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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157화 (157/205)

< 157화. 격변의 물결(5) >

치이이이이익―

공터에 세팅된 어마어마한 숫자의 테이블들 사이로, 고기 굽는 소리가 팜에 가득 울려 퍼졌다.

열두 개의 성계에서 모인 플레이어들이 오순도순 모여 삼겹살을 굽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렇게 먹는 것도 괜찮은데?’

현재 팀 투지에 소속되어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는 5,014명.

숫자가 많아지다 보니, 더 이상 한 개의 식당으로는 플레이어들과 사용인들을 수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몇 개 식당에 나뉘어서 파티를 하자니, 일반 식사 때와 다를 게 없을 거고.

그래서 아세리안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이렇게 공터에 테이블을 펼쳐두고 먹게 되었다.

‘간간이 이런 자리를 갖는 것도 좋겠어.’

멀쩡한 식당을 놔두고 공터에 새롭게 세팅하는 것도 일이긴 하지만, 어차피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범인의 경지를 뛰어넘은 상황.

이 정도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덕분에 안우진님과 술 한잔 하는 날도 오는군요.”

고건하의 말에 나는 머쓱했다.

지금 나는 고건하, 주창범, 모용악, 루치아노, 제이스, 지그, 거기다 최근 고분고분해진 수호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평소에 음주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이유는 하나였다.

고건하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서.

‘충분히 화날 만 한 상황이니까.’

고건하의 닉네임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전에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당소소의 문제가 엮여 있다 보니 함부로 얘기하는 것이 꺼려졌기 때문이다.

그 탓에 고건하의 목숨이 위험해질 뻔한 상황.

지금 이 순간엔, 입이 열 개라도 고건하에게 할 말이 없었다.

“······알고 보니까 무림맹 내부에서 안우진님을 직접 본 사람이 별로 없더라구요. 그래서 나중에야 무림맹주 진초풍인가? 그분이 제게 달려들어서 검을 휘두르더군요.”

“······.”

“그때 정말 난처했습니다. 저를 믿고 따라와 준 파티원들까지 위험해진 순간이었으니까요. 저는 분명 제 이름을 댔는데, 사칭한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더라구요.”

“푸하하하하하!”

“아, 진짜 웃겨.”

고건하의 말에 함께 앉아 있던 팀원들이 배를 잡고 박장대소했다.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서 귀를 쫑긋하던 아세리안과 두 천사, 카이로시아, 당소소까지 풋! 하고 웃을 정도였다.

‘쯧.’

할 말이 궁한 나는 그저 잔에 들어 있는 술을 들이켰다.

“아, 진짜 오랜만에 웃었네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건하 형?”

“뭘 어떻게 해. 살려고 대충 막 질렀지. 나 사실 고건하가 아니라 주창범이다. 원래 모용악이라고 그랬는데, 맹주라는 노인의 눈빛이 확 달라지더라고.”

고건하의 말에 모용악이 피식 웃었다.

“생전에 맹주님께 한 번 인사드린 적 있었거든. 아무래도 내 얼굴을 알고 계시다 보니, 네가 또 거짓말하는 게 아닌가 싶으셨을 거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그렇게 쉽게 넘어가실 분이 아닌데.”

“증거를 더 대라고 하는데, 사실 우리 중에 안우진님을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냐. 그래서 그냥 대충 둘러댔지.”

“뭐라고 그랬는데?”

“안우진님은 당소소님을 그리워하며 심산유곡에 은거했다. 나는 그런 안우진님을 대신해서 남은 마교의 잔당들을 죽이러 왔다고.”

이어지는 고건하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뭐라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안 그래도 당소소랑 어색한 사이인데, 저런 얘기를 했다니.

‘하.’

나는 곧바로 옆 테이블을 곁눈질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아세리안과 카이로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고, 당소소는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옆에선 포르도엘이 턱을 받친 채 개구쟁이처럼 웃었고, 피넛엘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다리를 꼰 채 와인을 음미했다.

순간 흐르는 싸늘한 정적.

“······.”

바로 옆 테이블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챈 고건하 일당이 입을 콱! 다물었다.

“푸하하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대요? 응? 뭐야, 다들 안 웃겨? 나만 웃긴가? 푸흐흐흡.”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제이스가 혼자서 큰 소리로 웃자, 주창범과 모용악, 지그가 서둘러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아, 제발 형 쫌!’

‘이렇게 둔한 녀석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지?’

‘이 병신아. 제발 분위기 파악 좀 해라.’

마치 그들의 속마음이 들리는 듯 했다.

“하. 하. 하. 진짜 재밌네요.”

“큼. 큼.”

카이로시아가 싸늘한 냉기를 풍기며 말하자,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제이스가 슬며시 꼬리를 만 채 술을 들이켰다.

“······.”

방금 전까지 시끌벅적하던 술자리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였다.

“안우진님. 그 가면은 왜 안 벗으시는 거예요?”

당소소 옆에서 지금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미소 짓던 포르도엘이 물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화제를 전환한 것이다.

그러자 어색한 분위기를 탈출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내게 물었다.

“맞아요, 형. 그 가면 벗으시는 거 한 번도 못 봤어요.”

“저도 처음엔 무슨 컨셉인가 싶었습니다.”

‘가면이라······.’

한동안 가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었다.

더 이상 가면을 사용하지 못하면, 이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걱정은 정신 스텟을 올리는 순간 눈 녹듯이 사라졌다.

‘정신 스텟이 낮아지면서 내 멘탈이 약해졌던 거였어.’

다시 한번 정신 스텟의 중요성을 깨달았달까.

뭐, 어쨌든.

“무기를 제외한 모든 장비를 평소에도 착용하는 습관이 있거든요.”

나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포르도엘에게 말했다.

“그래요? 그럼 얼굴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네요? 그럼 가면 한 번만 벗어주세요!”

그러자 눈을 빛내는 포르도엘.

“오오, 저도 안우진님 얼굴이 궁금합니다.”

“보여주세요!”

다른 사람들도 포르도엘처럼 눈을 반짝였다.

특히 당소소와 카이로시아의 눈동자에선 불꽃이 이글이글 거리는 듯 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싫습니다.”

“어어? 왜요! 그냥 습관처럼 쓰시는 거라면서요!”

내 대답에 포르도엘이 따지듯 물었다.

장난기도 많고, 호기심도 강한 포르도엘.

이전이라면 그녀의 페이스에 말렸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녀의 입을 다물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중개 거래소.”

“······.”

딱 한 마디면 된다.

10억에 스킬북을 판매하고 아세리안에게 어마어마하게 털렸던 탓인지, 포르도엘은 저 단어만 나오면 몸을 흠칫 떨었다.

“······자, 자. 술 마십시다, 술.”

“앗, 형. 잔이 비셨네요. 제가 따라 드릴게요, 헤헤.”

내가 거북해한다는 걸 눈치챈 루치아노가 다시 화제를 전환했고, 주창범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단숨에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때였다.

“전 안우진님 맨얼굴 아는데.”

꺼져가던 불씨에 아세리안이 다시 불을 지폈다.

“아, 여신님께선 우진이형 얼굴 보셨어요?”

주창범의 물음에 아세리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 처음 팀에 들어오셨을 땐 가면을 안 쓰고 계셨거든요.”

“우진이형 어떻게 생겼어요?”

꿀꺽―

주창범의 물음에 침을 삼키는 카이로시아와 당소소.

그런 두 사람을 한 번 곁눈질한 아세리안이 활짝 웃었다.

“비밀이에요.”

“······.”

여기저기서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당소소나 카이로시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게 뭐라고.’

그 모습에 나도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차피 앞으로도 벗을 생각이 없기에, 이들이 내 얼굴을 알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내 얼굴을 궁금해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곳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잘 생겼더군.”

“······?”

지금까지 대화에 끼지 않은 채 와인을 음미하던 피넛엘이 입을 연 것이다.

“피넛엘, 네가 안우진님 얼굴을 어떻게 알아?”

포르도엘의 물음에 피넛엘이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랜덤 뽑기로 뽑은 게 나거든.”

아세리안의 고개가 확! 돌아갔다.

“뭐? 정말?”

“네.”

“안우진님 처음 들어왔을 때는 어땠어? 혹시 막 어리버리하거나······. 그, 그러니까······.”

아세리안이 횡설수설했다.

제법 흥분한 듯한 모습.

피넛엘이 무표정한 얼굴로 아세리안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더니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비밀입니다.”

그러자 아세리안과 카이로시아, 당소소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별걸 다 궁금해하네.’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내 옆에 앉아 있던 지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승자가 나왔군.”

밤이 깊어 가고, 파티는 계속되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나는 집무실 의자에 앉아, 커뮤니티를 열었다.

어제 열린 블러드나이트 274에서 팀원들이 대거 출전했었기에,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뭐야?’

커뮤니티에 들어간 나는 눈을 치켜떴다.

└미친ㅋㅋㅋㅋㅋㅋ 팀 투지는 도대체 뭐 하는 곳임?

└저게 가능한 건가? 참가하는 애들마다 급성장했네 ㄷㄷ

└내가 말했자낰ㅋㅋㅋㅋㅋㅋ 팀 투지에 육성의 신 있음!

└그래봤자 하위 리그용 아님? 팀 투지에 고위 플레이어 있음? 초월 플레이어 있음? 끽 해봐야 상위 플레이어 꼴랑 두 명밖에 없는데 뭔 명문 팀 드립임ㅡㅡ

└윗댓 / 팀 투지한테 소속 플레이어 깡그리 죽었냐? ㅋㅋㅋ 쟤는 가는 곳마다 악플 달고 있네 ㅋㅋㅋㅋㅋ

└곧 있으면 저렇게 까는 것도 끝임 ㅋㅋ 지금 추세면 팀 투지 소속 애들 상위 리그로 대거 넘어갈듯 ㅋㅋㅋㅋ

└하위 리그 한정 명문 팀? 응 이제 상위 리그에서도 명문 팀 될 거야~

└심지어 곧 있으면 고위 플레이어도 나올 기세임 ㄷㄷ 성장률 개 미쳤음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 보니까 카이로시아라는 애도 장난 아니던데? 잘만 다듬으면 상위 리그도 씹어먹을듯ㅋㅋ

‘난리가 났네.’

반응이 상상 이상이었다.

이전에도 우리 팀의 육성법을 궁금해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하위 리그에서나 통하는 방법이라고 깎아내리는 신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거의 대다수 신들이 상위 리그에서도 통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당연한 거지.’

무려 10억 골드 만큼의 스킬북.

그걸 뿌렸으니, 팀원들이 하위 리그에서 활약하는 건 불을 보듯 뻔할 수밖에 없었다.

―하위 리그를 씹어 먹고 있다! 플레이어 얘기냐고? 아니! 팀 투지가!

―승리, 승리. 승리! 나오는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챙겨가고 있는 팀 투지!

―블러드나이트 271, 272, 273 모든 경기를 독식하고 있는 팀 투지. 하위 리그에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하위 리그, 상위 리그 할 것 없이 모든 커뮤니티에 팀 투지라는 이름이 도배되었다.

현재 하위 리그를 제외한 나머지 리그는 열리지 않고 있는 상황.

평소 하위 리그를 거들떠보지 않는 신들도 경기를 보고 싶으면 어쩔 수 없이 하위 리그 경기를 관람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딜 가나 우리 팀의 얘기로 가득했고.

‘하위 게임 메이커는 대박이 났겠군.’

고건하에게 들으니, 관객 수가 몇백만 명이나 됐다고 한다.

덕분에 팀 투지의 이름이 천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나야 좋지.’

상황이 너무 좋았다.

팀 투지엔 하위 리그 랭커들이 득실거렸으니까.

원래대로라면 한참 뒤에나 노려볼 수 있을 수준의 플레이어들도, 이번 기회에 상위 리그의 문턱을 두드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임? 어쩌다 걸린 네임드도 아니고, 한 개 팀 소속 애들 거의 다 하위 리그를 씹어먹고 있다는데?

└어디 명문 팀인가 보지ㅋ

└ㄴㄴ 팀 투지라는데, 들어본 적 있음? 생존율도 하위 리그 역대 1위이고, 승률도 역대 1위라고 함. 그것도 2위랑 큰 폭으로 차이 나는.

└생존율이 그렇게 높은데 왜 유명한 애들이 없음? 난 처음 들어보는 팀인데?

└만들어진 지 2년도 안 된 신생팀이라고 함. 이번에 코드 제로에서 활약한 렌, 카이로시아가 투지 소속임.

└2년????? 2년 만에 렌이나 카이로시아를 배출할 수가 있다고????

그 덕에 오늘 아침, 아세리안의 얼굴엔 웃음꽃이 펴 있었다.

아마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커뮤니티 반응을 살핀 모양이었다.

‘뼈대는 만들어졌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이제는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팀 투지를 모르는 신이 없을 정도.

팀원들이 상위 리그로 올라오는 순간, 지금 깔아두었던 초석이 빛을 발휘할 것이다.

‘팀원들한테도 좋은 일이지.’

팀 투지의 이름값이 상승할수록, 팀원들의 파이트머니도 가파르게 오를 테니까.

그로 인해 내게 들어오는 포인트도 늘어날 거고.

‘이번 달에만 10만 포인트가 넘었네.’

그때였다.

벌컥!

“아, 안우진님!”

사용인 클로에가 숨을 헐떡이며 집무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중개 거래소에 신화 등급 아이템이 등장했어요!”

‘뭐라고?’

< 157화. 격변의 물결(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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