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격변의 물결(9) >
며칠 후.
기다리던 알림창이 등장했다.
[성계 대항전 ‘지구’의 참가 멤버로 선정되었습니다.]
[참가 멤버는 각 성계의 상위 100 명까지 입니다.]
[성계 대항전은 총 5개의 경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종 우승 시 <차원 특전>을 획득합니다.]
[성계 대항전의 아레나에서는 사망하더라도 부활합니다.]
[1인당 총 5개의 경기에 참가할 수 있으며, 참가 인원 제한은 없습니다.]
[차원 특전은 도박사들이 예상한 비율에 따라 효과가 달라집니다.]
―황혼의 깃발 쟁탈전
―상위 리그 최강자
―흑막의 미로
―악마 사냥
―공성전
[상위 리그 성계 대항전에 참가하시겠습니까?]
[Yes / No]
눈앞에 뜬 성계 대항전의 초대장.
‘나쁘지 않긴 한데······.’
게임명을 체크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미카엘이 호언장담했던 것과 달리, 약간 우려스러운 게임이 두 개나 보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황혼의 깃발 쟁탈전.
개인전 형식으로 진행이 되겠지만, 결국 최후의 1인이 깃발을 가지고 있으면 성계가 승리하는 개념일 것이다.
그렇다면 성계 단위로 모여서 깃발을 지키려고 할 건 불을 보듯 뻔한 상황.
집단전처럼 흘러갈 가능성이 높았다.
‘공성전도 문제지.’
성을 혼자서 공략할 리 만무하니, 이것 또한 성계 단위로 뭉쳐서 진행될 것이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지구 입장에선 두 경기나 손해 보게 될 것이고.
‘흐음.’
하지만 분명 미카엘이 분명 집단전으로 치러지는 경기가 없음을, 신성을 걸고 약속했다.
―신성을 걸고 하는 약속은 의심할 필요도 없어요. 절대 어길 수 없는 맹약이거든요.
―만약 어기면 어떻게 됩니까?
―가진 신성을 모두 잃고 사망하게 돼요. 아버지와 하는 약속이랑 마찬가지니까 말장난도 통하지 않죠.
이후 아세리안에게 물으니, 절대 어길 수 없는 약속이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미션의 룰을 통해 충분히 제어가 가능하다는 거겠지.’
직접 만나본 미카엘은 절대 멍청하지 않았다.
적어도 자기가 뱉은 말은 책임질 수 있을 것이다.
띠링!
[상위 리그 성계 대항전 초대장을 수락하셨습니다.]
[성계 대항전은 앞으로 2주 후, 하이블러드나이트 140 경기를 대신해서 열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Yes를 눌렀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앞으로 2주.’
남은 시간 동안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한 번의 대충돌이 있어서 그런지, 마계가 잠잠해요. 그 덕에 상위 리그와 고위 리그, 초월 리그가 열리지 않는데도 긴급 미션이 떨어지지 않은 거죠.”
최근, 우리 팀에 다양한 능력자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가장 첫 번째로 포르도엘.
“덕분에 천계는 요즘 굉장히 조용한 편이에요. 타락했을지언정 오대천사 중 한 명이었던 라파엘님이 서거했으니, 추모의 분위기도 강하구요.”
아세리안이 천계의 정보통이라고 칭했던 것처럼, 그녀는 내가 천계의 분위기에 대해 물어보자 기다렸다는 듯 얘기하기 시작했다.
“최근 주신회 분위기도 심상치 않대요. 의장을 맡고 있는 환웅님과, 이전 의장이었던 오딘님이 사사건건 부딪치고 계신 모양이에요.”
팜을 어슬렁거리며 사용인들과 장난치는 모습만 봐 왔기에 내심 아세리안이 왜 포르도엘을 안 굴리나 싶었는데, 놔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포르도엘이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구해 오는 수집원의 역할을 맡는 거였어.’
새삼 포르도엘이 다르게 보였달까.
그리고 두 번째로, 중개 거래소 체크를 맡고 있는 사용인, 클로에.
“현재 중개 거래소에 등록되어 있는 정신 계열 스킬은 총 171개 입니다.”
“음. 제가 전에 스킬을 등급별로 나누는 표 드렸죠? 거기서 1티어 등급에 해당하는 건 몇 개입니까.”
“명경지수, 전념, 정신의 벽. 이렇게 세 개 있습니다.”
현재 나는 피의 각성에 대한 부작용 때문에 정신 계열 스킬이 필요한 상황.
아무래도 매일같이 중개 거래소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혹시 알고 있는 게 있을까 싶어 물어봤는데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걸 다 기억하고 있는 겁니까?”
내 물음에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몰라서 각 종류별 아이템과 스킬들을 따로 분류해두고 있었습니다. 여신님께서 지시하셨거든요.”
솔직히 제법 감탄했다.
‘아세리안이 생각보다 일을 잘하는데?’
물론 지시한 대로 그걸 착착착 분류하고 머릿속에 집어넣은 클로에도 대단하지만, 사소한 디테일들까지 알아서 잡아 준 아세리안 또한 만만치 않았다.
“추천해줘서 고맙습니다. 요즘 생활은 어떻습니까?”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손깍지를 낀 채 물었다.
전에 약속한 대로, 클로에에게 두 명의 사용인을 추가로 붙여주었다.
새로 붙은 사용인들이 2교대로 근무를 서고, 클로에가 그들을 관리 감독하게 한 것이다.
그 덕분인지, 최근 그녀에게선 이전의 꾀죄죄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배려해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클로에가 쑥스럽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다행이군요. 필요한 일이 있으면 또 부르겠습니다. 가서 일 보세요.”
“네!”
집무실을 나서는 클로에를 뒤로하고, 나는 중개 거래소를 열었다.
‘한 번 볼까.’
그리고는 그녀가 찝어준 세 개의 스킬을 찾았다.
[<스킬북:명경지수>]
[패시브]
[어떤 상황에서도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게 도와주는 스킬입니다.]
[정신 스텟이 +10% 상승합니다.]
[자신의 정신 수치에 비례하여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기운을 상쇄 시킵니다.]
[정신 10 스텟 당 3%의 기운 상쇄]
[최대 30%까지 상쇄 시킵니다.]
[판매가 : 1,120,000 G]
[<스킬북:전념>]
[패시브]
[집중력이 크게 상승합니다.]
[정신 스텟이 +30% 상승합니다.]
[판매가 : 1,090,000 G]
[<스킬북:정신의 벽>]
[패시브]
[자신의 정신 수치에 비례하여 정신 계열 공격을 상쇄 시킵니다.]
[정신 스텟이 +20% 상승합니다.]
[정신 10 스텟 당 5%의 공격 상쇄]
[최대 50%까지 상쇄 시킵니다.]
[판매가 : 1,780,000 G]
스킬의 설명을 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에가 추천해준 스킬들 모두, 나쁘지 않았다.
정신 계열 스킬들이다 보니 금액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고.
‘단순히 정신 스텟을 올려주는 건 전념이 제일 좋네.’
정신 스텟이 많이 상승하는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전념>, <정신의 벽>, <명경지수> 순이었다.
하지만 나는 세 개의 스킬 중 <정신의 벽>을 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내겐 어차피 대천사의 눈물이라는 아이템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신 계열 공격 옵션은 쓸모가 없었다.
‘마기의 오염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렇다면 두 개의 스킬밖에 남지 않는 상황.
나는 <명경지수> 쪽이 더 끌렸다.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기운을 상쇄 시킨다는 건, 마기에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마기 또한 마력이나 신성력처럼 하나의 기운일 테니까.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세리안한테 물어봐야겠군.’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아세리안의 집무실로 향했다.
“안우진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막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거는 아세리안의 모습이 보였다.
“외부 일정이 있어서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중개 거래소에 올라와 있는 명경지수라는 스킬 한 번만 봐주시겠습니까?”
“네, 잠시만요.”
내 부탁에 아세리안이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내가 어떤 스킬을 봐 달라고 부탁했을까, 흥미 어린 눈빛이었다.
“······!”
그러던 아세리안이 눈을 크게 치켜떴다.
나에게는 무척 긍정적인 반응이나 마찬가지.
“어떻습니까?”
한 줄기 기대를 갖고 물었지만, 아세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뿅! 하고 그녀의 손 위에 스킬북 한 개가 생겨날 뿐.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자, 아세리안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스킬북을 내밀었다.
“······?”
“이게 제 대답이에요.”
띠링!
[<스킬북:명경지수>를 얻었습니다.]
“아······. 그럼 마기의 오염에 효과가 있는 겁니까?”
“네, 맞아요. 이게 있으면 부작용이 한결 줄어들 거예요.”
그녀의 말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긴가민가했는데, 그녀가 확답을 내려준 것이다.
기쁜 소식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여기요.”
아세리안이 스킬북과 함께 귀걸이 한 개를 건넸다.
“다 만들어졌군요.”
“네, 맞아요. 여기 보이죠? 이걸 귀에 뚫고, 뒤쪽 나사를 채우면 아무리 격렬하게 움직여도 떨어지지 않도록 제가 부탁했어요.”
“세심하게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타이밍이 좋군.’
띠링!
[<추가 스킬 슬롯>에 <스킬:명경지수>를 채워 넣었습니다.]
[해당 스킬은 달빛 아래에서만 활성화 됩니다.]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스킬도 찾았고, 핵심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는 대천사의 눈물도 때마침 완성됐다.
이제 남은 건.
‘실전 감각만 끌어올리면 돼.’
내가 계획한 대로 딱딱 흘러가는 느낌.
뭔가 예감이 좋았다.
―열두 성계, 모든 플레이어들이 초대장을 수락했다! 남은 건 즐기는 것 뿐.
―상위 게임 메이커, “상위 리그 정도라면 최강의 성계를 논할 만 하다.”
―D-day 3. 역대급 이벤트에 모든 신과 천사들의 이목이 쏠리다.
└하.. 이게 뭐라고 안도의 한숨이 나오냐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ㄹㅇ 이번에도 불발 나는 거 아닌가 조마조마했음ㅋㅋㅋ
└무림 가즈아아아아악!
└고 쿠 훌린 고! 미드가르드 가잣!!
└ㅅㅂ 시간 ㅈㄴ 안 가네ㅡㅡ 개인적으로 상위 리그 최강자가 누구일지 궁금ㅋㅋㅋㅋ
└1.몽연 2.쿠 훌린 3.을지문덕 4.렌 5.주소월 본다.
└이번에도 지구에 전 재산 배팅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놈 스틱스강 온도 체크해줌 ㅎ2
성계 대항전이 다가올수록 조용하던 천계가 들끓었다.
그사이 나는 이번에 성계 대항전에 출전하는 플레이어들과 함께 대련장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 팀 투지에서 성계 대항전에 출전하는 플레이어는 두 명.
“뭐야, 왜 더 강해졌어!”
“후우. 악이 형 고생 많았어요. 앞으로 어디 가면 팀 투지 넘버5라고 소개하고 다니세요.”
“야, 다시 해!”
새로 얻은 플래티넘 등급 스킬인 극한심결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대련 중인 주창범과.
“얏!”
“아직도 하체가 흔들려요! 아무리 세게 뻗어도 하체가 흔들리면 정확히 때릴 수 없어요!”
그리고 당소소와 박투술을 훈련 중인 카이로시아였다.
‘카이로시아가 뽑힌 건 좀 의외인데.’
코드 제로 전에서 고위 마법을 뻥뻥 때려대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녀는 아직 정식으로 상위 리그 경기를 뛴 적이 한 번도 없는 신입생이나 마찬가지.
그런데도 탐리엘 성계 상위 100명 안에 들어간 것이다.
물론 주창범이 더 늦게 올라오긴 했지만, 그래봤자 지구는 세 명 뿐.
누가 됐든 상위 리그만 올라오면 뽑힐 수밖에 없었다.
‘게임 메이커라고 해서 스텟을 볼 수 있는 건 아닌가 본데?’
단순 스텟만 봤을 때, 카이로시아는 평균 이하의 수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뽑혔다는 건, 단순히 인상 깊은 100명을 선정했다는 거나 마찬가지.
‘차라리 잘 됐어.’
성계 대항전은 죽더라도 부활한다.
그렇기에 리스크 없이 상위 플레이어들과의 전투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안우진님, 준비됐습니다.”
무장을 한 채 내게 다가오는 지그.
그의 등 뒤로 루치아노와 제이스, 고건하, 수호의 모습이 보였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안우진님께 받은 걸 생각하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지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할까요.”
“예!”
그렇게 시작된, 내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련.
한동안 팀 투지의 특수중력대련장이 들썩거렸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우우우우우우웅―
옅은 충격파와 함께, 세 개의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세 분 모두,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랄게요.”
“안우진님! 이번에 아세리안님이 지구에 거액을 베팅했대요, 헤헤. 화이팅!”
“멋진 활약을 기대하겠다. 잘 다녀오거라.”
공터에 모인 수많은 플레이어들 사이로, 아세리안과 두 천사가 우릴 배웅해 주었다.
‘또 지구에 베팅했다라······.’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는 게이트로 향했다.
“······.”
고개를 돌리자 나를 바라보고 있는 주창범과 카이로시아.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띠링!
[대기실에 입장했습니다.]
[성계 대항전은 총 5경기가 치러지며, 가장 많은 승리를 차지한 1개의 성계에 차원 특전이 주어집니다.]
[차원 특전은 도박사들이 예측한 우승 확률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공동 1위일 경우, 해당 성계에 한하여 추가 게임이 펼쳐집니다.]
오랜만에 보는 새하얀 공간이 날 맞아주었다.
< 161화. 격변의 물결(9)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