 있음 ㅋㅋㅋㅋ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공성전 보는 느낌임 ㅋㅋㅋㅋ

└뭔 소리냐? 원래 아타신 거점에 다 있는 것들인데ㅋㅋㅋ

└그걸 몰라서 물음? 아타신 거점 실제로 옮겨오면 쟤네 10초 컷인데 밸런스 조절을 잘했다는 뜻이잖아 ㅡㅡ

└지금 성벽 위에서 학살하고 다니는 97번 누구냐? 난 몽연 아니면 을지문덕인 거 같음 ㄷㄷ

└지구 때문에 순위 예측하기가 까다롭네; 다른 곳은 그냥 총 포인트만 계산하면 되는데 ㅅㅂ

└지구 공헌도에서 나누기 3 곱하기 100 하셈. 그러면 순위 구할 수 있음.

└그걸 누가 몰라서 묻냐? 그냥 보기만 하면 되는 걸 일일이 계산하고 있어야 하니까 빡친다는 거지ㅡㅡ 암튼 지구는 12위네. 렌 있어도 별수 없나 봄 ㅋㅋㅋㅋㅋㅋ

└윗댓이 알려주고 나서 순위 구한 거 보니, 몰라서 물은 거 같은데? ㅋㅋㅋㅋ 합리적 의심 ㅇㅈ?

└근데 렌은 도대체 몇 번임? 창 들고 다니는 애들 다 스캔했는데 보이질 않냐?

└ㅋㅋㅋㅋㅋ 니가 렌이면 견제 들어올 거 뻔한데 창 들고 다니겠음? 생각이란 걸 좀 하고 살아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렌 몇 번이냐고 ㅡㅡ

하급 악마들 사이를 파고들어 학살한다.

그렇게 92킬에서 93킬 가량 먹은 뒤에 빠져나와 스텍을 초기화시킨다.

그리고 다시 악마들을 죽이며 공헌도를 얻는다.

그런 식으로 서너 번가량 했더니, 어느새 성벽 근처엔 멀쩡히 서 있는 하급 악마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내가 렌이라고 의심하지 않는군.’

그렇게 치고 빠지고를 반복하자, 의외의 소득이 있었다.

본의 아니게 완급 조절을 하게 되면서, 다른 플레이어들의 눈에 띄지 않게 된 것이다.

모두들 공헌도 사냥을 하기 바쁠 뿐이었다.

띠링!

[<98>이 <성문>을 파괴했습니다.]

“어어! 이놈은 내 거요!”

“네 거 내 거가 어딨어! 먼저 죽이는 게 임자지!”

“죽일 놈 없으면 안으로 들어가요. 시가지에서 꽤 나올 것 같은데?”

얼마 남지 않은 하급 악마들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플레이어들.

‘여기에서 더 사냥하는 건 의미가 없겠어.’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각종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시가지 쪽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공헌도 순위]

[1위. ‘탐리엘’ 179,800점]

[2위. ‘졸본’ 173,200점]

[3위. ‘미드가르드’ 168,800점]

[4위. ‘발리노르’ 160,500점]

[5위. ‘웨스테로스’ 153,100점]

[6위. ‘알프하임’ 150,000점]

[현재 생존 플레이어 수 : 873명]

“어어······!”

한 플레이어가 중심부를 보며 앓는 소리를 냈다.

“······?”

고개를 돌려 보니 10층 정도 되는 중앙 첨탑 꼭대기에서 중급 악마들이 뛰어내리고 있었다.

펄럭―! 펄럭―!

“모두 돌격! 거점 내부로 들어온 광대 새끼들을 모조리 소탕하라!”

“와아아아아아!”

동시다발적으로 날개를 편 녀석들이 빠르게 쇄도해 들어왔고, 근처 건물에선 하급 악마들이 뿜어져 나왔다.

‘두 번째 페이즈.’

사실 지금까진 성벽을 뚫고 들어오는 게 힘들었을 뿐이지, 내부로 들어오고 나선 고생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오히려 학살극에 가까웠다면 모를까.

그런 의미에서.

‘후우. 고생 좀 하겠는데.’

진짜 전투는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었다.

긴 한숨을 내쉰 나는 검과 방패를 고쳐잡았다.

“젠장! 까마귀 새끼들 온다!”

“남은 악마들 빨리 끝내!”

“씨발, 어쩐지 너무 무난하게 흘러간다 싶더라니.”

주변 플레이어들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어질 전투가 쉽지 않겠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아마 제법 많은 사상자가 나오겠지.

‘나야 좋지만.’

“천계의 개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노라!”

어느새 코앞까지 도착한 2차 공격대.

“중급 악마가 500점이라고 그랬지?”

“씨발! 또 막타 치는 새끼는 내 손에 뒈진다!”

챙! 채챙! 챙! 챙! 챙!

서걱! 서걱!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던 성문 입구가 다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되도록 중급 악마들 위주로 죽여야겠어.’

나는 덤벼드는 하급 악마들과 바닥에 놓인 시체를 피해 다니며 날갯짓하는 녀석들에게 검을 찔러넣었다.

그때였다.

띠링!

[<팀킬>이 감지되었습니다.]

[경고! 경고! 경고! 경고!]

[<팀킬>을 하는 플레이어는 곧바로 실격 처리가 됩니다.]

‘어?’

눈앞에 뜬 알림창을 본 나는 눈을 치켜떴다.

몇몇 플레이어들이 팀킬을 시도한 모양.

이 경기에서 팀킬이 나올 만한 경우의 수는 딱 하나였다.

‘진짜로? 이렇게까지 해준다고?’

킬딸을 하고 다니는 플레이어에 대한 응징.

혹은 타 성계에 대한 견제.

그 대상은 현재 1위를 하고 있는 탐리엘일 가능성이 높았다.

거긴 마법사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성계니까.

‘이러면 계획이 다르지.’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스킬:천뢰십보>를 활성화합니다.]

[<스킬:뇌정>을 활성화합니다.]

[<스킬:뇌룡의 포효>를 활성화합니다.]

[<스킬:뇌룡의 포효>가 <스킬:뇌신 강림>으로 각성합니다.]

지금까지 꺼 두었던 스킬들을 발동시켰다.

주변 플레이어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팀킬이 안된다면, 내가 망설일 이유는 없으니까.

제대로 한바탕 휘저어 줄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창:벽력섬전> <스킬:뇌신 강림> <스킬:천뢰십보> <스킬:뇌정>에 깃든 뇌전의 기운이 하나로 합쳐집니다.]

[<스킬:뇌정>이 <스킬:폭뢰(爆雷)>로 각성합니다!]

눈앞에 뜬 알림창.

‘뭐?’

순간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뇌정이······ 각성했다고?

‘갑자기?’

나는 차분하게 머리를 굴렸다.

뇌정 스킬은 플래티넘 등급이잖아?

‘근데 거기서 더 각성하면······. 어?’

어······?

어???????????????????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다이아몬드!’

그 순간, 하늘에서 한 줄기 벼락이 내리쳤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168화. 증명의 서(2)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