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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164화 (164/205)

< 164화. 절망의 편린(3) >

[이름 : 카이로시아 아타나신느 폰 퀘이사]

[근력 : 76(+?)] [민첩 : 89(+?)] [체력 : 88(+?)]

[정신 : 101(+?)] [지력 : 188(+?)] [마력 : 197(+?)]

[각성 능력 : <천재> <원소통달> <대마도사> <마나의 사랑을 받는 자> <고속영창> <최상급치료술> <마력관통> <최상급박투술> <상급검술>]

악마의 눈으로 이름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 날 뻔했군.’

하마터면 무방비 상태의 그녀를 죽일 뻔한 것이다.

그건 그렇고.

‘얜 무슨 생각으로 방어도 안 한 거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카이로시아는 내가 단검을 겨눈 채 달려들었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내가 그녀의 향기를 알아채지 못했더라면, 분명 그대로 죽었겠지.

제법 많은 시간 대련을 한 덕분에 카이로시아의 실력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네. 저 삐― 맞아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카이로시아.

삐처리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카이로시아는 내가 그녀의 이름을 언급했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나인 걸 안 거지?’

나야 뭐 냄새라든가, 악마의 눈으로 확인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그녀는 나처럼 감각이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상대를 체크하는 스킬을 가진 것도 아닌 상황.

그런데도 날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엔 확신이 가득했었다.

“어떻게 날 알아본 거야?”

내 물음에 카이로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

“눈동자만 봤는데도 삐―님인 걸 알 수 있었어요.”

“······?”

‘이게 도대체 뭔 말이야?’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단검을 품속에 갈무리했다.

한마디로 자기도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모르겠다는 뜻.

간혹 본인이 의식하기도 전에 무언가를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긴 했으니, 굳이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무사했네.”

“당연하죠. 저 은근히 세거든요? 오는 길에 벌써 세 명이나 죽였어요.”

허리에 양손을 올린 채 으쓱하는 카이로시아.

‘하긴.’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앞에서 무기를 휘두르며 전투를 펼치는 근접 물리 계열과 다르게, 마법 계열은 스텟의 차이가, 꼭 강함을 뜻하는 척도가 되는 건 아니었다.

주문도 영창해야 하고, 각 상황마다 어떤 마법을 쓰느냐에 따라서 효율 차이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하위 넘버링 마법사가 상위 넘버링 마법사를 쓰러트리는 일도 존재했다.

‘내가 카이로시아라는 마법사를 너무 우습게 생각했군.’

거기다 그녀는 고속영창, 원소통달 같은 다양한 각성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혹독하게 굴린 덕분에 수비도 무척 좋아진 상황.

잠시 고민해 보니, 그녀를 쉽게 죽일 수 있는 플레이어는 별로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자만하지 말고. 중심부 쪽으로도 가지 마. 어지간하면 어그로를 끌 수 있는 마법은 지양하고.”

나는 습관적으로 그녀에게 잔소리를 했다.

“알겠어요.”

“후우, 그래. 그럼 수고.”

그리고는 등을 돌려, 43구역으로 향하려고 했다.

“저기······.”

“왜?”

“혹시 저랑 같이 다니지 않으실래요?”

“······.”

한마디로 팀 플레이를 하자는 건데······.

‘괜찮을까?’

카이로시아의 제안에 잠시 고민한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주창범이라면 모를까, 그녀와 함께 다니는 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적이나 마찬가지지.’

최종적으로 둘이 살아남게 되면, 결국 서로에게 검을 겨눠야 한다.

또한 이 정도로 익명성에 공을 들인 미션에서 팀플레이를 한다?

‘관객들에게 외면받을 수도 있어.’

MVP 경쟁에서 크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관객들은 반칙하는 플레이어를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미안.”

그렇기에 나는 단호하게 얘기했다.

굳이 여지를 줘봤자 서로에게 곤란할 것이다.

“음······. 네, 알겠어요. 무운을 빌게요.”

평소 냉기가 풀풀 날리던 것과 달리, 카이로시아가 잔뜩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그걸로 대화는 끝.

우린 서로 반대 방향으로 헤어졌다.

나는 43구역 방향으로.

그리고 카이로시아는 30구역 방향으로.

[경기 진행 시간 : 01:59:12]

[현재 생존자 수 : 699 명]

서걱!

43구역에 도착한 나는 36구역 방향으로 이동하며 플레이어들을 사냥했다.

‘이제 좀 긴장을 풀어도 되겠군.’

최외곽이다 보니, 생각보다 플레이어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여기서 시간을 죽이다가, 4시간 쯤 남았을 때 중심부로 이동하면 적당한 타이밍에 MVP 경쟁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띠링!

[지금부터 1시간 후 새로운 데스 라인이 펼쳐집니다.]

[모든 플레이어 분들은 지도를 확인해 주세요.]

‘뭐라고?’

새롭게 뜬 알림창을 본 나는 곧장 지도를 펼쳤다.

그러자 이전까진 보이지 않던 붉은 실선이 곳곳에 칠해져 있었다.

데스 라인으로 설정된 구역은 총 24개.

49개로 나눠진 구역의 최외곽이 전부 데스 라인으로 설정되는 것 같았다.

‘맵이 점점 작아지나 본데.’

아마 딱 한 번만 맵이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단 한 명이 남아야 경기가 끝나는 상황.

플레이어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에 비례해서, 맵도 점점 작아질 게 분명했다.

관객들 입장에선 이 넓은 맵을 수색하고 돌아다니는 것만큼 지루한 것도 없을 테니까.

‘어쩔 수 없군.’

잠시 혀를 찬 나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1시간 뒤라고는 하지만, 언제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노릇.

미리 데스 라인을 피해 30구역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1>이 <검>으로 <666>을 처치했습니다.]

[<731>이 <활>으로 <1>을 처치했습니다.]

[<56>이 <곡도>로 <17>을 처치했습니다.]

[<1,002>가 <마법>으로 <547>을 처치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뭐야?’

킬 로그를 확인한 나는 눈을 치켜떴다.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던 몇 개의 넘버가 죽었다는 콜이 올라와 있었다.

1번이라던가, 666이라던가, 547이라던가.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데?’

중심부로 몰려든 최상위 랭커들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다가 죽은 모양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ㅈㄴ웃기넼ㅋㅋㅋ 쿠 훌린이랑 몽연이랑 싸우다가 나란히 죽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 547번이 을지문덕이었어???? 지금까지 72번인 줄 알았는데..?

└아 씨발 개 병신새끼ㅡㅡ 저런 새끼를 믿고 베팅한 내가 잘못이지 하.. 좀 안전하게 플레이하지, 왜 중심부에서 나대다가 쳐 죽고 ㅈㄹ이야ㅡㅡ

└윗 댓 / ㄱㅊㄱㅊ 몽연이 죽었지만 아직 무림엔 주소월이랑 예천화가 남았음. 침착해 형.

└닥쳐 ㅂㅅ아. 난 쿠 훌린 죽어서 빡친 거니까.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드가르드에 걸었어, 형? 그러게 랭커가 세 명이나 있는 무림에 걸지~ㅋㅋㅋ 여긴 몽연 죽어도 주소월이랑 예천화가 있다구 ㅋ

└쿠 훌린 욕하지 마라. 최상위 랭커라는 타이틀 달고 외곽에 숨어다니는 것보다 쿠 훌린처럼 화끈하게 불태우는 게 더 낫다ㅋㅋ

└ㅋㅋㅋㅋㄹㅇ 몽연도 존나 멋있긴 하더라. 개 상남자 ㅋㅋㅋㅋㅋ

└MVP는 몽연 아니면 쿠 훌린, 을지문덕. 이 셋 중 하나라고 봄 ㅋㅋㅋㅋ

└그럼 지금 누구누구 남은 거지? 일단 몽연, 을지문덕, 쿠 훌린 죽었고. 어? 지금 카시아랑 랜슬롯, 앤키두도 죽음 ㅋㅋㅋㅋㅋ

└아시카가도 죽었음. 72번한테 ㅎ

└보자.. 남은 게.. 일단 44는 주소월이고.

└시르카, 예천화, 헥토르, 렌. 최상위 랭커는 이렇게 다섯 명 남았지.

└형이 딱 말해 준다. 44번 주소월, 56번 시르카, 72번 렌, 707번 예천화, 1,004번 헥토르다. 반박 시 내 말이 맞다.

└????? 56번이 왜 시르카임 ㅋㅋㅋㅋㅋㅋㅋ 딱 봐도 1004번이 시르카구만 ㅋㅋㅋ

└아 스킬 임팩트도 안 보이고, 까맣게만 돼 있으니까 예상하기가 어렵네;

└72번이 예천화라는 거에 내 왼쪽 손목 건다. 참고로 현재 내 여자친구다.

한동안 23구역으로 향하며 플레이어들을 학살하고 있을 때였다.

챙! 채챙! 쐐애애애애액! 콰과과과과광!

“이걸 피하다니 제법이군요. 모두들 수준이 높아서 놀아볼 만 하겠어요, 후후.”

“젠장! 괴물 같은 자식!”

“어어어! 잠깐 타임! 타임! 일단 저년부터 죽이고 싸웁시다!”

“타임은 개뿔! 어차피 개인전인데 한 놈이라도 더 잡아먹고 죽어야지!”

미로 한쪽에서 대규모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제법 많이 모였네.’

갑작스럽게 데스 라인이 펼쳐지다 보니, 외곽에서 빠져나오던 플레이어들과 원래부터 23구역을 어슬렁거리던 플레이어들이 맞부딪힌 모양이었다.

‘슬슬 창을 써야겠군.’

생존자 숫자가 많이 줄어든 데다가, 랭커라고 할 만한 플레이어도 많이 죽은 상황.

나는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내 들고,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향했다.

띠링!

[달빛의 힘으로 인해 <몽환의 달빛> 능력이 활성화 됩니다.]

[1분당 체력과 마력이 1%씩 회복됩니다.]

[<스킬:열반>이 활성화 됩니다.]

[정신 스텟이 +30% 상승합니다.]

[정신 이상 기운 상쇄율 : 90%]

때마침 붉은 돌담 너머로 환한 달빛이 나를 비추었다.

정신 스텟이 상승하며, 옅게 감돌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후우.’

나쁘지 않은 기분.

‘바로 가볼까.’

나는 곧바로 코너를 돌아, 전투가 펼쳐지는 곳으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챙! 채챙! 쐐애애애액!

“윽!”

“나를 더 재미있게 해줄 사람 없나요?”

그리고 보게 된, 아슬아슬하게 전투를 이어 나가는 7명의 플레이어들.

난전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쓰러져 있는 시체가 하나도 없었다.

확실히 상위 리그 탑 클래스들만 모아둔 것 답게 수준 높은 전투였달까.

띠링!

[<스킬:뇌룡의 포효>가 활성화 됩니다.]

[근력과 민첩 스텟이 +25% 상승합니다.]

‘딱히 주의해야 할 녀석은 없······.’

악마의 눈으로 한 명 한 명 살펴보던 나는 순간 멍하니 입을 벌렸다.

“······.”

챙! 채챙! 챙! 쐐애애애애애액!

각종 병기로 도배하고 있는 플레이어들.

그들 너머로 익숙해 보이는 녀석이 한 명 있었다.

<44>

‘하.’

뭐랄까.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너무나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후욱!

팔랑팔랑 부채를 휘두르자, 검은 초승달 모양의 강기剛氣가 뿜어져 나온다.

“으윽! 쥐새끼처럼 잘도 도망다니는군!”

휘익! 휘익!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떻게든 검을 휘두르기 위해 돌진했지만,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들려올 뿐.

44번의 움직임은 마치 바람과 같았다.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자유롭고, 종잡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44번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꼭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지.’

문득, 1회차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계에 직면해, 좌절에 빠져있던 나날들.

두 눈을 바치고, 초감각을 얻어 상위 리그에 입성했던 기억.

그리고 또다시 직면하게 된 고위 리그의 벽.

―어디에 숨었나요? 이런 날씨에 숨바꼭질이라니, 좋지 않네요.

―그나저나 대단하네요. 상위 리그 네임드 플레이어들도 나를 상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했는데, 설마 두 눈도 보이지 않는 분이 이렇게 오래 버틸 줄이야.

―정말 터프한 분이시군요. 깜짝 놀랐네요. 싸움을 좋아하시는 분 같은데, 아마 저승에 가서도 싸우실 일이 많으실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가져갈 때 잃어버리지 말라고 가슴에 박아드리는 거니까 고. 맙. 게. 생각하세요.

그 절망스럽던 순간에 마주쳤던, 한 명의 플레이어.

그리고 그때 느꼈던 무력감까지.

‘정말 기분 더러웠지.’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주소월]

[성향 : 무정無情]

[근력 : 231(+?)] [민첩 : 308(+?)] [체력 : 257(+?)]

[정신 : 141(+?)] [지력 : 71(+?)] [마력 : 229(+?)]

[각성 능력 : <풍술사> <청풍백화공淸風白花功> <명인> <특급마나운용> <고급박투술> <상급치료술>]

[업적 특전 : 고귀한 혈통]

“젠장, 또 한 명이 추가됐군.”

“72번이면 이런저런 무기 쓰던 녀석인데!”

“혹시 저 녀석도 네임드는 아니겠지?”

격렬하게 싸우는 플레이어들을 뒤로하고 나는 주소월에게 터벅터벅 걸어갔다.

‘후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런 미로에서 꿈에 그리던 상대를 만나다니.

왠지, 그때 부채로 맞았던 부위가 욱씬욱씬 거리는 느낌이었다.

‘운이 좋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스텟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으니까.

‘1회차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지.’

이제는 내가 그녀에게 절망을 선사할 때였다.

마침 플래티넘 등급 스킬 여섯 개 모두 활성화 된 상황.

싸아아아아아아아―

내 몸에서 스멀스멀 살기가 뻗어 나왔다.

이렇게 넓은 맵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다니.

‘한번 놀아보자고.’

아무리 생각해도 운이 정말 좋았다.

< 164화. 절망의 편린(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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