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증명의 서(1) >
―이변의 연속이네요! 72번이 100번에 이어, 44번까지 잡아냅니다!
―와······. 말문이 막힐 정도입니다. 100번인 아시카가와 44번 주소월이 절대 약한 상대가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너무나 쉽게 죽였어요.
―여러 무기를 섞어서 쓰긴 했지만, 결국 아시카가와 주소월 둘 다 창으로 쓰러트렸습니다. 현재 상위 리그에서 가장 강한 창술사라고 하면 단 두 명뿐이죠. 쿠 훌린과 렌. 그런데 쿠 훌린은 이미 죽었으니, 렌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볼 수 있겠는데요.
상위 리그를 지켜보던 루디악은 경악했다.
해설자들의 설명과 같이, 루디악 또한 72번이 렌이라고 확신했다.
렌의 광팬을 자처하며 하위 리그부터 한 경기도 빠짐없이 챙겨봤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등 뒤에 눈이 달린 것처럼 움직이고, 다양한 무기와 여러 스타일을 구사하며, 각종 유틸리티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건 렌밖에 없었으니까.
‘저게 가능하다고?’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하위 리그를 씹어먹긴 했지만, 그래봤자 승급한 지 이제 고작 1년 5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은 상황.
그 짧은 시간 동안 성장해서 상위 리그 최상위 랭커가 됐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후우······.’
내부에서 두 가지 상반된 기분이 부딪쳤다.
첫 번째로, 기쁨.
소속 플레이어인 룬도 지구인이기에, 이번 성계 대항전에서도 당연히 지구에 베팅한 루디악.
렌이 활약할수록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배당금이 어마어마했으니까.
거기다 그는 커뮤니티에서 유명할 정도로 렌의 광팬이기도 했고.
두 번째로는.
‘허탈하군.’
루디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룬도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빠르게 강해졌다.
굳이 스킬을 밀어주지 않아도, 상위 리그까진 충분히 올라왔을 정도로 전투 센스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고위 리그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팀의 희망이 되어줄 거라고 믿었지.’
고위 리그에 도전했다가 한 차례 팀의 주축 플레이어들을 모두 날려 먹은 루디악.
그렇기에 굉장히 보수적으로 예측한 건데도, 그런 결론이 나올 정도로 룬은 무척 뛰어났다.
그래서 너무 기뻤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팀 ‘불굴’에서도 렌 못지않은 강자가 나타났다는 뜻이었으니까.
거기다 루디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었기에, 언젠간 렌을 뛰어넘을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아예 상대가 안 되겠군.’
―아, 경기 끝났습니다. 72번이 56번 시르카와 707번 예천화까지 쓰러트리고 상위 리그 성계 대항전 1경기를 가져갑니다!
―이제 흑막이 걷히네요. 예상한 대로 지구 성계의 렌이었습니다.
―결국 중앙을 차지한 렌을, 그 누구도 밀어내지 못했네요!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 성계 대항전 1경기를 승리한 렌.
그는 룬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나게 강해져 있었다.
이제는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나도 저런 플레이어를 가지고 싶어.’
애초에 재능에서부터 차원이 달랐다.
룬이 몇만 명 중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이라면, 렌은 백만 명 중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괴물이었다.
―이번 경기 어떻게 보셨습니까?
―네에, 처음 72번이 외곽으로 향할 때만 해도 너무 몸을 사리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는 말씀이시죠?
―예, 맞습니다. 마지막에 증명했지요. 초반에 폭발적으로 올라오던 쿠 훌린과 을지문덕, 몽연의 닉네임이 어느새 쏙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어···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지금은 온통 렌의 이야기뿐입니다.
―굉장히 똑똑해요. 언제 힘을 터트려야 자신에게 가장 유리할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렌 같은 플레이어를 만들어 보고 싶은데.’
욕심이 났다.
그가 보기에 렌은, 지금처럼만 성장해 준다면 충분히 초월 리그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 봐야겠군.’
검지로 테이블을 톡, 톡 두드리던 루디악은, 해설자들의 말을 뒤로하고 팜으로 향했다.
팀 ‘투지’.
렌을 배출해 냈으며, 소속 플레이어 대부분이 이름을 날리고 있는 팀이다.
한두 명이 아닌, 팀 전체가 미친 활약하고 있었다.
즉, 무언가 특별한 훈련법이 있다는 뜻.
‘더 좋은 육성법을 찾아야 해.’
팜으로 향하는 루디악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후우, 나쁘지 않았어.’
대기실로 돌아온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피의 각성 부작용에 대해선 시험해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경기였다.
이제 적어도 가면이 없다고 해서 밀릴 수준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남은 건 딱 하나였다.
바로 피의 각성을 테스트해보는 것.
‘다시 한번 피의 흡수가 각성하면 좋을 텐데.’
단 한 번의 발동만으로도 기초 스텟이 어마어마하게 상승했다.
그런데 부작용 없이 두 번, 세 번을 사용할 수 있다면?
대규모 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 미션에 떨어진다면?
‘기초 스텟이 200을 넘어설지도.’
그렇게 되면 고위 리그에서도 금세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띠링!
[10분 후 2경기 <공성전>이 시작됩니다.]
알림을 본 나는, 소파에 털썩 앉아 상태창을 오픈했다.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커뮤니티에 들어가 반응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나쁘지 않네.’
커뮤니티로 들어가자, 온통 내 닉네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매우 긍정적인 반응.
MVP라는 게 결국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플레이어에게 수여하는 거니까, 지금 이 상태로만 계속 흘러간다면 충분히 내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 가지 문제가 있긴 했지만.
‘다음 경기부턴 쉽지 않겠어.’
다른 플레이어들도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모으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내 닉네임이 퍼진 이상, 2경기부턴 어떻게든 견제가 들어올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사실.
아마 1경기처럼 수월하게 진행되진 않을 것이다.
하위 리그 성계 대항전같이, 성계 단위로 날 막아서는 장면이 나올 수도 있고.
‘뭐, 상관없지.’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걸 감안해서 스킬 3개를 업그레이드해달라고 한 거니까.
어떤 식으로 견제가 들어오든, 결국 우승은 지구 차지가 될 것이다.
‘후우.’
눈을 감은 채 크게 숨을 내쉬었다.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한동안 차분히 호흡에 집중했다.
그렇게 10분이란 시간이 흐른 후.
띠링!
[잠시 후 2경기, <공성전>이 시작됩니다.]
[준비하십시오.]
나는 두 눈을 뜨고 빛이 흘러나오는 문으로 향했다.
이제.
‘다시 한번 놀아볼까.’
2경기를 치를 시간이었다.
띠링!
[<무스펠하임>에 입장하셨습니다.]
[<달의 메아리>가 외부 온도를 차단합니다.]
화륵! 화르륵!
불꽃이 넘실거리고, 뜨거운 열기가 코끝을 찌른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니,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황야가 나를 맞아주었다.
모래로 뒤덮인 넓은 사막.
저 멀리, 끓어오르는 열기 너머에 홀로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성.
‘나쁘지 않네.’
주위를 둘러보자, 1경기처럼 온통 흑막으로 둘러싸인 1,102명의 플레이어가 보였다.
1경기처럼 모두 익명으로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내 머리 위에 쓰여 있는 넘버는 5번.
이전 경기와 다른 숫자니까, 초반에는 견제 걱정 없이 움직일 수 있다.
띠링!
[지금부터 2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2경기 : 공성전(단체 PVP)]
[게임명 : 불꽃의 나라]
[맵 : 마계 아타신 거점(대)]
[관객 수 : 9,074,682명]
[승리 조건 : <각 성계 공헌도 합계 / n>으로 공헌도가 가장 높은 성계]
[공헌도 점수를 공개합니다.]
[하급 악마 : 100점 / 중급 악마 : 500점 / 상급 악마 : 1,000점]
[성문 : 100,000점 / 마기魔氣포탑 : 50,000점 / 마성석 : 0점]
[마계의 거점, 아타신의 마성석을 부수면 경기가 종료됩니다.]
[마성석은 지상 5층짜리 탑에 있습니다.]
[성문, 마기포탑은 딜량에 따라 공헌도를 분배합니다.]
[현재 생존 플레이어 수 : 1,103명]
[3초 후 경기가 시작합니다.]
‘뭐야?’
미션창을 본 나는 눈을 치켜떴다.
승리 조건에 나와 있는 성계 공헌도 합계 / n.
한마디로 공헌도의 평균치가 가장 높은 성계에게 승리를 주겠다는 뜻이었다.
‘이번 경기는 너무 불리한데.’
지구 성계 플레이어의 숫자는 셋.
그중에 두 명은 이제 막 상위 리그에 올라온 새내기들이다.
하위 넘버링과 상위 넘버링의 스텟 차이를 고려하면, 애초에 평균치에서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다른 성계들은 모두, 상위 넘버링에서도 가장 강한 100명만 뽑아 놓았으니까.
‘미친 듯이 뛰어다녀야겠군.’
[2초 후 경기가 시작합니다.]
마성석의 공헌도는 0점.
즉, 이번 경기에서 마성석의 역할은 게임을 끝내는 클로저의 역할이다.
자신의 성계가 1위를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만 부술 수 있다.
‘이번에도 심리전을 펼치라는 거군.’
1위 성계는 마성석을 부수려 할 것이고, 나머지 성계는 그걸 방해할 게 뻔한 상황.
승리를 차지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고결한 수정이 나오려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만약 나온다면 승패고 뭐고 일단 마성석으로 뛰겠지만, 이벤트전이라 안 나올 것이다.
[1초 후 경기가 시작합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냥해야 해.’
중급 악마의 공헌도 포인트는 500점.
하급 악마보다 5배나 높다.
그런데 하급 악마보다 죽이기 5배 어렵냐면, 그것도 아니다.
‘나한텐 거기서 거기지.’
그렇기에 중급 악마들 위주로 노리고 다니면 효율적으로 공헌도 수급이 가능할 것이다.
[경기 시작!]
경기 시작 콜이 울렸다.
모두들 아타신 거점으로 이동하기 위해 발걸음을 떼었다.
그때였다.
“삐― 성계! 삐― 성계! 젠장! 이것도 막혀 있다니!”
한 플레이어가 성계 단위로 뭉치기 위해 시도했으나, 삐처리되며 실패했다.
띠링!
[경고! 경고!]
[특정 성계를 언급해, 집단전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룰에 위배됩니다!]
[성계 언급을 멈춰주세요!]
그 모습을 본 97번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해 봐요! ‘나’랑, ‘카’드, ‘츠’지 않을래요, ‘쿠’······.”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든 띄어 얘기해서 ‘나카츠쿠니’라는 단어를 뱉으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빠아아아아악!
[<97>이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했습니다.]
97번의 머리가 수박 터지듯 박살 났다.
“······!”
뇌수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긴장감으로 고조되던 전장에, 싸늘한 침묵이 내리깔렸다.
‘멍청하긴.’
그 모습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응징할 줄은 몰랐지만, 대충 어떤 방식으로든 제재가 들어올 거라는 걸 예상했기 때문이다.
흑막으로 외형을 가렸고, 닉네임이나 성계도 언급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거기다 따로 넘버까지 부여하며 익명성을 중요시한 상황.
‘게임 메이커가 가만 놔둘 리가 없지.’
그런 경기에서 저런 식으로 룰을 피해 가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스킬이나 능력이 아닌, 편법은 응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방치했다간 게임의 룰이고 뭐고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할 거면 티 안 나게 해야 한다.
원래 심판이 알아차리지 못한 반칙은, 반칙이 아닌 법이다.
“······.”
그 광경을 본 플레이어들이 입을 콱! 다문 채 개인적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아타신 거점을 1킬로미터 남겨뒀을 때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데?’
눈앞의 거대한 성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거점이면 마계의 본진이나 마찬가지인 거 아닌가?’
커뮤니티를 통해 성城에도 등급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가장 작은 게 루에타같은 요새급.
그리고 두 번째로 록탄 같은 성城급.
마지막으로 거점據點급.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타신 거점이 록탄 성보다 훨씬 거대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본 아타신 거점은 록탄 성과 비슷한 크기.
‘이벤트 전이라 그냥 비슷하게 구현해 둔 건가 보군.’
여러 가지 근거가 있었다.
첫 번째로, 무스헬하임은 어딜 가든 몬스터들로 우글우글거린다.
그런데 아타신 거점까지 오는 동안 몬스터를 한 마리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
‘여기에만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두 번째로, 무스펠하임의 뜨거운 열기에서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원래는 열기 사이에 코를 찌르는 퀴퀴한 유황 냄새도 나고, 화산재 같은 것들도 뒤섞여있다.
‘그런 것들 때문에 다들 괴로워했었는데.’
여기가 죽음의 성계라고 불리는 데에는 그런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저 뜨거운 열기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누군가가 구현해 둔 것 같았달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계가 없어.’
아타신 거점은 공중전을 방어할 수 있는 얇은 막이 존재하지 않았다.
중간계와 다르게, 이곳은 천사와 악마들이 싸우는 곳.
지상군 뿐만 아니라 공중전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루에타 요새라든가, 록탄 성엔 하늘을 뒤덮는 결계가 존재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전략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거점에 결계가 없다?
‘날개가 없는 상위 플레이어들 뿐이라 굳이 구현해 두지 않았다는 거지.’
날개가 달린 존재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
그런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뭐, 그런 것들 말고도 실제로 무스펠하임에서 성계 대항전이 열렸으면 악마들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을 테고.
‘생각보다 쉽게 끝나겠는데?’
평소라면 성문을 부수지 않는 한 들어갈 수 없겠지만, 아타신 거점은 결계가 없어서 성벽을 타고 침투하는 게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30미터 성벽 쯤이야,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 수준이라면 얼마든지 넘을 수 있을 테니까.
【성화聖花의 꽃잎이여, 붉은 피 머리 위에······.】
【새벽 폭풍 아래 흩어지는 별의 눈물이······.】
【도도滔滔하게 흘러와 고요한 입맞춤을 남기는······.】
사정거리에 들어왔다고 판단한 마법사들이 영창을 시작했다.
파바바바바바밧!
완급 조절을 하며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던 근접 계열 플레이어들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후우.’
인벤토리에서 검과 방패를 꺼내든 나는, 주변에서 들리는 영창 소리에 맞춰 성문 쪽으로 달려갔다.
‘시작해볼까.’
그때부터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새빨간 보석의 눈물!】
【폭루유성爆淚流星!】
【들이치는 격류의 메아리!】
【거인의 발걸음!】
성문을 향해 날아드는 수십 개의 마법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쏴아아아아아아아아―!
마법이 성문을 두들기고, 모래 먼지를 동반한 엄청난 충격파가 우리를 훑고 지나갔다.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땅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뭐야?’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모래 먼지가 사라진 아타신 거점의 성문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생채기도 남지 않은 듯한 모습.
‘성문으로 침투하는 건 안 되겠군.’
나는 곧장 방향을 틀어, 성벽 쪽으로 향했다.
“같이 성벽 타실 분!”
“좋소! 같이 갑시다!”
나 이외에도 성벽으로 향하는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괜히 성문으로 잘못 다가갔다간 마법사들의 폭격에 두들겨 맞을 수도 있었기에, 차라리 성벽을 타고 올라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때였다.
꽝! 꽈광! 꽝!
아타신 거점의 성벽 위에 존재하는 포탑들이 불을 뿜었다.
“으아아악!”
“내, 내 다리! 내 다리가!”
강하게 응축된 마기 탄환이 지상을 두들겼다.
폭발에 의해 살점이 날아다니고, 다리가 잘린 플레이어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 정도쯤이야.’
초감각을 통해, 날아오는 탄환들의 목표점을 체크한 나는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성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주위에 둘러져 있는 해자垓子를 넘어, 성벽으로 점프하려고 할 때였다.
‘뭐야!’
순간 흠칫했다.
태양 빛에 성벽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뭐가 발라져 있다는 건데.’
“어어! 뭐, 뭐야!”
“안 돼애애애!”
“끄아아아아아아악!”
해자를 뛰어넘으며 성벽에 달라붙던 플레이어들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해자에 빠져 허우적대는 플레이어들의 몸에서 치이익―소리가 났다.
‘산성독!’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167화. 증명의 서(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