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절망의 편린(2) >
“무, 무슨······!”
뇌전이 뿜어져 나오는 소리에 몸을 잘게 떠는 루시보덴.
녀석에게서 변조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나쁘지 않은데?’
주위를 살펴보자 내 몸을 덮고 있는 흑막이, 뇌전까지 감싸고 있는 게 보였다.
한마디로 이 뇌전까지 상대에겐 그저 까맣게 보인다는 것.
아마 녀석은 검은 안개가 내 주변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다 보니, 뇌전의 굉음이 더 위협적으로 다가올 테고.
“후우. 후우.”
한 걸음씩 천천히 거리를 좁히는 루시보덴.
녀석의 발걸음에서 긴장감이 가득 배어 나왔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으니 탐색전을 벌이려는 모양.
‘그렇겐 안 되지.’
나는 그대로 빙글빙글 돌리고 있던 사슬낫을 날렸다.
녀석과 달리 난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상황.
굳이 시간을 질질 끌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상대가 탐색전을 펼치며 뜸 들이는 그 잠깐의 순간을 이용해야 한다.
후욱! 후욱! 쐐애애애애액! 챙!
“끄아아악!”
사슬낫이 검과 부딪히자, 녀석이 몸을 움찔 떨었다.
‘제법 찌릿찌릿할 거야.’
주창범이나 모용악은 내 뇌전을 보고 마치 몸에 벼락이 관통하는 느낌이라고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뇌신 스킬이 플래티넘 등급으로 업그레이드 되며 훨씬 더 강력해졌다.
심지어 뇌정에는 ‘아주 강한 뇌전’이 깃든다는 설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동안 스킬이 업그레이드 되면서 보였던 위용을 생각하면, 저 뇌전은 아마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대충 이전보다 2배 이상은 강해졌겠지.’
챙! 콰지직! 챙! 콰지지지직!
사슬낫을 회수한 나는 다시 녀석에게 무아지경으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미, 미친······!”
사슬낫을 막아낼 때마다 녀석의 몸이 과장되게 떨렸다.
고기 타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지금쯤 통증 때문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을 것이다.
파바바바밧!
그때, 이대로는 답이 없다고 판단한 루시보덴이 빠르게 질주했다.
‘어딜!’
나와의 거리를 좁혀, 어떻게든 검을 휘두르려는 속셈.
나는 그대로 몸을 뒤로 빼며 계속해서 사슬낫을 휘둘렀다.
어차피 내 민첩이 훨씬 높은 데다가, 사슬낫이라는 무기의 특성상 등을 돌려 달아나면서도 공격을 휘두를 수 있다.
“으윽!”
그렇기에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일방적으로 내게 처맞을 뿐.
챙! 쨍그랑!
“크윽, 씨발······.”
고통을 참지 못한 루시보덴이 결국 검을 놓쳤다.
‘잘 가라.’
서걱!
그걸로 이 싸움은 끝이었다.
띠링!
[<72>가 <사슬낫>으로 <851>을 처치했습니다.]
사슬낫이 한번 춤을 추자, 녀석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붉은 선혈이 사방을 적시고, 녀석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색 막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등장하는 녀석의 얼굴.
‘이놈이었어?’
코드 제로 경기에서 본 적 있는 녀석이었다.
당시 나랑 같이 전방에서 적 지상군을 죽이던 돌격대 중 한 명이었으니까.
‘후우.’
하늘을 올려다보자, 주변을 옅게 비추던 붉은 노을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손을 내려다보자, 여전히 내 몸을 감싸고 있는 흑막이 느껴졌다.
‘나쁘지 않은데?’
플래티넘 등급 스킬만 여섯 개.
스텟도 남들보다 높은 데다가, 악마의 눈을 통해 정보의 우위도 가져갈 수 있다.
거기다 우려했던, 성계 단위로 똘똘 뭉치는 일도 존재할 수가 없다.
이거야말로······.
‘내가 기다리던 맵이지.’
경기장 외곽으로 나서는 내 마음속에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이 정도라면 이번 경기.
‘충분해.’
지구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꽈과과과광! 콰아아아아앙! 꽈광! 꽝! 꽈과과광!
‘저긴 여전히 징하게 싸우는군.’
중심부에서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마법 폭격으로 인한 폭발음이 귀를 찔렀다.
저 멀리, 검은 무언가가 솟구치고 있었다.
‘모두들 중심부로 모이고 있는 모양인데.’
원래 이런 서바이벌에서 외곽으로 향하는 건 기본이다.
적을 덜 만날수록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걸 이 자리에 모인 플레이어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중심부로 향한다는 건.
‘MVP를 노리고 있는 거겠지.’
어차피 죽어도 부활하니까 리스크도 덜하고, 차원 특전보다 MVP로 받게 될 보상이 훨씬 크다.
덕분에 평소라면 보일 수 없는 플레이들이 연출되고 있는 것 같았다.
‘운이 좋네.’
반면에 나는 지구의 우승과 MVP를 동시에 노리는 상황.
굳이 저 사이에 껴서 실력을 뽐내고 있을 필요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당장은 필요 없다.
결국 마지막엔 나도 중심부로 향할 것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는 것만으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아껴뒀던 한 방을 터트려, 저 스포트라이트를 모두 가져올 것이다.
└와 씨 ㅋㅋㅋㅋㅋㅋㅋ 이거 개 재밌는데? 이런 경기도 나쁘지 않은듯 ㅋㅋㅋㅋㅋ
└ㅇㅈㅇㅈ 처음에는 누가 누군지 몰라서 뭔 게임이 이러냐 싶었는데, 몇 번이 누구인지 예측하는 거 ㅈㄴ 꿀잼 ㅋㅋㅋㅋ
└666번 창 개 잘 쓰네 ㅋㅋㅋㅋ 딱 보니 쿠 훌린 아니면 렌인듯. 상위 리그에서 저 정도 수준의 창술사는 그 둘 뿐임 ㅋㅋ
└1번 누구냐? 제발 을지문덕이라고 해줘 ㅠㅠ 졸본 가즈아아아아!
└44번은 딱 보자마자 알겠음 ㅋㅋㅋㅋ 주소월 ㅎ2
└완벽한 개인전이라 이런 경기에선 최상위 랭커가 많은 쪽에서 이길 수밖에 없음 ㅎㅎ 그런 의미에서 무림 가볍게 첫 승 챙기고 가자.
└어휴 ㅂㅅ들. 어차피 몽연 미만 잡임;
└근데 72번 누구임? 상위 리그에서 사슬낫 쓰는 애는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챙! 콰지직! 챙! 채챙! 콰지지직!
움찔!
“큭······. 레······.”
서걱!
내 검이 소름 끼치는 피륙음을 남기며 적의 목을 갈랐다.
[<72>가 <검>으로 <581>을 처치했습니다.]
[경기 진행 시간 : 01:38:55]
[현재 생존자 수 : 827 명]
그러자 목을 감싼 채 고꾸라지는 581번.
녀석의 얼굴에 허망하다는 표정이 한가득 배어 나왔다.
뇌전 데미지로 인해, 마지막 순간 내가 누구인지 알아챈 것 같았다.
‘후우.’
다양한 무기로 적들을 도륙하며 이동한 지 어느덧 1시간 반째.
그사이 나는 30구역에서 44구역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띠링!
[<스킬:뇌룡의 포효>를 비활성화 합니다.]
적을 죽인 나는 곧바로 뇌룡의 포효를 해제시켰다.
후반에 모아놨던 한 방을 터트릴 것이기에 체력 안배가 중요한 상황.
비전투 상황에서 굳이 뇌룡의 포효를 켜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가면으로 체력을 회복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니까.
‘아직도 800명이 넘게 남았네.’
상태창을 힐끗 살핀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꽈아아아아앙! 꽈과과광! 꽈아아아아앙!
중심부에선 여전히 폭음이 끊이질 않았다.
확실히 상위 리그의 랭커들만 모아놓다 보니, 저런 격전지 속에서도 사망자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미로의 최외곽인 43구역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파바바바바바바바밧!
누군가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후우.’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털어냈다.
발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녀석의 스텟이 무척 높다는걸.
미로의 ‘ㄱ’자 통로를 꺾은 나는, 이내 발소리의 주인과 마주할 수 있었다.
“호오.”
머리 위에 쓰여진 <100>이라는 숫자.
지금까지 만났던 상대와 마찬가지로 흑막에 감싸인 플레이어.
검을 들고 있던 녀석이 눈을 빛냈다.
“킬 로그를 통해 활약상은 잘 봤다. 다양한 무기를 활용하더군. 나를 상대론 무슨 무기를 사용할 거지? 그 채찍인가?”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아시카가 요시미츠]
[성향 : 호전]
[근력 : 178(+?)] [민첩 : 181(+?)] [체력 : 174(+?)]
[정신 : 99(+?)] [지력 : 38(+?)] [마력 : 186(+?)]
[각성 능력 : <일검살> <대장군> <특급마나운용> <고급박투술> <하급치료술>]
[업적 특전 : 초신속]
‘역시 최상위 랭커였어.’
마주친 상대는 나카츠쿠니 성계 출신의 네임드.
아시카가 요시미츠였다.
‘근데 스텟이 왜 이렇게 낮아?’
특이한 점이 있다면, 최상위 랭커 중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스텟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것.
저런 스텟으로 최상위 랭커 자리를 차지할 수 없을 테니, 아마 체력이나 마력의 이유로 활성화시키지 않은 스킬들이 있는 것 같았다.
당장 나만 해도 체력 소모를 이유로 뇌룡의 포효를 발동시키지 않았으니까.
“제법 잘 싸우는 것 같다만, 여기까지다. 운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해라.”
녀석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딱 봐도 나를 개무시하고 있었다.
‘운이 좋지 않았다라······.’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벽력섬전을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 다양한 무기를 이용해 적을 죽여온 상황.
한 번쯤 창을 꺼내 들어도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상함을 느끼진 못할 것이다.
띠링!
[<뇌룡의 포효>를 활성화 합니다.]
[근력 스텟과 민첩 스텟이 +25% 상승합니다.]
‘누가 운이 안 좋았는지 한번 보자고.’
그리고는 녀석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이번엔 창인가? 재밌겠군.”
그러자 여유롭게 거리를 좁히며 마력이 깃든 검을 휘두르는 아시카가.
채앵! 콰지지지직!
“흡!”
뇌전에다가, 마력 갑옷으로 인해 반사된 데미지까지 받게 된 녀석이 몸을 흠칫 떨었다.
예상하지 못한 데미지가 들어오자 당황한 것 같았다.
아마 지금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겠지.
‘별거 아니군.’
황급히 뒤로 물러서는 아시카가.
챙! 콰직! 챙! 콰지지직!
나는 곧장 녀석에게 따라붙으며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지금 잡은 이 승기를 절대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쐐애애애애애애액!
‘뭐지?’
녀석의 몸 곳곳에서 검은 안개가 뭉실뭉실 떠다녔다.
아시카가가 휘두른 검에서 뿜어져 나온 한 줄기 검은 초승달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채앵!
그 공격을 막아내자, 한 줄기 바람이 내 이마를 스쳐 지나갔다.
불꽃처럼 뜨겁지도, 그렇다고 싸늘한 냉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바람 속성인 모양이군.’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아시카가 요시미츠]
[근력 : 223(+?)] [민첩 : 307(+?)] [체력 : 252(+?)]
[정신 : 129(+?)] [지력 : 49(+?)] [마력 : 242(+?)]
악마의 눈으로 녀석을 다시 확인하자, 최소 30% 이상 오른 스텟이 보였다.
내 예상대로, 지금까지 스킬을 발동시키지 않고 있었다는 뜻.
바람 속성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 답게, 녀석의 민첩 스텟이 크게 상승해 있었다.
“후우. 들은 것과 다르게 음흉한 구석이 있었군. 설마하니 최상위 랭커인 걸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녀석이 한숨을 내쉬며 검을 들어 올렸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녀석에게서 긴장이란 게 느껴졌다.
반면에 나는.
‘왜 이렇게 약해?’
내가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최상위 랭커 중 한 명이라길래 적어도 천세운 정도의 수준은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만나본 아시카가는 그보다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다시 한번 놀아보자!”
아시카가가 검을 하늘로 치켜세운 채 빠르게 쇄도해 들어왔다.
딱 봐도 내려치기를 하겠다는 모습.
나는 돌진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외곽을 돌며, 녀석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전투.
챙! 콰지직! 싸아아! 챙! 채챙! 콰직! 쐐애액!
검과 창이 부딪힐 때마다 칼날 같은 바람과 뇌전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
짧게 끊어지는 녀석의 호흡.
흑막에 가려진 녀석에게서 당황이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자신의 본실력을 발휘했는데도 여전히 밀린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모양.
띠링!
[<벽력>이 발동됩니다.]
창날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콰지지지지지직!
강하게 응축된 뇌전의 기운이 주변의 소리를 집어삼켰다.
황급하게 뒤로 빠지는 아시카가.
곧장 섬전을 사용해 녀석의 코앞으로 이동한 나는.
“······!”
‘너야말로 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해라.’
그대로 녀석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띠링!
[<72>가 <창>으로 <100>을 처치했습니다.]
그리고 뜨는 킬 콜.
‘후우.’
묘한 기분이었다.
‘최상위 랭커가 이렇게 쉽다고?’
물론 객관적으로만 봤을 땐 절대 약한 전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껏 만나온 상위 플레이어들 중에선 손에 꼽을 만큼 대단한 스텟과 기량을 가지고 있었달까.
달라진 게 있다면.
‘내가 너무 강해진 거였어.’
사실, 피의 각성은 내게 커다란 고민거리를 안겨 주었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도 존재했다.
스텟이 어마어마하게 오르면서, 내 기초 스텟이 상위 넘버링 수준으로 올라서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스킬 슬롯을 플래티넘 등급으로 가득 채웠으니,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나를 감당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후우.’
나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염원만 하던 고위 리그가.
‘드디어.’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었다.
└??????????????????????????????
└내가 지금 본 거 실화임? 뭐임?
└혹시 72번이랑 100번이랑 싸우는 거 보신 분?
└왜. 뭔데. 나도 얘기해 줘. 무슨 일인데?
└72번이 100번 가지고 놀다가 죽였는데, 100번이 아시카가였음.
└????????????????????????
└72번이면 걔 아니냐? 사슬낫 쓰다가 검 쓰다가 활 쓰다가 하던 애?
└맞음 ㅇㅇ 채찍 쓰다가 아시카가 상대할 땐 창 꺼내서 죽임.
└아 시발 ㅡㅡ 아시카가 ㅂㅅ새끼저런새끼를믿고나카츠쿠니에베팅한내가병신이다. 나가 뒤져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시카가 거품이었누ㅋㅋㅋㅋ
└72번 도대체 누구임? 아니 어느 성계임??? 아시는 분 공유점ㅠ
└ㅋㅋㅋㅋ 나카츠쿠니에 전 재산 베팅한 놈들 화들짝 놀라는 거 보소 ㅋㅋㅋㅋ
아시카가를 죽인 나는 43구역 방향으로 향했다.
띠링!
[상현달이 떴습니다.]
[<로브:달의 메아리> 가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3% 상승합니다.]
[<목걸이:몽환의 달빛> 이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10% 상승합니다.]
‘어?’
눈앞에 등장한 알림창을 본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왜 추가 스킬 슬롯은 발동하지 않는 거지?
내가 설명을 잘못 봤나?
나는 서둘러 몽환의 달빛의 아이템 설명을 확인했다.
[<목걸이:몽환의 달빛>]
[영면에 빠진 달의 여신이 착용하던 목걸이. 달빛의 힘을 빌려 쓸 수 있다. 주인이 죽으면서 능력 일부가 봉인되어 있는 상태다.]
[달의 크기에 비례하여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최대 15%]
[달빛 아래에 있으면 1분당 체력이 1%씩 회복된다.]
[달빛 아래에 있으면 1분당 마력이 1%씩 회복된다.]
[착용 시 스킬 슬롯이 한 개 추가된다. 단, 달빛 아래에서만 추가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등급 : 준신화]
아이템에는 분명 달빛 아래에 있으면······.
‘설마?’
나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깜깜한 밤하늘.
뜬 지 얼마 안 됐는지, 달은 보이지 않았다.
‘달빛 아래에 있으면이라······.’
아마 달이 뜨긴 했는데, 5미터 붉은 돌담에 가려져 있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현재 나는 달빛 아래에 있지 않다는 것.
‘생각보다 발동 조건이 까다로운데.’
아마, 달빛을 직접 받게 되는 순간 추가 슬롯이 발동되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새로 얻은 스킬인 열반을 발동시켜보고 싶었는데, 조금 더 기다리는 수밖에.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이동할 때였다.
파바바바바밧!
‘또 적이군.’
들려오는 발소리에 나는 숨을 죽인 채 조용히 단검을 꺼내 들었다.
잠시 기다리자, ‘ㄴ’자 통로의 코너를 도는 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완드를 들고 있는 걸 보니, 마법사인 모양.
머리 위에는 <99>라는 숫자가 쓰여있었다.
‘한 번에 죽여야 돼.’
나는 자세를 낮춘 채 살금살금 적을 향해 이동했다.
【불빛!】
적 마법사가 시전한 마법에, 순간 좁은 일자 형 공간이 환한 빛에 잠식되었다.
“······!”
“······!”
그리고 마주친 눈동자.
‘젠장.’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망설이지 않고 적에게 달려들었다.
당황할 필요 없다.
마법을 영창하기 전에, 단번에 목을 꿰뚫으면······.”
“어? 안······. 삐―님?”
“······?”
변조된 목소리.
보이는 거라곤 검은 실루엣과 눈동자 뿐.
하지만 나는 순간 몸을 멈칫했다.
내가 쥔 단검이 상대의 목젖 앞에서 멈춰 섰다.
익숙한 향기가 났다.
‘설마.’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삐―삐이―?”
뭐야?
분명 카이로시아 이름을 불렀는데 왜 이래?
< 163화. 절망의 편린(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