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격변의 물결(6) >
“미카엘님. 전에 지시하셨던 플레이어 명단 업데이트와, 라파엘 팀이 만들어 둔 아레나 체크를 끝마쳤습니다.”
카서디엘의 보고에, 바쁘게 서류를 넘기고 있던 미카엘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카엘은 아무리 바쁜 상황이라도 언제나 눈을 맞추며 얘기했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정말 멋진 분이야.’
상대방을 존중하기 때문에 저런 행동이 나오는 거겠지.
그런 모습 때문에 카서디엘은 미카엘을 무척 존경했다.
“아레나 상태는 어떠한가.”
“보존율 71퍼센트, 경미한 손상이 있는 곳이 19퍼센트, 완파된 곳이 10퍼센트 입니다. 다시 복구하는 데 2주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복구에 드는 금액은 4,700만 포인트 정도로 견적이 나왔습니다.”
카서디엘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는 미카엘.
“할 일이 많았을 텐데, 무척 빨리 끝냈구나. 정말 수고 많았다.”
그녀가 치하하자, 카서디엘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따로 더 지시하실 사항이 있으십니까?”
“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앞으로 한 달 뒤에 여는 걸 목표로 할 테니, 너무 무리하지 말도록.”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아,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전에 플레이어 렌이 성계 대항전에 불참 선언을 했는데요. 그 부분은 어떻게 진행하면 될까요?”
카서디엘이 생각했을 때,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열리기 위해선 플레이어 렌의 협조가 필수였다.
당장 이전에 상위 리그를 진행하던 라파엘 팀만 봐도, 결국 렌이 불참 선언을 하는 바람에 열심히 준비한 성계 대항전이 시작도 못 해보고 박살 났으니까.
‘쉽게 마음을 돌려줄 것 같지 않은데.’
내심 불안했지만, 카서디엘은 티 내지 않은 채 차분하게 기다렸다.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미카엘님이 모르실 리 없다.
이럴 땐 그저, 믿고 기다릴 뿐.
“그 문제는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방법이 있으십니까?”
카서디엘의 물음에 미카엘이 고개를 저었다.
“정면 돌파를 할 생각이다.”
미카엘이 살짝 고개를 들어 허공을 응시했다.
무언가를 결심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미카엘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 * *
“중개 거래소에 신화 등급 아이템이 등장했어요!”
‘뭐라고?’
클로에의 말에, 나는 하던 걸 멈추고 곧장 중개 거래소로 들어갔다.
마음이 급했다.
신화 등급이 중개 거래소에 등장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제발 빨리.’
그녀가 말하는 아이템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들어가자마자 제일 상단에, 한 아이템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얼마야?’
나는 당황하며 금액을 확인했다.
띠링!
[<보석:대천사의 눈물>을 100,000,000 G에 구입하시겠습니까?]
[Yes / No]
‘1억······골드?’
가격을 확인한 나는 눈을 치켜떴다.
보석 주제에 1억 골드나 한다고?
대체 뭐길래?
‘제발 팔리지 마라.’
당장이라도 구입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정보를 확인하는 사이, 누가 먼저 아이템을 채갈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이템을 사는데 정보를 체크하지 않고 살 수도 없는 노릇.
‘1억 골드를 가지고 도박을 할 순 없지.’
나는 서둘러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보석:대천사의 눈물>]
[다섯 명 밖에 없는 대천사가 흘린 눈물이다. 일생에 한 번, 죽기 직전에 흘린 것만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귀하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유자에게 엄청난 행운이 찾아옵니다.]
[정신 계열 공격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정신 스텟이 +40% 상승합니다.]
[<갱생更生>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갱생>]
[사용 시 손상된 육체를 100% 회복시킵니다.]
[뇌, 심장이 파괴되거나, 목이 잘렸을 경우엔 회복되지 않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168시간(1주일)]
[등급 : 신화]
[판매가 : 100,000,000 G]
아이템의 설명을 본 나는 눈을 치켜떴다.
과연 신화 등급의 아이템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옵션.
‘이건 반드시 사야 해.’
마음이 급했다.
이건 굳이 계산기를 두들겨 볼 필요도 없었다.
‘육체가 100퍼센트 회복된다니······!’
갱생 능력 하나만으로도 1억 골드의 값어치는 충분했다.
여벌의 목숨을 하나 더 들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
‘제발!’
나는 곧바로 구입 버튼을 눌렀다.
띠링!
[<보석:대천사의 눈물>을 100,000,000 G 에 구입하셨습니다.]
‘됐어!’
손바닥에 생겨난 1캐럿 다이아몬드 크기 정도의 투명한 보석.
그걸 본 나는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1억 골드?
‘이런 아이템이 고작?’
만약 2억 골드에 올라와 있어도 구입했을 것이다.
“괜찮은······ 아이템이었나요?”
내가 대천사의 눈물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곁에서 두 손을 모은 채 공손히 서 있던 클로에가 물었다.
‘괜찮냐고?’
이건 고작 그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다.
‘대박이야.’
갱생 능력 하나만으로도 무척 좋은 아이템이었지만, 대천사의 눈물에는 3개의 옵션이 더 들어 있었다.
가장 첫 번째로, 행운 상승.
“······.”
이건 뭔지 잘 모르겠다.
뭐 말 그대로, 운이 좀 좋아지는 능력이겠지.
그리고 두 번째로, 정신 스텟 40% 상승.
안 그래도 정신 스텟을 올려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이것 또한 어마어마하게 좋은 옵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신 계열 공격 완전 면역.’
이게 내가 대천사의 눈물에서 가장 눈여겨보고 있던 옵션이었다.
‘잘하면 피의 각성이 발동해도 이성을 잃지 않을 수도 있어.’
이성을 잃는 것도 정신에 이상이 생기는 문제였으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한마디로, 내 예상이 맞다면 블라디미르 가면을 리스크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
‘클로에가 대단한 아이템을 발견해 줬어.’
기분이 좋아진 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알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휴우. 정말 다행이에요.”
클로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으로 발견한 게 쓸모없는 아이템일까 봐 내심 마음을 졸인 모양이었다.
“고생 많았습니다. 아, 앞으로 두 명의 사용인을 추가로 붙여주겠습니다.”
“······두 명이요?”
클로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클로에님 혼자서 하기엔 힘드실 테니까요.”
나는 클로에를 위아래로 훑었다.
홀쭉해진 얼굴, 생기를 잃은 듯한 눈동자, 잔뜩 헝클어진 머리칼.
딱 보기에도 굉장히 초췌해 보였다.
‘고생 많았나 본데.’
사실, 중개 거래소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기에 눈도 뻑뻑해지고, 본인이 착용할 아이템을 둘러보는 게 아니라서 무척 지루한 작업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24시간 내내 올라오는 매물을 체크해야 하기에, 자다가도 중간중간 확인해야 하고.
‘쉽지 않은 일이지.’
거기다 그녀는 어제, 파티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중개 거래소를 들여다 봐야하기 때문에, 파티를 즐길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까지 사용인을 더 붙여주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클로에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부로, 그녀의 위상이 달라졌다.
‘대천사의 눈물을 알려준 것 만으로도 클로에는 할 몫을 다 했어.’
그래서 이제부터 그녀를 챙겨줄 생각이었다.
정말 확실하게.
“아, 아니에요. 저 혼자서 할 수 있어요.”
클로에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아무래도 내가 그녀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이럴 땐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게 낫다.
“클로에님.”
“네······.”
“이건 대천사의 눈물을 찾아주신 것에 대한 포상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리고 오늘부터 1주일간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짐 챙겨서 숙소로 들어가 쉬세요. 중개 거래소도 볼 필요 없습니다.”
“그럼 중개 거래소는 누가 체크를······.”
클로에의 걱정에 나는 피식 웃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시고 어서 들어가 쉬세요. 이세연님께는 제가 따로 말해 둘 테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 만들어달라고 하시구요.”
중개 거래소를 체크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지금 팜에 있는 사용인 중 아무나 한 명 골라서 시키면 충분할 것이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푹 쉬고 오세요.”
연신 고개를 숙이는 클로에.
이대로는 감사 인사만 하루 종일 할 것 같아, 나는 그녀의 등을 떠밀어 숙소로 보냈다.
그리고는 다시 의자에 앉아, 잠시 인벤토리에 넣어둔 대천사의 눈물을 꺼내 들었다.
띠링!
[<보석:대천사의 눈물>에 의해 행운이 대폭 상승합니다.]
[<보석:대천사의 눈물>에 의해 정신 스텟이 40% 상승합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조금 커다란 모래알 수준의 크기.
들고 다니기엔 너무 작았다.
잃어버릴 가능성도 크고.
‘1억 골드 짜리인데, 절대 안 되지.’
그렇다고 인벤토리에 넣고 다닐 수도 없다.
그러면 효과를 전혀 받지 못할 테니까.
한동안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대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 상황.
‘귀걸이로 만들어달라고 해야겠군.’
아무래도 2차 가공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아뇨.”
아세리안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너무 단호해서 나도 모르게 당황할 정도였다.
“전혀 가능성 없습니까?”
“네. 마기에 오염되는 건 정신 계열 공격이 아니거든요. 지금 겪고 있는 부작용에 아무런 효과가 없을 거예요.”
‘쯧.’
똑 부러지는 대답에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심 기대했는데 헛다리를 짚은 모양.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강구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정신 스텟이 40프로나 올라간다는 부분은 굉장히 고무적이네요. 이전보다 부작용이 훨씬 낮아질 거예요.”
“그렇긴 하죠.”
현재 내 정신 스텟은 99 포인트.
거기에 각종 특전들을 모두 적용하면 최대 178포인트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여기서 40프로를 더하면?
‘218포인트.’
무려 40포인트나 오르는 셈이었다.
이 정도라면 전처럼 이성을 잃고 날뛸 확률이 크게 하락할 것이다.
그리고 아세리안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는 오히려 이 행운 상승이란 부분이 예사롭지 않아요.”
예상하지 못한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예사롭지 않다는 거지?’
“그냥 운이 조금 더 좋아지는 수준 아닙니까?”
“바꿔말하면 안우진님이 행하는 모든 부분에서 이전보다 더 나은 결과값이 나온다는 뜻이기도 하죠.”
‘아.’
그녀의 대답에서 내가 지금까지 뭘 놓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행운은 근력이나 정신처럼 스텟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별로 중요한 옵션은 아니겠거니 무시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생각해 보니까 이상했다.
지금까지 스텟 외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아이템들이 있었던가?
“이전에도 대천사의 눈물을 본 적 있으십니까?”
“아뇨. 지금까지 죽은 치천사의 숫자가 셋 밖에 안 되거든요. 이번에 죽은 라파엘님을 포함해서요. 거기다 설명을 보면 죽기 직전에 눈물을 흘려야만 얻을 수 있다는 건데, 전투 중에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흔치 않구요.”
아세리안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셋이라······.’
한마디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천사의 눈물은 많아 봐야 세 개, 적으면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는 게 유일하다는 것.
“아무튼 제 생각에는 이 행운 옵션을 가장 주의 깊게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를 듣고 보니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확률이 들어가는 모든 부분에서 영향을 미칠 테니까.
“이걸 귀걸이로 세공해달라는 거죠?”
아세리안이 테이블 위에 있는 대천사의 눈물을 챙기며 물었다.
“맞습니다.”
내가 그녀에게 부탁한 건, 공방 컨셉으로 운영되는 팀에 대천사의 눈물로 귀걸이를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팀 투지에선 세공 능력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나 사용인이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보통 수제로 만들 일이 있다면 다양한 컨셉으로 운영되는 팀들에게 의뢰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대표적으로 이전에 내가 있던 팀 성장처럼 공장 컨셉으로 운영되는 팀, 그리고 다양한 약초를 이용해 물약을 생산하는 팀, 검이나 판금 방어구를 만드는 대장간 컨셉의 팀 등등.
다양한 컨셉을 가진 팀들이 존재한다.
다만, 그곳은 커뮤니티에 글을 남길 수 있는 신들만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아세리안의 도움을 받는 것이고.
“잘 부탁드립니다.”
아세리안이 예쁘게 웃었다.
“걱정 마세요. 기왕 착용하실 거, 디자인도 예쁘게 해달라고 할게요. 아, 참. 내 정신 좀 봐.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무슨······?”
“새로운 상위 게임 메이커님께 연락이 왔어요.”
< 158화. 격변의 물결(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